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목록

구분 성인명     축일 신분 지역명 검색
정하상 바오로(9.20)

정하상 바오로(9.20)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정하상 바오로 (丁夏祥 Paul)
축일 9월 20일
성인구분 성인
신분 회장, 신학생, 순교자
활동지역 한국(Korea)
활동연도 1795-1839년
같은이름 바울로, 바울루스, 빠울로, 빠울루스, 정 바오로, 정바오로, 파울로, 파울루스,
성인 기본정보

   성 정하상 파울루스(丁夏祥 Paulus, 또는 바오로)는 남인 양반의 후예로서 1795년 부모의 출생지인 경기도 광주 마현(현 경기도 남양주시 조안면 능내리 마재 성지 일대)에서 태어나 자랐다고 한다. 하지만 오늘날 교회사 연구에 따르면 그의 아버지인 복자 정약종 아우구스티노(丁若鍾 Augustinus)는 정씨 가문의 셋째 아들로 태어나 1786년 무렵 중형인 정약전(丁若銓)에게 천주교 교리를 배워 입교하였고, 부인과 사별한 후 성녀 유 체칠리아(柳 Caecilia)를 두 번째 아내로 맞이하였다. 그리고 1791년의 진산 사건(珍山事件)으로 인해 천주교 신자의 제사 폐지가 사회 문제가 되면서 집안의 박해와 강요를 피하고자 아내와 맏아들인 복자 정철상 가롤로(丁哲祥 Carolus)를 데리고 한강 너머 광주 분원(현 경기도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으로 거처를 옮겼다. 따라서 1795년 출생한 정하상 바오로나 1797년에 태어난 성녀 정정혜 엘리사벳(丁情惠 Elisabeth)의 경우 광주 분원에서 태어났을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한편 평신도 단체인 명도회(明道會) 회장을 역임하는 등 지도층 신자로 활동하던 부친 정약종이 1801년 신유박해로 체포되어 순교하고, 그 뒤를 이어 장남인 정철상도 순교하였다. 신유박해 당시 정하상의 나이는 겨우 6살에 불과했는데 모친인 유 체칠리아와 누이동생 정정혜와 함께 옥에 갇혔다가 어리다는 이유로 어머니와 함께 석방되었다. 어머니와 누이동생도 나중에 기해박해 때 체포되어 순교하여 성인품에 올랐다. 감옥에서 풀려났으나 가산이 모두 몰수되고 분원의 집도 파괴되어 살길이 막연해지자 어머니는 맏며느리와 12살짜리 딸과 6살 정하상과 4살 정정혜를 데리고 마재에 있는 시아주버니댁으로 가서 도움을 청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친척과 집안으로부터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온갖 비난과 핍박을 견디며 살아야 했다. 그러는 동안 얼마 지나지 않아 맏며느리와 손주 그리고 그녀의 맏딸마저 죽고 정하상과 정정혜 남매만 남게 되었다.

   정하상은 어려서부터 어머니로부터 기도와 교리를 충실히 배웠다. 그는 언제부터인가 집안의 박해를 피하고자 마재를 떠나 이곳저곳 교우들의 집을 돌아다니며 생활하였다. 그러던 중 좀 더 깊이 있는 교리와 한문을 배울 요량으로 어머니의 먼 친척으로 신유박해 때 함경도 무산(茂山)으로 유배되어 살고 있던 한학자 조동섬 유스티노(趙東暹 Justinus)를 찾아가 수학하며 학문과 신앙인으로서의 소명에 눈을 뜨게 되었다. 1816년경 상경한 정하상은 순교 복자인 조숙 베드로(趙淑 Petrus)와 권천례 데레사(權千禮 Teresia) 동정 부부의 집에 임시거처를 두고 북경을 왕래하면서 선교사 영입 운동을 통하여 신유박해로 멸절 위기에 처한 조선교회를 재건하는데 진력했다. 그리고 이 동정 부부의 믿음에 감동해 자신 또한 평생 동정을 지키며 천주의 영광을 위해 교회 일에 열중하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교회 재건의 뜻을 이루기 위해 양반 신분을 감추고 어떤 역관의 집에 하인으로 들어가 살다가 만 21살 때인 1816년 겨울에 처음으로 북경에 가게 되었다. 그는 북경의 천주당(天主堂)을 찾아가 성사를 받고 주교에게 성직자 파견을 요청했으나 바로 성공하지는 못했다. 그러나 실망하지 않고 계속해서 북경까지 9회, 변문까지는 11회나 왕래하였다.

   정하상 바오로는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劉進吉 Augustinus)와 성 조신철 가롤로(趙信喆 Calolus) 그리고 강진에 유배 가 있는 삼촌 정약용의 자문과 후원으로 끊임없이 성직자 영입 운동을 전개했다. 그들은 로마 교황에게 탄원서를 보내는 한편, 북경 주교에게도 서신 등을 보냄으로써 마침내 조선교회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위임됨과 동시에 1831년에 조선 독립교구가 설정되는 결과를 가져왔다. 마침내 그는 1834년 1월에 조선에서 유방제(劉方濟) 신부로 잘 알려진 중국인 여항덕 파치피코(余恒德 Pacificus) 신부를 조선으로 모셔 들이고, 이어서 성 모방 베드로(Maubant Petrus)와 성 샤스탕 야고보(Chastan Jacobus) 신부 그리고 성 앵베르 라우렌시오(Imbert Laurentius) 주교까지 차례로 모셔와 후동에 있는 자신의 집에 모셨다. 그 뒤로 정하상은 주교의 복사로 활동하면서 교우촌을 순방하거나 신자들을 돌보는 데 온 힘을 쏟았다. 그때까지 그는 20년 이상을 교회의 밀사로 활약하며 수없이 북경을 왕래하면서 교회 재건과 성직자 영입 운동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한편 앵베르 주교는 정하상 바오로가 사제가 되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해 그를 신학생으로 선발하여 라틴어와 신학을 가르쳤다. 그러나 1839년 초에 기해박해가 시작되면서 그의 학업과 활발한 활동 역시 중단되었다. 그는 주교댁으로 사용하던 후동 집에서 주교를 피신시킨 후 머지않아 체포되고 순교하게 될 것을 예상하고는 몇몇 교우들과 협의하여 박해자에게 제출할 조선교회 최초의 호교론(護敎論)을 직접 작성하였다. 그것이 바로 “상재상서”(上宰相書, 재상에게 올리는 글)이다. 그는 이 글 속에서 박해의 부당성을 뛰어난 문장으로 논박했기 때문에 조정에서도 이 글에 대하여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는 “상재상서”에서 마지막으로 임금에게 다음과 같이 호소하였다. “목숨을 바쳐 순교함으로써 성교가 진실된 가르침을 증명하여, 천주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우리들의 본분으로 삼는 일이옵나이다. 죽음에 임하여 용감히 말해야 할 때에 한 번 고개를 들고 크게 외쳐 보지도 못하고, 말없이 불쌍히 죽으면, 쌓이고 쌓인 회포를 백 년 뒤에까지 스스로 밝힐 길이 없사오니, 엎디어 빌건대 밝히 굽어살피사, 도리의 참되고 거짓됨과 그르고 바름을 가리옵소서.”

   기해박해가 한창이던 1839년 7월 11일, 포졸들이 정하상 바오로의 집에 달려들어 그와 그의 노모인 유 체칠리아와 누이동생 정정혜 그리고 동료들을 체포하여 포도청으로 압송하였다. 옥에 갇힌 정하상은 미리 준비한 “상재상서”를 포장 대리에게 제출하니 사흘 뒤부터 문초가 시작되었다. 정하상은 무서운 고통을 강인하게 참아나갔고 배교하라는 엄명 또한 단호히 거절하였다. 며칠 뒤 그는 다시 옥에서 끌려 나와 톱질형을 받아 살이 떨어져 나가고 골수와 피가 쏟아지는 고통을 겪었다. 또한 그는 샤스탕 야고보와 모방 베드로 신부의 은신처를 대라는 심문에도 끝내 입을 열지 않았다. 그 후 그는 앵베르 주교의 권유로 신자들을 위해 두 신부가 자수한 뒤에 의금부로 이송되어 여러 차례 추국(推鞫)을 받았다. 그는 혹독한 고문에도 동요하지 않았고, 주교와 신부들과 대질 신문을 받는 중에도 교회나 신자들에게 해가 될만한 말은 전혀 입 밖에 내지 않았다. 결국 그는 세 명의 선교사 주교와 신부가 새남터에서 순교한 다음 날인 1839년 9월 22일, 서양의 신(神)을 나라 안에 끌어들인 모반죄와 부도(不道)의 죄명을 쓰고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와 함께 아버지가 순교했던 서소문 밖 형장에서 참수형을 받아 순교하였다. 이때 그의 나이는 45세였다.

   성 정하상 바오로의 유해는 순교 후 고향인 광주의 분원 인근 배알미리(경기도 하남시 배알미동)에 묻혔다. 그리고 1981년 10월 파묘하는 과정에서 남은 유해를 거두어 수원교구 하남 신장성당에 안치했다가 그해 12월 31일 천진암 성지로 옮겨져 안장되었다. 그는 1925년 7월 5일 교황 비오 11세(Pius XI)에 의해 시복되었고, 1984년 5월 6일 한국 천주교회 창설 200주년을 기념해 방한한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Joannes Paulus II)에 의해 서울 여의도 광장에서 성인품에 올랐다. 그는 9월 22일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으나 한국 교회에서는 1984년에 시성된 103위 한국 순교 성인 모두를 전례적으로 9월 20일,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에 함께 기념하고 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22일 목록에서 한국의 서울에서 성 정하상 바오로와 성 유진길 아우구스티노가 순교했는데, 정하상은 박해 시대에 초기 신앙 공동체를 20년 동안 이끌었고, 유진길은 교황 그레고리오 16세(Gregorius XVI)에게 편지를 써서 조선에 사제를 보내달라고 요청했다고 적었다. 그리고 두 사람 모두 교리교사로 끔찍한 고문을 받으며 함께 고난을 겪다가 참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참고자료

  • 구중서 외 저, 한국천주교회가 낳은 103위 순교성인들의 생애 1 - '성 바울로 정하상, 성녀 엘리사벳 정정혜, 성녀 체칠리아 유', 서울(성황석두루가서원), 1992년, 126-175쪽.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정하상 바오로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321-327쪽.
  • 신중신 저, 강 건너 저편 - 소설 정하상, 서울(바오로딸), 2005년.
  • 아드리앙 로네/폴 데통베 저, 안응렬 역, 한국 순교자 103위 성인전 (상), '제12장 정 바오로와 유 아우구스티노', 2016년, 198-217쪽.
  • 조현범 저, 순교자의 삶과 신앙 - '순교자 정하상의 삶과 신앙', 서울(도서출판 형제애), 2014년, 99-147쪽.
  • 최영미 저, 성인 정하상 바오로, 수원(하상출판사), 2018년.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10권 - '정하상',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2004년, 7588-7591쪽.

사진/그림

자료실

성인 게시판
번호 성인명 제목 작성자 작성일 조회수 추천수
28 [정하상 바오로( ...] 순교자 성월 특집: 성 정하상 바오로 주호식 2025/09/24 143 0
27 [정하상 바오로( ...] 성인처럼: 성직자 영입에 목숨을 바친 정하상 바오로 주호식 2025/03/12 266 0
26 [정하상 바오로( ...] 성 정하상으로부터 배우는 평신도의 덕목 주호식 2024/09/18 152 0
25 [정하상 바오로( ...] 우리 성인을 만나다: 성 정하상 바오로 주호식 2024/05/16 261 0
검색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