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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공현 대축일 특집] 이방인에 의해 예수님께서 ‘온 세상의 구원자’임이 드러나다 1월 4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흔히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로 불리지만, 교회가 대축일을 통해 강조해 온 초점은 예수의 ‘탄생’ 그 자체가 아니라 그 탄생이 어떻게, 누구에게 드러났는가에 있다. 공현(Epiphania)이란 말 자체가 ‘드러남’, ‘현현’을 뜻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아기 예수도, 베들레헴의 목자도 아닌 동방 박사가 왜 대축일의 중심에 놓여 있는지 살펴본다. 동방 박사를 인도한 ‘별’을 향한 교회의 관심에 대해서도 알아본다. - 산트로 보티첼리의 <동방박사의 경배>(1474~1476년경). 출처 위키미디어
주님 공현 대축일 복음(마태 2,1-12)에서 동방 박사는 예수의 첫 경배자로 등장한다.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님이 있는 곳을 찾아가 땅에 엎드려 절하며 존경의 예를 표한다. 마태오복음 사가는 이 장면을 통해 예수의 탄생이 단지 이스라엘 내부의 사건이 아니라 이방 세계까지 울려 퍼진 사건이었음을 분명히 한다. 주목할 점은 마태오복음이 예수의 정체성을 가장 먼저 알아본 인물로 유다인이나 율법학자가 아니라 동방에서 온 이방인들을 제시한다는 사실이다. 헤로데와 예루살렘의 종교 지도자들은 메시아 탄생에 관한 성경 지식을 갖고 있었지만, 실제로 길을 떠나 경배한 이들은 동방 박사들이었다. 예수의 정체성이 처음으로 드러난 대상이 ‘경계 밖의 사람들’이었음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이렇듯 동방 박사는 대축일 안에서 예수가 누구를 향해 열려 있는 분인지를 가장 분명히 드러내는 인물로 자리한다. 이 점에서 대축일은 성탄과 뚜렷이 구분된다. 성탄이 예수의 탄생 자체에 초점을 둔다면, 공현은 그 탄생이 지닌 보편적 의미가 세상에 드러난 순간에 시선을 둔다. 동방 박사가 중심에 놓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들의 방문과 경배는 예수가 이스라엘의 메시아에 머무르지 않고 온 세상의 구원자로 다가오셨음을 보여주는 구체적인 표징이다. 전례에서도 이런 이해가 강조된다. 제1독서는 “민족들이 네 빛을 향하여 나아오고 임금들이 떠오르는 네 광채를 향하여 오리라”(이사 60,3)라고 노래한다. 화답송과 영성체송에서도 ‘모든 민족’, ‘만민’, ‘이방의 빛’이라는 표현이 반복된다. ‘감사송’은 “오늘 그리스도를 통하여 저희 구원의 신비를 밝혀 주시고, 그분을 인류의 빛으로 드러내 주셨다”고 노래한다. 전례 전체가 예수의 탄생을 특정 공동체의 사건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구원의 시작으로 해석하도록 이끄는 모습이다. 이런 전례적 이해는 「가톨릭 교회 교리서」에서도 확인된다. 528항은 ‘공현’을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자 하느님의 아들이며 온 세상의 구원자이심이 드러난 사건’으로 설명하며, 그 구체적 사건으로 동방 박사들의 방문과 경배를 제시한다. 또 동방 박사들을 ‘이방 종교들을 대표하는 이들’로 규정하면서, 이들의 경배를 통해 이방인들도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으로 부름받았음이 드러났다고 밝힌다. “박사들이 ‘유다인들의 임금께 경배하러’ 예루살렘에 온 것은 다윗의 별이 비추는 메시아의 빛을 받아 장차 만민의 왕이 되실 분을 이스라엘에서 찾았음을 보여 준다. 동방 박사들이 찾아온 것은 이방인들이 유다인을 향하고, 그들로부터 구약에 담긴 메시아에 대한 약속을 받아들일 때에만 예수님을 찾을 수 있고, 그분을 하느님의 아들과 온 세상의 구원자로 경배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528항) 공현의 핵심이 보편적 구원의 드러남이라는 점을 교리 차원에서 분명히 한 것이다. 교황청 경신성사부의 「강론 지침서」 역시 공현의 핵심을 동방 박사 사건에서 찾는다. 대축일을 ‘그리스도가 모든 민족에게 드러난 사건’으로 설명하며, 이를 가장 잘 보여주는 장면으로 동방 박사들이 아기 예수께 경배하는 모습을 제시한다. 교회 전통에서도 대축일은 초기부터 보편성을 강조하는 축일로 이해돼 왔다. 특히 동방 교회에서는 공현을 성탄과 분리하지 않고 예수의 탄생·세례·카나의 혼인을 함께 기념하며, 하느님의 아들이 세상에 ‘드러난 여러 순간’을 하나의 신비로 묶어 기억해 왔다. 이 전통 역시 공현의 중심이 ‘탄생’이 아니라 ‘드러남’에 있음을 보여준다. 대축일 안에서 ‘그리스도가 만민에게 드러남’을 상징하는 구체적인 장면은 동방 박사의 ‘이방인의 경배’다. 이 대축일의 핵심을 ‘예수님이 태어나셨다’에서 멈추지 않고 ‘그분이 누구이며, 그 구원이 누구에게까지 열려 있는가’를 밝히는 데서 찾는다면, 그에 대한 가장 압축된 대답이 바로 동방 박사다. 예수를 가장 먼저 만난 사람들일 뿐 아니라 예수가 누구인지를 처음으로 알아보고 ‘응답’한 이들이 동방 박사였다는 점 또한 대축일을 지내며 성찰해 볼 대목이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4일, 이주연 기자] [주님 공현 대축일 특집] 교회는 왜 ‘별’을 바라볼까?
창조 신비 더 깊이 이해하도록 돕기 때문 - 2025년 7월 20일 레오 14세 교황이 교황청 천체관측국의 망원경을 살피고 있다. CNS
누리호에 이어 아리랑 7호를 성공적으로 발사하면서 국내에서 우주·천체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별을 바라보며 연구하는 것은 종교와 무관한 과학자들의 몫이라고만 여겨지기 쉽지만, 교회는 오랜 역사 안에서 천문학에 지대한 관심을 쏟아왔다. 교회는 왜 ‘별’을 바라보는 걸까? 교회와 천문학이라고 하면 많은 이가 떠올리는 것은 ‘갈릴레오 갈릴레이의 재판’이다. 지동설과 천동설을 둘러싼 논쟁은 마치 신앙과 천문학의 대립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갈릴레오 이전에 지동설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사람은 사제였던 코페르니쿠스(1473~1543)였다. 이후로도 천문학 역사에 이름을 남긴 사제는 계속 있었다. 크리스토프 샤이너 신부(1575~1650)는 망원경 관측으로 태양 흑점에 관한 체계적인 기록을 남긴 대표적인 천문학자다. 별의 ‘색’을 분류·목록화 하기 시작한 천문학자는 베네딕토 세스티니 신부(1816~1890)였다. 천문학 분야에서는 예수회 신부들의 활약도 컸는데, 그러다 보니 현재 달의 지형 중 예수회 신부의 이름이 붙은 분화구가 33개나 된다. 또 오늘날 우주의 기원을 설명하는 이론 중 가장 대표적인 ‘빅뱅 우주론’을 처음으로 내놓은 것이 조르주 르메트르 신부(1894~1966)다. 이처럼 교회가 유수한 천문학자 신부를 배출해 온 것은 교회가 얼마나 천문학에 큰 관심을 지녔는지를 보여준다. 지동설, 빅뱅 우주론 같은 천문학적 발견들은 마치 성경의 말씀과 상반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교회는 오히려 이런 천문학적 발견을 통해 하느님의 창조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다고 가르친다. 교황청이 1891년부터 바티칸 천체관측국을 운영하며 천문학과 우주과학에 관한 다양한 연구 프로젝트를 수행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2014년 교황청 과학원 회의에서 “대폭발이 우주의 시작이라고 하는 빅뱅 우주론은 창조주의 개입과 모순되지 않으며 오히려 창조주의 존재를 필요로 한다”고 말한 바 있다. - 교황청 천체관측국. CNS
교회가 천문학에 관심을 기울여온 것은 교회의 역사와도 깊이 연결돼 있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달력 ‘그레고리오력’도 교회의 오랜 천문학 연구의 결실이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325년 니케아공의회에서 주님 부활 대축일의 날짜를 정할 수 있었던 것도 춘분과 만월을 계산할 수 있는 천문학적 지식이 배경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무엇보다 성경은 이 세상에 태어난 예수님을 처음으로 경배한 사람들이 ‘별’을 보고 찾아왔다는 것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다. 바로 동방 박사들이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09년 주님 공현 대축일 강론을 통해 “천문학자인 동방 박사들은 하늘에 새 별이 나타난 것을 관찰하고, 이 현상을 거룩한 성경이 예언한 유다인의 왕의 탄생을 알리는 표징으로 이해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오늘날에도 갈릴레오의 뒤를 잇는 많은 과학자의 열정과 신앙 덕분에, 그리스도교적 우주 이해는 이성도 믿음도 포기하지 않고 둘을 서로 열매 맺게 하면서 새롭게 꽃피는 흥미로운 징표들을 보여준다”고 전했다. [가톨릭신문, 2026년 1월 4일, 이승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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