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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18: 가정의 기본 토대인 혼인
작성자주호식 쪽지 캡슐 작성일2014-06-06 조회수1,777 추천수0

[황창희 신부의 살며 배우며 실천하는 사회교리] (18) 가정의 기본 토대인 혼인



얼마 전 혼인 미사를 주례하며 새롭게 시작하는 부부의 앞길을 축복했다. 비록 서로 다른 가정환경에서 자랐지만, 한 남자와 여자로 만나 평생을 함께하기로 하는 두 젊은이의 모습에서 행복함과 설렘의 기쁨을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세상에 태어나 성인이 되고, 새로운 인생의 배우자를 만나 서로 사랑하고 가정을 꾸리고, 아이를 낳아 하느님 뜻에 맞도록 올바르게 키우는 일은 하느님의 축복이다.


하느님이 맺어주신 혼인

신자가 아닌 외숙모에게는 사제가 돼 독신으로 사는 내 삶이 아직도 이해되지 않는 것 같다. 사제가 되기로 하고 신학교에 들어간 것이 벌써 28년, 사제품을 받은 것도 18년째 접어들고 있는데 말이다. 하긴 신자가 아닌 사람들에게는 사제 성소를 받아 독신으로 살아가는 사제들이나 수도 성소를 받아 결혼하지 않고 공동체 생활을 하는 수도자의 삶이 그리 쉬워 보이지만은 않는 것 같다.

얼마 전 가족모임에서도 외숙모는 만날 때마다 하시던 말씀을 되풀이하셨다. “아깝다. 참 아까워!” 이제 배도 나오고 머리도 희끗희끗한 중년의 아저씨가 된 내 모습이 외숙모 눈에는 아직도 안타깝게 보였나 보다. 마치 결혼하지 않은 노총각의 모습이라고나 할까! 장난기가 슬슬 발동하여 외숙모에게 농담했다. “그렇게 아까우면 돈 많고 예쁜 아가씨 하나 있으면 소개해 주시던지요.” 결국, 외숙모는 정색하며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니”라고 말씀하셨고 가족 모두가 한바탕 크게 웃었다.

하긴 세상에 그런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착하고, 예쁘고, 돈 많고, 싹싹하고, 예의 바른 사람들도 한 가정을 꾸리며 살다 보면, 세상의 풍파를 만나 점점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고 고통 속에서 인내하며 사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이런 삶 속에서 다시 행복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것이 결혼생활인지도 모르겠다.

몇 년 전 홀로 가톨릭 신자가 된 외숙부의 신앙은 내게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늦은 나이에 스스로 시골 성당에 찾아가 신자가 된 외숙부가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당신이 세례를 받으니 누나인 어머니가 세례식에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외숙부는 평상시 가톨릭 신자가 되겠다고 전혀 말씀하지 않으셨기에 우리 가족 모두는 깜짝 놀랐다. 어머니는 선물로 커다란 성모상을 준비하고 세례식에 참석하셨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외숙부는 본당 공동체와 가족들의 축하를 받으며 하느님 백성으로 새롭게 태어났다. 이어진 조촐한 축하 식사 자리에서 어머니는 외숙부에게 세례받은 기분이 어떤지 물어보셨다. 돌아온 답변은 “글쎄? 오늘 기분이 정말 좋아! 결혼식 할 때 느낌과 똑같다고나 할까?”

외숙부는 세례성사의 기쁨을 혼인 때의 기대와 설렘과 같은 것으로 표현하셨다. 인간의 삶에 있어서 가장 행복한 순간 중의 하나인 결혼의 순간을 세례성사의 기쁨에 비유했다는 것에서 외숙부의 순박하지만 든든한 신앙심을 엿볼 수 있었다.


혼인성사의 중요성

가톨릭교회는 혼인의 가치를 어떻게 이해할까? 교회는 혼인이 가정의 토대를 이루는 가장 기본임을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간추린 사회교리」에서는 남녀 간 결합인 혼인이 하느님과 깊은 연관성을 맺고 있음을 강조한다. “부부와 자녀와 사회의 행복을 지향하는 이 신성한 유대는 인간의 마음에 좌우되지 않는다. 하느님께서 바로 여러 가지 선과 목적을 지닌 혼인의 제정자이시다. 그러므로 창조주께서 제정하시고 당신의 법칙으로 안배하신, 생명과 사랑의 내밀한 부부 공동체인 혼인 제도는 인습이나 법 규범의 결과가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지속적으로 이어져 온 것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15항).

혼인은 두 배우자가 서로 주고받는 인격적 행위 안에서 태어나는 제도이며, 자신을 다른 한 사람인 배우자에게 온전히 내어 주겠다는 공개적 동의를 통해 이뤄진다. 따라서 어떠한 권력이나 세력도 혼인에 대한 이러한 천부적 권리를 폐지하거나 혼인의 특성이나 목적 자체를 바꿀 수 없다.

두 배우자가 서로에게 충실하며, 서로 돕고, 자녀를 받아들이기로 약속한 이 혼인의 유대는 하느님 앞에서 이뤄지며, 이 혼인 유대는 절대로 인간의 힘으로는 깨트릴 수 없는 불가해소성을 지닌 고유한 것이다. 따라서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인격적 만남인 혼인을 강조하면서 일부다처제나 일처다부제를 반대하고 있다. 남자와 여자의 동등한 존엄성에 위배되기 때문이다(「간추린 사회교리」 216-217항 참조).

올바른 인간 인격이 형성되려면 가정의 역할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이러한 가정의 출발은 건강한 혼인생활을 통해 시작된다.

점점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잊어버리고 성당이 아니라 결혼식장을 찾는 신자들을 보면서 그만큼 우리 사회가 혼인성사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이 든다.

[평화신문, 2014년 6월 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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