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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신학] ‘말이 많은 것에 대한 경계’ - 히브리인들의 지혜 ‘말을 잘하는 것’은 언제나 매력적입니다. 고대 그리스에서도 말을 잘하기 위한 수사학 훈련이 있었던 것을 보면, 그 중요성은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는 것 같습니다. 말을 잘하는 것은 분명 중요합니다. 하지만 ‘말을 많이 하는 것’과 ‘말을 잘하는 것’은 분명히 다른데, 많은 경우 사람들은 ‘말을 많이 하는 것’을 ‘말을 잘하는 것’으로 오해하곤 합니다. 아무래도 말을 많이 하게 되면 모임이나 대화에서 존재감이 커지고, 말을 잘하는 사람처럼 비칠 수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지만 ‘말이 많은 것’은 종종 긍정적인 효과보다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말이 많음을 경계하는 속담들이 여럿 있습니다. ‘말이 많으면 쓸 말이 적다.’, ‘말은 아끼면 금이요, 늘리면 독이다.’ 이 때문에 예로부터 현인들은 많은 말을 하는 것보다 필요하고 바른 말을 잘하는 데 더 신경 쓸 것을 강조했습니다. 성경에서도 이러한 가르침을 자주 찾아볼 수 있습니다. “말이 많은 데에는 허물이 있기 마련, 입술을 조심하는 이는 사려 깊은 사람이다.”,(잠언 10,19) “모든 사람이 듣기는 빨리 하되, 말하기는 더디 하고 분노하기도 더디 해야 합니다.”(야고 1,19) 구약성경의 언어인 히브리어를 공부하다 보면, ‘말 많은 것을 경계하는 히브리인들의 지혜’를 느낄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에서는 동사에 ‘-로 부터’라는 의미를 더하는 접두어 מ을 붙여 명사를 만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예를 들어, ‘쓰다.’라는 동사 כתב에다 מ을 더한 מכתב는 ‘편지, 기록된 글’이라는 뜻이 되고, ‘재판하다.’라는 동사 שפט에서 ‘재판, 판결’이라는 명사 משפט가, ‘거주하다.’라는 동사 שכן에서 ‘거처, 성막’이라는 명사 משכן가 파생되는 식입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말하다.’라는 동사 דבר에 접두어 מ을 붙인 מדבר는 ‘광야, 황량한 곳’이라는 전혀 다른 의미가 됩니다. ‘말하다.’라는 동사에서 파생되었으니 ‘단어, 말’ 등의 뜻일 것 같은데 그렇지 않은 것이지요.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신학적으로는 ‘광야’라는 의미에 초점을 맞추어 설명합니다. 세례자 요한도 광야에서 “회개의 세례를 선포”(마르 1,4)한 것처럼, 광야는 하느님의 ‘말씀’이 내리고 선포되는 곳이기 때문에 מדבר가 ‘광야’의 뜻을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해석에 더해, 이 단어에는 ‘말’에 대한 히브리인들의 지혜로움이 담겨 있는 듯합니다. 고대 히브리인들은 이 단어를 통해 ‘말’을 많이 하는 것에서 늘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는 것이 아님을 알려주고 싶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쓸데없이 불필요한 말만 많이 늘어놓는 것은 결과적으로 황폐한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2025년 11월 16일(다해) 연중 제33주일(세계 가난한 이의 날) 서울주보 5면, 박진수 사도요한 신부(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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