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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회교리 아카데미: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4-11 조회수2,044 추천수0

[사회교리 아카데미] 나는 너를 잊지 않는다(이사 49,15)

세월호 참사로 바라본 ‘사회교리’



4월 16일 세월호 1주기, 곳곳에 현수막과 위로의 글, 추모의 글이 올라옵니다. 어떤 이들은 추모의 글을 감성팔이에 비유하기도 하고, 경제적으로 악영향을 주니 이제 그만하라고도 합니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잃은 이들도 아닌데, 안타깝긴 하지만 왜 정부가 사고로 목숨을 잃은 사람들까지 보상해주어야 하냐는 말도 합니다. 다른 이들도 지지 않고, 언제 유가족이 보상을 요구했느냐는 말부터, 정부의 대처 미흡과 특별위원회 구성이 지지부진했던 일, 미 대사습격에서 보여준 빠른 대처와 달리 세월호 때에 대통령을 비롯해 당국자들이 보여준 모습은 무엇이냐고, 진실은 무엇이냐고 항변합니다.

이런 틈바구니에서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2014년 8월 124위 순교자의 시복식과 아시아 청년대회를 위해 한국을 찾은 자리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을 위로하시고, “고통 앞에서 중립을 지킬 순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지난 3월 사도좌 정기방문 차 바티칸을 방문한 한국 주교단에게 교황님께서 하신 첫 질문은 ‘세월호 문제가 어떻게 되었느냐?’였습니다.

우리가 서로 다투고 지쳐서 잊을 때, 예수님은 한 순간도 이를 잊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사회교리에서는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할까요?

‘정치공동체(정부)의 기능이 무엇인가, 이를 보도하는 언론은 어떠해야 하는가, 개개인의 참여와 연대는 어떻게 이루어져야 하는가?’와 같은 다양한 시각에서 사회교리적 접근이 가능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면 그 모든 접근의 핵심에 자리 잡고 있는 ‘인간의 존엄성’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사고 당시 정부의 반응과 후속조치는 사고를 당한 학생들과 승객들, 유가족들의 존엄성을 최우선으로 고려하였는가, 과연 경제가 한 인간의 존엄성보다 중요한가, 언론은 이를 위해 올바른 정보를 제공하였는가, 나는 진정 아파하는 이들과 연대하고 그를 위해 내가 할 수 있는 참여를 하였는가?’를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여기서 경제를 살리는 일이 보다 많은 사람들의 존엄성을 보장한다던가, 천안함이나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대구지하철과 같은 참사를 끌어들여 비교하는 것은 인간 존엄성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을 충분히 이해하지 못한 것입니다. 인간의 존엄성은 비교하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앞선 사고를 겪은 이들의 아픔을 충분히 공감하지 못하였다는 핑계로 지금 내 앞에서 아파하는 이들을 외면하거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논리를 앞세워 문제의 본질을 흐릴 수는 없습니다.

언론에서 보도하는 다양한 입장, 개인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논리에 따른 다양한 판단, 모두 나름 타당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이런 거시적인 틀에서만 논의할 때에 우리의 양심은 어디에 있습니까? 사회의 구조, 큰 틀을 핑계로 가장 작은 한 사람의 고통을 외면한다면 그 정치와 경제는 설 수 없습니다. 오히려 한 사람의 아픔에서 시작할 때에 비로소 인간을 위한 정치와 경제가 보입니다. 사회교리는 바로 그 한 인간의 존엄성과 아픔에서 시작합니다. 거창한 중립이 아니라, 복음을 토대로 사랑의 구조, 사랑의 정치와 경제를 가르칩니다.

오늘도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주지 않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주지 않은 것이다.”(마태2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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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수 신부는 서울대교구 소속으로 현재 고덕동본당에서 사목하고 있다.

[가톨릭신문, 2015년 4월 12일,
김성수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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