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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비아 도미틸라(5.7)

플라비아 도미틸라(5.7) 기본정보 [기본정보] [사진/그림] [자료실] 인쇄

성인명, 축일, 성인구분, 신분, 활동지역, 활동연도, 같은이름 목록
성인명 플라비아 도미틸라 (Flavia Domitilla)
축일 5월 7일
성인구분 성녀
신분 동정 순교자
활동지역
활동연도 +1세기말?
같은이름 도미띨라
성인 기본정보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에 대해서는 여러 전승이 전해지고 있는데, 그로 인해 확실한 내용을 확인하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한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1세기 말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성 플라비우스 클레멘스(Flavius Clemens, 6월 22일)의 조카딸이었다. 그녀는 교황 성 클레멘스 1세(11월 23일)에게 직접 동정녀의 면사포를 받고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다른 많은 이들과 함께 폰티아(Pontia) 섬으로 추방되어 그리스도를 위해 오랜 고통의 시간을 견뎌야 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이탈리아 중부 테라치나(Terracina)로 끌려갔는데, 그곳에서 그녀의 가르침과 기적으로 인해 많은 이들이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을 갖게 되었다. 그러자 재판관은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다른 동정녀인 성녀 에우프로시나(Euphrosyna)와 성녀 테오도라(Theodora)와 함께 있는 방에 불을 지르도록 명령했고, 그렇게 해서 그들의 영광스러운 순교가 완성되었다. 옛 “로마 순교록”은 5월 7일 목록에서 이와 같은 내용을 전해 주면서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5월 12일에 기념하는 성 네레우스(Nereus)와 성 아킬레우스(Achilleus) 순교자와도 함께 언급된다고 간단히 기록했다.

   또 다른 전승에 따르면 95년 로마의 집정관이었던 성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의 부인이자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카딸인 성녀 도미틸라가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드러나 가예타(Gaeta) 만에서 조금 떨어져 있는 판다타리아(Pandataria) 섬으로 추방되었다. 이교도 역사학자인 수에토니우스(Suetonius)와 디온 카시우스(Dion Cassius)는 성녀 도미틸라가 로마제국의 신들을 숭배하지 않은 무신론자 또는 신성 모독자라는 죄명으로 고발당해 순교했다고 전하고 있다. 교회사가인 에우세비우스(Eusebius)는 자신의 저서인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에서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가 티투스와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조카딸로 평생 동정을 지키기를 원했으나 그리스도교 신자임이 발각되어 폰티아 섬으로 추방됐다고 했다. 성 히에로니무스(Hieronymus, 9월 30일)나 다른 학자들도 에우세비우스와 비슷한 내용을 전하며, 그녀가 오랫동안 유배 생활을 하며 긴 순교의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그리고 성 플라비우스 클레멘스 또한 그리스도를 위해 로마에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에 의해 순교의 길로 들어섰다고 전했다.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에 대한 또 다른 후대의 전승, 즉 디오클레티아누스 황제(284~305년)의 그리스도교 박해 때 순교한 것으로 알려진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 이야기와 섞이면서 그 내용은 더욱 복잡하고 혼란스러워졌다. 전설적 이야기에 따르면,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는 성녀 도미틸라를 죽이기 위해 파견된 로마 황제의 친위대 소속 군인들이었다. 그런데 그들은 성녀 도미틸라의 모범적 생활에 감동해 오히려 그리스도교 신자가 되어 자신들이 받은 명령을 거부하였다. 결국 그들은 모두 추방되어 순교와도 같은 긴 유배의 생활을 했고, 마침내 테라치나에서 성녀 도미틸라는 화형을,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는 참수형을 받고 순교했다고 한다. 이때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의 수양 자매인 성녀 에우프로시나와 성녀 테오도라도 함께 순교했다.

   성녀 도미틸라 그리고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의 유해는 로마의 아르데아티나(Ardeatina) 가도에 있는 도미틸라 카타콤바에 안치되었고, 398년 성 시리키우스(Siricius, 11월 26일) 교황이 그들을 기념해 그 위에 성당을 세웠다. 800년에 교황 성 레오 3세(Leo III, 6월 12일)는 그들을 기념해 새 성당을 지었고, 이 성당은 16세기에 바로니우스(Baronius) 추기경에 의해 재건축되었다. 그리고 바로니우스 추기경의 청으로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의 이름이 1595년에 옛 “로마 순교록”과 보편 전례력에 추가되었지만, 역사적 불확실성으로 인해 1969년 보편 전례력을 개정하면서 삭제되었다. 성녀 도미틸라가 성 네레우스와 성 아킬레우스와 함께 언급되기도 한다고 간단히 기록했던 옛 “로마 순교록”과는 달리 2001년 발행되어 2004년 개정된 최신 “로마 순교록”은 5월 12일 두 명의 군인 순교자에 대한 기록에서 더는 성녀 도미틸라를 언급하지 않았다. 그리고 5월 7일 목록에서 성녀 도미틸라를 소개하면서 집정관 플라비우스 클레멘스의 조카딸로서 도미티아누스 황제의 박해 때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고백하고 추방되어 폰자 섬에서 다른 이들과 함께 오랜 유배의 생활을 하다가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이렇듯 성녀 도미틸라에 대해서는 수많은 초기 순교자들처럼 정확한 사실을 확인하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교회의 전통 속에서 성녀 플라비아 도미틸라는 황제의 조카딸로서 누릴 수 있는 모든 부귀영화를 포기하고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킨 순교자로서 기억되었다.♧

참고자료

  • 김정진 편역, 가톨릭 성인전(상) - '성 네레오와 성 아킬레오 형제, 성녀 도미틸라 동정, 성 판크라시오 동료 순교자', 서울(가톨릭출판사), 2004년, 98-100쪽.
  • 한국가톨릭대사전편찬위원회 편, 한국가톨릭대사전 제3권 - '도미틸라, 플라비아', 서울(한국교회사연구소), 1996년, 1777-1778쪽.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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