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전부터 시칠리아(Sicilia)에서는 성녀 로살리아에 대한 공경이 보편화되었으나 옛 순교록에는 그녀의 생애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성녀 자신이 쓴 것으로 여겨지는 비문도 그녀의 시신이 발견되고 나서 40일이 지나서야 발견되었는데, 그 비문에는 “퀴스퀴나(Quisquina)의 영주인 시니발디(Sinibaldi) 백작과 로사(Rosa)의 딸인 나 로살리아는 주 예수님께 대한 사랑 때문에 이 동굴에서 살기로 결심하였다.”라고 적혀 있었다. 이 비문과 전설에 따르면, 성녀 로살리아는 퀴스퀴나의 영주인 시니발디 백작과 로사의 딸로 시칠리아에서 태어났다. 처음에 그녀는 바실리오회의 수녀가 되었다가 그 뒤에 두 천사의 인도로 몬테 코스키나(Monte Coschina)와 팔레르모 근처에 있는 펠레그리노(Pelegrino) 산의 한 동굴에서 은수자로 살다가 선종하였다. 1624년 시칠리아에 전염병이 돌았을 때 그녀의 시신이 기적적으로 발견되어 장엄한 행렬을 따라서 팔레르모로 옮겨졌고, 그 후로 전염병이 사라지면서 성녀 로살리아는 팔레르모의 수호성인으로 공경을 받게 되었다. 그래서 1630년 교황 우르바노 8세(Urbanus VIII)가 그녀의 이름을 “로마 순교록”에 포함하였다. 그녀의 시신을 발견한 날인 7월 15일을 축일로 기념하기도 하지만, 현재 축일인 9월 4일은 그녀가 죽은 날로 추정한 날이다. 그녀에 대한 공경은 시칠리아와 이탈리아에 널리 퍼졌으며, 이탈리아인들의 이민으로 해외에도 널리 퍼지게 되었다. 그녀가 살았던 동굴에 소성당이 세워졌고, 그녀의 유해는 팔레르모 주교좌 성당 내의 아름다운 소성당에 모셔져 있다. 성녀 로살리아에 관한 전설 중에서 널리 알려진 것은 그녀의 시신을 발견하게 된 이야기이다. 팔레르모의 한 노인에게 성녀가 나타나 펠레그리노 산의 어느 동굴에 가면 자신의 시신이 있다고 알려주었고, 그 동굴에서 성녀 자신이 쓴 비문도 발견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1624년 무서운 페스트가 퍼졌을 때 사람들이 성인 호칭 기도 뒤에 성녀의 이름을 추가해 기도하자 페스트가 사라졌고, 1693년 대지진이 발생했을 때도 성녀 로살리아에게 기도해서 팔레르모가 큰 피해를 모면하게 되었다. 그 후 팔레르모 주민들은 성녀 로살리아를 페스트와 지진에서 구해 주는 성녀로 공경하게 되었고, 점차 인근 지역과 여러 나라로 그녀에 대한 공경이 퍼져나갔다. 옛 “로마 순교록”은 7월 15일 목록에서 성녀의 시신이 발견되어 전염병에서 시칠리아를 구했다는 사실과 9월 4일 목록에서 팔레르모에서 왕실 혈통의 그 도시 출신 성녀 로살리아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인해 궁정을 떠나 산속 동굴에서 홀로 천상의 삶을 살았다고 기록하였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9월 4일 목록에서 팔레르모의 동정녀 성녀 로살리아가 펠레그리노 산에서 고독한 삶을 살았다고 간단히 언급하였다. 그녀는 로잘리(Rosalie)로도 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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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호 | 성인명 | 제목 | 작성자 | 작성일 | 조회수 |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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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 [로살리아(9.4 ...] | 금주의 성인: 성녀 로살리아 | 주호식 | 2024/09/04 | 41 | 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