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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읽는 단편 교리] 정교회(正敎會, ecclesia orthodoxa) 전 세계 그리스도교는 해마다 1월 18일부터 25일까지를 ‘일치 주간’으로 정하고 그리스도인들의 일치를 청하는 기도를 바칩니다. 오늘은 그리스도교 일치로 함께 나아가야 할 ‘갈라진 교회’인 정교회에 대해 알아봅니다. 과거 로마 제국은 로마를 중심으로 한 ‘서방’과 그리스 · 소아시아 · 북아프리카를 중심으로 ‘동방’으로 나뉘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유래한 그리스도교가 로마 제국에 전파되어 그리스도교 중심지가 형성되는데,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와 시리아의 안티오키아가 대표적입니다. 오랜 그리스도교 박해가 끝나고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로마 제국의 수도를 동방의 비잔티움 곧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기는데, 자연스레 그곳 주교의 위상도 올라갔습니다. 제1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381년)는 로마 · 콘스탄티노폴리스 · 알렉산드리아 · 안티오키아 · 예루살렘의 총대주교좌를 공인하였습니다. 이들 교회는 주변 교회들을 관할하며 교구별로 고유한 전례와 관습을 발전시켜 나갔습니다. 그러면서도 신앙 교리의 완전한 일치로 하나의 그리스도교를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5세기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였던 네스토리우스가 에페소 공의회(431년)에 단죄되고 단성설(單性說)을 주장하던 에우티케스도 칼케돈 공의회(451년)에서 단죄되면서 여러 분파가 떨어져 나갔습니다. 또한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는 각기 라틴어와 그리스어를 사용하였고, 관습과 제도의 많은 차이에다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점점 멀어지게 됩니다. 결정적인 사건은 1054년에 일어났습니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가 라틴 전례 교회와 수도원들을 폐쇄하고, 신경에 필리오퀘(filioque) 문구를 삽입한 점과 성찬례 때 누룩 넣지 않은 빵을 사용한 점 등을 비판하자, 교황 레오 9세(1049~1054년 재위)는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을 대표로 한 교황 사절단을 콘스탄티노폴리스에 파견하였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극한 갈등이 발생하고 마침내 훔베르트 추기경은 1054년 7월 16일, 소피아 대성당의 중앙 제단 위에 파문 문서를 놓고 떠나게 됩니다. 총대주교도 교황 사절단을 파문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 교회와의 일치로 돌아온 동방교회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동방 가톨릭교회라고 부릅니다. 1551년에 다수의 네스토리우스파 교회가, 1553년에 칼데아 교회가, 1724년에 안티오키아 멜키트 (가톨릭) 교회가, 1742년에 아르메니아 (가톨릭) 교회가, 1783년에 시리아 안티오키아 (가톨릭) 교회가, 1824년에는 콥트 (가톨릭) 교회가 서방 교회와 일치했습니다. 또한 위치는 동방에 속하지만, 처음부터 로마와 결별하지 않았다고 전해지는 마로니타 교회도 동방 가톨릭교회에 속합니다. 이들은 고유의 전통과 전례를 인정받고 보존하면서 교황의 수위권을 받아들이는 교회입니다. 20세기 들어 가톨릭교회는 정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힘을 기울였습니다. 성 바오로 6세 교황(1963~1978년 재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동방 교회 교령」 (1964년 11월 21일)과 「일치 교령」 (1964년 11월 21일)을 통해 동방교회 전통의 보존과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한 기본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그리고 1965년 12월 7일, 아테나고라스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와 함께 1054년에 있었던 상호 파문을 철회하고 화해하였습니다. 이로써 900년 넘게 이어지던 반목의 벽을 넘어설 계기를 만들었습니다. 이번 일치 주간을 맞이하여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라고 기도하신 예수님을 기억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일치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한마음으로 기도합시다. [2026년 1월 18일(가해) 연중 제2주일(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 의정부주보 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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