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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 교리: 사랑의 완성이 용서인 이유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25-09-04 조회수49 추천수0

[가톨릭 교리] 사랑의 완성이 용서인 이유

 

 

한국인의 화와 화병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을 보며 자주 하는 말 중의 하나가 평소 길거리에서 만나는 한국인 중에는 화난 얼굴을 한 사람이 많다는 것입니다. 저 역시 길거리를 오가다 보면 화난 것처럼 보이는 얼굴을 한 사람이 자주 보이기에, 그런 말이 이해됩니다. 왜 한국인은 늘 화가 난 것처럼 보일까요? 화난 것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실제 화가 난 사람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늘 빨리빨리 뭔가 해치워야 하고, 남들보다 뒤처지면 손해라는 인식이 팽배합니다. 내가 먼저 참으면 손해를 보거나 바보처럼 취급받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하기도 하고, 남들보다 먼저 화를 내지 않으면 내가 상처받을지 모른다는 착각이 무의식 안에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 사회에는 한편으로 화가 난 사람이 많이 있지만, 다른 한편으론 화병을 호소하는 사람도 많습니다. ‘화병’(火病)'은 억울한 일을 당했거나 한스러운 일을 겪으며 쌓인 화를 삭이지 못해 생긴 몸과 마음의 질병입니다. 즉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생긴 병입니다.

 

이처럼 화가 많은데, 정작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하고 있는 우리 사회의 모습은 참 이해하기 쉽지 않고, 여러모로 바람직한 상태도 아닙니다. 평소 화가 나는 이유와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합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큰 이유는 상대방의 말과 행동 때문에 상처받게 되고, 그래서 누군가 미워하게 되며, 결국엔 상대방을 용서하지 못해서 화가 나고, 화를 제대로 내지 못해서 화병이 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실 화를 치유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용서입니다. 즉 자신에 대한 용서와 타인을 향한 용서입니다. 하지만 용서의 실천은 생각보다 쉽지 않습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

 

용서는 누구에게나 너무 어렵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용서의 필요성과 동시에 어려움에 대해서 자주 이야기합니다. 베드로가 예수님께 묻습니다. “주님, 제 형제가 저에게 죄를 지으면 몇 번이나 용서해 주어야 합니까? 일곱 번까지 해야 합니까?”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일곱 번이 아니라 일흔일곱 번까지라도 용서해야 한다.”(마태 18,21-22) 당시 유대교 율법은 3번 용서의 의무를 강조했으나, 베드로는 이를 넘어 자랑스럽게(?) 7번의 용서를 제시했지만, 예수님은 놀랍게도 77번, 즉 ‘완전한 용서’를 요구하십니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용서하기가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 누구나 잘 압니다. 특히 큰 상처를 받아 본 적이 있는 사람, 그리고 이전에 참된 용서를 실천해 본 사람은 잘 압니다. 내게 상처 준 누군가를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대개 가장 큰 이유는 내가 받은 상처가 너무 깊거나 혹은 불공정하다고 느끼는 경우입니다. 그리고 내게 상처 준 사람은 나만큼 힘들지 않은 것처럼 보여서 억울하다고 생각되기 때문입니다.

 

어릴 때 읽었던 동화 중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서로를 미워하는 두 염소가 있었는데, 이 둘은 서로가 너무나 미워서 가장 뜨거운 여름엔 서로를 꼭 끌어안았습니다. 상대를 철저히 괴롭히기 위해서입니다. 가장 추운 겨울엔 서로에게 도움을 주지 않으려 멀리 떨어져 살다가 결국 각각 얼어 죽게 되었다는 이야기였습니다. 미워하는 마음, 증오하는 마음은 결국 자기를 죽게 합니다. 그리고 용서할 때 우리는 모두 함께 살 수 있습니다. 게다가 우리는 용서가 필요하고 중요하며 가장 큰 사랑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용서를 실천하기가 너무 어렵다는 점도 잘 알고 있습니다.

 

 

원망이란 내가 독을 마시는 것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원망이란 내가 독을 마시고 상대방이 죽기 바라는 마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미워하기는 쉽지만 용서하기는 참 힘듭니다. 용서하는 것이 때로 불가능해 보일 때도 있습니다. 용서란 내 마음에서 독을 빼내는 수술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용서가 근본적으로 상대방이 아니라 내 영혼을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토록 어려운 용서를 실천한다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은총은 더 클 것입니다. “저희에게 잘못한 모든 이를 저희도 용서하오니 저희의 죄를 용서하시고”(루카 11,4)라는 기도처럼, “너희가 다른 사람들을 용서하지 않으면,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허물을 용서하지 않으실 것이다.”(마태 6,15)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처럼 용서는 사랑의 완성입니다.

 

물론 아직 용서할 준비가 충분하지 않은데 용서에 대한 강박이 심해서 준비되지 않은 채 용서한다면 이는 더 큰 화를 부를 수도 있습니다. 용서하기 위해 너무 서두르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다가 더 큰 상처를 받게 되는 경우를 종종 보곤 합니다. 용서받아야 할 상대방의 뻔뻔한 태도 때문에 더 큰 상처를 받는 경우도 드물지 않게 보게 됩니다. 용서는 충분한 준비가 됐을 때 해야 합니다. 서두르지 마십시오!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저희 죄를 용서하시고’라는 주님의 기도처럼, 용서를 해야 하는 이유는 하느님 앞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을 할 뿐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용서는 언제나 기도와 참된 회개를 전제합니다. 용서하기 위해 먼저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참된 회개는 우선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모든 인간의 죄가 사라졌음을 깨닫고, 성령께서 우리 마음 안에 함께하심을 느끼는 것에서 출발한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언제나 우리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이 회개의 출발점이고, 신앙의 시작점입니다. 하느님 사랑을 깊게 체험한 사람만이 참된 용서를 할 수 있습니다. 더 큰 것을 봉헌하고, 더 큰 은총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성모님의 군단, 2024년 8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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