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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구약의 마지막 인물들 : 즈카르야, 엘리사벳, 세례자 요한 구약의 마지막 인물; 즈카르야, 엘리사벳, 세례자 요한 예수님이 오셔서 ‘신약’(新約), 새로운 계약이 시작됩니다. 성모님은 구약과 신약 양쪽 모두와 깊은 관련이 있는 분입니다. 구약(舊約), 즉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옛 계약의 마지막 시대를 장식하는 사람들이 즈카르야, 엘리사벳, 세례자 요한입니다. 즈카르야는 아비야 조에 속한 사제이고, 그의 아내 엘리사벳 또한 아론의 자손으로 사제 가문 출신입니다.(루카 1,5 참조) 구약에 따르면 사제직은 아론의 후손과 12지파 중 레위지파에 속합니다. 따라서 요한은 부모님을 따라 사제직을 물려받습니다. 옛 계약의 사제직이 요한에게 전달되고, 사제직을 물려받은 세례자 요한의 사명은 새 계약의 대사제이신 예수님에 대한 암시이자 예고입니다. 예수님이 사시던 AD 1세기에는 사제와 레위인이 대략 2만 명 정도라 합니다. 당시 예루살렘 인구는 대략 4만 5천에서 5만 명 정도였고, 큰 축제일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순례자는 10만 명 정도라고 합니다. 사제들은 철저하게 근무 편성과 직무를 수행해야 했는데, 특히 희생제사를 바쳐야 했습니다. 매일 아침과 저녁 1년 된 숫양과 곡식, 기름을 함께 봉헌했고, 안식일에는 두 배씩 바쳤습니다. 성전 유지와 사제들의 생활비 때문에 백성들은 성전세와 십일조를 바쳤습니다.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은 로마에 세금을 내고, 성전에도 세금을 냈습니다. 게다가 예루살렘 성전을 방문시 당시 상인들과 결탁하여 폭리를 취하던 이스라엘 지도층에 또 착취를 당했습니다. 성전을 방문해 기도하기 위해 제물을 바쳐야 했는데, 제물은 흠 없이 깨끗해야 했고, 이를 식별하는 사람이 당시 사제와 지도층이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서는 당시 성전이 제의와 장사가 결합된 타락된 장소였기에, “장사하는 집”(요한 2,16), “강도들의 소굴”(마태 21,13)이라 합니다. 예수님의 성전 정화 사건도 이런 맥락에서 벌어졌는데, 이 사건은 요한복음에는 초반, 즉 공생활이 시작되는 2장 후반에 배치되었는데, 카나의 혼인 잔치와 성전 정화 사건을 연결시키려는 복음사가의 의도 때문입니다. 공관복음에는 이 사건이 예수님께서 수난당하시는 때, 즉 예루살렘 입성 후 발생한 것으로 묘사하고, 성전을 정화하려던 예수님의 행동이 당시 지도층과 갈등의 원인이라 제시합니다. 예수님의 처형을 바라던 유다 지도층이 지적했던 예수님의 죄는 안식일 규정 위반과 신성 모독이었습니다. 사실 사제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인데, 당시 사제들 모습이나 성전 역할은 하느님과 인간을 멀어지게 하였기에, 옛 계약의 사제직에 대한 새 예언이 예수님을 통해 전해집니다. “이 성전을 허물어라. 그러면 내가 사흘 안에 다시 세우겠다.”(요한 2,19) 출생 예고와 탄생 예고 비교 즈카르야에게 주어진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루카 1,5-25)와 마리아에게 주어진 예수님 탄생 예고(루카 1,26-38)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의 아버지 즈카르야는 사제이며 그가 성전에서 예배를 드릴 때 메시지를 받습니다. 거룩한 장소와 거룩한 시간에서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복음에 마리아의 출신에 대해 아무 언급이 없습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리아를 찾아가는데, 마리아가 살던 나자렛이라는 동네는 구약성경에서 전혀 언급되지 않던 곳입니다. 아마 마리아가 살던 집도 작고 초라한 집이었을 것입니다. ‘사제-성전-예배’를 통한 출생 예고와 ‘무명의 젊은 여인-무명의 작은 마을-작은 집’에서의 탄생 예고가 대조됩니다. 전자는 옛 계약을 상징하고, 후자는 새 계약을 상징합니다. 새 계약을 맺으러 오시는 하느님의 아들은 작고 겸손한 모습으로 오십니다. 그러나 결국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루카 1,32)이 되십니다. 신약의 위대함은 감추어진 겨자씨와 같이 작지만 위대합니다. 구약과의 연속성이 있지만, 신약만의 새로움이 있습니다. 엘리사벳의 노래 성모님이 예수님 잉태하기 전 친척 엘리사벳이 먼저 잉태합니다. 즈카르야와 엘리사벳은 주님의 모든 계명과 규정에 따라 흠 없이 살아갔던 사람이었지만, 아이가 없었습니다. 당시 자녀 출산은 하느님 복의 표징이고, 아이 못 낳는 것은 저주의 표상입니다. 루카 1장은 머리말에 이어,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장면과 예수님의 탄생 예고 장면이 나옵니다.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주님탄생예고(=성모영보, 개신교에서는 수태고지)를 들은 직후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습니다.(1,39) 마리아는 왜 “서둘러” 갔을까요?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를 통해 늙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되었다는 소식(1,36)과 처녀인 자신이 아이를 가진다는 소식을 함께 들었습니다. 이 일들 모두 인간의 능력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임을 확신했고, 서둘러 사촌 언니를 만나러 갑니다. 그런데 즈카르야의 집에 도착해 엘리사벳을 만나 인사하는 순간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마리아의 인사말을 듣자 엘리사벳 뱃속의 아기가 뛰놀았고,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1,41) 큰 소리로 외칩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1,42) 그녀는 마리아와 태중의 아기가 복되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마리아가 복된 이유는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기 때문이고,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엘리사벳은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셨음을 알았고, 마리아가 주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 믿는 사람임을 알아봤습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 그 뱃속의 아기도 마리아의 뱃속에 잉태된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 뛰놀았습니다. 엘리사벳의 노래에 이어 마리아도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 엘리사벳의 노래는 기도가 되어 ‘성모송’이 되었고, 마리아의 노래(1,46-55)는 ‘막니피캇’(Magnificat)이란 제목으로 성무일도(=시간전례) 저녁 기도 때마다 바치는 기도입니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Magnificat anima mea Dominum)로 시작하는 이 기도는 구약성경의 여러 대목을 인용해 하느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은 계약을 이행하셨음에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때 구약의 내용이 마리아를 통해 예수님에게 연결되는데, 하느님 구원 계획에 마리아가 “예!”라고 순종하고 응답함으로써 구세주 그리스도의 구원 신비가 시작되고, 위대한 순간이 드러납니다. 이후 마리아는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1,56) 갔다고 복음서는 전하는데, 마리아는 사촌 언니의 해산때까지 곁에 지내며 돌봐주고, 동시에 두 사람이 함께 하느님의 뜻을 마음에 새기고 기도하는 시간을 보냈을 것입니다. [성모님의 군단, 2025년 10월호, 조한규 베네딕토 신부(가톨릭대학교 조직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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