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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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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부 교회의 일곱 성사 제 1 장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들 제3절 성체성사(聖體聖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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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씀과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지는 그리스도의 현존

1373 “돌아가셨다가 참으로 되살아나셔서 하느님 오른쪽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로마 8,34)께서는 다양하게 교회에 현존하신다.(200) 그리스도께서는 당신 말씀 안에, 교회기도 안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마태 18,20)에,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201) 몸소 세우신 성사들 안에, 미사성제와 사제의 인격 안에 계신다. 그리고 “특별히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202)
1374 성체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시는 방식은 독특한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성사를 모든 성사 위에 들어 높이시고 “영성 생활의 완성과 모든 성사지향하는 목적으로”(203) 삼으신다. 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 안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영혼천주성과 하나 된 몸과 피가, 따라서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204) “이 현존이 ‘실재적’이라고 하는 것은, 마치 다른 현존 방식이 실재적이 아니라는 배타적인 의미가 아니라, 그 현존이 탁월하게 실체적이라는 의미이다. 분명코, 하느님이시며 인간이신 그리스도께서 전적으로 또 완전하게 현존하신다.”(205)
1375 빵과 포도주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된다. 교부들은 이러한 변화를 이루는 그리스도의 말씀과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효력에 대한 교회믿음을 확고하게 단언하였다. 예컨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다음과 같이 선언한다.
봉헌물들을 그리스도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것은 인간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그리스도의 대리자사제가 말을 하지만, 그 말의 효력과 은총하느님에게서 나옵니다. “이는 내 몸이다.” 하시는 그리스도의 말씀이 봉헌물들을 변화시킵니다.(206)
암브로시오 성인도 이 변화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는 자연적으로 그렇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축복으로 축성된 것임을 믿고, 축복을 통해서 본성까지도 변하므로 축성의 힘이 자연의 힘보다 크다는 것을 믿읍시다…….(207) 존재하지 않았던 것을 무에서 만드신 그리스도의 말씀인데, 그 말씀이 존재하는 것을 존재하지 않던 어떤 것으로 바꿀 수 없다고 하겠습니까- 사물에 처음으로 본성을 부여하는 것이 그 본성을 바꾸는 것보다 쉬운 일은 아니기 때문입니다.(208)
1376 트리엔트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가톨릭 신앙을 요약하여 선포한다. “우리 구세주 그리스도께서 빵의 형상으로 내어 주시는 것은 참으로 당신의 몸이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교회는 항상 이러한 확신을 지녀 왔으며 본 공의회는 이를 다시금 선포하는 바이다. 빵과 포도주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 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 변화(transsubstantiatio)라고 불러 왔다.”(209)
1377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축성되는 순간부터, 성체의 형상이 존속하는 동안 계속 그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어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신다.(210)
1378 성체 공경. 우리는 미사 전례 중에 특히 무릎을 꿇거나, 주님에 대한 흠숭의 표시로 깊이 몸을 숙여 절함으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믿음을 표현한다. “가톨릭 교회성체성사에 바쳐야 할 이 흠숭 예절을 미사 중에는 물론이고 미사가 끝난 뒤에도 실천하여 왔다. 교회는 오늘날에도 여전히 축성제병(성체)을 아주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장엄한 흠숭을 위하여 신자들에게 현시하며, 또 백성들의 기쁨에 찬 행렬 중에 함께 모심으로써 이 흠숭 예절을 실천한다.”(211)
1379 거룩한 안치소(감실)는 본래 미사에 참석하지 못한 사람들과 병자들에게 모시고 갈 성체를 품위 있게 보관하기 위한 것이었다.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신앙이 깊어짐에 따라, 교회성체 안에 계신 주님을 침묵 속에 경배하는 의미를 깨닫게 되었다. 그러므로 감실성당의 특별히 품위 있는 장소에 두어야 하며, 거룩한 성사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현존하신다는 진리를 강조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제작해야 한다.
1380 그리스도께서 이처럼 특별하게 당신 교회에 현존하기를 원하신 것은 더할 나위 없이 적절한 일이다. 그리스도께서는 가시적인 형상으로는 당신 제자들을 떠나실 것이었으므로, 성사적으로 당신을 우리에게 주기를 원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바치려고 하셨으므로, 당신의 목숨을 내어 주실 정도로 “끝까지 사랑하신”(요한 13,1) 그 사랑기념을 우리가 간직하기를 원하셨다. 과연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212) 분으로서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심으로써 우리 가운데 계속 신비롭게 머물러 계시며, 이러한 사랑을 표현하고 전해 주는 표징 안에 계신다.
교회와 세상은 마땅히 성체공경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랑성사 안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흠숭 안에서, 신앙으로 충만하며, 중대한 잘못과 세상의 죄를 속죄하겠다는 열린 마음으로 드리는 묵상 안에서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시간을 거부하지 맙시다. 우리의 흠숭이 중단되어서는 결코 안 됩니다.(213)
1381 “토마스 성인그리스도의 참다운 몸과 그리스도의 참다운 피가 이 성사 안에 계시다는 것은 ‘오관으로 아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느님의 권위에 근거한 신앙으로써 알게 된다.’고 말한다. 그러므로 치릴로 성인은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라는 루카 복음 22장 19절의 말씀을 해설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말이 참말인지를 의심하지 말고 차라리 신앙으로 주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십시오. 진리이신 주님은 거짓말을 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214)
엎디어 절하나이다. 눈으로 보아 알 수 없는 하느님,
두 가지 형상 안에 분명히 계시오나
우러러 뵈올수록 전혀 알 길 없삽기에
제 마음은 오직 믿을 뿐이옵니다.
보고 맛보고 만져 봐도 알 길 없고
다만 들음으로써 믿음 든든해지오니
믿나이다, 천주 성자 말씀하신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보다 더 참된 진리 없나이다.(2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