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으로 교회의 7성사 중에서 맨 앞자리를 차지하는 것이 세례성사입니다. 왜냐하면 세례를 통해 신앙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되며, 다른 성사를 받을 수 있는 자격을 얻기 때문입니다.
어느 단체에 가입하기 위해서는 준비기간이 필요하듯이 가톨릭 입교성사인 세례성사를 받기 위해서도 일정 기간의 교육이 요구됩니다. 고대 교회에서는 이 교육기간이 3년이었으나, 지금은 보통 1년에서 6개월 정도입니다.
세례성사는 성직자(부제,사제,주교)가 수여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 그러나 비상시에는, 즉 전쟁이나 박해로 인해 성직자가 없는 경우나 사제를 불러올 동안에 세례 받을 사람이 죽을 위험이 있을 경우에는 평신도도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
세례성사로 받은 인호의 효과는 우리가 영구히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하고 (그러므로 세례는 한 번만 받습니다) 교회의 일원으로서 권리와 의무를갖게 하고, 다른 성사를 받을 자격을 줍니다.
세례성사의 집전자는 일반적으로 사제입니다. 그러나 죽을 위험에 있을 경우에는 누구든지 세례를 집행할 수 있습니다.
세례 받을 사람의 이마에 물(자연수)을 부으면서"(세례명) , 나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세례를 베풉니다." 라고 합니다.
세례성사를 받으면 은혜(효과)를 입게 되는데 이에 대해서도 사도행전에 잘 요약되어 나옵니다. "회개하시오. 그리고 여러분은 한 사람도 빠짐없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여러분의 죄를 용서받으시오.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게 될 것입니다."(2.38) 이 구절은 성령을 받은 베드로 사도가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부활하신 예수는 곧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구세주" 라고 설교하자. 이를 듣고 "그러면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겠느냐"라고 묻는 청중들의 질문에 답한 내용이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라고 합니다. 이는 세례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죄스러운 생활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새로운 삶으로 태어나는 것"(로마 6,1-14 참조) 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사신 삶이고 , 우리 또한 그러한 삶을 살 때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그리스도처럼 하느님을 아버지로 부르게 됩니다. 또한 베드로는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라고 권유합니다.
즉 세례를 통해서 죄의 사함이 이루어집니다. 전통적으로 교회는 세례를 통해서 원죄와 본죄 모두를 사함 받는다고 합니다. 원죄란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가 하느님의 명령을 어겨서 지은 죄로서(창세기 3장) 후손들에게도 영향을 미치는 죄입니다. 본죄란 인간 각자가 지은 죄입니다. 그런데 원죄이든 본죄이든 죄의 본질은 하느님을 멀리하고 자신에게 집착하는 이기주의입니다.
세례를 통해 모든 죄의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자신만을 바라보며 이기적인 삶을 살아온 것을 불문에 부치시고,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하느님 아버지와 이웃을 사랑하며 새롭게 살 수 있는 은총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세례 예식 중에 물로 씻는 것도 이렇게 과거의 죄를 용서하는 것을 상징합니다. 마지막으로 베드로는 세례를 통해서 성령의 선물을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즉 세례를 통해서 우리 안에 성령께서 머무르시게 됩니다.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좀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되고 , 각자는 고유한 은사를 받게 됩니다(1고린 12,1-11 참조) 그러나 각자가 받은 고유한 성령의 선물은 개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이익을 위해서 사용되어야 합니다(1고린 4,1-25 참조). 그러므로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하나되어 새로운 삶에로 탄생하게 되고, 모든 죄를 용서받으며, 성령의 선물을 받게 되는 은혜가 주어집니다.
사도행전에 의하면 베드로의 설교 후에 3천 명이 세례를 받고 새로운 신도가 되어서 "서로 도와주며, 빵을 나누어 먹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하였다"(2 , 41 -42)라고 합니다. 즉 세례를 받고 교회 공동체에 귀속되어 신앙생활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세례는 교회의 일원이 되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을 빌리면 세례를 통해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지체(肢體)가 됩니다. 교회 안에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머무르시면서 신자들을 통해 자신의 구원사업을 계속하신다는 의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의 몸이고 , 세례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지체가 됨으로써 모든 신자들은 동등한 품위를 지니게 됩니다. "세례를 받아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간 여러분은 모두 그리스도를 옷 입듯이 입었습니다. 유다인이나 그리스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나 남자나 여자나 아무런 차별이 없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은 모두 한 몸을 이루었기 때문입니다"(갈라 3,26-28).
세례를 통해서 원죄와 본죄가 사함을 받기 때문에, 만일 누가 세례 받은 후 즉시 죽으면 천당에 가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물론 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례 받고 즉시 죽어서 천당에 가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바라기보다는 세례를 통해서 죄를 용서해주시고 새로운 삶에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리면서, 그 은혜를 조금이라도 갚으려고 성실히 살아가고자 다짐하는 마음이 더 중요합니다. 세례성사를 받고서 하느님과 함께 하는 삶이 참된 의미와 보람에 가득 찬 길이라는 것을 다른 이들에게 증거함으로써 그들도 하느님을 믿고 함께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천당에는 혼자가 아니라 함께 가는 것이라고 합니다. 만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없는 천당이라면 기쁨이 덜하지 않겠습니까?
한 번 세례 받은 것은 취소할 수 없습니다. 세례는 복음에 대한 우리 자신의 응답이지만, 동시에 세례를 통해서 하느님은 우리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선택은 결코 취소될 수 없습니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 영혼에 지워지지 않는 인호(印號)가 새겨진다는 말을 합니다. 영혼에 인호가 각인되는 세례를 한 번 받게 되면 결코 취소할 수 없습니다. 신자생활이 자신 없을수록 하느님께 의지하고 그분께 도움을 청하는 자세를 갖추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간절히 구하는 바를 분명히 들어주십니다.
부모는 아기의 출생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례를 받게 해야 하고 100일을 넘기지 않도록 요구하고 있습니다(사목지침서 제47조 참조). 특히, 죽을 위험이 있으면 지체없이 세례를 받게 해야 하며, 아기의 부모가 가톨릭 신자가 아니거나 원치 않더라도 세례를 받게 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버려진 아기나 주운 아기가 세례 받은 사실이 불확실하면 이때도 세례를 받게 해야 합니다(사목지침서 제48,49조). 또 유산된 태아가 살아 있으면 기형이나 형태를 갖추지 못했어도 세례를 받도록 해야 합니다(교회법 제871조;사목지침서 제50조 참조).
신약성서에서 언급되는 세례는 전부 성인세례입니다. 세례의 은혜 부분에서 설명했듯이 세례는 앞서 선포된 복음에 대한 응답이며 회개의 표시입니다. 복음을 받아들이고 회개하는 것이 바로 신앙이고, 이런 의미에서 세례는 신앙의 표시입니다.
언제부터 유아세례가 있었는지에 대해서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신약성서에도 어린이에게 세례를 주었는지에 대해서 확실히 전해지지 않습니다. 단지 "온 집안 사람"이 세례를 받았다는 구절(1 고린 1, 16 ; 사도 16 , 15 ; 16 , 31.33) 이 나올 뿐인데, 집안 사람에는 아이들도 속한다는 것을 미루어 유아세례가 실행되지 않았겠는가 하고 추정할 뿐입니다. 어린이세례에 관한 기록은 215년경에 저술된<사도전승>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같은 전교지역은 성인세례가 대부분입니다만, 유럽은 그리스도교가 널리 전파된 1천년대 이후로는 유아세례가 대부분이었고, 성인세례는 예외에 속하였습니다. 성인세례나 유아세례의 효과는 같습니다. 그러나 신앙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유아세례의 경우에 어린이 자신이 직접 신앙을 고백하지 못하므로 부모나 대부모가 어린이를 대신해서 신앙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이 고백은 아이가 신앙을 키워가도록 돕겠다는 약속이기도 합니다. 유아세례를 받은 사람은 나중에 자신의 신앙을 고백할 기회를 갖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견진성사입니다. 이렇게 볼 때 어른은 우선 신앙고백을 하고 세례를 받지만, 아이는 부모와 대부모의 신앙고백으로 세례를 받고 나중에 스스로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 아이가 철이 들어서 스스로 판단하여 신앙고백을 할 수 있을 때까지 세례를 미루는 것이 옳지 않느냐는 견해도 있습니다. 그러나 부모는 자신이 판단해서 소중한 가치라고 여겨지는 것이면 어려서부터 자식에게 가르칩니다. 마찬가지로 신앙이 귀중하다고 확신한다면 마땅히 어려서부터 자식에게 전해주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