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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교회사에서 희년을 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1500년 희년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8-13 조회수14 추천수0

[교회사에서 희년을 보다]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1500년 희년

 

 

교황 알렉산데르 6세의 치세에 대해 교황 의전사제 요하네스 부르카르트(Johannes Burchard, 1450~1506년)는 자신의 『의전 일기(Liber notarum 또는 Diarium)』에 상세히 기록했습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1500년 희년에 관한 주요 사건들을 생생히 확인할 수 있습니다.

 

1499년 12월 24일, 알렉산데르 6세 교황은 성 베드로 대성당에서 ‘성문 개방식(Apertura della Porta Santa)’을 거행했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옛 성 베드로 대성당에는 현관에서 본당으로 이어지는 다섯 개의 문이 있었습니다. 중앙에는 교황 레오 4세의 은장식에서 이름이 유래한 ‘아르젠테아(Argentea, 은문)’, 그 오른편에는 로마 여성들이 출입하던 ‘로마나(Romana)’, 왼편에는 외국사절을 인도하던 귀도네 가문의 이름을 딴 ‘귀도네아(Guidonea)’, 양쪽 끝에는 라벤나와 롬바르디아 출신 순례자들이 출입하던 ‘라벤니아나(Ravenniana)’, 그리고 성 베드로 대성당에 매장되는 시신이 들어오던 ‘심판의 문(Porta del Giudizio)’이 있었습니다.

 

알렉산데르 교황은 왼손에는 금으로 도금된 초를 들고 오른손으로는 교황 강복을 내리면서 아르젠테아 문 앞까지 행렬로 나아갔습니다. 그리고 성인호칭기도가 바쳐지는 가운데 석공장에게서 받은 의례용 망치로 벽돌을 세 번 두드리면, 석공들이 약 30분간 문을 완전히 개방했습니다. 이어 교황은 열린 문을 통과해 제대 앞으로 나아갔고, “Te Deum” 찬미가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저녁기도가 시작되었습니다. 대성당의 나머지 세 성문 개방은 추기경들이 맡았습니다.

 

4월 13일에 교황은 자신도 희년의 전대사를 얻기 위해 네 개의 주요 대성당을 방문했습니다. 주님 부활 대축일 미사에는 무려 20만 명이 모였다고 전해질 정도로, 불안정한 시대에도 순례 열기는 뜨거웠습니다. 교황청 관료이자 역사기록가인 시지스몬도 데 콘티(Sigismondo de Conti, ?~1512년)는 “전 세계가 로마에 있다.”(orbis in urbe)고 기록했습니다. 다시 찾아온 흑사병과 해상에서의 해적의 위협으로 많은 이들이 오지 못했음에도, 헝가리,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에서 온 순례자들이 대거 로마에 도착했습니다.

 

희년의 끝무렵인 11월에는 대홍수로 테베레 강이 범람해 로마 시내가 침수되고 교통이 마비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희년은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로 연장되었고, 이후 이탈리아 전역과 타 그리스도교 국가들로 확대되어, 로마에 오지 못한 신자들도 일정한 신심 행위와 기부를 통해 대사를 받을 수 있도록 허락되었습니다.

 

[2025년 8월 10일(다해) 연중 제19주일 수원주보 4면, 황치헌 요셉 신부(수원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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