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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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1일 토요일

[(백) 성 베네딕토 아빠스 기념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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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베네딕토 성인은 480년 중부 이탈리아 ‘누르시아’에서 태어났다. 은수자의 삶을 시작하자 많은 이가 그의 명성을 듣고 모여들었다. 530년경 서방 수도원의 발생지가 되는 수도원을 건립하고 수도회 규칙을 만들었다. 올바른 금욕 생활, 기도와 공부, 그리고 노동을 중심으로 하는 공동생활이 핵심 내용이었다. 이후 성인은 ‘서방 수도 생활의 사부’라는 이름을 얻게 된다. 547년에 세상을 떠난 그를 바오로 6세 교황은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하였다. 베네딕토를 한문으로 표기한 것이 분도(芬道)다.

입당송

베네딕토는 그 이름대로 복을 받아 거룩하게 살았네. 그는 가족과 유산을 버리고, 오로지 하느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하려고 거룩한 수도 생활을 추구하였네.

본기도

하느님, 복된 베네딕토 아빠스를 하느님을 섬기는 학교의 큰 스승으로 세우셨으니, 저희도 오로지 주님만을 사랑하며, 자유롭고 열린 마음으로 주님의 계명을 따라 살아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야곱은 숨을 거두기 전 자기 아들들에게 당부한다. 자신을 조상들이 묻힌 가나안 땅에 묻어 달라는 유언이었다. 그곳은 아브라함이 사 둔 동굴 묘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요셉의 형제들은 요셉의 보복을 두려워한다. 하지만 요셉은 형제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말하였다. 이렇게 해서 야곱의 후손들은 이집트에 정착했다. 요셉은 장수를 누리다가 선종한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박해자들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왜 두려워하느냐고 하신다. 그러므로 진정 두려워할 분은 하느님 한 분뿐이시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그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49,29-31.33; 50,15-26ㄱ
그 무렵 29 야곱이 아들들에게 분부하였다. “나는 이제 선조들 곁으로 간다. 나를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의 밭에 있는 동굴에 조상들과 함께 묻어 다오. 30 그 동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맞은쪽 막펠라 밭에 있는 것으로, 아브라함께서 그 밭을 히타이트 사람 에프론에게서 묘지로 사 두셨다. 31 그곳에 아브라함과 그분의 아내 사라께서 묻히셨고, 그곳에 이사악과 그분의 아내 레베카께서 묻히셨다. 나도 레아를 그곳에 묻었다.”
33 야곱은 자기 아들들에게 분부하고 나서, 다리를 다시 침상 위로 올린 뒤, 숨을 거두고 선조들 곁으로 갔다.
50,15 요셉의 형들은 아버지가 돌아가신 것을 보고, “요셉이 우리에게 적개심을 품고, 우리가 그에게 저지른 모든 악을 되갚을지도 모르지.” 하면서, 16 요셉에게 말을 전하게 하였다. “아우님의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기 전에 이렇게 분부하셨네. 17 ‘너희는 요셉에게 이렇게 전하여라. ′너의 형들이 네게 악을 저질렀지만, 제발 형들의 잘못과 죄악을 용서해 주어라.′’ 그러니 아우님은 그대 아버지의 하느님의 이 종들이 저지른 잘못을 용서해 주게.”
요셉은 그들이 자기에게 이렇게 말한 것을 듣고 울었다. 18 이어 요셉의 형제들도 직접 와서 그 앞에 엎드려 말하였다. “이제 우리는 아우님의 종들일세.”
19 그러자 요셉이 그들에게 대답하였다.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하느님의 자리에라도 있다는 말입니까? 20 형님들은 나에게 악을 꾸몄지만, 하느님께서는 그것을 선으로 바꾸셨습니다. 그것은 오늘 그분께서 이루신 것처럼, 큰 백성을 살리시려는 것이었습니다. 21 그러니 이제 두려워하지들 마십시오. 내가 여러분과 여러분의 아이들을 부양하겠습니다.” 이렇게 요셉은 그들을 위로하며 다정하게 이야기하였다.
22 이렇게 해서 요셉과 그 아버지의 집안이 이집트에 자리 잡고 살게 되었다. 요셉은 백십 년을 살았다. 23 그러면서 요셉은 에프라임에게서 삼 대를 보았다. 므나쎄의 아들 마키르의 아들들도 태어나 요셉 무릎에 안겼다.
24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이제 죽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셔서, 여러분을 이 땅에서 이끌어 내시어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에게 맹세하신 땅으로 데리고 올라가실 것입니다.”
25 요셉은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맹세하게 하면서 일렀다. “하느님께서 반드시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입니다. 그때 여기서 내 유골을 가지고 올라가십시오.” 26 그리고 요셉은 죽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05(104),1-2.3-4.6-7(◎ 69〔68〕,33 참조)
◎ 가난한 이들아, 하느님을 찾아라. 너희 마음에 생기를 돋우어라.
○ 주님을 찬송하여라, 그 이름 높이 불러라. 그분 업적 민족들에게 알려라. 그분께 노래하여라, 찬미 노래 불러라. 그 모든 기적 이야기하여라. ◎
○ 거룩하신 그 이름 자랑하여라. 주님을 찾는 마음은 기뻐하여라. 주님과 그 권능을 구하여라. 언제나 그 얼굴을 찾아라. ◎
○ 그분의 종 아브라함의 후손들아, 그분이 뽑으신 야곱의 자손들아! 그분은 주 우리 하느님, 그분의 판결이 온 세상에 미친다. ◎

복음 환호송

1베드 4,14
◎ 알렐루야.
○ 그리스도의 이름 때문에 모욕을 당하면 너희는 행복하리니, 하느님의 성령이 너희 위에 머물러 계시리라.
◎ 알렐루야.

복음

<너희는 육신만 죽이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24-33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24 “제자는 스승보다 높지 않고, 종은 주인보다 높지 않다. 25 제자가 스승처럼 되고 종이 주인처럼 되는 것으로 충분하다. 사람들이 집주인을 베엘제불이라고 불렀다면, 그 집 식구들에게야 얼마나 더 심하게 하겠느냐?
26 그러니 너희는 그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 27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에서 말하는 것을 너희는 밝은 데에서 말하여라. 너희가 귓속말로 들은 것을 지붕 위에서 선포하여라.
28 육신은 죽여도 영혼은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마라. 오히려 영혼도 육신도 지옥에서 멸망시키실 수 있는 분을 두려워하여라.
29 참새 두 마리가 한 닢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그 가운데 한 마리도 너희 아버지의 허락 없이는 땅에 떨어지지 않는다. 30 그분께서는 너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어 두셨다. 31 그러니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는 수많은 참새보다 더 귀하다.
32 그러므로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안다고 증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안다고 증언할 것이다. 33 그러나 누구든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모른다고 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모른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복된 베네딕토의 축일을 지내며 드리는 이 거룩한 제사를 인자로이 굽어보시고, 저희가 그를 본받아 주님만을 찾고 섬기게 하시어 주님께서 주시는 일치와 평화를 누리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루카 12,42 참조
주님은 당신 가족을 맡겨 제때에 정해진 양식을 내어 줄, 충실하고 슬기로운 종을 세우셨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성체성사로 영원한 생명의 보증을 받고 간절히 청하오니, 저희가 복된 베네딕토의 가르침에 따라 주님을 충실히 섬기며, 진심으로 형제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예수님께서는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찮은 참새도 주님의 허락이 있어야 땅에 떨어진다고 하십니다. 그런데 우리는 너무 두려워합니다. 정체도 모르는 ‘막연한 두려움’에 열정을 빼앗기고 있습니다. 대부분은 ‘몰라도 되는 정보’를 너무 많이 알고 있는 탓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도 다 세어 두셨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관심을 갖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만큼 ‘나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 아버지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아무리 짜증 내고 불평해도 마음속을 뚫어 보고 계십니다. 우리는 주님 앞의 어린이일 뿐입니다.
그러니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증언해야 합니다. ‘두려움 없이 사는 것’이 그분을 증언하는 길입니다. 세상은 경쟁하듯 불안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앞날에 대해서는 알 수 없다고 외쳐 대고 있습니다. 그럴수록 주님께 맡겨야 아버지를 드러내는 삶이 됩니다.
그러면 주님께서도 우리를 증언해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앞날을 책임져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언제라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인생은 본래 ‘우리 것’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쁨으로 살다가 당신께 돌아오라며 맡기신 것이지요. 이제는 우리 삶에서 ‘사는 것이 두렵다.’는 표현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도록 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