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주시 일산동에 있는 강원 감영(江原監營)은 조선 시대 강원도 지방행정의 중심지로 조선 태조 4년(1395년)에 설치되어 고종 32년(1895년) 감영이 폐지될 때까지 500년 동안 강원도의 정청(政廳) 업무를 수행했다. 1830년에 편찬된 “관동지”에 수록된 ‘강원감영도’(江原監營圖)를 보면 건물이 41동에 이를 만큼 규모가 컸으나 6.25 전쟁으로 대부분 사라지고 한동안 원주시 제2청사로 사용되면서 그 모습을 잃어버렸다. 그러나 다행히도 정청(政廳)인 선화당(宣化堂)과 정문인 포정루(布政樓), 내삼문과 중삼문 등 4동은 원래 위치에 비교적 양호한 상태로 잘 남아 있었다.
조선 시대에 원주 일대의 죄인들은 감원 감영으로 끌려와 정청인 선화당에서 형벌을 받고 처형되었다. 당시 이곳에서는 국사범 등의 중죄인은 물론 잡범들에 대한 형도 집행됐는데, 박해가 일어나자 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이곳으로 잡혀 와 심문을 받고 옥에 갇혀 갖은 고초를 겪은 후 참수 처형되었다.
전국적으로 박해가 회오리처럼 몰아치던 당시에 전국 각 지방의 감영은 천주교인들을 잡아들여 이들에게 배교를 강요하며 온갖 고문을 일삼았다. 그래서 어느 감영이든 대부분 그때 흘린 순교자들의 피와 고통의 역사가 구전을 통해 후손들에게 전해지곤 했다.
강원 감영이 품고 있는 슬픈 역사 역시 동네 어른들의 입을 통해 지금까지 전해지고 있다. 당시의 처참했던 상황은 시간이 지나면서 희미해지고 때로는 아예 잊히기도 했지만, 그 순수하고 굳건했던 신앙의 정신만은 퇴색하지 않고 남아 있다.
강원감영으로 들어서는 정문인 포정루를 지나면 정청인 선화당이 눈에 들어온다. 우아하게 뻗어 내린 기와의 곡선이 아름답지만, 수많은 천주교 신자들이 단지 천주(天主)를 믿는다는 이유만으로 처참하게 피를 흘린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네 군데 처마 끝에 기와로 구운 보호 장구를 갖추고 있는 것이 이채로운 선화당은 관찰사의 집무실로 쓰였으며, 포정루와 함께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다가 다시 세워졌다. 포정루는 1660년(현종 1년)에 목사(牧使) 이후(李候)가 다시 건립하였고, 6.25 전쟁 때도 손상을 입었으나 다시 복구하였다. 선화당은 1667년에 다시 세워졌다.
포정루 및 선화당은 조선 시대 감영의 형식을 알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그래서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었는데, 지정 당시의 명칭은 강원 감영(문루 및 선화당)이었으나 2004년 1월 17일 포정루 및 선화당으로 그 이름이 변경되었다.
강원 감영이 순교의 피를 흘렸던 박해의 현장임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다.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Franciscus) 교황에 의해 동료 순교자들과 함께 복자품에 오른 김강이 시몬, 최해성 요한, 최 비르지타 등 많은 순교자가 강원 감영으로 끌려와 혹독한 옥살이를 하고 참수 치명했다.
복자 김강이 시몬(金鋼伊, 1765?-1815년)은 1815년 을해박해 때 강원도 울진(현 경상북도 울진군)에서 체포되어 안동에 수감되었다가 원주의 강원 감염으로 이송되어 모진 문초와 형벌을 받았다. 결국 사형 선고를 받았지만 고문으로 생긴 상처와 이질로 인해 임금의 윤허가 내려오기도 전에 옥사하고 말았다. 최경환 성인의 일가인 복자 최해성 요한(崔海成, 1811-1839년)은 좀 더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위해 가족과 함께 원주의 서지(현 강원도 원주시 부론면 손곡 2리)로 이주해 작은 교우촌을 이루고 살다가 1839년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원주 관장 앞에서 무수한 심문과 고문을 당한 후 참수 치명했다. 복자 최 비르지타(崔~, 1783-1839년)는 황사영 알렉시오를 숨겨 준 죄목으로 유배당한 남편이 죽은 후 유배지를 떠나 오빠가 사는 서지 마을에 와서 살았다. 강원 감영에 갇힌 조카 최해성 요한을 보러 갔다가 체포되어 고문을 당한 후 옥리들에게 목이 졸려 순교했다.
안타까운 것은 강원 감영의 옥터와 참수터, 서지 마을로 추정되는 곳은 있으나 그 정확한 위치가 아직 밝혀지지 않았고, 이미 많은 건물이 들어서 있어 복원이 어려운 상황이다. 원주시는 1995년 ‘강원 감영 사적공원조성 기본계획’를 수립하여 강원 감영 복원사업을 시작했다. 2005년 6월 선화당 권역 복원공사를 완료하고, 2011년 10월 선화당 뒤편에 있던 원주 우체국 청사를 철거한 후 2단계로 후원 권역 복원에 착수했다. 2014년까지 문화재 발굴조사와 고증을 거쳐 설계를 마치고 2015년 11월 후원 권역 복원공사를 마무리했다. 원주시는 2018년 11월 3일 20년이 넘는 긴 시간 동안 철저한 고증을 거쳐 조선 시대 팔도 감영 중 처음으로 복원한 ‘감원 감영 복원기념 준공식’을 개최했다. [출처 : 주평국, 하늘에서 땅 끝까지 - 향내나는 그분들의 발자국을 따라서, 가톨릭출판사, 1996,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최종수정 2019년 12월 26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