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회법 해설 (10)
교회법의 맹점 하나
교회법이 엄격하고 예외가 없이 적용되는 것처럼 느껴지지만 교회법도 법의 속성상 맹점이 있다. 얼마 전에 남성 교우 한 분이 자신은 구교 신자였는데 냉담하다 성당에서 혼배도 하지 않고 예식장에서 했는데, 7년 만에 그 여자와 이혼하고 지금은 초혼인 여자와 재혼까지 했기 때문에 조당중에 있다는 말을 하셨다. 이런 이유로 자신은 성당에 다니고 싶어도 성체도 못 모시는데 미사만 하면 뭐하나? 하는 생각에 성당에 나오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는 “형제님! 저를 잘 만나셨습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성당에 나오실 생각이 있으신지요?” 그 형제는 조당만 풀 수 있다면 당장에라도 성당에 나갈 수 있다고 대답하였다. 이런 경우는 법의 맹점을 이용하면 이 형제의 신앙생활의 회복을 쉽게 할 수 있다.
교회법에서 모든 천주교회의 신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면서 교회에서 혼인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 때문에 만일 신자임에도 교회법적 형식을 지키지 않고 단지 예식장에서만 혼인을 했다면 그들은 민법상 합법적인 부부이지만, 교회법상으로는 무효한 혼인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교회법의 눈으로 좀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그들은 지속적인 혼전관계를 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이 민법상 이혼을 했지만, 교회법에 의하면 부부가 아닌 사람들이 살다가 헤어진 경우로 보는 것이다. 이 형제의 경우에 신자가 성당에서 혼배하지 않았기에 첫 번째 혼인은 무효였고, 오히려 지금 살고 있는 자매와의 혼인이 초혼인 셈인 것이다. 따라서 이들이 성당에 와서 관면혼배예식을 한다면 지금의 배우자가 정식 배우자가 되는 것이다. 만일 이 형제가 성당에서 관면혼배를 하고 살다가 이혼했다면 오히려 교회법원에 ‘혼인무효소송’을 제기하여야 하는 복잡한 절차를 밟아야 했을 것이다.
이 형제는 교회법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쉽게 현 재혼을 유효화시킬 수 있는 것이다. 현 배우자와 성당에 나와 관면혼배만 하면 이 형제는 즉시 신앙생활을 아무런 문제 없이 할 수가 있다. 어쩌면 법의 맹점이기도 한 경우이다.
교회법원에서 이혼도 해주나요?
교회에는 ‘이혼’이라는 단어가 없다. 자격있는 남녀가 적법한 절차를 거쳐 합법적으로 혼인을 맺었다면 그 혼인유대(인연)는 한 편 당사자의 죽음 이외에는 절대로 풀 수 없다는 것이 교회의 절대적인 가르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교회법원에는 이혼을 허가해 주는 일은 결코 없다.
다만 교회법원에서는 어떤 혼인에 대해 ‘혼인무효’를 선언하는 경우는 있다. 예를 들어 어떤 혼인이 외적으로는 아무런 문제없이 교회에서 절차를 밟아서 이루어졌지만 특별한 이유 즉 어떤 장애(연령미달, 영구적 성교불능, 이전혼인의 유대가 있는 경우, 사제서품, 종신서원, 혈족, 범죄, 유괴 등)가 있었거나, 교회법적 형식이 몇 가지 빠진 경우, 그리고 혼인합의에 중대한 문제가 있을 경우에는 교회법원이 심사숙고하여 그 혼인이 애초부터 무효였음을 선언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것은 민법상의 이혼과는 전혀 다른 일인 것이다. 이 무효선언은 그 혼인에 대한 민법상의 이혼이 이루어진 다음에만 행해진다.
[2011년 11월 6일 연중 제32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진화 마태오 신부(봉동 성당 주임겸 교구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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