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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61: 주님의 기도 (2)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8-10 조회수2,006 추천수0

[가톨릭교회교리서 공부합시다] (61) 주님의 기도 (2) :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느님 자녀다운 행동하고 ‘우리’ 안의 대립과 분열 극복해야



주님의 기도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시작합니다. 그런데 미사 중에 주님의 기도를 바칠 때는 사제가 “하느님의 자녀 되어 구세주의 분부대로 삼가 아뢰오니” 하고 선창합니다. 이 말은 자녀로서 신뢰하는 마음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아뢰라고 권고하는 것입니다. 이에 화답해서 신자들은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주님의 기도를 바칩니다. 이번 호에는 이 대목에 대해 살펴봅니다(2777~2802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구문은 ‘아버지’와 ‘우리’ 그리고 ‘하늘에 계신’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아버지(2779~2785항)

우리는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당신 아들을 통해 당신 자신을 우리에게 아버지로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기도할 때 우리는 “(천주) 성부와 그리고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나누게 되며”(2781항), 새로운 경이로움으로 아버지를 알아뵙고 깨닫게 됩니다.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때, 우리는 그분께 간청하기보다는 그분을 흠숭하고 찬미합니다. 나를 낳아 주신 육친의 아버지께 감사와 흠모의 정을 드리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당신의 아들로 삼아 당신 생명으로 우리를 다시 태어나게 하셨기에 우리는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와 찬미와 흠숭을 드리는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를 당신 양자로 삼아 새 생명을 주시는 하느님의 이 무상의 선물은 우리에게 끊임없는 회개와 새 삶을 요구합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주님의 기도를 드리면서 “두 가지 근본 의향을 심화시켜야 할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첫째는 하느님을 닮겠다는 열망과 의지입니다.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우리는 원죄로 본 모습을 잃었으나 그리스도의 구원하시는 은총에 힘입어서 다시 하느님을 닮게 되었으므로, 이 은총에 응답해야 합니다. 그래서 하느님의 자녀답게 처신해야 하고,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우리 영혼을 장식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는 어린이와 같이 겸손하고 신뢰하는 마음을 지니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철부지 어린아이들에게 당신을 드러내 보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버지(2786~2793항)

‘우리 아버지’는 하느님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라는 소유 의미를 지니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 사이에 맺어진 완전히 새로운 관계”(2786항)를 의미합니다. 하느님을 ‘우리’ 아버지라고 부를 때 가장 먼저 깨닫는 것은 “예언자들을 통해 선포된 하느님 사랑의 모든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한 새롭고 영원한 계약으로 이루어졌다는 것”(2787항)입니다. 그래서 이것은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 됐고, 하느님은 우리의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말하자면 상호 소속의 관계입니다. 이렇게 하느님과 새로운 관계를 맺게 된 것은 우리에게 무슨 공로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자비로우신 하느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무상의 은총 덕분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또한 하느님의 궁극적 약속에 대한 우리의 확고한 희망을 표현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종말의 새 예루살렘에서 승리자에게 “나는 그의 하느님이 되고 그는 나의 아들이 될 것이다”(묵시 21,7) 하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이에 대한 굳센 희망을 ‘우리’라는 말이 표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라는 말은 문법적으로는 여러 사람에게 공통되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느님은 내 아버지이실 뿐 아니라 나와 함께 있는 다른 이들의 아버지이시기도 하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하느님 안에 모인 자녀들의 친교, 곧 교회의 친교를 나타냅니다. ‘우리’ 아버지께 기도할 때, “세례받은 각 사람은 이러한 친교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아버지께 드리는 기도는 또한 비록 갈라졌다 하더라도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공동의 유산이 되고 동시에 일치에 대한 절박한 호소가 됩니다.

우리가 참으로 ‘우리 아버지’께 기도를 드린다면, 우리는 또한 개인주의를 극복하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기도 첫머리에 나오는 ‘우리’에게서 제외되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되려면 대립과 분열을 극복해야 합니다.


하늘에 계신(2794~2796항)

여기서 하늘은 특정한 장소(공간)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존재 양식을 가리킵니다. 또 그분의 위엄을 가리킵니다. 지극히 거룩하시고 위엄이 높으신 하느님은 모든 것을 초월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렇지만 또한 겸손하고 뉘우치는 마음을 가진 사람에게는 아주 가까이 계십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해설합니다. “하느님께서 당신 성전에 계시듯이 의인들의 마음에 계신다는 의미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말을 알아듣는 것은 올바른 이해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거처하시는 하늘은 아버지의 집입니다. 아버지의 집인 하늘은 그래서 우리가 이미 속해 있는 우리의 참 고향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하고 기도 드릴 때 우리는 우리를 멀리 초월해 계시면서도 동시에 우리 안에 계시는 아버지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입니다.

[가톨릭신문, 2014년 8월 10일, 정
리=이창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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