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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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심 -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

2018년 7월 25일 수요일

[(홍) 성 야고보 사도 축일]

굿뉴스 추천 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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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 성가 32번 언제나 주님과 함께 영성체 성가 180번 주님의 작은 그릇
예물준비 성가 340번 봉헌 154번 주여 어서 오소서
513번 면병과 포도주 498번 예수여 기리리다
파견 성가 290번 복음을 전한 사도들

야고보 사도는 갈릴래아의 벳사이다 출신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 사도의 형이다. 어부인 야고보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그물을 손질하다가 동생 요한과 함께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그는 베드로 사도, 요한 사도와 더불어 예수님의 사랑을 많이 받은 세 제자 가운데 하나이다. 열두 사도에는 야고보가 둘 있는데, 오늘 축일을 지내는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작은[소] 야고보’와 구분하여 ‘큰[대] 야고보’라고도 부른다. 42년 무렵 예루살렘에서 순교하였다.

입당송

마태 4,18.21 참조
예수님은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대영광송>

본기도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하느님,
복된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복음을 위하여 생명을 바치게 하셨으니
그의 영광스러운 증거로 교회를 튼튼하게 하시며
하느님의 보호로 교회를 지켜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고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6(125),1-2ㄱㄴ.2ㄷㄹ-3.4-5.6(◎ 5)
◎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주님이 시온을 귀양에서 풀어 주실 때, 우리는 마치 꿈꾸는 듯하였네. 그때 우리 입에는 웃음이 넘치고, 우리 혀에는 환성이 가득 찼네. ◎
○ 그때 민족들이 말하였네. “주님이 저들에게 큰일을 하셨구나.” 주님이 우리에게 큰일을 하셨기에, 우리는 기뻐하였네. ◎
○ 주님, 저희의 귀양살이, 네겝 땅 시냇물처럼 되돌리소서. 눈물로 씨 뿌리던 사람들, 환호하며 거두리라. ◎
○ 뿌릴 씨 들고 울며 가던 사람들, 곡식 단 안고 환호하며 돌아오리라. ◎

복음 환호송

요한 15,1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가 너희를 세상에서 뽑아 세웠으니, 가서 열매를 맺어라. 너희 열매는 길이 남으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0,20-28
20 그때에 제베대오의 두 아들의 어머니가 그 아들들과 함께
예수님께 다가와 엎드려 절하고 무엇인가 청하였다.
21 예수님께서 그 부인에게 “무엇을 원하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 부인이
“스승님의 나라에서 저의 이 두 아들이 하나는 스승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을 것이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22 예수님께서 “너희는 너희가 무엇을 청하는지 알지도 못한다.
내가 마시려는 잔을 너희가 마실 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할 수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23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내 잔을 마실 것이다.
그러나 내 오른쪽과 왼쪽에 앉는 것은 내가 허락할 일이 아니라,
내 아버지께서 정하신 이들에게 돌아가는 것이다.”
24 다른 열 제자가 이 말을 듣고 그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겼다.
25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가까이 불러 이르셨다.
“너희도 알다시피 다른 민족들의 통치자들은 백성 위에 군림하고,
고관들은 백성에게 세도를 부린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에서 높은 사람이 되려는 이는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27 또한 너희 가운데에서 첫째가 되려는 이는
너희의 종이 되어야 한다.
28 사람의 아들도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고,
또 많은 이들의 몸값으로 자기 목숨을 바치러 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야고보 사도가 사도들 가운데 첫 번째로
성자께서 마신 수난의 잔을 마시게 하셨으니
저희가 그를 기억하며 바치는 이 제사를 받으시고
성자의 수난으로 마련하신 구원의 세례로 저희를 깨끗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도 감사송 1 : 하느님 백성의 목자인 사도>

거룩하신 아버지, 전능하시고 영원하신 주 하느님,
언제나 어디서나 아버지께 감사함이
참으로 마땅하고 옳은 일이며 저희 도리요 구원의 길이옵니다.
영원한 목자이신 아버지께서는 양 떼를 버려두지 않으시고
끊임없이 보호하며 지켜 주시려고
복된 사도들을 목자로 세우시어
성자를 대리하여 양 떼를 다스리게 하셨나이다.
그러므로 천사와 대천사와 좌품 주품 천사와
하늘의 모든 군대와 함께
저희도 주님의 영광을 찬미하며 끝없이 노래하나이다.

영성체송

그들은 주님의 잔을 마시고 하느님의 벗이 되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복된 야고보 사도 축일에 천상 양식을 기쁘게 받아 모시고 비오니
그의 전구로 저희를 지켜 주시고 마침내 주님 나라에 이르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 활동하시던 유다 사회에는 메시아께서 오실 것을 희망하며 새 시대를 꿈꾸는 다양한 형태의 공동체들이 있었습니다. 율법에 충실하며 이방 민족에 물들지 않고 경건하게 살고자 했던 율법 학자와 바리사이들, 정치권력에 기대어 세속적 이익을 누리던 사두가이파, 혁명을 꿈꾸던 열혈당(젤롯), 세상의 종말을 기다리며 은수 생활을 하던 에세네파도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예수님의 말씀과 표징들 속에서 메시아의 희망을 발견했고, 그분과 함께 새로운 형태의 제자 공동체를 이루고자 했습니다.
제베대오의 두 아들이었던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예수님께 다가와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메시아로서 선포하실 새 나라의 중책을 맡겨 달라는 그들의 어머니의 청은 인상적입니다. 두 형제를 불쾌하게 여긴 제자들의 마음에서 아들의 성공을 바라는 모든 시대의 어머니들의 마음을 엿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역설적이지만 이 어머니의 청과 그녀의 두 아들의 바람은 자신들이 꿈꾸던 세상의 방식은 아니었지만, 예수님의 부활 이후 시작된 교회 공동체를 통하여 성취됩니다. 예수님의 공동체는 경쟁과 적자생존으로 높은 자리에 올라 남을 지배하려는 권력 공동체가 아니라, 첫째가 되려는 이는 종이 되어야 하고, 섬김을 받는 것이 아니라 섬기며, 많은 이들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신 예수님의 길을 따르는 새로운 형태의 공동체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몸담고 있는 교회는 단순히 제도와 규율에 묶여 있는 인간 공동체만이 아닙니다. 세례 때 받은 성령을 통해 서로의 “질그릇 속에 담긴 보물”을 찾아 주며 친교를 맺는 영적 공동체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교회 생활에서 진정으로 청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되돌아보는 하루였으면 좋겠습니다. (송용민 사도 요한 신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