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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43: 평화의 실패 - 전쟁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5-01-03 조회수1,804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43) 평화의 실패 : 전쟁

전쟁은 인도주의 실패의 결과이며, 인류에게 깊은 좌절만 안겨



아버지와 어머니의 고향은 모두 북녘땅 평양이다. 어린 나이에 6.25의 참화를 피해 남쪽으로 피난 오신 두 분은 어린 시절 많은 고생을 하셨다. 17살에 피난을 오신 아버지는 낮에는 일했기 때문에 공부를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전쟁 전에는 중학교를 졸업하고 약학전문학교에 진학하여 약사가 되고 싶어 했지만 다시는 학업을 이어갈 수 없었다. 할아버지와 큰아버지는 군에 입대하셔서 아버지는 집안에 남은 유일한 남자였다. 남은 가족의 생계를 위해 인천 연안부두에서 막 일을 하셨고 약사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다.

어머니는 12살에 피난길에 올라 집안일을 도맡아 하셨다. 많이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 되셨던 외할머니 덕분에 학업을 이어갈 수 있었지만 전쟁통이라 중학교는 천막학교에서 2년만 하신 후 청량리 근처에 있던 정화여고에 진학하셨다. 기초가 튼튼하지 않아 공부보다는 노래와 운동에 소질이 있으셨지만, 전쟁 후 너무 어려워진 집안 사정에 겨우 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두 분은 전쟁 전 서로 알지 못했지만 새롭게 정착한 남한 땅에서 고향 분의 소개로 만나 같은 고향 출신이라는 이유 하나로 가정을 꾸리셨다. 아무것도 없이 시작한 결혼 생활에서 많은 고생을 하시면서 부모님은 우리 형제자매들을 낳으셨다. 전쟁의 참화는 두 가정을 경제적 고통 속에 밀어 넣었지만 결국 이 전쟁 때문에 나와 우리 형제들이 태어났다. 비록 부유하고 넉넉한 환경에서 자라지는 않았지만 성실한 아버지와 사랑 넘치는 어머니 덕분에 제2의 고향인 인천에 정착하여 지금까지 살고 있다.

얼마 전, 어머니께 왜 고향 땅을 버려두고 피난길에 오르셨는가를 물어봤다. 외가는 고향에 땅도 있었고 남은 가족도 있었다. 뜻밖에도 답변은 단순했다. 농부인 외할아버지는 정치적인 상황이나 사상적인 이유로 가족을 데리고 피난길에 오른 것이 아니었다. 그저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고자 무작정 피난길에 오르셨다.

어머니의 말씀에 의하면 당시 미군이 평양을 핵무기로 폭격할 것이란 소문이 무성했다고 한다. 일본을 패망으로 이끈 핵폭탄의 위력을 이미 잘 알고 있었던 백성들은 자신과 가족의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고향 땅을 버리고 피난길에 올랐다. 사흘 후면 다시 돌아올 것이란 기대감 보따리도 제대로 꾸리지 못하고 고향 땅을 떠난 것이다. 그러나 기대와는 달리 전쟁은 끝나지 않았다. 휴전선을 경계로 잠시 휴전하기로 한 협정도 벌써 60년이 훌쩍 넘었다.

1980년대 초 이산 가족 찾기가 한창이던 시절, 산과 같이 크게 보였던 아버지가 우는 모습을 본 적이 있었다. 평상시에도 농담이나 우스운 이야기를 잘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는 한 번도 자녀들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 않으셨는데, 이산 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시청하시면서 자식들 몰래 눈물을 훔치셨다. 고향에 남겨둔 형제들과 모친에 대한 그리움에 아버지는 가족 몰래 소리 없이 울고 계셨다. 아버지의 이런 모습은 어린 나이였던 나에게도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었다.


전쟁의 아픔은 용서와 화해로 치유해야

가톨릭 교회에서는 전쟁을 어떻게 이해할까? 교도권은 전쟁의 야만성을 비난하고 있으며, 이러한 전쟁을 새롭게 여기도록 요구한다. 교회의 가르침에 따르면, 전쟁은 재앙 그 자체이며 결코 국가 간에 발생하는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절한 방법이 아니다. 인류의 역사 안에서 전쟁은 국가 간의 분쟁을 한 번도 근본적으로 해결한 적이 없었으며, 앞으로도 결코 그러하지 못할 것이다. 왜냐하면 전쟁은 더 복잡한 분쟁을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일단 전쟁이 시작되면 불필요한 인명 피해가 발생하고 물질적으로도 많은 것을 잃는다. 더군다나 전쟁으로 인한 정신적이고 도덕적인 피해 역시 만만한 것이 아니다. 결국 전쟁은 진정한 인도주의의 실패로서, 인류에게 깊은 좌절을 안겨주는 불의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간추린 사회교리」 497항 참조).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는 남과 북의 모든 백성에게 깊은 아픔과 상처를 남겼다. 그리고 그 전쟁은 아직도 진행형이다. 남북이 갈라져 서로 총칼을 겨누며, 서로에게 씻지 못할 상처를 남겨 주었다. 전쟁 기간 희생된 군인뿐만 아니라 수없이 많은 무죄한 백성들이 직간접적인 무력사용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은 자신의 고향을 떠나야 했으며, 휴전 뒤에는 60년 넘은 기간 동안 이산의 아픔을 겪어야만 했다.

이러한 고통의 땅 한반도에 평화 정착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 바로 용서와 화해다. 용서와 화해만이 전쟁의 상처를 치유할 수 있으며, 진정한 평화를 가능하게 할 수 있다.

[평화신문, 2015년 1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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