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성경의 대(大)예언서에 속하는 에제키엘서의 저자인 성 에제키엘(Ezechiel)은 기원전 587년 유다 왕국이 멸망한 사건을 전후로 20여 년 동안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한 예언자였다. 에제키엘서는 총 48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에제키엘 개인에 대한 언급은 별로 없다. 에제키엘서 1장 1-3절의 내용을 보면, 그는 제삼십년 넷째 달 초닷샛날에 유배자들과 함께 크바르 강 가에 있었고, 거기에서 하느님께서 보여주시는 환시를 보았다. 즉, 여호야킨 임금의 유배 제오년에 주님의 말씀이 ‘부즈의 아들 에제키엘 사제’에게 내렸다고 한다. 오리게네스(Origenes) 이후 ‘삼십’을 에제키엘의 나이를 가리킨다는 추측이 제시되었는데, 이러한 전통적 설명에 따르면 에제키엘은 25살(기원전 597년)에 바빌론으로 끌려가(2열왕 24,14-16) 그곳에서 유배 생활을 하다가 기원전 593년부터 571년경까지 예언자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이 유배는 서막에 불과한 것으로, 제1차 유배보다 더 큰 불행인 조국 유다의 멸망이 기다리고 있고 그는 이를 예고해야 했다. 에제키엘서 1-24장을 보면 대부분 유배지가 아니라 예루살렘이 문제의 핵심으로 등장한다. 겉으로는 바빌론 유배살이가 틀을 이루고 있으나 속으로는 예루살렘과 그곳에서 벌어지는 일, 그리고 장차 거기에서 일어날 사건들이 관심의 초점이 되고 있다. 그래서 그가 두 군데서 활동했다는 가설이 등장하기도 했으나 대체로 학자들은 성경 본문의 내용대로 에제키엘이 유배자들에게 파견되었고(3,11), 유배지에 살면서 혼인도 하고 원로들이 모일 정도의 집도 소유하며(8,1) 비교적 안정된 생활을 했다. 당시 예루살렘과 바빌론 사이에 사람들의 왕래가 잦아 서로 다른 곳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잘 알고 있었다. 특히 에제키엘은 현재의 유배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무서운 운명이 고국과 동족을 기다리고 있음을 내다보았고, 그래서 멀리 떨어져 있으면서도 유배자들의 관심의 초점인 예루살렘에 관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했다. 이렇게 유다 왕국의 운명적인 시간에 예레미야(Jeremias, 5월 1일) 예언자는 예루살렘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바빌론에서 활약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서를 보면 그가 매우 독특한 예언자임을 알 수 있다. 구약성경의 가장 신비로운 인물 가운데 하나인 에제키엘은 환시들을 보고 때로는 며칠씩 황홀경에 빠진다(1,1. 4-28; 3,10-15; 37,1-10 등). 많은 상징적인 행동을 하고, 이따금 벙어리가 되거나 마비 증세를 보이기도 한다. 또 집에 앉아 있으면서 환시 속에 예루살렘을 돌아다니기도 한다(8장). 에제키엘은 하느님과 동족에 대해 열정을 지닌 감성적인 사람이었다. 동시에 냉철하고 심사숙고하며 자기 생각을 엄격한 논리에 따라 전개하는 이성적인 사람이었다. 그는 훌륭한 신학자로서 이스라엘 종교의 중심인 성전과 그 의식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지니고 있었고(40장 이하), 민족의 역사와 전통도 자기의 독창적 역사관을 내세울 정도로 깊이 알고 있었다(16장, 20장, 23장 참조). 그는 또 널리 퍼져 있던 신화나 동화 같은 것을 과감히 받아들여 자기의 가르침에 적용하는 개방된 신학자였다. 그리고 세계정세(25-32장)는 물론 당시 세계 최대의 무역항이었던 티로의 교역 내용까지도 훤히 알고 있었다(27,12-25). 또한 조선 기술도 거침없이 서술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의 소유자였다(27,3-11). 이러한 박식함은 예언자의 사명 수행에 필수적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의 말을 듣는 유다인들은 국제 정치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국제적으로 보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또 이스라엘은 ‘반항의 집안’이라고 끊임없이 되풀이되듯, 에제키엘의 청중인 이스라엘 자손들은 “얼굴이 뻔뻔하고 마음이 완고한” 이들이었다(2,4). 그래서 그들을 회개시키려고 예언자는 자기의 지식을 총동원했을 뿐 아니라 공부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이는 하느님 백성 전체와 그 구성원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더욱 효과적으로 선포하려는 노력이었다. 그래서 에제키엘은 사목자였다. 그는 또한 ‘파수꾼’으로 세워졌다(3,16-21; 33,1-9). 파수꾼은 성안에 있는 이들이 안전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늘 주변을 살피고, 작은 위험이라도 닥쳐오면 사람들에게 바로 알려 준비하고 재난을 막거나 피하게 한다. 그런데 이 ‘예언자 파수꾼’은 외부의 위험만 알리지 않는다. 각자에게 해당하는 경고도 개별적으로 해야 한다. 그래서 그는 악인에게는 악을 버리고 돌아서라고 경고하고, 의인에게는 죄를 짓지 말라고 경고해야 한다. 이 파수꾼은 자기에게 맡겨진 이들의 삶과 죽음에 개인적으로 깊이 관여하는 사목자의 모습이다. 이 점이 에제키엘을 그 이전의 예언자들과 구분 짓게 하는 큰 특색 가운데 하나이다. 이는 시대의 요청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다른 예언자들은 하느님의 백성 전체에 그분의 말씀을 선포했다. 공동체에게 하느님의 심판을 예고하고 회개를 부르짖으며 구원을 약속하였다. 그런데 에제키엘의 시대는 기존의 공동체가 와해되는 때였다. 유다 왕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종교 · 정치 · 사회 질서가 무너지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민족 전체가 불행에 빠지면서 공동체와 개인의 관계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었다(18장). 그래서 예언자는 공동체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 못지않게 각 구성원에게도 배려를 아끼지 않아야 했다. 시대의 변화와 함께 예언자상도 바뀐 것이다. 에제키엘은 시대의 요청에 따라 달라진 예언직에 과감히 투신하였다. 어떤 면에서 책임이 더욱 무거워졌지만, 그는 주저 없이 하느님의 말씀 선포에 모든 것을 바쳤다. 가톨릭교회에서는 전통적으로 성 에제키엘을 예언자이자 순교자로서 공경해 왔다. 옛 “로마 순교록”은 4월 10일 목록에서 에제키엘 예언자는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을 책망했다는 이유로 이스라엘 백성을 다스리는 재판관에 의해 바빌론에서 죽임을 당했다고 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조상 셈과 아르팍삿의 무덤에 묻혔고, 많은 이들이 기도하기 위해 그의 무덤을 찾았다고 전해주었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그의 축일을 동방 정교회와 같은 7월 23일로 옮겨 부즈 제사장의 아들인 예언자 성 에제키엘을 기념한다고 했다. 그는 칼데아(Chaldea, 바빌로니아 남부를 가리키는 고대의 지명) 땅에서 유배 생활을 하던 중에 주님의 영광을 보고 이스라엘 집안의 파수꾼으로 임명되어 선택된 백성의 불신앙을 경고하고,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의 임박한 멸망과 백성의 유배를 예언하였다(3,16-21; 33,1-9). 그는 장차 마른 뼈가 새 생명으로 살아날 것임을 예언하면서(37,1-14)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다고 기록하면서 순교와 관련한 고대 전통은 더는 언급하지 않았다. 에제키엘이 주님의 발현에 대한 환시를 통해 본 네 생물의 형상(1,4-28; 10,1-22)은 리옹의 주교이자 교부인 성 이레네오(Irenaeus, 6월 28일)의 해석 이후 네 복음사가를 상징하는 것으로 널리 알려졌다(마태오 - 사람, 마르코 - 사자, 루카 - 황소, 요한 - 독수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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