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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교구 > 배모기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간략설명 뱀의 목처럼 생긴 배모기에 세워진 교우촌
지번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이안면 양범리 
전화번호 (054)541-3037
팩스번호 (054)541-5413
홈페이지
관련기관 함창 성당    (054)541-3078
관련주소 경상북도 상주시 함창읍 모개낭2길 66-6
서광수(徐光修, 1715-1786년)와 그 후손들

서광수는 용안현감(龍安縣監)을 지낸 서명함(徐命涵)의 장남으로, 그의 집안은 누대로 내려오는 달성 서씨(達城 徐氏)의 명문대가였다. 특별히 그의 집안 친척 중 5촌 당숙인 서명응은 정조 때 홍문관 대제학 등의 높은 벼슬을 한 사람이며, 또한 북학파인 홍대용, 박지원, 박제가, 이덕무 등과 함께 중국 고증학의 영향을 받아서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실학을 연구한 학자였다. 학문 집안에서 자라난 그가 실학을 연구했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벼슬길을 탐하지는 않았다.

1784년 이승훈이 북경에서 세례를 받고 돌아와 한국천주교회가 창립되자 그의 가정도 천주교를 받아들였고, 1785년 을사추조적발사건(乙巳秋曹摘發事件) 때 연루되어 문중으로부터 심한 박해를 받아 상주 고을 배모기로 피난 와서 산 듯하다. 그 당시 그의 가문에서는 그와 그의 자녀들이 천주교에 입교하자 문중회의를 열고 족보에서 파적시켜 버렸다고 한다.

그래서 5남(有弘, 有德, 有五, 有道, 有萬) 2녀를 둔 서광수의 가정은 사방으로 뿔뿔이 흩어졌는데, 그는 4남 서유도(徐有道, 1772-1837년)와 함께 이곳 상주 이안의 배모기로 와서 우거했다. 그러나 그 이듬해인 1786년에 72세로 이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3남 서유오(徐有五, 1760-1807년)의 가정은 충청도 장원을 거쳐 1839년 기해박해 때 아들 서치보(徐致輔, 1791-1840년)와 손자(隣淳, 明淳, 哲淳, 翼淳, 泰淳)들이 문경 여우목 교우촌에 들어와 살았다.

서광수가 선종한 후 4남 유도 집안은 1801년 신유박해를 맞아 문경 한실로 이주하기 전까지 이곳 배모기에 살면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고 이웃에 복음을 전파하여 이안면의 사실에 살던 이응동 집안과 은재(저음리)에 살던 순교 복자 김윤덕(金允德, 1765?-1815년) 아가타 막달레나 가정을 입교시킨 듯하다.

한편 3남 서유오 가정도 그 후손들이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병인박해 중에 서광수의 증손자이자 서치보 요셉의 4남인 서익순(徐翼淳, ?-1868년) 요한이 체포되어 대구에서 서울로 이송되어 절두산에서 백지사형을 받고 순교했다. 서태순(徐泰淳, 1823-1867년) 베드로는 상주 감옥에서 옥사했고, 서인순(徐隣淳, 1808-1868년) 시몬 역시 대구감영에서 문초를 받고 옥고를 치르다가 1868년 4월 29일(음력) 옥사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병인박해가 한창이던 1866년 가을 친척인 서유형 바오로와 서유형의 형수인 박 루치아가 문경 모전(점촌)에 살다가 상주 포교에서 잡혀 그곳에서 순교하였다.

이렇듯 서광수의 가정과 그 후손들은 모두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여 후손 중에 순교자가 여러 명 탄생했다. 그리고 서광수의 3남 서유오의 증손자이자 서철순(徐哲淳, 1829-1857년)의 장남인 서상돈(徐相燉, 1850-1913) 아우구스티노는 대구 본당과 대구 교구 설립 초기 그 기반을 다지는 데 큰 공헌을 했다. [출처 : 안동교구 홈페이지, 내용 일부 수정 및 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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