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회법 해설 (9)
비신자 이혼녀가 초혼남과 재혼한 상태에서 세례 받을 수 있을까?
비신자끼리 민법상 결혼하여 자녀없이 살다가 여러 가지 이유로 헤어져 이혼한 자매가 있었다. 이혼한 자매는 몇 년 뒤 초혼인 남자(혹은 결혼했지만 배우자와 사별한 경우도 같은 경우임)를 만나 민법상 재혼하여 살다가 천주교에 다니는 친구의 권유로 성당에서 세례를 받으려 할 경우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을까?(이 경우 ‘초혼녀와 결혼한 이혼남이 세례를 받으려 한다면’으로 바꾸어 생각해도 무방하다)
이런 경우 그 자매는 세례받기 위해 먼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다. 그것은 현 남편과의 혼인이 유효하도록 만드는 것이다. 민법상으로 이 자매와 현 남편의 혼인생활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다. 그러나 이 코너에서 여러 차례 설명했듯이 이들이 교회에 들어오려면 교회의 법을 따라야 한다. 즉 이 자매는 비록 비신자끼리였지만 유효하고 합법적인 혼인을 했다가 이혼하고 재혼한 경우이기에 이전 혼인에 대한 유대장애에 걸려 있어서 교회법의 눈으로 보자면 일처다부의 형태를 유지하고 있는 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자매가 이전 혼인의 유대를 해소하기 위해서 세례받기 전에 미리 사목자(본당신부)와 상담하여 세례 즉시 바오로특전을 적용하고, 미신자 장애를 적용하여 현 남편과 관면혼배를 받도록 준비해야 한다. 즉 현 남편과 세례 전에 합의를 하여 세례 후 함께 관면혼배를 위해 성당을 방문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럴 경우 이 자매는 세례 후 관면혼을 받고 성사생활을 아무런 장애없이 할 수 있다. 그러나 이 경우 현 남편이 성당에서 하는 관면혼에 대해 적극적으로 거부하고 성당에 나가기를 꺼려한다면 사목자는 이 자매에게 세례를 주어서는 안된다. 세례를 주더라도 성사생활이 금지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성사생활을 못하는 세례를 주기보다는 여러 가지 방법으로 현 남편을 설득하고 시간을 두고 기다린 다음 세례를 주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런 문제가 가끔씩 발생하고 있다. 사목자가 예비신자들의 신상을 파악하지도 않고 무작정 세례를 주다보니 세례받을 수 없는 사람에게도 세례를 주는 경우가 있는 것이다. 그 래서 세례만 주고 현재 혼인에 대한 문제를 풀어 혼인까지 해결해주지 않은 경우가 발생하고 있다. 이런 경우 불행하게도 사목자의 실수로 세례를 받은 그 사람은 성사생활을 할 수가 없게 된다.
그러나 아예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 자매가 세례성사를 받았지만 성사생활이 금지된 상태에서 어느 정도의 시간이 흘렀지만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 경우에는 다른 방법이 있다. 즉 이 부부가 자녀를 두고 화목하게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헤어지지 않고 잘 살아가리라는 확신이 있고, 특히 현 남편이 이 자매의 신앙생활을 보장해준다면 사목자는 교구직권자에게 이들 부부의 혼인에 대하여 근본유효화를 신청할 수 있다.
이쯤에서 교회는 왜 혼인조당에 해당되는 신자들에게 성사생활을 허용하지 않으려 하는가에 대한 교회의 입장을 밝히는 것이 좋겠다.
교회가 재혼한 이혼자들에게 성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은 교회가 그것을 원하지 않기 때문이 아니라 그렇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교회의 성사들은 그리스도에 의해 제정되었고, 그것들은 교회가 관리하고 보호할 책임을 지고 있다고 우리는 믿고 있다. 그것은 교회가 원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지에 의해서이다. 만일 재혼한 이혼자들이 아무런 문제없이 성체를 모시고 성사에 참여하게 된다면 교회는 스스로 그리스도께 충실하지 않은 것이 되고,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의 상징인 혼인이 불가해소성을 갖고 있다는 것을 부정하는 셈이 된다. 그 래서 교회도 그들의 안타까움을 알고 있으면서도 성사를 허용하지 않는 것이다.
[2011년 10월 9일 연중 제28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진화 마태오 신부(봉동 성당 주임겸 교구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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