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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우제니아(1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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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에우제니아 (Eugenia)
축일 12월 25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로마(Roma)
활동연도 +3/4세기
같은이름 에우게니아, 외제니, 유진
성인 기본정보

   옛 “로마 순교록”은 12월 25일 목록에서 성녀 에우게니아(또는 에우제니아)에 대해 분명히 기록하였다. 그에 따르면 성녀 에우제니아는 갈리에누스 황제 때에 많은 기적을 일으키고 거룩한 동정녀들을 모았으며, 로마의 총독 니케티우스(Nicetius)에게 맞서 많은 고난을 겪은 후 참수형을 순교하여 로마의 아프로니아누스(Apronianus) 공동묘지에 묻혔다고 한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같은 날 목록에서 로마의 라티나 가도(Via Latina)에 있는 아프로니아누스 묘지에 성녀 에우제니아 순교자가 묻혔다고 간단히 기록하였다.

   그런데 오래된 여러 순교록을 통해 전해지는 전설에 따르면, 성녀 에우제니아는 로마 제국의 콤모두스(Commodus, 180~192년 재위) 황제 시대에 이집트의 총독으로 활약했던 성 필립보(Philippus, 9월 13일)의 딸로서 가족과 함께 이집트에서 살았다. 그녀는 원치 않는 결혼을 피하고 동정을 지키기 위해 아버지의 집을 나와 헬리오폴리스(Heliopolis)의 주교인 헬레누스(Helenus)에게 세례를 받고, 집안의 환관이자 시종으로 그녀에게 복음을 전해주었던 성 프로토(Protus, 9월 11일)와 성 히야친토(Hyacinthus, 9월 11일)의 도움으로 남장을 하고 남자 수도원에 입회하였다. 그리고 나중에는 수도원장까지 되었다.

   치유의 은사를 받은 성녀 에우제니아는 어느 날 한 여인의 병을 치료하던 중 그 여인의 성적인 유혹을 물리치자 오히려 여인으로부터 간통의 죄를 범했다는 모함을 받아 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런데 그 법정의 재판관이 바로 그녀의 부친이었다. 성녀 에우제니아는 어쩔 수 없이 자신이 여자이며, 바로 재판관의 딸이란 사실을 밝힐 수밖에 없었다. 무죄를 선고받은 성녀 에우제니아는 아버지를 설득해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도록 하는 데 성공하였다. 그 외에도 많은 사람을 개종시켰는데, 그중에는 그녀의 어머니인 클라우디아(Claudia)도 포함되어 있다. 딸의 설득과 거룩한 삶에 감동하여 개종한 성 필립보는 나중에 알렉산드리아의 주교가 되었다가 황제의 박해를 받아 순교했다고 전해진다.

   아버지가 순교한 후 성녀 에우제니아는 남은 가족들과 성 프로토와 성 히야친토 형제와 함께 로마로 이주하였다. 그녀는 로마에서 거룩한 삶을 원하는 동정녀들을 모아 수녀원을 설립하였다. 그러나 발레리아누스(Valerianus, 253~260년 재위)와 갈리에누스(Gallienus, 253~268년 재위) 황제들의 박해 때 그리스도교 신자로 고발되어 로마의 여신 디아나(Diana) 신전으로 끌려가 제물을 바칠 것을 강요받았다. 이때 갑자기 디아나 여신상이 사라지는 기적이 일어났고, 박해자는 그녀를 돌로 친 다음 강물에 던져버렸다. 하지만 그녀가 죽지 않자 감옥에 가둔 후 일체 먹을 것을 주지 않았다. 전설에 따르면 그녀는 발현하신 그리스도에게 직접 음식을 받아먹었고, 주님의 탄생 축일에 죽을 것이라는 말씀대로 12월 25일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그녀의 유해는 라티나 가도에 있는 아프로니아누스의 묘지에 묻혔고, 그 위에 그녀에게 봉헌된 성당이 건립되었으나 현재 남아 있지는 않다. 개정 “로마 순교록”은 그녀의 순교 시기를 3/4세기로 보았다. 동방 정교회는 12월 24일에 그녀의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참고자료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9권 - '에우제니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2년, 6011-6012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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