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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1 편 신앙 고백

교회 교리서
제 2 부 그리스도교 신앙 고백 제 3 장 성령을 믿나이다 제8절 “성령을 믿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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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8절 “성령을 믿으며”

687 “하느님의 영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하느님의 생각을 깨닫지 못합니다”(1코린 2,11). 하느님계시해 주시는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살아 계신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우리에게 알려 주시지만, 자신에 대해서는 말씀하지 않으신다. “예언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던 분이”(5) 우리에게 성부의 ‘말씀’을 들려주신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의 말씀을 듣지 못한다. 우리에게 ‘말씀’을 계시해 주시고 신앙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성령의 활동을 통해서만 성령을 알 수 있다. 우리에게 그리스도를 ‘드러내시는’ 진리성령께서는 “스스로 이야기하지 않으신다.”(6) 참으로 하느님다운 이러한 숨김은, “세상은 그분을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하기 때문에 그분을 받아들이지 못하지만”(요한 14,17)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이 그분을 아는 것은 그분께서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이라는 것을 설명해 준다.
688 교회는 교회가 전하는 사도들의 신앙 안에 살아 있는 친교로서, 성령을 인식하는 장소이다. 곧,
- 성령께서 영감을 주신 성경 안에서,
- 교부들의 증언이 언제나 살아 있는 전통 안에서,
- 성령께서 도우시는 교회교도권 안에서,
- 성령께서 우리에게 그리스도친교를 이루게 하시는 성사전례 안에서 말씀과 상징을 통하여,
- 우리를 위하여 성령께서 전구해 주시는 기도 안에서,
- 교회를 이루는 은사와 직무 안에서,
- 사도적 삶과 선교적 삶의 표징들 안에서,
- 성령께서 당신의 거룩함을 드러내고 구원 사업을 계속하시는 성인들의 증거 안에서.

I. 성자와 성령의 공동 파견

689 성부께서 우리 마음에 보내 주신 당신 아드님의 영께서는(7) 참으로 하느님이시다. 성령께서는 성부성자와 한 본체이시며, 삼위일체의 내적 ‘생명’에서나 세상을 위한 당신 사랑의 선물에서나 성부성자와 분리되실 수 없다. 그러나 교회신앙생명을 주시며, 동일한 본질이시고, 나누어질 수 없는 삼위일체 하느님경배하면서, 세 위격의 구별도 또한 고백한다. 성부께서 당신의 ‘말씀’을 보내실 때 언제나 당신의 ‘성령’도 보내신다. 성자성령께서는 서로 구별되면서도 분리되지 않고 함께 파견되신다. 물론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볼 수 있는 모습인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시지만, 그리스도계시하시는 분은 성령이시다.
690 예수님께서는 ‘기름부음받은이’ 곧 그리스도이시다. 성령께서 그분에게 ‘부어지셨기’ 때문이며, 강생에서부터 그분에게 일어난 모든 일은 이러한 성령의 충만함에서(8) 비롯되기 때문이다. 마침내 그리스도께서 영광을 받으셨을 때(9) 이번에는 그리스도께서 성부 곁에서, 당신을 믿는 사람들에게 성령을 보내실 수 있게 되었다.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영광을,(10) 곧 당신을 영광스럽게 하는 성령(11) 그들에게 주신다. 그리하여 이 공동 파견성부께서 성자신비체 안에서 자녀로 삼으신 그들 안에 펼쳐질 것이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성령의 사명은 그들을 그리스도와 결합시키고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게 하는 일이다.
기름부음이라는 개념은……성자와 성령 사이에 아무런 거리가 없음을 암시합니다. 사실 피부와 기름부음 사이에 이성적으로나 감각적으로 아무런 매개물을 인정할 수 없듯이, 성자성령의 접촉도 직접적입니다. 따라서 신앙으로 성자와 접촉하고자 하는 사람은 먼저 반드시 기름과 접촉해야 합니다. 사실 성령께서 감싸지 않는 부분은 없습니다. 이 때문에 성자주님으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고백은, 신앙을 통하여 모이는 사람들에게 어디서나 다가오시는 성령 안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2)

II. 성령의 이름과 칭호와 상징

성령의 고유한 이름

691 ‘성령’, 이는 우리가 성부성자와 함께 경배하고 영광을 드리는 그분의 고유한 이름이다. 교회는 이 이름을 주님께 받았으며, 새로운 자녀가 되는 세례 때 이를 고백한다.(13)
‘영’(靈)이라는 용어는 히브리 말 ‘루아’(Ruah)의 번역으로, 본래 숨결, 공기, 바람 등을 의미한다. 예수님께서는 위격적으로 하느님의 ‘숨결’, 하느님의 ‘영’이신 그분의 새롭고도 초월적인 존재를 니코데모에게 암시하기 위해, 감지할 수 있는 바람의 비유를 적절하게 사용하신다.(14) 한편 영(靈)과 성(聖)은 삼위에 공통된 하느님 속성이다. 그런데 성경전례신학 언어는, ‘영’과 ‘성’이라는 말이 여러 가지로 달리 쓰이는 혼동을 피하면서, 이 두 용어를 결합시켜 성령의 형언할 수 없는 위격을 가리킨다.

성령의 고유한 칭호

692 예수님께서 성령이 오실 것을 예고하고 약속하실 때 그분을 ‘파라클리토’(Paracletos)라고 부르는데, 이는 글자 그대로 ‘곁으로 불려 온 분’(ad-vocatus) 곧 보호자라는 뜻이다(요한 14,16.26; 15,26; 16,7). ‘파라클리토’는 일반적으로 ‘변호자’라고 번역되기도 하는데, 예수님께서 바로 첫 변호자이시다.(15) 주님께서 친히 성령을 “진리의 영”(16) 이라고 부르신다.
693 사도행전과 서간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성령’이라는 그분의 고유한 이름 외에,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는 약속된 성령(갈라 3,14; 에페 1,13), 입양의 영(로마 8,15; 갈라 4,6), 그리스도의 영(로마 8,9), 주님의 영(2코린 3,17), 하느님의 영(로마 8,9.14; 15,19; 1코린 6,11; 7,40) 등의 칭호를 찾아볼 수 있으며, 베드로 사도의 편지에는 “영광의 성령”(1베드 4,14)이라는 칭호도 있다.

성령의 상징

694 물. 물은 세례에서 성령의 활동을 상징한다. 왜냐하면 성령 청원 기도 후에, 물은 새로운 탄생을 나타내는 유효한 성사적 표징이 되기 때문이다. 우리의 첫 탄생을 위한 잉태가 물속에서 이루어지듯이, 세례수는 하느님 생명으로 다시 나는 우리의 탄생이 성령 안에서 주어진다는 것을 실제적으로 의미한다. 우리는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 성령을 받아 마셨다”(1코린 12,13). 그러므로 성령께서는 또한 샘에서 물이 솟아나듯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라는 샘에서 솟아나는 생수이시며,(17) 이 생수는 우리 안에서 솟아올라 영원생명을 주신다.(18)
695 기름부음. 기름부음성령상징한다. 성령기름부음은 동의어로 쓰일 정도이다.(19)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에서 기름부음은 견진의 성사적 표징인데 동방 교회에서는 이 성사를 ‘축성 성유(크리스마) 도유’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 기름부음의 효력 전체를 파악하려면 성령께서 처음으로 행하신 기름부음, 곧 예수님의 기름부음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그리스도(히브리 말로 ‘메시아’)는 하느님성령으로 ‘기름부음을 받은 분’을 의미한다. 구약에는 주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이들’이 있었고,(20) 그중의 특출한 예가 다윗 임금이었다.(21)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독특한 방식으로 하느님기름부음을 받으셨다. 성자께서 취하신 인성은 온전히 ‘성령의 기름부음’을 받았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로 세워지셨다.(22) 동정 마리아성령으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성령께서는 그분의 탄생 때 천사를 통해 그분을 그리스도라고 알리시며,(23) 시메온을 성전으로 이끌어 주님의 그리스도를 만나 뵙게 하신다.(24) 성령께서는 그리스도를 가득 채우시고,(25) 성령의 힘은 그리스도의 치유와 구원의 행위들 안에서 드러난다.(26) 마침내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다.(27) 이리하여 죽음을 이긴 당신 인성 안에 충만히 ‘그리스도’로 세워지신 예수님께서는(28) ‘성도’들에게 성령을 넘치게 부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 아들의 인성과 결합하여 “성숙한 사람이 되며 그리스도의 충만한 경지에 다다르게”(에페 4,13) 하신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표현에 따르면 ‘온전한 그리스도’에 이르게 하신다는 것이다.(29)
696 불. 물이 성령 안에서 주어지는 ‘생명’의 탄생과 풍요를 가리킨다면, 불은 성령의 활동이 지닌 변화시키는 힘을 상징한다. 엘리야 예언자는 “불처럼 일어섰는데 그의 말은 횃불처럼 타올랐다”(집회 48,1). 엘리야는 자신의 기도로 카르멜 산 위 제물에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하였다.(30) 이 불은 닿는 것을 변화시키시는 성령상징한다.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온”(루카 1,17) 세례자 요한그리스도께서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루카 3,16) 분이심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신다. “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루카 12,49) 성령께서는 오순절 아침 “불꽃” 모양의 혀들이 갈라져 제자들 위에 내려오셔서 그들의 마음을 채우신다.(31) 영성적 전통은 이 불이 성령의 활동을 가장 잘 표현하는 상징의 하나로 간직해 왔다.(32) “성령의 불을 끄지 마십시오”(1테살 5,19).
697 구름과 빛. 이 두 상징성령의 발현과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구약의 하느님 발현 때부터 구름은, 때로는 어두운 구름으로, 때로는 빛나는 구름으로, 그 초월적 영광을 덮어, 살아 계시구원하시는 하느님계시한다. 예컨대, 시나이 산에서 모세와 더불어,(33) 만남의 장막에서,(34) 광야를 걷는 동안에,(35) 그리고 솔로몬이 성전봉헌할 때(36) 구름이 덮었다. 이러한 상징들을 그리스도께서는 성령 안에서 성취하신다. 성령께서 동정 마리아 위에 내려와 “감싸 주시어”(37) 예수님을 잉태하고 낳게 하신다.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가 일어난 산에서 성령의 “구름이 일어” 예수님과 모세, 엘리야,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덮었다. 그리고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루카 9,34-(35)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승천하시던 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구름에 감싸여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다.”(38) 이 구름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 사람의 아들을 그 영광 안에서 드러내 보일 것이다.(39)
698 인호(印號). 인호라는 상징기름부음과 가까운 상징이다. 과연 “아버지 하느님께서 날인하신”(요한 6,27) 분은 그리스도이시며, 성부께서는 그분을 통해 우리에게 날인하신다.(40) 인호(sphragis)라는 상징은 세례와 견진, 성품성사에서 성령기름부음의 지워지지 않는 결과를 가리키기 때문에, 반복될 수 없는 이 세 성사가 남기는 지울 수 없는 ‘특성’을 표현하고자 일부 신학 전통은 이 인호의 표상을 사용해 왔다.
699 안수. 예수님께서는 손을 얹어 병자들을 치유하시고,(41)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다.(42) 사도들도 예수님의 이름으로 같은 행동을 한다.(43) 더 나아가 사도들의 안수성령이 주어진다.(44) 히브리서에서 안수는 ‘기초 교리’ 가운데 하나이다.(45) 교회성사 집전에서 성령 청원 기도 안에 성령이 강하게 주어짐을 의미하는 이 표징을 보존하였다.
700 손가락.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신다.”(46) 하느님의 율법은 “하느님께서 손가락으로”(탈출 31,18) 돌 판에 쓰셨지만, 사도들에게 써 주신 “그리스도의 추천서”는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 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다”(2코린 3,3). 성가 “오소서 창조주 성령님”(Veni Creator Spiritus)은 “하느님의 오른 손가락”(47) 이신 성령기도한다.
701 비둘기. 대홍수(대홍수는 세례와 관련된 상징이다)가 끝났을 때, 노아가 날려 보낸 비둘기는 땅이 다시 사람이 살 수 있게 되었음을 나타내는 싱싱한 올리브 잎을 부리에 물고 돌아온다.(48) 그리스도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그분 위에 내려와 머무르신다.(49) 성령께서는 세례 받은 이들의 정화된 마음에 내려오셔서 머물러 계신다. 어떤 성당들은 제대 위에 매달린 비둘기 모양의 금속 그릇(columbarium)에 성체를 모셔 둔다. 성령을 암시하는 비둘기의 상징그리스도교 성화상의 전통적인 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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