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영만 신부의 생활 속 교회법] (14) ‘인간의 천부적 권리’ 주장 교황 비오 11세는 그의 회칙 ‘이탈리아의 가톨릭 액션에 관하여’(Non abbiamo biso gno·1931년 6월 29일)를 통해 파시스트적 이탈리아 정부를 비판하였다. 그 이유는 그가 정치문제에 개입하고자 했던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정부 정책들이 사도직 활동을 하는 수많은 단체들에게 제약을 가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그는 공산주의에 맞서서 싸워야 했으며, 특히 회칙 ‘하느님이신 구세주’(Divini Redemtoris·1937년 3월 19일)를 통해 러시아에서 성행하던 공산주의의 무신론을 단죄했다. 교황 비오 12세는 선임 교황들의 가르침에 충실하면서도 특별히 자연법에 기초하여 논리를 전개해 나갔다. 다시 말해 제2차 세계대전 중에 그는 인간 존엄성과 권리를 인정하는 것이 바로 세계 평화에 질서를 확립하는 기초임을 강조하였다. 인간이 천부적으로 타고난 권리에 대한 그의 평가는 법체제와 국제사회의 질서 속에서 민족들의 평화와 관련한 중요한 원칙으로 자리 잡게 된다. 이러한 비오 12세의 자연법적인 특징은 그러나, 당시 국제사회가 취했던 자연법적인 경향과는 다른 그리스도교적 자연법 이론이었다. 1948년 12월 10일 국제연합은 ‘세계 인권선언’을 발표하였고 그것을 통하여 인간의 천부적 권리는 보호되어야 한다고 천명했다. 이러한 흐름은 1950년 유럽연합이 ‘인권보호’를 위한 협약을 공동으로 체결하고 국제 인권 재판소를 설립하는 등의 활동으로 이어진다. 더 나아가 1976년 3월 23일에 발효된 ‘시민적, 정치적 권리에 대한 국제협약’을 바탕으로 ‘국제 인권위원회’가 창설되기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 속에 중요하게 대두된 것은 종교 자유에 대한 권리였다. 그러나 국제사회에서 인정되고 있는 종교 자유에 대한 인간 권리는 어디까지나 자연법적인 차원에서의 권리였다. 하지만 가톨릭교회 입장에서 볼 때 자연법에 기초한 이러한 흐름은 그 정당성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교적 종교자유에 대한 입장을 충분하게 대변하지는 못하는 것이었다. 젤라시오 1세 교황에 의하여 주창된 그리스도교적 관점에서 본 정교구분주의는 순수 이성에 기초한 자연법주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계시된 신제정법에 기초한 종교자유에 바탕하고 있었다. 다시 말해 교회가 지닌 신앙에 대한 권리는 단순히 자연적 질서에 기초한 것만이 아니라 초자연적 질서에 기초한 것이라는 점이다. 교황 요한 23세는 자신의 회칙 ‘지상의 평화’(Pacem in terris·1963년)를 통해 인간의 기본적 권리는 하느님께서 창조의 법칙을 통하여 부여된 것임을 강조한다. 그럼으로써 인간이 창조주 하느님께 드려야 하는 경배의 의무 등이 인간 기본권에 속하는 것임을 천명한다. 교황은 더 나아가 종교생활의 실천을 개별적으로나 공적으로 실천할 수 있을 때 인간의 종교에 대한 자유는 실현된다고 역설하였던 것이다. [가톨릭신문, 2009년 4월 12일, 한영만 신부 · 가톨릭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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