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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3월 12일 화요일

[(자) 사순 제4주간 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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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뉴스 추천 성가

굿뉴스 추천 성가
입당 성가 118번 골고타 언덕 영성체 성가 179번 주의 사랑 전하리
예물준비 성가 217번 정성어린 우리 제물 172번 그리스도의 영혼
340번 봉헌 152번 오 지극한 신비여
파견 성가 119번 주님은 우리 위해 (3-4절)

입당송

이사 55,1 참조
주님이 말씀하신다. 목마른 자들아, 모두 물가로 오너라. 돈이 없는 자들도 와서 기쁘게 마셔라.

본기도

주님, 이 참회와 기도의 때에 저희 마음을 바로잡아 주시어, 파스카 신비를 올바로 깨달아 열심히 살게 하시고, 형제들에게 구원의 기쁜 소식을 널리 전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에제키엘 예언자는 환시를 통해 모든 피조물이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로 생명을 얻어 활력을 갖게 되는 것을 본다. 이는 앞으로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주실 영원한 구원에 대한 약속을 상징하는 것이다(제1독서). 예수님 시대에 이스라엘에서는 예루살렘의 벳자타 못의 물이 출렁거릴 때 처음으로 뛰어드는 사람은 병이 낫는다고 믿고 있었다. 그 못가에는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누워 있는 사람이 있었는데, 예수님께서 그를 일으키셨다. 그에게 새 생명을 준 것은 벳자타의 물이 아니라, 생명의 물을 약속하신 예수님이셨던 것이다(복음).

제1독서

<나는 성전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보았고, 그 물이 가는 곳마다 모든 이가 구원되었다(부활 성야 세례 서약 갱신 후 노래).>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47,1-9.12
그 무렵 천사가 1 나를 데리고 주님의 집 어귀로 돌아갔다. 이 주님의 집 정면은 동쪽으로 나 있었는데, 주님의 집 문지방 밑에서 물이 솟아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다. 그 물은 주님의 집 오른쪽 밑에서, 제단 남쪽으로 흘러내려 갔다. 2 그는 또 나를 데리고 북쪽 대문으로 나가서, 밖을 돌아 동쪽 대문 밖으로 데려갔다. 거기에서 보니 물이 오른쪽에서 나오고 있었다.
3 그 사람이 동쪽으로 나가는데, 그의 손에는 줄자가 들려 있었다. 그가 천 암마를 재고서는 나에게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발목까지 찼다. 4 그가 또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무릎까지 찼다. 그가 다시 천 암마를 재고서는 물을 건너게 하였는데, 물이 허리까지 찼다. 5 그가 또 천 암마를 재었는데, 그곳은 건널 수 없는 강이 되어 있었다. 물이 불어서, 헤엄을 치기 전에는 건널 수 없었다. 6 그는 나에게 “사람의 아들아, 잘 보았느냐?” 하고서는, 나를 데리고 강가로 돌아갔다.
7 그가 나를 데리고 돌아갈 때에 보니, 강가 이쪽저쪽으로 수많은 나무가 있었다. 8 그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물은 동쪽 지역으로 나가, 아라바로 내려가서 바다로 들어간다. 이 물이 바다로 흘러들어 가면, 그 바닷물이 되살아난다. 9 그래서 이 강이 흘러가는 곳마다 온갖 생물이 우글거리며 살아난다. 이 물이 닿는 곳마다 바닷물이 되살아나기 때문에, 고기도 아주 많이 생겨난다. 이렇게 이 강이 닿는 곳마다 모든 것이 살아난다.
12 이 강가 이쪽저쪽에는 온갖 과일나무가 자라는데, 잎도 시들지 않으며 과일도 끊이지 않고 다달이 새 과일을 내놓는다. 이 물이 성전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 과일은 양식이 되고 잎은 약이 된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46(45),2-3.5-6.8-9(◎ 8)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 우리의 힘. 어려울 때마다 늘 도와주셨네.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네. 땅이 뒤흔들린다 해도, 산들이 바다 깊이 빠진다 해도. ◎
○ 강물이 줄기줄기 하느님의 도성을, 지극히 높으신 분의 거룩한 거처를 즐겁게 하네. 하느님이 그 안에 계시니 흔들리지 않네. 하느님이 동틀 녘에 구해 주시네. ◎
○ 만군의 주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네. 야곱의 하느님이 우리의 산성이시네. 와서 보아라, 주님의 업적을, 이 세상에 이루신 놀라운 일을! ◎

복음 환호송

시편 51(50),12.14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 하느님, 제 마음을 깨끗이 만드시고, 구원의 기쁨을 제게 돌려주소서.
◎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받으소서.

복음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었다.>
+ 요한이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1-16
1 유다인들의 축제 때가 되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의 ‘양 문’ 곁에는 히브리 말로 벳자타라고 불리는 못이 있었다. 그 못에는 주랑이 다섯 채 딸렸는데, 3 그 안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다. (4)
5 거기에는 서른여덟 해나 앓는 사람도 있었다. 6 예수님께서 그가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이미 오래 그렇게 지낸다는 것을 아시고는,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그에게 물으셨다.
7 그 병자가 예수님께 대답하였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8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거라.” 9 그러자 그 사람은 곧 건강하게 되어 자기 들것을 들고 걸어갔다.
그날은 안식일이었다. 10 그래서 유다인들이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오. 들것을 들고 다니는 것은 합당하지 않소.” 하고 말하였다.
11 그가 “나를 건강하게 해 주신 그분께서 나에게, ‘네 들것을 들고 걸어가라.’ 하셨습니다.” 하고 대답하자, 12 그들이 물었다.
“당신에게 ‘그것을 들고 걸어가라.’ 한 사람이 누구요?” 13 그러나 병이 나은 이는 그분이 누구이신지 알지 못하였다. 그곳에 군중이 몰려 있어 예수님께서 몰래 자리를 뜨셨기 때문이다.
14 그 뒤에 예수님께서 그 사람을 성전에서 만나시자 그에게 이르셨다. “자, 너는 건강하게 되었다. 더 나쁜 일이 너에게 일어나지 않도록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15 그 사람은 물러가서 자기를 건강하게 만들어 주신 분은 예수님이시라고 유다인들에게 알렸다. 16 그리하여 유다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그러한 일을 하셨다고 하여, 그분을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께서 주신 이 예물을 봉헌하오니, 이 제사가 저희 육신의 삶에 도움이 되고, 저희 영혼에는 불멸의 영약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사순 감사송: 304면 참조>

영성체송

시편 23(22),1-2
주님은 나의 목자, 아쉬울 것 없어라. 푸른 풀밭에 나를 쉬게 하시고, 잔잔한 물가로 나를 이끄시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인자하신 주님, 이 천상의 성사로 저희 마음을 깨끗하게 하시고 새롭게 하시어, 저희 죽을 몸이 새로운 생명을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에 나오는 벳자타 못 주위에는 눈먼 이, 다리 저는 이, 팔다리가 말라비틀어진 이 같은 병자들이 많이 누워 있었습니다. 왜 이토록 많은 병자들이 못가에 모여 있었을까요? 벳자타 못에 이따금 천사가 내려오면 물이 출렁거리게 되는데, 그 순간 가장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치유된다는 믿음이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뜻 보면 벳자타 못은 모든 병자에게 ‘희망의 못’으로 여겨집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에 소개된 서른여덟 해 동안이나 앓고 있는 병자에게는 ‘절망의 못’일 수밖에 없습니다. 물이 출렁거릴 때 가장 먼저 물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동작이 빠른 이, 곧 덜 아픈 사람입니다. 많이 아프면 아플수록 1등일 수 있는 가능성은 적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서른여덟 해나 앓고 있는 그 사람은 예수님께서 “건강해지고 싶으냐?” 하고 물으셨을 때 다음과 같이 대답합니다. “선생님, 물이 출렁거릴 때에 저를 못 속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는 동안에 다른 이가 저보다 먼저 내려갑니다.”
벳자타 못 주위의 병자들 중에서 가장 먼저 물속에 뛰어든 이만의 병이 낫는다는 것은 민간 신앙이었고, 그 믿음은 세속의 이치와도 너무나 닮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르셨습니다. 1등만 인정해 주는 ‘절망의 못’ 벳자타에서 꼴등의 삶을 살고 있었던 병자를 도와주신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은 당시의 민간 신앙과는 참으로 다릅니다. 세속의 이치와도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1등이 아닌 꼴등을 가장 먼저 생각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한 주님께 나약한 우리의 모습을 온전히 내어 드리는 태도가 바로 우리의 신앙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