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 피오니우스(또는 피오니오)는 박식하고 웅변이 뛰어난 스미르나(오늘날 튀르키예 서부의 항구 도시인 이즈미르[Izmir])의 사제였다. 그는 겸손함과 정직함으로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팔레스티나 순례 등을 통해 풍부한 경험을 쌓았다. 그는 데키우스 황제(249~251년 재위) 치하에서 스미르나의 성 폴리카르포(Polycarpus, 2월 23일)의 순교 기념일 전례를 거행하던 중 사비누스(Sabinus)와 아스클레피아데스(Asclepiades) 등 15명의 동료와 함께 체포되었다. 그들은 이교도 신전에 희생 제물을 바치라는 요구를 거절해 체포되었다. 이때 성 피오니오는 군중들에게 우상 숭배를 거절한 이유를 웅변적으로 설명함으로써 그들을 크게 감동시켰다. 그는 재치와 박식한 비유 등을 동원하여 관중들을 흥분케 하였으나 관중들이 그에게 압도되어 소란을 피우지 않았다고 한다. 성 피오니오와 동료들은 감옥에 갇혔고, 그곳에서 다른 그리스도인들을 만났는데 그들 중에는 신앙이 흔들리거나 이단에 빠진 이들도 있었다. 성 피오니오는 그들을 설득해 참된 신앙을 되찾도록 인도하고 순교로 나아가도록 격려하였다. 성 피오니오는 여러 차례 재판관 앞에 끌려가 심문과 잔혹한 고문을 받은 후 사형선고를 받았다. 결국 그는 동료들과 함께 화형을 당해 순교하였다. 옛 “로마 순교록”은 2월 1일 목록에서 스미르나의 사제인 성 피오니오가 가톨릭 신앙을 옹호하는 글을 쓴 후 감옥에 갇혀 혹독한 고문을 당했고, 다른 많은 형제를 순교하도록 격려한 후 그리스도를 위해 순교했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3월 11일로 기념일을 옮겨 오늘날 튀르키예에 있는 스미르나의 성 피오니오 신부가 공개적으로 그리스도교 신앙을 옹호한 혐의로 감옥에 갇혀 혹독한 시련을 겪었지만, 형제들이 용감하게 순교하도록 격려하고 위로한 후 화형을 당해 그리스도 안에서 축복받은 최후를 맞았다고 기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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