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 울진군 서면 왕피리는 동해안을 끼고 남쪽으로 뻗어 있는 태백산맥의 통고산과 대령산 사이에 있으며, 통고산에서 발원하여 동해로 들어가는 왕피천의 발원지입니다. 또한 이곳은 영양군 수비면과 경계지역이며 갈전 마을은 통고산 동쪽 기슭의 깊은 산골 마을입니다. 1994년 울진군 서면의 왕피리 일부(갈전)가 영양군 수비면 신암리로 편입되었습니다. 그래서 울진 왕피리 교우촌으로 추정하는 갈전 마을은 신암리에 속하게 되었고, 교우촌 터로 추정되는 곳은 왕피천 유역 생태 · 경관 보전지역으로 지정되어 있습니다.
이런 깊은 심산궁곡에 천주교 신자들이 살기 시작한 것은 문헌상으로 충청도 서산 지방의 중인 출신으로 전라도 고산을 거쳐 1801년 신유박해 때 진보 머루산으로 피난 온 김강이 시몬 형제 가정이 농사를 지으면서 신앙생활을 하던 중 그가 입교시킨 새 신자 몇 사람과 함께 다시 여러 곳을 전전하다가 강원도 울진으로 이주해 따로 교우촌을 이루어 삶으로써 형성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이 왕피리 지역인지는 정확하지 않습니다.
1815년 경상도에서 을해박해가 일어난 뒤, 김강이는 옛 하인의 밀고로 아우 김창귀 타대오와 조카 김사건 안드레아와 함께 체포되어 안동으로 끌려가 여러 차례 문초를 받으면서도 굳건히 신앙을 지켰습니다. 김강이는 아우와 함께 강원도 원주로 이송되어 다시 문초와 형벌을 받고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임금으로부터 사형 집행 윤허가 내려오기도 전인 1815년 12월 형벌로 인한 상처와 옥중 생활에서 얻은 이질 때문에 옥사하고 말았습니다. 한편 아우 김창귀는 원주에서 마음이 약해져 배교하고 유배형을 가게 되었습니다. 김강이 시몬은 2014년 8월 16일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에 의해 시복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