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품성사(聖品聖事)란 한 사람을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말씀과 은총을 통해서 교회의 목자(牧者)요 사제(司 祭)로 축성하는 성사를 말합니다. 가톨릭 교회의 공식적인 가르침에 의하면 예수께서 최후만찬 중에 성체성사를 설정하시고 사도들에게 이 성사를 계속 거행할 것을 명하심으로써(루가22,19 참조) 사도들을 신약의 사제들로 임명하 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611,1337항 참조).
또한 사도들은 안수와 기도를 통해서 자신의 협조자와 후계자들에게 이 직무를 다시 위임하셨습니다(사도 13,1-3;14,23: 1디모4,14;5,22 참조).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목자인 사제의 직무는 성품성사를 통해 세상 마칠 때까지 교회 안에서 존속될 것입니다.
전통적으로 성품성사를 통해서 사제에게 주어지는 핵심적인 권한은 성체와 성혈을 축성하는 ''축성권''과 죄를 사해 주는 ''사죄권''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성서와 교부들의 사상을 깊이 연구하였고, 그 결과로써 전통적인 성사 중심적 사제 직무관을 극복하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주교의 직무에는 성사 집행만이 아니라 다른 직무도 포함된다고 분명히 밝힙니다. "주교들은 조력자인 사제와 부제들과 함께 하느님을 대리하여 양 무리를 맡아, 그 목자로서 교리의 스승, 거룩한 제사의 사제, 교회의 행정관(行政官)이 되는 것이다"(교회헌장 20항).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로서 주교의 권한을 나누어 받습니다. 그래서 ''하느님 말씀의 교역자'' ''여러 성사와 성체의 교역자''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가 되는 것입니다(사제직무요령 4-6항). 다시말해 성품성사를 통해서 주교와 신부는 하느님 말씀을 공적으로 권위 있게 선포할 수 있는 ''복음선포자''의 권한과 미사를 포함한 여러 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사제''의 권한 그리고 교회 공동체가 조화와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인도하는 ''지도자''의 권한을 받습니다.
부제는 특별히 봉사의 직무를 맡습니다. 우리에게 부제직의 유래에 대해서 잘 전해주는 문헌은 사도행전(6,1-6) 입니다. 예루살렘의 초대교회 공동체는 재산을 공유하는 공동생활을 하였는데, 신자들이 늘어나자 식량분배 때문에 분쟁이 발생하였습니다. 그러자 사도들은 일곱 봉사자를 선출하여 그들에게 식량을 공평하게 배분하는 봉사의 직무 를 맡겼습니다. 이렇게 해서 부제직이 유래되었고, 부제들은 전통적으로 주교에게 속해 있으면서 봉사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교계제도의 아래 계층으로 부제가 있다. 그들(부제들)은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직 봉사하기 위하여'' 안수를 받는 것이다"(교회헌장 29항). 부제가 특별히 주교에게 속해 있다는 표시로써 부제서품 때는 주교만 안수를 하고 신부는 하지 않습니다. 현재에는 신부가 되기 위한 전단계로서의 ''부제''와, 일생 동안 부제로서 봉사하는 ''종신(終身)부제''로 구분되어 있습니다.
부제는 주교와 신부를 도와서 말씀 전례, 세례식과 장례식의 주례, 봉성체, 혼인성사 입회, 준성사의 거행, 강론 등을 할 수 있습니다. 종신부제도는 미국이나 유럽 등지에서 시행되고 있지만,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이 제도를 도입하고 있지 않습니다.
세례와 견진성사를 받은 남자만이 성품성사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종신부제를 제외한 모든 주교, 신부, 부제 후보자는 결혼하지 않은 사람으로서 독신생활을 계속할 의지를 지니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맡은 직무를 수행하는 데에 지장이 없도록 정신적, 육체적으로 건강한 사람이어야 합니다. 교구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 본당 주임 신부와 소속 교구 교구장의 추천을, 그리고 수도회 신부가 되기 위해서는 소속 수도회 장상의 추천을 받아서 신학대학에 입학하여 규정된 교육을 받아야 합니다. 현재 한국 교회에서는 신부가 되기 위해서 7년간 신학교 교육을 받아야 하는데, 주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합니다. 7년의 교육기간 동안 의무적으로 기숙사(신학원)생활을 하면서 기도와 영성생활을 익히게 됩니다. 그 중간에 군복무도 마쳐야 합니다.
소정의 과정을 마치면 신학교 지도 신부들의 심사를 거쳐, 우선 미사 때 공적으로 독서를 봉독할 자격을 얻는 독서직(讀書職), 제단에서 봉사할 수 있는 시종직(侍從職)을 받고, 그 다음에는 부제품, 사제품을 받습니다. 성직에 입문하는 부제품을 받을 때에는 교회 공동체에 봉사하기 위한 독신생활을 서약하고 교구장의 뜻에 따르겠다는 순명을 약속하게 됩니다. 수도회 소속 신부들은 그들의 수도서원을 통하여 독신(정결)과 순명 외에 평생 가난하게 살겠다는 청빈서원도 하게 됩니다.
신부는 교구 소속 신부와 수도회 소속 신부로 나누어집니다. 교구 소속 신부는 통상적으로 교구장으로부터 그 교구 내 본당에 파견되어서 사목활동을 합니다.
본당 책임을 맡은 신부를 본당 신부, 즉 주임(主任) 신부라 하고, 주임 신부를 돕는 신부를 보좌(補佐) 신부라고 합니다. 교구 소속 신부들 가운데 본당을 맡지 않고 특수사목과 전문사목에 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신학교나 교육기관에서 교육을 담당하는 신부, 군인들을 위해서 일하는 군종 신부, 노동사목, 빈민사목, 사회 교정사목 등에 임하는 신부들입니다.
가난(청빈), 순명, 독신(정결)의 생활을 통해서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봉헌하는 생활을 하는 수도자들 중에도 신부로 서품되는 분들이 있습니다. 수도회 신부들은 각각의 수도회가 필요로 하는 일을 하거나, 그 수도회가 맡은 본당에서 본당사목을 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하고 여러 성사를 거행하며 하느님의 백성을 지도하는 직무는 하느님과 직접 관계된 거룩한 직무입니다. 그래서 이 직무에 종사하는 사람을 성직자(聖職者)라고 부르는데, 성직자는 주교, 신부, 부제를 가리킵니다. 주교와 신부는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특별한 방식으로 참여하기 때문에 사제(司祭)라고 지칭하는데, 이 명칭은 부제에게는 해당되지 않습니다. 주임 신부, 보좌 신부, 수도회 신부 등의 명칭에서 신부(神父)는 영적(靈的)인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예전에는 신부를 탁덕(鐸德)이라고도 불렀습니다만 현재에는 별로 쓰지 않는 말입니다.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 모두는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고 하느님 백성에 속하게 됩니다. 성직자는 하느님 백성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화합과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봉사하는 지도의 직무를 지닙니다. 이 직무에는 여러 등급이 있습니다. 한 나라가 도(道)나 주(州)라는 행정 단위로 구분되듯 가톨릭 교회는 교구(敎 區)라는 단위로 나뉘어 있습니다.
주교는 한 교구의 일치와 화합을 책임지고, 신부는 주교의 협력자이며, 부제는 주교와 신부를 돕는 봉사자입니다. 교황은 세계 모든 교구의 일치와 화합을 책임집니다. 교황께서 자신의 직무를 잘 수행할 수 있도록 자문과 조언을 구하기 위해서 임명한 주교들을 추기경(樞機卿)이라고 하는데, 추기경들께는 교황 선출권이 있습니다.
교회 안의 이런 직무들을 계급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세속에서처럼 권력을 잡고 자신의 명예를 높이기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에 더욱 철저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데 그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온 것이 아니라 섬기러 왔다"(마태 20,28)라고 말씀하셨고, 제자들에게도 당신처럼 살 것을 명하셨습니다(마르 10,42-45; 요한13,12-17 참조).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성직자 모두는 그분을 본받아 다른 이를 섬기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성품성사를 통해서 사제가 되면 복음의 선포자, 여러 성사의 집전자, 하느님 백성의 지도자의 임무를 맡게 되고, 이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느님의 특별한 은총도 받게 됩니다. 그리고 세례, 견진성사의 경우와 같이 성품성사도 지워지지 않는 영신적인 인호(印號)를 새겨줍니다. 성품성사로 새겨진 인호는 영원하기 때문에 성품성사를 두 번 다시 받을 수도 없고 한시적으로 받을 수도 없습니다. 영신적인 인호는 하느님 선택의 표시라고 하겠습니다.
하느님의 선택은 취소되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하느님의 아들이신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 중의 으뜸으로 선택 하신 베드로에 의해 세 번이나 배반 당하셨지만(요한 18,12-27 참조), 그를 저버리지 않으시고 당신을 대신해서 양떼를 보살피라고 분부하십니다(요한 21,15-17 참조). 이렇게 하느님의 선택은 인간의 잘못과 죄에도 불구하고 취소되지 않는데, 지워지지 않는 영신적인 인호란 이런 사실을 표현해 준다고 하겠습니다.
성품성사를 통한 하느님의 선택은 궁극적으로 교회 공동체를 위한 것입니다. 이 선택은 사제 한 사람의 구원을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사람을 위한,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 공동체를 건설하고 인도하기 위한 것입니다. 신학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성품성사에 의한 ''직무 사제직''은 세례와 견진성사에 의한 ''공통 사제직''에 봉사하는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들은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해 사제이고 예언자이며 왕이신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됨으로써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하는데, 이를 공통 사제직이라고 합니다.
성품성사를 통해서는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대신해 교회 공동체를 돌보는 직무 사제직을 받습니다.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은 세례의 은총과 믿음, 희망 ,사랑의 삶, 성령에 따른 삶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실현되는 반면, 직무 사제직은 공통 사제직을 위해 봉사하고, 모든 그리스도인의 세례 은총이 맺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직무 사제직은 그리스도께서 끊임없이 당신 교회를 건설하고 인도하기 위한 도구의 하나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547항).
이런 맥락에서, 주교와 신부들의 직무적이고 교계적인 사제직과 모든 신자들의 공통 사제직이 구별되기는 하지만 서로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직자와 평신도들은 자신들의 고유한 사제직을 올바로 수행할 수 있도록 서로 돕고 격려하고 기도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충고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훌륭한 사제가 있는 곳에서 평신도들이 훌륭하게 성장하고, 훌륭한 평신도가 있는 곳에서 훌륭한 사제가 배출됩니다.
어떤 분들은 성품성사를 받고 사제가 되면 보통 사람과는 아주 다른 사람이 된다고 상상합니다. 또는 인간적 감정도 없는 목석 같은 사람으로, 심지어는 식사도 안 하고 화장실도 안 가는 사람으로 생각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오해입니다.
성품성사를 통해서 주어지는 은총은 사제의 직분, 즉 복음 선포, 성사 집행, 공동체 지도를 올바로 수행하는 데 필요한 도움을 주기 위한 것으로서 인간이라는 바탕을 송두리째 없애버리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사제는 한 인간으로 서 기쁨과 슬픔을 느끼고 때로는 실망과 분노에 어쩔 줄 몰라합니다. 또 일에 지쳐서 짜증을 내기도 하고, 외로움 때문에 힘들어하며 밤잠을 설치며 고민하기도 합니다. 때로는 인간적인 나약함으로 잘못과 죄를 범할 수도 있는데, 이로 인해서 마음의 상처와 충격을 받는 신자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사제를 통해서 실제로 활동하며 은총을 주시는 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제는 단지 그분의 도구일 뿐입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도구인 사제에게 결함이 있다 해도 그를 통해서 당신의 구원활동을 계속 하십니다. 성서를 보면 예수께서 뽑으신 사도들에게 부족한 점, 실수와 잘못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들을 통해서 당신의 구원사업을 지속하셨습니다. 사제를 통해 활동하시는 분이 그리스도이시라는 사실은 사제의 인간적인 나약함을 보고도 실망하지 않을 수 있는 근거가 됩니다.
그러나 이 사실이 사제에게 자신의 나약함을 극복하려는 노력을 면제해주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사제의 인간적인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은총이 전해진다면 사제가 훌륭할 때 전해지는 은총은 얼마나 더 풍성하겠습니까? 사제도 인간으로서 신자들의 기도, 도움, 관심, 충고 등을 필요로 하고, 그 안에서 점점 더 성숙한 사제로 성장해 나갑니다. 마치 한 인간이 부모, 친척, 친지들의 사랑 안에서 성숙한 인간으로 성장해가듯이 말입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는 종신부제를 제외하고 성직자는 의무적으로 독신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러나 그리스 정교회나 러시아 정교회와 같은 동방 교회에서는 주교는 독신자들 중에서만 선발되지만 사제품과 부제품은 기혼 남자들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 외 성공회에서는 신부만이 아니라 주교도 결혼생활을 할 수 있습니다. 개신교에서는 거의 모든 목회자들이 결혼생활을 합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성직자들에게 부과하는 의무 독신제는 하느님의 명령인 신법(神法)이 아니라 교회가 정한 법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를 위한 독신에 대해 언급하시지만(마태 19,11-12) 모든 제자들에게 의무로 규정 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전승에 의하면, 사도 요한은 독신이었지만 베드로와 몇몇 사도들은 아내가 있었습니다(마르 1,30-31; 1고린9,5 참조). 신약성서 후기 문헌에 보면 교회 직무자는 ''한 아내의 남편''이어야 한다. 즉 자기 아내를 사랑하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표현이 나타납니다(1디모3,2; 3,12; 2디모2,24; 디도1,6 참조).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성직자는 독신생활을 하는 것이 자신의 직무를 수행하는 데 더 적합하다고 판단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여러 지역 주교회의에서 성직자들에게 독신생활을 하라고 명하다가 마침내 1139년 제2차 라테라노공의회에서 온 교회의 사제 들에게 독신제를 의무로 규정하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공의회는 사제직무요령 16항에서 독신제가 사제 직무의 본질에 필연적으로 속하지는 않으며, 동방 교회의 기혼 사제들 중에서도 훌륭한 사제들이 있다는 것을 확인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성직자에게 독신제가 적합하다고 강조합니다.
"독신생활은 많은 점에서 사제직에 적합하다. ...천국을 위하여 지키는 동정 혹은 독신 때문에(마태19,12) 사제는 새롭고 숭고한 이유로써 그리스도께 헌신하며, 갈림없는 마음으로(1고린7,32-34) 보다 쉽게 주님과 일치하며, 주님 안에서 주님을 통하여 보다 자유롭게 하느님과 사람들에게 대한 봉사에 몸을 바치고 주님의 나라와 초자연적 갱생 (更生)사업에 쉽게 봉사한다. ...사제는 부활한 자녀들이 시집도 가지 않고 장가도 들지 않는(루가20,35-36) 미래의 세계를 신앙과 사랑으로 이미 현존케 하여 미리 생생하게 보여준다."
현재 한국의 사회 구조를 보더라도 사제가 결혼생활을 한다면 가정을 꾸려나가기 위해서 정신적, 물질적으로 막대한 신경을 쓸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또한 사제는 직책상 이 본당에서 저 본당으로 자주 옮겨다녀야 하는데, 가정 생활을 한다면 이것이 얼마나 어렵고 힘들겠습니까? 이런 점만 보더라도 사제가 교회 공동체에 전적으로 봉사하기 위해서는 독신으로 사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나 독신생활은 성공적인 사제직 수행을 자동적으로 보장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이에 대한 적합한 조건일 뿐 입니다. 이 적합한 조건을 바탕으로 복음 선포, 성사 집행, 공동체 지도라는 사제 본연의 직무를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사제 자신의 노력은 물론 신자들의 기도와 도움도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다른 사람으로부터 관심과 배려, 따뜻함을 받아야 정신적으로 제대로 살 수 있습니다. 독신생활을 하는 사제라고 해서 예외는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인간에게 필요한 관심과 배려, 따뜻함을 가정에서 얻습니다. 그러나 가정을 이루고 있지 않은 사제에게는 본당이 가정의 역할을 어느 정도라도 대신해야 하지 않을까요? 사제가 자신의 본당에서 따뜻한 가정적인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면 사제의 직무를 훨씬 더 잘 수행할 수 있을 것입니다.
유럽이나 미국의 교회는 지난 수십 년이래 사제 수가 급격히 줄어들고 사제 희망자도 거의 없어서 교회의 장래에 대해서 많은 걱정을 합니다. 이 때문에 독신제를 의무로 부과하지 말고 자유로이 선택할 수 있도록 하자는 의견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 일부에서는 의무 독신제를 전면적으로 폐지한다면 교회에 큰 혼란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우선은 기혼 남성들 중에서 나이도 들고 경험도 풍부하며 신자들에게 존경받는 ''검증된 사람''들에게 사제직을 허용 하자는 제안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그래도 독신제가 사제직에 적합하다는 이유를 들어서 이런 의견과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습니다. 천 년 이상 지속되어 온 전통을 바꾸기는 쉽지 않겠지요.
현대 사회에는 여권 신장을 위한 노력의 하나로 여성운동이 확산되어왔으며, 여성들이 많은 분야에서 지도적 위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사회적인 추세에 따라 서부 유럽이나 미국에서는 여성에게도 사제서품을 허락해야 한다는 주장이 강력하게 대두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황청에서는 1976년 10월 15일자로 발표한 문서에서 세 가지 이유를 들어 여성 사제직을 반대합니다.
"첫째, 가톨릭 교회에서는 지금까지 여성들에게 유효하게 사제, 주교품을 수여할 수 있다는 견해가 있어본 적이 없다. 둘째,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열두 사도들을 뽑으실 때 남성만을 고르셨고, 초대교회에서 유다 이스가이옷을 대치할 사도를 선출할 때도 여성은 제외되었다. 셋째, 사제는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인물인데 그리스도는 남성이었다. 또 그리스도와 교회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의 상징으로 표현하는데, 신랑이신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제는 그리스도와 같은 남성이어야 한다."
그러나 교황청의 이러한 견해는 오늘날 많은 사람들에 의해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우선 교회 전통에서 지금까지 여성의 서품을 허락한 적이 없다고 해서 앞으로도 계속 허락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새로운 제도가 시행될 가능성이 처음부터 막혀버리는 것이 됩니다. 여성사제직이 하느님의 법에 의해서 그렇게 된 것이라면, 시대 상황이 달라져서 다른 것이 요구될 때 그 전통은 바뀔 수도 있지 않을까요?
그리고 이런 전통은 하느님께서 남자와 여자를 평등하게 창조하셨다(창세 1,27 참조)는 성서의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서 남자와 여자는 아무런 차별이 없다(갈라 3,28)는 사도 바오로의 말씀에 위배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열두 사도를 남성들로만 선택하신 것은 그 당시의 역사, 문화적 배경을 고려해서 이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당시 유다 사회는 철저한 남존여비사상에 젖어 있어서, 여성을 한 인간으로 취급하지 않았고 여성이 어떤 대표성을 지닐 수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대표하는 열두 사도에 여성을 포함시켰다면, 그 당시 사람들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것이므로 예수께서도 사실상 남성들만을 열두 사도로 선택하실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여하간 예수께서 남성들만을 열두 사도로 선택하셨다는 사실이 여성들을 교회 직무에서 배제해야 한다는 뜻으로 해석되어져서는 곤란합니다. 그리고 사도 바오로는 페베를 ''봉사자'', 브리스카를 ''함께 일하는 자'', 유니아를 ''사도''라 고 지칭하였는데(로마 16,1.3.7), 그 이름들은 모두 여성 이름입니다. 이는 초대교회에 지도적인 위치에서 일하던 여 성들이 있었음을 말해줍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가 남성이기에 그리스도를 대리하는 사람도 남성이어야 한다는 주장에도 문제가 있습니다. 신약성서에 의하면 하느님 말씀이 인간이 되셨다는 것(요한1,14 참조)이 신학적으로 정말 중요한 점이지, 그 인간의 성별은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성서에는 남녀의 성별보다는 예수께서 이스라엘에 속하셨다는 것이 오히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마태1,1-17; 루가1,54-55; 로마1,3; 갈라4,4 참조). 그런데 교회 교도권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 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이스라엘 사람이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는 않습니다. 성서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는 점이 예수 그리스도를 대리하기 위한 조건이 되지 않는데, 성서에서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하는 성(性)의 구별이 그리스도를 대리하기 위한 본질적인 조건이 되는 현재의 전통은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닐까요?
또 신랑과 신부의 상징은 성별이 아니라, 그 상징이 무엇을 표현하고자 하는가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에 비유할 때 이는, 예수께서 배우자인 교회를 위해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면서 끝까지 사랑하신 점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신랑의 상징에서 핵심이 남성이 아니라 마지막까지 충실한 사랑이라면, 이런 사랑의 상징으로 남성만이 아니라 여성도 가능하지 않을까요?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신학적으로 엄밀히 말해 여성의 사제서품을 반대할 필연적인 이유는 없다고 봅니다. 그러면 어느 때라도 여성사제직을 허용할 수 있을까요? 이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합니다. 성공회의 경우 몇 년 전에 여성사제직을 허용하였는데, 이에 반대하는 이들과 대립을 이루어 교회가 분열될 위험에까지 직면하였습니다. 주교를 포함한 많은 성직자들이 성공회를 떠나기까지 했습니다. 우리 가톨릭 교회에도 사전에 준비 없이 당장 여성사제직을 허용한다면 이와 비슷한 일이 벌어질 것은 거의 확실합니다. 교회의 일치와 화합은 그리스도의 간절한 소망으로서(요한 17장 참조) 교회가 항상 염두해 두어야 하는 아주 중요한 사항입니다. 그래서 어떤 제도를 도입할 때 교회가 분열될 위험이 아주 크다면, 적어도 그 실행의 시기에 대해서는 신중하게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이런 맥락에서 여성사제직을 허용하기에 앞서 성직자와 신자들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여성을 남성과 동등한 품위와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존중하는 생각이 자리잡을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사실 여성을 무시하는 경향은 교회 내에서도 아직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남성들은 물론 여성들 자신의 의식 속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된 의식이 어느 정도 고쳐진 후에 여성사제직이 도입된다면 큰 혼란은 없을 것입니다. 미처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을 때 이루어지는 개혁은 실패하기 쉽습니다. 여성사목회장, 여성 성체분배자조차 잘 받아들이지 못하는 우리의 풍토에서 여성사제를 받아들이기란 더욱 힘들지 않겠습니까? 잘 준비된 개혁만이 열매를 맺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본당에서 활동하시는 신부님의 경우에는 본당에서, 수도회 신부님들의 경우에는 수도회에서 생활비를 제공합니다. 군종 신부님들이나 교육 계통에서 일하는 신부님, 그 밖에 전문사목, 특수사목에 임하는 신부님들은 소속 교구로부터 도움을 받습니다. 은퇴 신부님들은 소속 교구에서 생활에 대한 일체의 책임을 집니다.
교회 공동체를 위해 일생 동안 자신을 바치는 성직자가 교회로부터 생계유지에 대한 도움을 받는 것은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이에 대해서 바오로 사도는 일찍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 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주셨습니다"(1고린 9,13-14). 이렇게 교회 공동체가 성직자의 생계 유지를 책임지는 것은 먹고 사는 일에 골몰하지 말고 맡은 사명에 충실하라는 데에 그 의도가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 교회에서는 지난 수십 년 동안 은퇴하는 사제는 늘어나는 반면 사제 희망자는 현저하게 줄어들어 큰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와 반대로 우리나라는 ''80년대 중반부터 신자들이 급격히 증가하면서 사제 지망자도 늘어났습니다. 그러나 지난 몇 년 이래로 사제 지망자가 점점 줄어드는 추세라고 합니다. 왜 이렇게 되었는지를 차근차근 살펴보고 이런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다각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위기 극복 방안 중의 하나는 사제나 수도자 배출에 못자리가 되는 가정과 본당 공동체가 활성화되는 것입니다. 사제가 되려면 본인의 의사도 있어야 하지만 궁극적으로 하느님의 부르심, 즉 성소(聖召)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부르심은 대부분 다른 사람을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집니다. 적지 않은 사제나 수도자들은 가정에서 부모의 모범적인 신앙생활을 보면서, 신자 친척이나 친지의 권유를 통해서 자신의 성소를 깨닫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복음 정신에 충실하게 믿음, 희망, 사랑의 삶을 가꾸어가는 가정과 본당 공동체는 성소의 못자리라고 하겠습니다.
성소 개발을 위해 본당에서 성직자들이 나름대로 관심을 갖고 노력을 해야 합니다만, 신자들, 특히 가정에서 부모들의 관심과 노력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부모들이 자녀들과 함께 기도하고 그들의 신앙 교육에 관심을 기울일 때 사제, 수도성소가 풍성해질 것입니다.
요즈음 조기 교육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부모들이 아이들을 영어, 미술, 컴퓨터 학원 등에는 열심히 보내면서 정작 중요한 신앙 교육은 소홀히 합니다. 또 자녀들의 학교 공부에는 전력을 기울이면서 성당의 주일학교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심지어 대학입시를 앞둔 자녀들에게 시간을 뺏기니까 성당에 나가지 말라고 ''시한부 냉담''을 종용하는 부모도 있습니다. 이런 풍토에서는 사제, 수도성소가 증가할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달라고 청하여라"(마태 9,38)고 권고하였습니다. 이 권고에 따라 성직자와 평신도 모두 힘을 합쳐서 성소 개발을 위해 열심히 기도하고 다각적으로 노력하면 좋겠습니다.
성소(聖召)란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Vocatio)입니다. 넓은 의미의 성소란 하느님의 뜻에 따라 해당되는 삶의 길을 가는 것을 말하지만, 좁은 의미의 성소는 성직자나 수도자로 부름을 받아 자신의 삶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바치는 것을 말합니다. 성소는 자신에 의해서 되는 것이 아니고 먼저 부르심이 있어야 하고 여기에 인간이 응답하는 것입니다. 성직자 성소나 수도자 성소는 먼저 자신이 성소생활을 원해야 하고 다음으로는 교회의 장상에 의하여 그 성소가 받아들여져야 완전한 성소가 됩니다.
어떤 사람의 성소가 확정되기 위해서는 먼저 성령의 역사하심이 있어야 합니다. 그 다음 그 사람은 하느님의 영광과 인류 구원을 위해 봉사하는 생활에 매력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마음을 교회가 받아들이게 됩니다. 물론 이러한 부르심은 그 사람을 강제로 사로잡지 않고 오히려 그 사람이 부르심에 자유롭게 응답하거나 거부하도록 충분한 시간적, 심리적 여유를 줍니다. 부르심은 눈에 보이는 기적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어떤 사람이 성직자나 수도자의 삶을 살아가고자 하는 마음을 갖고 있으면서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한다면 이미 하느님의 부르심인 성소가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제(司祭)는 참된 것, 고상한 것, 옳은 것, 순결한 것, 사랑스러운 것, 영예로운 것, 덕스럽고 칭찬할 만한 것들을 마음속에 품고, 이를 실행하고 평화의 하느님과 함께 살면서(필립 4,8-9 참조) 왕이신 스승 그리스도께 봉사하기 위하여 선택되어 그리스도의 직무를 수행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제는 기도와 예배를 행할 때, 말씀을 설교할 때, 성체의 제사를 집전할 때, 다른 성사를 거행할 때, 사람들을 위한 그 밖의 직무를 수행할 때에 하느님의 영광을 더하고 사람들을 하느님의 생명 안에 진보시키는 데에 기여합니다(사제교령 2항 참조)
첫째, 사제는 미사를 집전하여 제사를 드립니다. 사제는 예수님께서 마지막 만찬 때에 제정하신 성체성사를 미사 중에 이루고, 십자가 위에서 죽으심으로 당신을 아버지 하느님께 바치신 것을 재현합니다. 그리스도의 분부대로 제자들을 통하여 계승되는 가장 거룩한 일을 사제가 행합니다.
둘째, 사제는 하느님의 말씀인 복음을 전합니다. 이 사명은 예수님의 지상명령이며 세상 끝날까지 계속될 것입니다(마태 28, 18-20 참조)
신자들은 사제가 그 직무를 다할 수 있도록 다음 몇 가지 사항에 유의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사제는 모든 이를 위한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필요 이상으로 자주 찾아가고 긴 시간을 빼앗아 마치 자신만을 위한 사제인 것처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사제는 모든 인간적인 욕구를 오직 교회 발전을 위해 희생하며 살아갑니다. 따라서 신자들은 사제가 수행하는 사목 계획에 적극 협력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사제에게도 인간적 실수나 약점이 있을 수도 있으므로 약점을 볼 때마다 비평이나 불평을 하기보다는 사제의 약점을 감싸 줄 수 있는 아량을 가져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게을리하지 말아야 합니다.
끝으로 사제는 교회와 신자들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므로 신자들은 사제에게 순명해야 합니다. 만일 사제의 요구가 부당하다고 생각되거든 조용히 사제를 찾아가 자기의 생각을 말하고 사제의 분명한 뜻을 알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모든 신자는 사제를 보호하고 언제나 사제를 위하여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나라에는 일곱 개의 대신학교가 있는데 학교에 따라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신학교는 대학과정 4년과 대학원과정 3년, 모두 7년의 교육과정을 통해서 신학생들에게 학식과 성덕 연마를 위한 교육을 실시하고 있습니다. 교육과정 중에 독서직과 시종직을 받고 교육과정 수료 1년 전에 부제품을 받고 7년 과정을 마치면서 사제로 서품됩니다.
사제는 성무를 담당하는 제관이고, 신자 공동체의 지도자이므로 신체적, 정신적, 결함이 없어야 합니다. 그리고 사제 희망자는 사제의 생활과 직무를 이해할 정도의 신앙이 있어야 하므로, 영세후의 신앙생활이 적어도 3년은 넘어야 신학교에 입학할 수 있습니다. 이 밖에도 신체상의 결함이 있는 사람이나 또 가족 중에 누군가가 또는 본인이 정신적 결함이 있는 경우, 그리고 불미스러운 결손가정이거나 신자의 수제 의무를 소홀히 하는 가정에 속한 사람은 특별한 심사를 거쳐야 합니다. 그러나 본인의 탓이 아닌 고아 또는 이혼한 부모의 자녀들인 경우 신학교 입학의 결격 사유가 되지는 않습니다(사목지침서 제101조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