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성사

혼인성사도 여러 번 받을 수 있나요?

혼인성사를 받을 때 사제는 이런 말을 합니다.

"죽음이 그대를 갈라 놓을 때까지......"
따라서 혼인의 계약은 어느 한쪽이 죽으면 풀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어떤 사람이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나요?

혼인성사를 받으려면 신랑과 신부가 모두 세례성사를 받은 신자여야 합니다. 그리고 혼인성사는 원칙적으로 미사중에 거행합니다. 혼인성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헌신적이고 항구한 사랑에 힘입고자 한다면 그 사랑이 성체를 통해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미사중에 혼인성사가 거행된다는 것은 아주 당연한 일이겠지요. 사정이 허락치 않는다면 간단한 말씀 전례중에 혼인성사를 거행할 수 있습니다.

혼인성사의 핵심은 신랑과 신부가 자유로운 합의를 나누는 데에 있습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라는 선언으로써 합의가 성립되고, 두 사람이 한 몸을 이룸으로써 혼인이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혼인성사의 집전자는 사제가 아니라 신랑과 신부입니다.

혼인 예식을 주례하는 사제(또는 부제)는 교회의 이름으로 신랑, 신부의 동의를 받아들이고 교회의 축복을 베풀어줍니다. 교회의 성직자를 비롯해 신랑과 신부측 증인이 이 예식에 입회하는 것은 혼인이 교회적 행위임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드러내기 위한 것입니다.

종교가 다른 배우자와의 혼인할 때는 어떻게 하지요?

교회에서는 신앙을 좀 더 잘 보존하고 성장시키기 위해 가톨릭 신자는 가톨릭 신앙을 지닌 사람과 결혼하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복잡한 사회 현실 속에서 이 권유를 따르기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톨릭 신자가 타종교인이나 비종교인과 결혼할 경우에는 교회로부터 명시적인 허락, 교회용어로 하면 관면(寬免)을 받아야 합니다.

관면을 받고 거행된 혼인을 ''관면혼배''라고 합니다. 관면을 받으려면 신랑과 신부 둘 다 가톨릭 교회가 가르치는 혼인의 목적과 본질적인 특성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또한 비가톨릭인 당사자가 배우자의 가톨릭 신앙을 방해하지 않고, 자녀 모두를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받고 교육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약속을 해야 합니다.

타종교인이나 비신자와 결혼하게 되면 가톨릭 신앙을 보존하는 데에 적지 않은 어려움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적극적으로 생각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런 혼인의 경우, 가톨릭 신앙을 지닌 측이 열심하고 성실한 신앙생활을 통해서 배우자는 물론 그 가족과 친척에게까지 가톨릭 신앙을 전파할 수 있는 기회도 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왜 굳이 혼인성사를 받아야 하나요?

혼인이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가 되어 사랑하면서 일생을 함께하겠다고 약속하는 것입니다. 혼인성사 때 신랑과 신부가 서로에게 다음과 같은 약속을 합니다. "나는 당신을 내 아내(남편)로 맞아들여, 즐거울 때나 괴로울 때나, 성하거나 병들거나, 일생 당신을 사랑하고 존경하며 신의를 지키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이 약속대로 살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요. 사람은 자주 사랑의 이름으로 자신의 이기심과 욕심을 상대방에게 강요합니다. 또한 처음에는 변치 않을 것 같이 강렬하던 사랑도 시간이 지나고 상황이 변하면 흔들리고, 심하면 깨어지기까지 합니다.

인류의 원조인 아담과 하와의 경우도 그러하였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담이 혼자 있는 것을 좋지 않게 보시고 그의 일을 거둘 짝인 하와를 만들어주시자 아담은 기뻐서 어쩔 줄을 모릅니다. (창세 2.18-25 참조) 그러나 하느님의 명령을 어기고 선악과를 따먹고는 잘못을 추궁당하자 하와에게 탓을 미룹니다. "당신께서 저에게 짝지어주신 여자가 그 나무에서 열매를 따주기에 먹었을 따름입니다."(창세 3,12) 이렇게 아담과 하와 부부의 원초적 친교는 단절되고, 창조주께서 주신 본래의 선물인 상호간의 매력은 지배와 탐욕의 관계로 변합니다. "남편을 마음대로 주무르고 싶겠지만, 도리어 남편의 손아귀에 들리라"(창세 3,16). 하느님의 큰 축복인 부부의 사랑이 인간의 잘못으로 큰 상처를 입게 된 것입니다. 이 상처가 치유되기 위해서는 부부에게 큰 도움이 될 하느님의 은총이 꼭 필요합니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께서 베푸시는 사랑에 힘입어야 합니다.

예수님 안에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사랑과는 다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 인간을 위해서 당신을 기꺼이 십자가 죽음에 내 맡기시고, 당신을 배반했던 제자들도 거듭 용서해주십니다. 이기적이지 않으며 진정 상대방을 위한 헌신적 사랑, 상황에 따라 이랬다 저랬다 하지 않는 항구한 사랑의 소유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혼인성사를 받는 이유는 거짓되기 쉽고 항구하지 못한 인간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 교회에 베푸신 사랑에 힘입어서 헌신적이고 견고한 사랑으로 변화되기를 청하는 데에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부부들에게 다음과 같이 권고합니다. "남편된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셔서 당신의 몸을 바치신 것처럼 자기 아내를 사랑하십시오. 그리스도께서는 물로 씻는 예식과 말씀으로 교회를 거룩하게 하시려고 당신의 몸을 바치셨습니다."(에페 5,25-26) 물론 이 권고는 남편만이 아니라 아내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느님께서 원하신 남녀의 사랑과 결합은 아름답고 고귀합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 이 사랑과 결합이 인간의 죄와 잘못으로 인해서 얼마나 약하고 깨지기 쉬운지를 조금이라도 체험한 사람이라면 혼인성사를 통해 성실하고 항구한 그리스도의 사랑에 의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혼인성사의 은혜는 한순간에 실현되는 것이라기보다는 일생을 통해 지속된다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의 삶이 좀더 성숙된 인간으로 되어가는 하나의 여정(旅程)이듯이, 부부의 사랑도 더 성숙한 사랑을 향한 하나의 여정이기 때문입니다. 이 여정을 그리스도와 함께할 때 부부 사이의 기쁨은 배가 되고, 슬픔과 괴로움은 반으로 줄어들며, 고통과 시련은 도약의 발판이 될 것입니다.

혼인성사를 통해 어떤 은총을 받나요? 또 어떤 의무가 주어지나요?

혼인성사의 고유한 은총은 부부의 사랑을 완전하게 하고, 그들간의 일치가 깨지지 않도록 강화시켜 줍니다. 또한 이 은총은 부부생활과 자녀의 출산과 양육을 통해서 서로 인격적으로 성숙하고 신앙적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 은총의 원천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이에 대해서 <가톨릭교회 교리서>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들과 함께 머무르시면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당신을 따르며, 죄에서 다시 일어서고, 서로를 용서하며, 상대의 짐을 져주고, ''그리스도를 두려워하며 서로 순종''(에페 5,21)하고, 초자연적이며 온유하고 열매맺는 사랑으로 서로 사랑할 힘을 주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부부애와 가정생활의 기쁨 속에서, 이 세상에서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미리 맛보게 하신다" (1642조). 한마디로 혼인성사는 하느님께서 원래 부부들에게 원하신 두 인격의 완전한 일치와 성숙을 실현하도록 돕는 은총을 선사합니다.

혼인성사를 통해 맺어진 부부는 상대방에게 충실하고 그를 배반하지 않겠다는 신의와 둘 사이의 유대(紐帶)를 한 편이 죽을 때까지 지속한다는 혼인의 불가해소성(不可解消性)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런 의무는 모두 성서에 근거합니다. 결혼을 한 부부는 "둘이 아니라 한 몸"(마태 19,6)이기에 다른 사람에게 눈을 돌리지 말고 상대방에게 충실해야 하고, "하느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예수님의 말씀처럼 헤어져서는 안 됩니다.

사람은 본성상 자신의 배우자가 자신만을 진정으로 사랑하기를, 또한 그 사랑이 영원히 지속되기를 원합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에서 요구하는 부부간의 절대적 신의와 혼인의 불가해소성은 인간의 본성에도 부합한다고 하겠습니다.

또 하느님께서 첫 인간 부부에게 "자식을 낳아 번성하라"(창세 1,28)고 명하신 것을 생각한다면 부부애는 자녀 출산의 문을 열어놓은 것이어야 합니다. 자식을 낳아 기른다는 것은 많은 수고와 어려움을 동반하지만, 자식은 부부의 사랑과 일치를 더 깊고 견고하게 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가정을 "가정교회"라고 일컬으면서, 가정에서 부모들이 "말과 모범으로 자녀들에게 신앙을 가르치는 첫 스승이 되어야 하며, 자녀 각자의 소명, 특히 사제성소나 수도성소를 특별한 배려로 육성하여야 한다"(교회헌장 11항)고 권고합니다.

물론 한 사람을 일생 동안 지속적으로 사랑한다는 것이 거의 실현 불가능하게 여겨질 수 있습니다. 일찍이 예수께서 혼인의 불가해소성을 강조하셨을 때 제자들은 당황해하면서, 그럴 바에는 "차라리 결혼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마태 19,10)고 응답하기까지 했습니다. 부부가 서로 굳은 신의를 지키면서 일생을 함께 산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하느님의 은총으로써만 가능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분명히 혼인성사를 통해 필요한 은총을 주십니다.

그러나 부부는 이 은혜를 지키고 강화해 나가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해야 합니다. 다시 말해서 부부가 함께 신앙생활과 기도생활을 하면서 서로의 이해를 돕는 대화를 추구해간다면 서로 사랑하고 신의를 지키면서 일생을 함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몇 년 전의 통계에 의하면 미국의 평균 이혼율은 30%를 넘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정기적으로 교회에 나가는 사람의 경우에는 51명 중 한 명이 이혼을 하였고, 매일 가정 기도를 바치는 사람은 1,011명 중 한 명이 이혼했다는 결과가 나왔다고 합니다. 요즈음 신자들 중에서도 이혼 부부가 많은 것은 아마 신앙생활을 소홀히 하고 거의 기도하지 않는 데에도 큰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예전에 신자 가정에서는 저녁 때 가족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는 것이 생활화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좋은 전통을 우리 신자들이 이어받는다면 부부의 일치와 가정의 화목에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언제부터 혼인성사가 생겼나요?

일찍이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그들의 사랑에 복을 내려주시며 "자식을 낳고 번성하라"(창세 1,28)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도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 기적을 베푸시고(요한 2,1-11 참조). 하느님 나라를 혼인 잔치에 비유하심으로써 (마태 22,1-14: 25,1-13 참조) 혼인을 높이 평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부부의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사랑을 표현한다고 설명합니다. "사람이 부모를 떠나 자기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룬다"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참으로 심오한 진리가 담겨져 있는 말씀입니다. 나는 이 말씀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말해준다고 봅니다. (에페 5,31-32).

그러니까 교회는 혼인을 하느님께서 친히 제정하시고 축복하신 것으로서, 단지 인간적 차원의 사랑으로 끝나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상징하며,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사랑을 표시하고 실현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처음에 교회는 특별한 혼인 예식을 만들지 않았고 일반 사회의 혼인 예식을 그대로 사용하면서 그 안에서 부부를 축복하였습니다. 이런 현상은 10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안에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다가 11-12세기 이래 오로지 ''교회 앞에서'' 거행한 혼인만을 ''합법적''인 것으로 인정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된 데에는 역사적 배경이 있습니다. 당시에는 여자들을 납치하여 강제로 결혼하는 일이 적지 않았는데, 이에 대해서 교회는 혼인을 공식적으로 거행하고 여자에게 자유로운 동의를 보장하였던 것입니다.

12세기 초의 한 미사경본에 의하면 장백의와 영대를 한 사제는 성당 현관문에서 신랑과 신부를 맞아 성수를 뿌리고, 그들이 자유로운 의사 결정으로 혼인을 하는지, 결혼에 방해되는 요인은 없는지를 확인하고, 주님의 계명에 따라 살아야 할 그들의 생활에 대해 권고합니다. 그 다음에 사제는 신부의 부모에게 그들의 딸을 신랑에게 넘겨주라고 요구합니다. 그 외에도 몇 가지 철차를 거친 후에 신랑, 신부는 촛불을 켜들고 성당안으로 들어가서 미사에 참여하고, 그 촛불을 제물로 바쳤습니다.

이렇게 볼 때 교회는 처음부터 혼인을 소중히 여김으로써 교회의 전례 안에서 혼인 예식을 치렀는데, 혼인을 성사로 분명히 인정한 것은 12세기에 이르러서였습니다. 16세기 트리엔트공의회는 세례받은 신자들이 결혼할 때에는 혼인성사를 받아야만 한다고, 그렇지 않으면 그 결혼은 무효하고 선언하였습니다.

어떻게 준비해야 할까요?

혼인은 일생의 중대사이기에 내적, 외적 준비를 충분히 해야 함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요즈음에는 외적인 준비, 즉 혼수와 예물을 마련하고 결혼식장, 피로연을 준비하는 데에 거의 모든 시간과 노력을 바칩니다.

이 모든 외적인 준비에 앞서 단 며칠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고 기도하면서 혼인을 준비하는 것이 신앙인에게 바람직한 자세라고 하겠습니다. 특히 혼인을 앞두면 신랑, 신부 모두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는 경우가 많다고 하는데, 이를 극복하고 평안한 마음으로 혼인성사를 받기 위해서도 내적인 준비가 절실히 필요합니다. 그리고 혼인 당사자는 될 수 있는 대로 혼인전에 견진성사와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좋습니다.

교회 내적으로는 혼인성사를 받기 위해서 몇 가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먼저 소속 본당 신부님과 혼인 면담을 하고 혼인 문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본당 신부님은 혼인성사를 받으려는 이가 온전한 자유 의사에 의해 혼인하려는 것인지, 혼인에 방해되는 요인은 없는지에 대해서 신랑, 신부에게 자세히 물어보고 이를 문서로 작성하여 본당에 영구적으로 보관합니다. 그리고 가능하면 혼인 면담 전에 불가피한 사정이 있을 경우에는 그후에라도 그리스도교의 정신에 따른 혼인이 무엇인지를 가르치는 혼인 교리를 받아야 합니다.

이런 절차가 복잡하고 귀찮다고 여기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즈음 거의 모든 이들이 결혼 전에 소위 야외촬영이라고 해서 하루 내지 이틀씩 고생을 하면서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혼인성사를 제대로 준비하고 받기 위해서는 적어도 야외촬영에 들이는 시간과 노력 정도는 할애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또한 부모는 자녀들이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도록 주지시키고 배려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이런 절차가 번거롭다고 해서 신자가 혼인성사나 관면혼배를 받지 않고 그냥 일반 결혼만 하게 되면, 영성체를 할 수 없게 됩니다. 교회용어로는 조당(혼인을 성립시키지 못하는 조건)에 걸린 것입니다. 다시 성사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조당을 풀어야 하는데, 이 과정은 비교적 단순합니다. 즉 소속 본당에서 신부님과 면담을 한 후에 서류를 작성하고 고해성사와 혼인성사를 받으면 됩니다. 자세한 것은 본당에 계신 신부님이나 본당 사무실에 문의하면 알려줄 것입니다.

이런 조당에 걸려 있는 부부들 중에서 적지 않은 분들이 절차를 제대로 몰라서 성사생활도 못하고 그냥 지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가능한 한 빨리 조당을 풀고 신앙생활을 제대로 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그리고 부부가 모두 비신자로 있다가 한 편이나 양편이 세례를 받게 되는 경우는 혼인 성사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습니다.

혼인성사는 꼭 본당에서 본당 신부님의 주례로 받아야 하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혼인 문서는 소속 본당에서 작성해야 하지만 혼인성사는 다른 성당에서도 얼마든지 받을 수 있습니다. 혼인 예식의 주례권은 원칙적으로 소속 본당 주임 신부님에게 있지만 주임 신부님의 위임을 받은 다른 신부님이 혼인 주례를 맡을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혼인 면담 때에 결정해야 할 문제입니다.

성당 이외의 장소, 예를 들면 일반 예식장이나 야외의 적당한 장소에서도 혼인성사가 거행될 수는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성당에서 간단한 형식으로 혼인성사를 받은 후에 예식장이나 다른 장소에서 일반 혼인식을 거행합니다. 성사는 가능하면 성당이나 경당에서 거행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필요하다면 신자가 아닌 사람도 성당에서 결혼식을 올릴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경제적인 여건이 어려워 예식장을 구하기가 어려운 이들에게 성당에서 결혼할 수 있도록 배려할 수도 있겠지요. 그런 경우에 성당이라는 장소가 지닌 고유한 특성이 훼손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할 것입니다.

혼인성사가 무효로 되는 경우가 있다고 하던데요?

네, 그렇습니다. 혼인을 이루는 불가결한 요소인 신랑과 신부의 혼인 합의가 자유가 아닌 강요에 의해서 이루어졌다면, 그 혼인은 무효입니다. 심리적 원인 때문에 혼인의 본질적 의무를 질 수 없는 경우도 혼인이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그 심리적 원인에는 정신착란, 정신이상, 우울증, 동성애, 성도착증, 알코올중독, 습관성 도박, 마약중독 등이 속합니다. 또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을 유지하는 데 중대한 혼란을 줄 수 있는 결함, 예를 들면 심각한 질병, 성불구 등을 숨기고 혼인하였다면 무효화될 수 있습니다. 상습적으로 배우자를 폭행한다면 그런 혼인도 무효화될 수 있는 경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그러나 혼인 무효화는 부부들 자신이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에서 정한 과정을 거쳐서 무효선언을 받아야만 합니다.

즉, 소속 본당 신부님과의 상의를 거쳐서 교구 법원에 심의를 청하여 무효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혼인 무효화는 그 과정이 복잡하기 때문에 반드시 본당 신부님과 먼저 상의를 해야 합니다.

이혼한 부부는 성사생활을 할 수 없나요?

예수께서는 일찍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아내를 버리고 다른 여자와 결혼하면 그 여자와 간음하는 것이며 또 아내가 자기 남편을 버리고 다른 남자와 결혼해도 간음하는 것이다"(마르 10,11-12). 교회는 이 말씀을 충실히 따르기 위해서 유효하게 거행된 혼인은 한 편이 죽기 전에는 결코 해소될 수 없다고 가르쳐왔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많은 부부들이 여러 가지 이유를 들어 이혼을 합니다. 적지 않은 신자들은 이혼하면 그 자체로 조당에 걸려서 성사생활을 할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이것은 오해입니다. 이혼하고서 재혼을 하지 않는다면 성사생활을 계속할 수 있습니다.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1981년에 발표한 사도적 권고 <가정 공동체>에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이혼은 하였지만 유효한 결혼 유대는 갈릴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에, 재혼을 거부하면서 가정의 의무와 그리스도인 생활의 책임을 수행하는 데에만 전심하는 사람들"에게 "교회가 성사를 허용하는 데에 아무런 장애를 두지 않고 계속적 사랑과 보조를 주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83항).

이혼한 신자들이 교구 법원을 통해 먼저번 혼인을 무효화하지 않은 채로 민법에 따라 재혼한다면 그들은 객관적으로 예수님 말씀에 근거한 혼인의 불가해소성에 어긋나는 처지에 있는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이 상태가 지속되는 동안에는 성체를 모실 수 없습니다.

하지만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이러한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은 교회에서 떨어져나간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도록 염려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라고 사목자와 전 신자 공동체에 호소"하십니다. 교황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들이 비록 영성체를 못 하더라도) 세례를 받은 자들로서 교회생활에 참여할 수 있고, 진정 참여해야 한다. 그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미사성제에 참여하며 기도에 항구하라고 격려를 받아야 할 뿐 아니라, 역시 사랑의 사업과 정의를 위한 공동체의 노력에 기여하고 그리스도적 신앙에 따라 자녀들을 키우며 참회의 정신과 실천을 연마하면서 매일매일 하느님의 은혜를 간청하라고 격려받아야 한다. 교회는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그들을 격려하며 인자한 어머니답게 행동함으로써 그들의 신앙과 희망을 유지해야 한다"(가정 공동체 84항).

이혼 후 민법상으로만 재혼한 사람들 모두가 교회법상으로 유효한 결혼을 파괴하는 중대한 잘못을 한 것은 아닙니다. 실상 첫번째 결혼을 구제하려고 진정으로 노력하였으나, 부당하게 버림받은 사람도 많습니다. 또 자녀의 양육을 위해서 재혼한 사람도 많습니다. 이들 대부분은 마음에 깊은 상처를 입고 내적으로 큰 고통과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런 점을 생각한다면 그들을 외면하거나 냉대해서는 결코 안 될 것입니다. 교회는 이들이 교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과 자비를 느낄 수 있도록 세심하고 성의있는 배려를 다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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