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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2 편 그리스도 신비의 기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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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원천인 전례

1071 그리스도의 행위인 전례는 당신 교회의 행위이기도 하다. 전례교회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인간이 이루는 친교를 볼 수 있는 표징이 되게 하고 이를 드러낸다. 전례신자들을 새로운 공동체 생활로 이끌며, 모든 사람이 “잘 알고, 능동적으로 또 효과적으로”(10) 참여하도록 요구한다.
1072 “거룩한 전례교회 활동의 전부는 아니다.”(11) 전례에 앞서 복음 선포와 신앙회개가 먼저 이루어져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전례신자들의 생활 안에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그 열매는 바로 성령에 따르는 새로운 삶, 교회 사명에 참여, 그리고 교회의 일치를 위한 봉사이다.

…… 지상의 전례에 현존하시는데,

1088 “이토록 큰일을 완수하시고자 그리스도께서는 언제나 교회에, 특별히 전례 행위 안에 계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미사희생 제사 안에 현존하신다. ‘당신 친히 그때에 십자가에서 바치셨던 희생 제사를 지금 사제들의 집전으로 봉헌하고 계시는 바로 그분께서’ 집전자의 인격 안에 현존하시고, 또한 특히 성체의 형상들 아래 현존하신다. 당신 능력으로 성사들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그리스도께서 친히 세례를 주신다.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에 당신 친히 말씀하시는 것이다. 끝으로, 교회기도하고 찬양할 때에,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마태 18,20)고 약속하신 바로 그분께서 현존하신다.”(6)
1089 “하느님께서 완전한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들이 거룩하게 되는 이 위대한 행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가장 사랑하시는 당신 신부교회를 언제나 당신과 결합시키시며, 교회는 자기 주님을 부르며 또 주님을 통하여 영원하신 아버지께 예배를 드린다.”(7)

성령께서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실현하신다

1104 그리스도교 전례는 우리를 구원한 사건을 상기시킬 뿐 아니라, 그것을 실현하고 현존하게 한다. 그리스도파스카 신비는 (그때마다 새롭게) 거행되는 것이지 반복되는 것이 아니다. 반복되는 것은 기념 예식일 뿐이다. 전례 거행 때마다 유일한 신비를 실현하시는 성령께서 임하신다.
1105 성령 청원 기도(Epiclesis)는 사제성부께, 거룩하게 하시는 영을 보내시어 봉헌 제물그리스도의 살과 피가 되게 하시고 또 신자들이 그 살과 피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들 스스로 하느님께 드리는 산 제물이 되게 하여 주시기를 간청하는 기도이다.
1106 ‘기념’과 더불어 ‘성령 청원 기도’는 성사, 특히 성체성사 거행의 핵심이다.
어떻게 빵이 그리스도의 몸이 되고,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피가 되는지를 묻습니까- 나는 이렇게 대답하겠습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셔서 모든 말과 생각을 초월하는 이 일을 이루신다고……. 주님께서 동정녀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스스로 육신을 취하신 것과 같이 이 일도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진다는 대답으로 충분히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20)
1107 성령의 변화시키는 힘은 전례 안에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구원 신비의 완성을 재촉한다. 성령께서는 우리가 기다림과 희망 속에서 거룩하신 삼위의 완전한 친교를 실제로 미리 맛보게 하신다. 교회성령 청원 기도를 들어주시는 성부께서 파견하신 성령께서는 당신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시고, 이제부터 그들이 받을 상속에 대한 “보증”이 되신다.(21)

노래와 음악

1156 “온 교회의 음악 전통은, 다른 예술 표현들 가운데에서 매우 뛰어난, 그 가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는 보고이다. 그것은 특히 말씀이 결부된 거룩한 노래로서 성대한 전례의 필수 불가결한 부분을 이루고 있다.”(24) 흔히 악기로 반주되는 영감을 받은 시편의 가사와 노래는 구약의 전례 거행과 이미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다. 교회는 이러한 전통을 지속 발전시켜 왔다. “시편과 찬미가와 영가로 서로 화답하고, 마음으로 주님께 노래하며 그분을 찬양하십시오”(에페 5,19).(25) “성가는 두 배의 기도입니다.”(26)
1157 노래와 음악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의 주요 기준에 따라 “전례 행위와 더욱 밀접히 결합되면 될수록 더더욱”(27) 깊은 의미를 지닌 표징의 역할을 하게 된다. 그 기준들은 기도의 아름다운 표현, 예정된 시간에 이루어지는 회중 전원의 일치된 참여, 전례 거행의 장엄함 등이다. 이처럼 노래와 음악은 하느님의 영광과 신자들의 성화라고 하는 전례적 언어와 행위의 궁극 목적에 이바지한다.(28)
성당에 울려 퍼지는 찬미가와 송가와 감미로운 노래들을 듣고 얼마나 눈물을 흘렸는지 모릅니다! 얼마나 큰 감동을 받았는지요! 그 노래들은 제 귀로 흘러들어 제 가슴에 진리를 퍼뜨렸습니다. 저는 신심의 약동으로 고양되었으며, 뺨 위로 눈물이 흘러내렸습니다. 그 눈물은 유익한 눈물이었습니다.(29)
1158 이 표징(성가, 음악, 언어, 행위)들의 조화는 전례를 거행하는 하느님 백성 고유의 풍부한 문화로 표현되면 될수록 그만큼 더욱 의미 있고 풍요로운 것이 된다.(30) 그러므로 교회의 규범에 따라, “거룩한 신심 행사들에서 그리고 바로 전례 행위 안에서 신자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질 수 있도록, 대중 성가를 적극 장려하여야 한다.”(31) 그렇지만 “성가에 붙여진 가사는 가톨릭 교리에 부합하여야 하며, 주로 성경전례의 샘에서 길어 올려야 한다.”(32)

전례주년

1168 빛의 근원인 파스카 성삼일에서 시작하여 부활의 새로운 시기는 전례주년 전체를 찬란히 비춘다. 이 근원을 중심으로, 한 부분에서 다른 부분으로 점차 옮겨감으로써 한 해는 전례를 통하여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된다. 전례주년은 참으로 “주님의 은혜로운 해”이다.(48) 구원 경륜시간의 틀 안에서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그 구원 경륜예수님의 파스카성령파견으로 완성된 뒤에 역사의 종말이 ‘미리 맛봄’으로 실현되었고, 하느님 나라가 우리 시간 안으로 들어왔다.
1169 그렇기 때문에 부활절은 단순히 여러 축일들 중의 하나가 아니라, 마치 성체성사성사 중의 성사(큰 성사)인 것처럼, ‘축일 중의 축일’, ‘대축일 중의 대축일’이다. 아타나시오 성인동방 교회성주간을 “대주간”이라고 부르듯이 이날을 “대주일”(49) 이라고 부른다. 그리스도께서 죽음을 쳐 이기신 부활의 신비는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할 때까지 그 힘찬 능력으로 우리의 낡은 시대를 새롭게 한다.
1170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 모든 교회들은 춘분 후 만월(니산월 14일) 뒤에 오는 주일그리스도교부활절을 지내기로 합의했다. 니산월 14일을 계산하는 방법이 다르기 때문에 동방 교회서방 교회부활절 날짜는 항상 같지는 않다. 그래서 서방 교회동방 교회는 다시 주님부활절을 같은 날에 지내기 위해 합의점을 찾고 있는 중이다.
1171 전례주년은 파스카라는 단 하나의 신비가 지닌 다양한 측면이 전개되는 것이다. 특히 우리 구원의 시작을 기념하고 우리에게 파스카 신비의 첫 열매를 전해 주는, 강생신비가 중심이 되는 축일들(주님 탄생 예고, 예수 성탄, 주님 공현)의 주기(週期)도 그러하다.

교회 안의 세례

1226 오순절 바로 그날부터 교회는 거룩한 세례를 거행하고 베풀어 왔다. 그날 베드로 사도는 자신의 설교에 감동받은 군중에게 이렇게 선포한다. “회개하십시오. 그리고 저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그러면 성령을 선물로 받을 것입니다”(사도 2,38). 사도들과 그들의 협력자들은 유다인이든, 하느님을 두려워하는 사람이든, 이방인이든,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에게 세례를 권한다.(25) 세례는 언제나 신앙과 결부된 것으로 드러난다. 바오로 사도는 “주 예수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그대와 그대의 집안이 구원을 받을 것이오.” 하고 필리피의 간수에게 말했다. 이야기는 이렇게 이어진다. “그 자리에서 그와 온 가족이 세례를 받았다”(사도 16,31-33).
1227 바오로 사도에 따르면, 믿는 이는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죽음에 일치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다가 함께 부활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 과연 우리는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통하여 그분과 함께 묻혔습니다.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아버지의 영광을 통하여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신 것처럼, 우리도 새로운 삶을 살아가게 되었습니다(로마 6,3-4).(26)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입었다.”(27) 성령을 통하여, 세례는 깨끗하게 해 주고 거룩하게 해 주고 의롭게 해 주는 목욕이다.(28)
1228 그러므로 세례는 물로 씻는 목욕으로서, 이를 통해 ‘썩어 없어지지 않는 씨앗’인 하느님의 말씀생명을 주는 효과를 낳는다.(29)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세례에 대하여 이렇게 말하였다. “말씀이 물질적 요소와 결합되어 성사가 된다.”(30)

신앙과 세례

1253 세례는 신앙성사이다.(49) 그러나 신앙을 위해서는 믿는 이들의 공동체가 필요하다. 오로지 교회신앙 안에서만, 신자 개개인이 믿을 수 있는 것이다. 세례를 위해서 완전하고 성숙한 신앙이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발전할 수 있는 신앙의 출발이 필요한 것이다. 예비 신자대부모는 “하느님의 교회에 무엇을 청합니까-”라는 질문에 “신앙을 청합니다.” 하고 대답한다.
1254 어린이든 어른이든 세례를 받은 모든 사람의 신앙은 세례 후에도 계속 성장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회는 해마다 부활 성야에 세례 서약 갱신 예식을 거행한다. 세례를 위한 준비는 새 생활의 문턱까지 인도할 뿐이다. 세례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새 삶의 근원이며, 이 근원에서 그리스도인의 삶 전체가 솟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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