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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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월 8일 수요일

[(백) 주님 공현 후 수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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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이사 9,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암흑의 땅에 사는 이들에게 빛이 비치네.

본기도

온 인류를 비추시는 하느님, 하느님의 백성이 한결같은 평화를 누리게 하시고, 저희 조상의 정신을 밝히시던 그 빛으로 저희 마음도 비추어 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우리의 응답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사랑이신 그분께서는 우리와 함께 머무르신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낸다(제1독서). 배에서 풍랑과 씨름하다가 호수 위를 걸어 다가오시는 예수님을 본 제자들은 아직 기적의 뜻을 깨닫지 못했기에 두려워하고 놀란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용기를 불어넣으시고 풍랑을 멈추게 하신다(복음).

제1독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십니다.>
▥ 요한 1서의 말씀입니다. 4,11-18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느님께서 우리를 이렇게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느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시고 그분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됩니다.
13 하느님께서는 우리에게 당신의 영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로 우리가 그분 안에 머무르고 그분께서 우리 안에 머무르신다는 것을 압니다. 14 그리고 우리는 아버지께서 아드님을 세상의 구원자로 보내신 것을 보았고 또 증언합니다.
15 누구든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고백하면, 하느님께서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시고 그 사람도 하느님 안에 머무릅니다. 16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을 우리는 알게 되었고 또 믿게 되었습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사랑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무르고 하느님께서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르십니다.
17 사랑이 우리에게서 완성되었다는 것은, 우리도 이 세상에서 그분처럼 살고 있기에 우리가 심판 날에 확신을 가질 수 있다는 사실에서 드러납니다. 18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아냅니다. 두려움은 벌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는 이는 아직 자기의 사랑을 완성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72(71),1-2.10-11.12-13(◎ 11 참조)
◎ 주님, 세상 모든 민족들이 당신을 경배하리이다.
○ 하느님, 당신의 공정을 임금에게, 당신의 정의를 임금의 아들에게 베푸소서. 그가 당신 백성을 정의로, 가련한 이들을 공정으로 다스리게 하소서. ◎
○ 타르시스와 섬나라 임금들이 예물을 가져오고, 세바와 스바의 임금들이 조공을 바치게 하소서. 모든 임금들이 그에게 경배하고, 모든 민족들이 그를 섬기게 하소서. ◎
○ 그는 하소연하는 불쌍한 이를, 도와줄 사람 없는 가련한 이를 구원하나이다. 약한 이, 불쌍한 이에게 동정을 베풀고, 불쌍한 이들의 목숨을 살려 주나이다. ◎

복음 환호송

1티모 3,16 참조
◎ 알렐루야.
○ 모든 민족들에게 선포되신 그리스도님, 영광 받으소서. 온 세상이 믿게 된 그리스도님, 영광 받으소서.
◎ 알렐루야.

복음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았다.>
+ 마르코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45-52
예수님께서는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신 뒤, 45 곧 제자들을 재촉하시어 배를 타고 건너편 벳사이다로 먼저 가게 하시고, 그동안에 당신께서는 군중을 돌려보내셨다. 46 그들과 작별하신 뒤에 예수님께서는 기도하시려고 산에 가셨다.
47 저녁이 되었을 때, 배는 호수 한가운데에 있었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뭍에 계셨다. 48 마침 맞바람이 불어 노를 젓느라고 애를 쓰는 제자들을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새벽녘에 호수 위를 걸으시어 그들 쪽으로 가셨다. 그분께서는 그들 곁을 지나가려고 하셨다.
49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호수 위를 걸으시는 것을 보고, 유령인 줄로 생각하여 비명을 질렀다. 50 모두 그분을 보고 겁에 질렸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곧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용기를 내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마라.” 51 그러고 나서 그들이 탄 배에 오르시니 바람이 멎었다.
그들은 너무 놀라 넋을 잃었다. 52 그들은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하고 오히려 마음이 완고해졌던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하느님, 저희에게 참된 믿음과 평화를 주셨으니, 저희가 예물을 바쳐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을 합당히 공경하고, 거룩한 제사에 참여하여 온 마음으로 이 신비와 하나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감사송

<성탄 또는 주님 공현 감사송: 181면 또는 182면 참조>

영성체송

1요한 1,2 참조
생명이 나타나셨네. 아버지와 함께 계시다가 우리에게 나타나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을 온갖 은혜로 다스리시니, 오늘도 내일도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덧없는 현세에서도 위안을 받고, 영원한 세상을 향하여 더욱 힘차게 나아가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사랑’은 알다가도 모르겠습니다. 그 안에 머물러 기꺼워하기도 했고 또 생생하게 손에 잡았던 것 같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그 사랑이 낯선 사람의 얼굴처럼 느껴지고, 처음 배우는 외국어처럼 제대로 된 사랑의 말이 한마디도 흘러나오지 않을 때가 자주 있습니다. 마치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의 제자들이 그 절박한 상황에서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한 채 두려움에 질려 버린 모습과도 같습니다.
살아가면서 사랑이신 하느님에 대하여 그리 많이 듣고 체험하면서도 삶의 중요한 순간에서는 사랑에 신뢰하고 응답하기보다는 두려움과 경계심으로 나를 보호하려 드는 유혹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다 문득 사랑은, 사실은, 수수께끼나 모순이 아니라 신비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유명한 가톨릭 작가 체스터튼은 그의 추리 소설에서, 실제 인물을 대상으로 하였다는 명탐정 브라운 신부의 입을 빌려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진짜 신비한 것은 정체를 감추지 않고 오히려 모두 드러내는 법이지요. 모든 것을 백일하에 드러내도 여전히 알 수 없는 부분이 남아 있으니까요.”
사랑의 신비는 나에게 숨겨 있지 않습니다. 또한 내가 억지로 장악하고 비밀을 밝혀낼 도전의 대상도 아닐 것입니다. 오히려 그 앞에 무릎을 꿇고 마음을 열어 받아들일 때만이 사랑을 ‘소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제 완전한 사랑의 불가능에 대한 질문의 긴 시간을 졸업했으면 좋겠습니다. 그 대신 마음을 열고, 두려움을 쫓아내는 사랑의 신비 앞에 조용히 머물며 그 사랑과 함께 숨 쉬고 싶은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