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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영화 <존 오브 인터레스트>에서 지휘관 루돌프 회스와 그의 아내 헤드비히는 평온한 일상생활을 영위합니다. 아이들과 수영하러 가고, 정원을 돌보고, 정원에 꽃을 심고 가꾸는 등, 가정의 나른하고 안정된 풍경이 아름답게 펼쳐집니다. 하지만 이 평안해 보이는 삶 바로 뒤에, 참혹한 현실이 존재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담장 너머에는 아우슈비츠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지휘관 루돌프는 아우슈비츠의 지휘관입니다. 어렴풋이 총소리, 비명 소리, 트레인 소리, 화장터 소리들이 들리지만 이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습니다. 오히려, 전출 발령이 나자 루돌프의 아내는 자신이 텃밭을 가꾸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는지 아냐며 화를 내고 남편만 전출을 보냅니다. 참으로 기이합니다. 수많은 유다인을 가스실로 보내는 루돌프가 집에서는 가장으로서 비교적 평범해 보이는, 심지어 가정적이기까지 한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영화는 끝내 수용소의 내부를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저 담 너머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소리로’ 전달함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짐작하게끔 만들 뿐입니다. 이 영화는 다음의 몇 가지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는 듯합니다. “당신은 얼마나 주변의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까?”, “당신의 일이 아니라고 방관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당신만의 텃밭을 가꾸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당신도 공범일 수 있어요.” 2013년 7월 8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선출 이후 처음으로, 바티칸이 아닌 다른 지역을 방문하셨습니다. 그곳은 다름 아닌 이탈리아 람페두사(Lampedusa)였습니다. 교황님께서 그곳을 방문하신 것은 북아프리카에서 출발한 이주민들을 태운 선박들이 지중해에서 전복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셨기 때문이었습니다. 교황님은 섬에 도착해 난민선을 개조해 만든 제대 위에서 참회 미사를 집전하셨습니다. 그리고 “유럽 해안에 시신들이 떠밀려오는 비극적인 현실 앞에서도 세상이 여전히 안락의 문화에 젖어 있으며, 이 문화가 우리로 하여금 자신만을 생각하게 만들고, 타인의 울부짖음에는 무감각하게 만든다.”고 지적하셨습니다. 이어서, “우리는 ‘세계화된 세상’에서 ‘세계화된 무관심’으로 타락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타인의 고통에 너무 익숙해져 버렸습니다. 나에게 영향을 주지 않는다면 상관이 없는 일이며,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라며 개탄하셨습니다. 전쟁이 일어납니다. 비윤리적인 일이 도처에서 발생합니다. 무수한 생명이 누군가의 이익을 위해 죽어갑니다. 이에 교회는 다양한 목소리로 동참을 요청하며 평화와 생명, 하느님의 계명을 이야기합니다. 생명 경시를 멈춰 달라고, 환경을 보호하자고, 가난한 이들을 돌보자고, 전쟁을 멈추자고 소리칩니다. 하지만 이 소리를 뒤로 하고 많은 이들이 자신만의 텃밭을 일구며 살아갑니다. 안락의 문화 안에서, 마치, 내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2025년 10월 5일(다해) 연중 제27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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