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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타나시오(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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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아타나시오 (Athanasius)
축일 5월 2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주교, 교부, 교회학자
활동지역 알렉산드리아(Alexandria)
활동연도 295?-373년
같은이름 아따나시오, 아따나시우스, 아타나시우스
성인 기본정보

   성 아타나시우스(또는 아타나시오)는 295년경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의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훌륭한 교육을 받고 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그는 특히 성경과 신학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보였고, 318년경 부제품을 받은 후 고향인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인 성 알렉산데르(Alexander, 2월 26일)의 비서가 되었다. 그는 아리우스(Arius) 이단을 단죄했던 325년의 제1차 니케아(Nicaea) 공의회에 성 알렉산데르 주교를 수행하여 참석하였다. 당시 부제였기 때문에 공의회에서 공식적인 발언을 할 기회는 없었으나 아리우스주의를 반대하는 영향력 있는 신학자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었다. 공의회가 끝나고 성 알렉산데르 주교가 선종한 후 그는 알렉산드리아의 후임 주교로 선임되었다. 성 알렉산데르의 선종 날짜에 대해서는 326년 또는 328년의 여러 날을 서방 교회와 동방 교회에서 기념해왔는데,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26년으로 표기하였다.

   그런데 성 아타나시오는 주교로 선임되자마자 이집트 아리우스파의 심한 반대에 직면하게 되었다. 이러한 반발은 지중해 제국 전역으로 무섭게 파급되었고 아리우스를 지원하던 멜레티우스(Meletius) 이단도 덩달아 기세를 올렸다. 물론 이러한 세력 뒤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306~337년 재위)의 지원이 있었다.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성 아타나시오의 주교 축성을 인정하면서 자신이 유배지에서 불러온 아리우스를 공동체에 받아들이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성 아타나시오는 황제의 청을 거절하고 멜레티우스 이단과 아리우스주의자들을 굴복시킴으로써 자신의 교구를 지켜나갔다. 하지만 반대자들의 계속되는 고발과 모함으로 결국 성 아타나시오는 335년 독일 남서부 트리어(Trier)로 첫 번째 유배를 떠가게 되었다. 337년 5월 22일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사망하고 콘스탄티누스 2세(337~340년 재위)가 서로마 제국 황제로 즉위하였다. 새 황제는 성 아타나시오에게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도록 허락한 뒤 다음 해에 교회 회의를 개최하여 그의 직위를 복권하였다.

   그러나 반대파에 의해 알렉산드리아에서 폭동이 일어나자 그는 복귀 2년 만인 339년에 다시 두 번째로 알렉산드리아를 떠나지 않을 수 없었다. 이때 그는 로마(Roma)로 가서 교황 성 율리오 1세(Julius I, 4월 12일)의 환대를 받으며 7년 동안 로마 교회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하였다. 345년 아리우스파 주교인 그레고리우스가 사망한 후 알렉산드리아의 후임 주교를 선출하려 할 때 콘스탄티우스 2세는 그의 형제인 콘스탄스 황제(337~350년 재위)의 조언을 받아들여 성 아타나시오를 알렉산드리아의 주교로 임명하였다. 어렵게 황제의 뜻을 수락한 성 아타나시오는 346년 10월 21일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갔다. 346년부터 356년까지 알렉산드리아에서 지낸 기간은 그의 생애에 있어서 가장 평화로운 시간으로 ‘황금의 10년’으로 보통 불린다. 이때 그는 가장 왕성한 저술 활동과 사목 활동을 펼쳤다.

   그러나 아리우스주의자인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350년에 동로마와 서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되자 다시금 그를 추방하기로 하고 군인들을 보냈다. 체포 위험에서 간신히 목숨을 건진 성 아타나시오는 이집트의 사막 은수자들이 있는 곳으로 피신하여 그곳에서 콘스탄티우스 2세 황제가 죽은 361년까지 자기 교구민을 지도하였다. 361년 알렉산드리아로 돌아온 그는 율리아누스 황제(361~363년 재위)에 의해 362년 10월 24일 네 번째로 교구를 떠나야 했다. 하지만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지지하는 요비아누스 황제(363~364년 재위)가 즉위한 후 364년 2월에 다시 돌아왔으나 그해에 아리우스주의에 우호적인 발렌스 황제(364~378년 재위)가 들어서면서 다섯 번째로 추방되었다. 365년 10월 알렉산드리아를 떠났다가 이듬해 2월 다시 돌아온 성 아타나시오는 그 뒤로 373년 5월 2일 선종할 때까지는 평화롭게 자기 교구를 다스리며 사목할 수 있었다. 그는 지난날의 수많은 갈등과 폭력으로 인해 피폐해진 교회를 재건하고 아픈 상처를 치유하는 데 주력하면서 저술과 강론을 통해 위대한 사도직을 수행하였다.

   성 아타나시오는 신체적 조건으로 볼 때는 작은 사람이었으나 참으로 위대한 정신력을 소유한 사람이었다. 아리우스 이단을 단죄하고 파문하기로 한 니케아 공의회의 결정을 실행하는 데에는 수많은 어려움이 따랐다. 동로마 황제의 보호를 받았던 아리우스주의자들은 니케아 공의회의 신경에 반대하며 끊임없이 그를 괴롭혔고, 그로 인해 다섯 번이나 추방되어 17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해야 했다. 파란만장한 삶을 살면서도 그는 교회의 정통 신앙과 니체아 공의회의 신경을 수호하기 위해 일생을 헌신한 신학자이자 사목자였다. 이러한 활약을 통해 이단과의 논쟁으로 교회가 어려움을 겪던 시기에 니케아 공의회의 믿을 교리를 수호한 가장 뛰어난 지도자가 되었다. 특히 그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과 신성(神性)을 함께 강조하여 후대 그리스도론과 삼위일체론의 완전한 기틀을 마련하였다. 그래서 그는 4세기에 알렉산드리아가 낳은 가장 위대한 신학자 중 한 명이 되었고, 동방 교회와 서방 교회로부터 위대한 교부이자 성인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성 요한 헨리 뉴먼(Joannes Henry Newman, 10월 9일)은 그를 “그리스도 교회의 거룩한 진리를 세상에 전해 온 사도들의 후예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도구였다.”라고 평하였다.

   그의 많은 저서와 강론 중에는 아리우스 이단에 대항해 정통 교리를 옹호한 것이 많았다. 그 외에도 그는 역사적 가치를 지닌 저서들을 많이 남겼는데, 수도 생활의 창시자로 불리는 이집트의 은수자 성 안토니오(Antonius, 1월 17일)에 관해 쓴 “안토니오의 생애”(Vita Antonii)를 비롯하여 많은 성경 주석과 시편 주해 등을 남겼다. 성 아타나시오는 1568년 교황 성 비오 5세(Pius V, 4월 30일)에 의해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고, 성 대 바실리오(Basilius, 1월 2일) ·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Joannes Chrisostomus, 9월 13일) · 나지안주스(Nazianzus)의 성 그레고리오(Gregorius, 1월 2일)와 함께 동방 교회의 4대 교부 중 한 명으로 공경을 받고 있다. 유배 중에 저술한 그의 대표적인 저서로는 “콘스탄티우스 황제에게 보낸 해명”(Apologia ad Imperatorem Constantium), “수도자들에게 보낸 아리우스주의의 역사”(Historia Arianorum ad Monachos) 등이 있다. 한편 전통적으로 성 아타나시오가 작성했다고 해서 ‘아타나시오 신경’(Symbolum Athanasianum)으로 불리는 신경은 오늘날 그가 직접 기록하지 않았다고 보고 있다. 신경의 저자가 누구인지는 밝혀지지 않았으나 여러 사람의 합작품이거나 여러 교회 회의에서 결정된 내용을 종합했을 가능성을 높이 보고 있다.

   옛 “로마 순교록”과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 모두 5월 2일 목록에서 성 아타나시오의 생애에 대해 전해주었다. 알렉산드리아의 주교이자 교회 학자인 성 아타나시오는 거의 온 세상이 그를 박해하려는 음모를 꾸민 것처럼 콘스탄티누스 대제부터 발렌스 황제에 이르기까지 여러 황제와 총독과 수많은 아리우스파 주교들의 공격에 맞서 용감하게 정통 신앙과 가톨릭 교리를 수호했고, 그로 인해 여러 차례 유배와 추방의 고통을 겪었으나 영웅적인 인내심으로 모든 시련을 이겨낸 후 자신의 교구로 돌아와 사제로서 46년째 되는 해인 발렌스 황제 시대에 그리스도의 평화 안에서 하늘로 떠났다고 기록하였다. 동방 정교회는 그를 ‘교회의 기둥’ 또는 ‘정교회의 아버지’와 같은 칭호로 공경하며 보통 1월 18일을 축일로 지낸다.♣

참고자료

  • 김소일 저, 사막으로 간 대주교, 서울(서해문집), 2010년.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하) - '성 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70-74쪽.
  • 지그마르 되프 · 빌헬름 게어링스 편, 한국교부학연구회 하성수 · 노성기 · 최원호 역, 교부학 사전 – 아타나시우스(알렉산드리아의), 강원도 횡성군(한국성토마스연구소), 2022년, 594-605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8권 - '아타나시오, 알렉산드리아의',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1년, 5741-5745쪽.
  • L. 폴리 저, 이성배 역, 매일의 성인, '성아타나시오 주교 학자', 서울(성바오로), 2002년, 108-1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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