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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저 여인은 누구실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8-06 조회수39 추천수0

[“저 여인은 누구실까?”] “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

 

 

한국 교회의 주보 성인은 누구일까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복되신 동정 마리아’이십니다. 박해가 한창이던 시절 조선 대목구장 앵베르 주교님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조선 가톨릭교회의 주보 성인으로 정해주도록 교황청에 요청했습니다. 기해박해가 끝난 1841년, 교황 그레고리오 16세는 그 요청을 받아들여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한국 교회의 주보 성인으로 공표했습니다. 조선에서 선교하시고 순교하신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이 대단히 깊었습니다.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 옆에는 기적의 메달로 널리 알려진 애덕 수녀회가 있습니다. 1830년 카타리나 라부레 수녀는 성모님의 발현을 보았고, “오, 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님, 당신께 의탁하는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O MARIE CONÇUE SANS PECHE PRIEZ POUR NOUS QUI AVONS RECOURS A VOUS)라는 기도문 메시지도 함께 보았습니다. 파리 대주교의 주선으로 성모님의 모습과 기도문이 새겨진 기적의 메달이 세계 곳곳에 보급되었습니다. 지금도 대부분 묵주는 기적의 메달이 부착되어 있어,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가까이 의식하며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애덕 수녀회가 위치한 뤼 뒤박의 성모 발현지를 저도 자주 방문했습니다. 로마 유학 시절 방학을 이용해 불어 연수를 받기 위해 파리에 머물렀는데, 어학 수업을 마치면 그곳에 꼭 들러 묵주기도를 바쳤습니다. 푸른색이 감도는 평온한 성전에서 순례자들과 함께 경건한 침묵을 지키며 기도했던 기억이 마음속 깊이 남아있습니다. 파리 외방전교회 본부는 걸어서 5분 거리, 전교회 신부님들도 뤼 뒤박의 성모 발현지를 방문하여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기도했을 겁니다. 떨리는 마음으로 선교를 준비하며 성모님께 의지하고, 먼저 파견된 이들의 순교 소식을 들으며 성모님께 더욱 절실히 의탁했을 것입니다. 조선 땅에 들어서면 순교를 각오해야 했던 시절, 아직 앳된 20대 젊은 신부님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에게 영적 위안을 받으며, 복음 선포의 도구로 기꺼이 자신을 주님께 내어드렸습니다.

 

 

잉태 첫 순간에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원죄에서 보호받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대한 신심은 고대로부터 이어오지만, 교의, 곧 신앙 진리로 선포된 것은 1854년의 일입니다. “지극히 복되신 동정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또 인류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예견하여, 원죄의 모든 오점에 물들지 않고 보호되었다는 가르침은 하느님에 의해 계시 되었으며, 따라서 모든 신앙인에 의해 확실하고 분명하게 믿어져야 한다.”(DH 2803) 비오 9세 교황의 교서 「형언할 수 없는 하느님」(Ineffabilis Deus)의 선언입니다. 

 

여기서 아주 특별한 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이 요청됩니다. 그런데 동정 마리아는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원죄 없이 잉태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계셔야 그분을 믿는 신앙도 가능하고 구원도 가능한데, 어떻게 마리아는 “잉태 첫 순간에” 죄로부터 보호받을 수 있었을까요? 교서는 두 가지 사항을 말합니다. 먼저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가능했다고 밝힙니다. 하느님께서는 인류 구원을 위해 모든 것을 다 내어주시는 자비로운 아버지이시기에 당신만이 아시는 방식으로 은총을 베푸셨다는 겁니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예견하여” 발생했다고 강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통해 구원을 가져오셨고, 승천하시어 세상의 한계를 넘어 우리와 함께 계신 분입니다. 그분의 십자가 죽음은 시공간의 제약을 뛰어넘어 모든 이를 위한 구원의 근원이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성모님은 시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시기 전에 죄에서 해방될 수 있었습니다.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조선에 파견된 선교사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은 아름다운 금수강산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느님께 찬양을 드렸고, 온유하고 겸손한 사람들을 만나며 놀라워했습니다. 복음을 알지도 못하고 세례를 받지도 않은 이들이 어떻게 이토록 선하고 진실할 수 있는지, 자주 감탄했습니다. 그렇다면 복음을 접하지 못한 이들의 운명은 어떻게 되었을까, 성사의 은총을 받지 못했으니 파멸되었을까, 선교사 신부님들은 이 문제를 깊이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의 모습을 바라보며 희망을 얻었습니다. 성모님 역시 잉태되는 순간 복음을 알지 못했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고백할 수 없었지만,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과 특권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를 예견하여” 구원받은 것입니다. 과연 그렇다면, 복음을 접하지 못하고 죽은 조선 땅의 선량한 이들에게도 하느님의 은총과 예수 그리스도의 공로로 말미암아 구원의 길이 활짝 열려있었겠구나, 확신을 얻게 되었습니다.

 

 

원죄 없는 잉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사랑 보여줘

 

파리 외방전교회 신부님들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 신심을 널리 전했습니다. 박해 시기 동안 묵주기도를 장려하며 기적의 메달을 보급했고, 명동대성당을 축성하면서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께 봉헌했습니다. 대구대교구의 성모당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을 기리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님과 참으로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교회가 세워지기 전부터 한국의 모든 사람들을 사랑하셨고, 성모님은 신앙 선조들에게 하느님 사랑의 표징이 되어 주었습니다. 성모님께 희망과 위안을 얻은 한국 교회는 성모 신심이 가득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마리아의 원죄 없는 잉태 교의는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는 하느님의 마음을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리스도의 강생 이전에 죽음을 맞이한 이들, 여러 상황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한 이들을 결코 잊지 않으십니다.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은 이렇게 밝힙니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16항) 

 

원죄 없는 잉태는 모든 이의 구원을 원하시는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을 보여줍니다. 성모님은 잉태 순간부터 하느님의 사랑을 온전히 받았고, 그 사랑을 이웃과 세상에 온전히 전하는 하느님의 탁월한 협력자로 살아갔습니다. 우리 또한 사랑의 봉사자가 되도록 겸손히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7월호, 노우재 미카엘 신부(부산교구 서동성당 주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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