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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톨릭 교리] 이름을 부르지 않는 교회 얼마 전, 왜 교황님과 가톨릭은 독재자들의 이름을 직접적으로 언급하며 비판하지 않느냐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인식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교회가 보다 더 직접적인 방식으로 목소리를 낼 때 효과가 클 것이며 호소력이 있으리라 생각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교황님들은 특정 정치 지도자들의 이름을 직접 지목하는 방식은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정의를 부르짖는 이들은 교회가 지나치게 소극적이라며 비판적인 의견을 내기도 합니다. 하지만 교회가 이름을 부르지 않는 이유는 독재자에 대한 호의 때문이 아니라, 그 나라 안에서 살아가는 신자들과 교회 공동체가 즉각적인 보복과 박해에 노출될 위험을 고려하기 때문입니다. 한편, 교회가 독재자들의 이름을 언급하지 않는다고 해서 이를 옹호하는 것도 아닙니다. 대신 각 체제와 정책, 이념, 구조에 대해서는 아주 강하고 직접적으로 비판의 목소리를 내왔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회칙 〈100주년〉에서 마르크스주의와 전체주의, 공산주의 체제를 직접적으로 비판하셨으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벽을 세우고 다리를 놓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다.”라고 말씀하심으로써 서구권의 이민 정책을 강하게 비판하셨습니다. 그 밖의 환경문제, 핵문제, 현대의 전체주의 등에 대해서도 교황님들이 강하게 목소리를 내왔음은 당연합니다. 이러한 교황님들의 발언은 당시의 맥락과 국제 정세를 살펴보면 어느 나라의 누구를 암시 혹은 겨냥하고 있는지를 명확히 알 수 있습니다. 보다 직접적인 경우는 해당 나라의 국민들을 기억하는 방식으로 구조적인 비판을 가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방식이 과연 소극적인 방식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교황 비오 11세는 2차 세계대전 당시, 이례적으로 라틴어가 아닌 독일어로 쓰인 회칙 〈깊은 근심으로, Mit brennender Sorge〉를 발표합니다. 여기서 교황님은 여전히 히틀러의 이름을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나치 정권, 인종주의, 국가 우상화 등을 강하게 비판했으며 이 회칙은 독일 전역 교회에 비밀리에 배포되었고 같은 날 독일의 모든 미사에서 낭독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나치 정권이 크게 분노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즉 교회는 특정 정치인을 공격하기보다는 정치의 도덕성을 평가함으로써 목소리를 냅니다. 그 목소리는 결코 침묵이 아니며 작은 목소리도 아닙니다. 그러나 오히려 현대에 이르러서는 교회의 목소리에 그리스도인들조차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성향이 있습니다. 교황님의 회칙과 가르침을 읽기에 오히려 좋은 환경이 되었음에도 교회의 말들을 당연한 것 혹은 이상적인 것이라고 여겨 가볍게 넘기기도 합니다. “신은 죽지 않았다. 죽은 것은 신의 계시를 마주할 인간이다.”라는 시몬 베유의 말이 더 의미심장한 요즘입니다. [2026년 3월 22일(가해) 사순 제5주일 서울주보 5면, 방종우 야고보 신부(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윤리신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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