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려지지 않은 하느님, 성령] 성령, 하나로 만드시는 불 성령께서 하시는 일은 헤아릴 수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도 그분이 하시는 가장 위대한 업적 중 하나는 바로 ‘일치’입니다. 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성령께서 평화의 끈으로 이루어 주신 일치를 보존하도록 애쓰십시오”(에페 4,3)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의 활동은 미사성제에서도 잘 드러납니다. 우리는 미사에서 “한 빵”을 나누어 먹고 “한 몸”, 즉 그리스도의 하나의 몸으로 만들어집니다. 사제가 ‘하나의 빵’을 성찬례에서 “쪼개고” 우리 여럿이 하나의 빵을 나눠 먹는 것은 하느님과 인간의 일치, 그리고 같은 빵을 나눠먹은 우리들 사이의 일치를 이루어내고, 이로서 우리가 하나의 몸, 즉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인 교회로 건설되게 합니다. 프랑스의 신학자 앙리 드 뤼박은 이 신비를 두고 “성체성사가 교회를 만든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신자들을 모두 하나의 일치로 모으는 이 위대한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에서도 성령께서는 주도적으로 활동하십니다. 미사 중에는 크게 두 번의 성령청원기도가 있는데 첫 번째는 제병과 포도주를 축성하기 위해 성령을 청하는 기도입니다. “성령의 힘으로 이 예물을 거룩하게 하시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소서”. 이 기도로 성령께서 예물 위에 내려오시어 그 예물을 성찬제정의 말씀인 “너희를 위해 내어 줄 내 몸이다”, “이는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 흘릴 피다”와 함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리스도의 말씀과 그것에 생명과 힘을 부여하는 성령의 활동이 빵과 포도주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시키는 위대한 업적을 이루는 것입니다. 두 번째 성령청원기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를 먹는 모든 이가 성령을 통하여 하나로 모아지기를 청하는 기도입니다.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받아 모시어 성령으로 모두 한 몸을 이루게 하소서” 미사 안에서 말씀과 성령은 이렇게 함께 일하시어 성찬례에 참여하는 이들을 ‘하나의 빵’, ‘하나의 그리스도의 신비로운 몸’ 안으로 모아들입니다. 성령께서는 이렇게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성체성사 안에서 활동하시어,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시고, 그 몸을 받아 모신 우리가 그 몸과 하나로 일치하여 그리스도의 모습으로 변화하게 하십니다. 이러한 신비적인 변화를 동방교회의 영성가들은 모세가 본 ‘불타는 떨기나무’에 자주 비유했습니다. 두미트루 스터닐로에라는 동방 신학자는 성령을 ‘인간을 불타는 떨기나무’가 되게 하시는 분이라고 했고, 동방 교부들은 교회를 세상을 향한 ‘불타는 떨기나무’라고 했습니다. 탈출기에서 모세가 본 이 ‘불타는 떨기나무’는 거룩한 불이 이 떨기나무를 불사르고 있으면서도 전혀 그 나무를 태워 없애버리지 않았습니다. 이는 피조물(떨기나무)과 성령(신성한 불로서 나타나시는)의 위대한 합일을 나타냅니다. 성령의 불은 우리를 이처럼 불사르시지만, 그럼에도 이 불은 우리를 불태워 없애버리는 파괴적인 불이 아니라 당신과 신비로이 하나 되게 만드는 불입니다. 성 에프렘은 “믿음으로 이 빵(성체)을 먹는 이는 이를 통해 성령의 불을 먹는다. 모두 먹어라. 그리고 이를 통해 성령을 먹어라”라고 말했습니다.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몸을 영하는 우리는 모두 우리 안에서 타오르는 살아있는 불, 신과 우리를 하나로 만드는 불, 우리의 고유성을 전혀 해치지 않으면서도 그 불을 먹은 모든 이를 하나의 몸, 하나의 신적인 불로 타오르는 거대한 떨기나무로 만드는 성령의 위대한 업적에 참여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불을 지르러 오셨습니다(루카 12,49). 이 거룩한 살아있는 성령의 불이 우리 모두를 불사르게 합시다. 불 안에 장작이 몇 개가 있든 불은 그저 하나일 뿐이고 더 많은 장작이 그 안으로 들어올수록 더 큰 하나의 불이 됩니다. 믿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모두 이 불로 불타올라 성령의 사랑으로 타오르는 하나의 거대한 불타는 떨기나무로 변화합시다. [2025년 9월 28일(다해) 연중 제26주일(세계 이주민과 난민의 날) 전주주보 숲정이 3면, 하성훈 요셉 신부(광주가톨릭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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