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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마스 코탐(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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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인명 토마스 코탐 (Thomas Cottam)
축일 5월 30일
성인구분 복자
신분 신부, 순교자
활동지역 영국(UK)
활동연도 1249-1582년
같은이름 도마, 토머스
성인 기본정보

   복자 토마스 코탐은 1549년 영국 잉글랜드 북서부 랭커셔(Lancashire)의 딜워스(Dilworth)에서 프로테스탄트 부모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옥스퍼드(Oxford)의 브래스노스 대학(Brasenose College)에서 수학하여 1572년 석사 학위를 받은 후 런던(London)으로 가서 문법 학교의 교장이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토마스 파운드(Thomas Pound)를 만나 가톨릭으로 개종하였다. 그리고 가톨릭 사제가 되기 위해 1577년 5월 프랑스 북부 두에(Douai)의 영국 대학으로 떠났다. 그는 1577년 12월 캉브레(Cambrai)에서 부제품을 받고 선교사로 인도에 가길 희망해 로마로 가서 1579년 4월 예수회에 입회하였다. 그런데 그만 열병에 걸려 뜻을 이루지 못하고 일단 회복을 위해 프랑스의 리옹(Lyon)으로 가서 잠시 머물게 되었다. 거기서 그는 영국으로 돌아갈 신부를 찾는 슬레드(Sledd)라는 영국인을 만나 그와 함께 랭스(Rheims)까지 여행하였다. 하지만 그는 영국 스파이로서 의도적으로 접근해 그에 대한 인적 사항을 파악한 후 파리(Paris) 주재 영국 대사에게 알리기 위해 랭스에서 헤어졌다.

   복자 토마스 코탐은 랭스의 영국 대학에 들어가 1580년 5월 28일 수아송(Soissons)에서 사제품을 받고 6월 5일 동료들과 함께 영국으로 떠났다. 그는 당분간 영국에서 활동하며 건강을 회복한 후 인도에 가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슬레드의 밀고로 인해 도버(Dover) 항구에 도착하자마자 체포되었다. 다행히 그가 탈출할 수 있었던 것은 런던까지 동행했던 한 변호사의 친절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그 변호사가 위험에 빠지자 복자 토마스 코탐은 그를 구하기 위해 돌아와서 자수하고 체포되었다. 그는 가톨릭 사제라는 혐의로 기소되어 런던탑에 갇혀 끔찍한 고문을 당했다. 그는 성 에드문도 캠피언(Edmundus Campion, 12월 1일)과 다른 동료들과 함께 재판을 받고 유죄로 사형 선고를 받았는데, 형이 집행될 때까지 6개월가량을 더 기다리며 고초를 겪었다. 결국 복자 토마스 코탐은 1582년 5월 30일 런던의 타이번(Tyburn)으로 끌려가 교수형과 극형을 받고 순교하였다. 이때 교구 신부인 성 루카 커비(Lucas Kirby)와 복자 윌리엄 필비(William Filby)와 복자 라우렌시오 존슨(Laurentius Johnson)이 그와 함께 순교하였다.

   복자 토마스 코탐 신부는 1886년 12월 29일 교황 레오 13세(Leo XIII)에 의해 시복되었고, 순교한 날인 5월 30일에 축일을 기념하고 있다. 그리고 2000년에 잉글랜드와 웨일스 교회의 새 전례력이 교황청에서 승인된 후에는 1970년 10월 25일 교황 성 바오로 6세(Paulus VI)에 의해 시성된 ‘잉글랜드와 웨일스의 40위 순교자’(The Forty Martyrs of England and Wales)와 종교개혁 시대에 순교한 모든 복자 · 성인들이 ‘영국의 순교자’(The English Martyrs)라는 이름으로 5월 4일 전례 안에서 기념하게 되면서 복자 토마스 코탐 또한 그날 함께 축일을 기념하게 되었다. 이날은 종교개혁 시대 영국에서 순교한 영국 성공회의 순교자와 성인들의 기념일과 같은 날이다. 2001년 개정 발행되어 2004년 일부 수정 및 추가한 “로마 순교록”은 5월 30일 목록에서 엘리자베스 1세 여왕의 박해 중에 성 루카 커비 신부가 많은 고문 끝에 복자 윌리엄 필비, 복자 라우렌시오 존슨, 복자 토마스 코탐과 함께 런던의 타이번에서 교수형으로 순교했다고 기록하였다.♣

사진/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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