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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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7월 13일 월요일

[(녹) 연중 제15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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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성 헨리코 기념
<연중 제20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84(83),10-11
보소서, 저희 방패이신 하느님. 당신 메시아의 얼굴을 굽어보소서. 당신 뜨락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천 날보다 더 좋사옵니다.

본기도

주 하느님, 주님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하여 보이지 않는 보화를 마련하셨으니, 저희에게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을 일으키시어, 언제나 어디서나 주님을 오롯이 사랑하여 주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모든 소망을 넘어서는 참행복을 누리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등장했다. 그는 이집트의 앞날을 걱정한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많아짐을 두려워한 것이다. 전쟁이 일어나 적군과 내통할까 봐 염려가 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억압 정책이 나타났다. 강제 노동으로 히브리인들을 약화시키기 시작한 것이다(제1독서). 평화와 칼은 상반되는 개념이다. 하지만 평화는 노력 없이는 주어지지 않는다. 칼로써 끊는 노력이다. 십자가를 지는 데 방해되는 것을 제거하려는 노력이다. 그러기에 목숨을 잃는 사람은 도리어 목숨을 얻는다고 하셨다(복음).

제1독서

<이스라엘 백성이 더 많아지지 못하게 다루어야겠다.>
▥ 탈출기의 말씀입니다. 1,8-14.22
그 무렵 8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 임금이 이집트에 군림하게 되었다. 9 그가 자기 백성에게 말하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보다 더 많고 강해졌다. 10 그러니 우리는 그들을 지혜롭게 다루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않으면 그들이 더욱 번성할 것이고,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그들은 우리 원수들 편에 붙어 우리에게 맞서 싸우다 이 땅에서 떠나가 버릴 것이다.”
11 그래서 이집트인들은 강제 노동으로 그들을 억압하려고 그들 위에 부역 감독들을 세웠다. 그렇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은 파라오의 양식을 저장하는 성읍, 곧 피톰과 라메세스를 짓게 되었다. 12 그러나 그들은 억압을 받을수록 더욱 번성하고 더욱 널리 퍼져 나갔다.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두려워하게 되었다. 13 그리하여 이집트인들은 이스라엘 자손들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
22 마침내 파라오가 온 백성에게 명령하였다. “히브리인들에게서 태어나는 아들은 모두 강에 던져 버리고, 딸은 모두 살려 두어라.”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24(123),1-3.4-6.7-8(◎ 8ㄱ)
◎ 주님 이름에 우리 구원이 있네.
○ 이스라엘은 말하여라.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사람들이 우리에게 맞서 일어났을 때, 주님이 우리와 함께하지 않으셨던들, 우리를 거슬러 저들의 분노가 타올랐을 때, 우리를 산 채로 삼켜 버렸으리라. ◎
○ 물살이 우리를 덮치고, 급류가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거품을 뿜어내는 물살이 우리를 휩쓸었으리라. 저들 이빨에 우리를 먹이로 내주지 않으셨으니, 주님은 찬미받으소서. ◎
○ 사냥꾼의 그물에서 우리는 새처럼 벗어났네. 그물은 찢어지고 우리는 벗어났네. 주님 이름에 우리 구원이 있네. 하늘과 땅을 만드신 분이시네. ◎

복음 환호송

마태 5,10
◎ 알렐루야.
○ 행복하여라,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 알렐루야.

복음

<나는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10,34─11,1
그때에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말씀하셨다.
34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35 나는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갈라서게 하려고 왔다. 36 집안 식구가 바로 원수가 된다.
37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8 또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사람도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 39 제 목숨을 얻으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고, 나 때문에 제 목숨을 잃는 사람은 목숨을 얻을 것이다.
40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이고, 나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보내신 분을 받아들이는 사람이다. 41 예언자를 예언자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예언자가 받는 상을 받을 것이고, 의인을 의인이라서 받아들이는 이는 의인이 받는 상을 받을 것이다.
42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그가 제자라서 시원한 물 한 잔이라도 마시게 하는 이는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11,1 예수님께서 열두 제자에게 다 지시하시고 나서, 유다인들의 여러 고을에서 가르치시고 복음을 선포하시려고 그곳에서 떠나가셨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저희가 바치는 예물로 거룩한 교환이 이루어지오니, 주님께서 주신 예물을 봉헌하는 저희가 주님의 몸을 합당히 받아 모시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30(129),7
주님께는 자애가 있고, 풍요로운 구원이 있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하느님, 성체성사로 저희에게 그리스도의 생명을 주시니, 저희가 세상에서 성자의 모습으로 변화되어, 하늘에서 그분의 영광에 참여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교우들과 잘 어울리는 자매님이 있었습니다. 성지 순례도 함께 가고 야외 행사 때도 가끔 눈에 띄었습니다. 그런데 성당에는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교우인 것은 확실한데 미사 참여는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우연히 모임에서 만날 수 있었기에 사연을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뜻밖의 대답을 했습니다.
시어머니가 절에 다니는 관계로 잠시 쉬고 있다는 겁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면 나올 것이라 했습니다. 전임 본당 신부님께는 말씀을 드리고 허락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미안한 표정을 역력히 드러냈습니다. 가정의 평화를 위해 시어머니에게 양보하고 있다는 말이었습니다.
“내가 세상에 평화를 주러 왔다고 생각하지 마라. 평화가 아니라 칼을 주러 왔다.” 예수님께서는 믿음을 양보의 대상으로 삼지 말라고 하십니다. 오히려 그런 ‘처지’를 십자가로 여기며 받아들이라고 하십니다. 자신이 양보하고 물러서면 훗날 자신의 며느리에게도 같은 조건을 요구하게 됩니다. 그 자매님은 시어머니에게 ‘최선을 다해’ 서로 공존하는 신앙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사회는 다양해졌습니다. 신앙인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고 싫어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노골적으로 공격하고 모멸하는 이들도 엄연히 존재합니다. 우리는 평화가 아니라 ‘칼’이 난무하는 현실에서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