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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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20년 12월 15일 화요일

[(자) 대림 제3주간 화요일]

입당송

즈카 14,5.7 참조
보라, 주님이 거룩한 이들을 모두 데리고 오시리니, 그날에는 큰 빛이 비치리라.

본기도

하느님,
외아드님을 통하여 저희를 새사람이 되게 하셨으니
사랑으로 지으신 저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성자께서 오실 때에 저희의 온갖 죄악을 씻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제1독서

<구세주의 구원이 가난한 모든 사람에게 약속된다.>

▥ 스바니야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1-2.9-13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1 “불행하여라, 반항하는 도성, 더럽혀진 도성, 억압을 일삼는 도성!
2 말을 듣지 않고 교훈을 받아들이지 않는구나.
주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 하느님께 가까이 가지 않는구나.
9 그때에 나는 민족들의 입술을 깨끗하게 만들어 주리라.
그들이 모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어깨를 나란히 하고 주님을 섬기게 하리라.
10 에티오피아 강 너머에서 나의 숭배자들, 흩어진 이들이 선물을 가지고 나에게 오리라.
11 그날에는 네가 나를 거역하며 저지른 그 모든 행실을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되리라.
그때에는 내가 네 가운데에서 거만스레 흥겨워하는 자들을 치워 버리리라.
그러면 네가 나의 거룩한 산에서 다시는 교만을 부리지 않으리라.
12 나는 네 한가운데에 가난하고 가련한 백성을 남기리니
그들은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리라.
13 이스라엘의 남은 자들은 불의를 저지르지 않고 거짓을 말하지 않으며
그들 입에서는 사기 치는 혀를 보지 못하리라.
정녕 그들은 아무런 위협도 받지 않으며 풀을 뜯고 몸을 누이리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4(33),2-3.6-7.17-18.19와 23(◎ 7ㄱ)
◎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어 주셨네.
○ 나 언제나 주님을 찬미하리니, 내 입에 늘 찬양이 있으리라. 내 영혼 주님을 자랑하리니, 가난한 이는 듣고 기뻐하여라. ◎
○ 주님을 바라보아라. 기쁨이 넘치고, 너희 얼굴에는 부끄러움이 없으리라. 가련한 이 부르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원해 주셨네. ◎
○ 주님의 얼굴은 악행을 일삼는 자들에게 맞서, 그들의 기억을 세상에서 지우려 하시네. 의인들이 울부짖자 주님이 들으시어, 그 모든 곤경에서 구해 주셨네. ◎
○ 주님은 마음이 부서진 이를 가까이하시고, 영혼이 짓밟힌 이를 구원해 주신다. 주님이 당신 종들의 목숨 건져 주시니, 그분께 피신하는 이 모두 죗값을 벗으리라. ◎

복음 환호송

◎ 알렐루야.
○ 오소서, 주님. 지체하지 마소서. 당신 백성의 죄를 용서하소서.
◎ 알렐루야.

복음

<요한이 왔을 때, 죄인들은 그를 믿었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1,28-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수석 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에게 말씀하셨다.
28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어떤 사람에게 아들이 둘 있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얘야, 너 오늘 포도밭에 가서 일하여라.’ 하고 일렀다.
29 그는 ‘싫습니다.’ 하고 대답하였지만, 나중에 생각을 바꾸어 일하러 갔다.
30 아버지는 또 다른 아들에게 가서 같은 말을 하였다.
그는 ‘가겠습니다, 아버지!’ 하고 대답하였지만 가지는 않았다.
31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였느냐?”
그들이 “맏아들입니다.” 하고 대답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세리와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느님의 나라에 들어간다.
32 사실 요한이 너희에게 와서 의로운 길을 가르칠 때,
너희는 그를 믿지 않았지만 세리와 창녀들은 그를 믿었다.
너희는 그것을 보고도 생각을 바꾸지 않고 끝내 그를 믿지 않았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비천한 저희가 드리는 기도와 제물을 굽어보시어
아무런 공덕이 없는 저희를 너그러이 보호하시며 도와주소서.
우리 주 …….

감사송

<대림 감사송 1 : 그리스도의 두 차례 오심>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그리스도께서 비천한 인간으로 처음 오실 때에는
구약에 마련된 임무를 완수하시고
저희에게 영원한 구원의 길을 열어 주셨나이다.
그리고 빛나는 영광 중에 다시 오실 때에는
저희에게 반드시 상급을 주실 것이니
저희는 지금 깨어 그 약속을 기다리고 있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2티모 4,8 참조
의로운 심판관은 당신이 나타나기를 애타게 기다린 사람에게 의로움의 화관을 주시리라.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에 참여한 저희를 생명의 양식으로 기르시니
저희가 지상 것을 슬기롭게 헤아리며
끊임없이 천상 것을 찾도록 가르쳐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스바니야는 히브리말로 ‘주님께서 피난시켜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스바니야 예언자는 예레미야 예언자와 같은 시대의 인물로서 성전 주위에 머물며 심판을 예고하고, 동시에 열심히 살려는 이들을 격려하였습니다. 그의 예언은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와 민족들에 대한 심판, 복구의 약속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단 세 장뿐인 스바니야 예언서의 마지막 장 전반부를 대림 시기의 한가운데인 오늘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독서에서 스바니야는 이방 민족들의 회개와 흩어진 백성의 귀환을 언급한 뒤, 남은 이들의 신앙 자세를 ‘가난한 자’라고 강조합니다. 여기서 가난함이란 물질적으로, 사회적으로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을 말하기도 하지만 영성적으로 ‘마음이 가난함’을(마태 5,3 참조) 뜻하기도 합니다.
하느님 앞에 가난한 사람의 삶의 자세가 과연 무엇인지는 오늘 복음 속 예수님의 ‘두 아들의 비유’에서 알 수 있습니다. 포도밭에 가서 일하라는 아버지의 명에 싫다고 답하였지만 마음을 바꾸어 밭에 가서 일하는 맏아들과, 가겠다고 답하였지만 실제로는 일하지 않는 다른 아들의 태도에서 무엇이 중요한지가 확연히 드러납니다. 참으로 중요한 것은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것이 아니라 ‘한다.’ 하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오실 분을 기다리는 이때에 가난한 자로 산다는 것은 마땅하고 옳은 일입니다. 순종을 뜻하는 라틴어는 ‘집중해서 잘 듣는다.’라는 표현에서 나왔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귀기울이며 자신의 생각을 접는 기도와 함께, 그분 뜻대로 실천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가난한 자로 사는 길이라 하겠습니다.
(박기석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