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하는 교회법 해설 (14)
4.11 총선과 우리의 선택, 그리고 교회법
더디게 오는 봄을 맞이했습니다. 아마 올해는 정치의 계절이 시작되어 유권자인 우리 모두가 도대체 누굴 찍어야 하는가? 하는 고민이 깊어서 그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뿌릴 씨가 없거나 씨가 있어도 뿌릴 곳이 마땅치 않은 사람들에게는 잔인한 4월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달에는 국회의원 선거가 있고, 주교님께서는 투표 참여를 독려하시면서 기표소가 고해성사를 보는 고해소로 여기고 그리스도인의 양심에 따라 꼭 투표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학연이나 지연, 그리고 같은 교우라는 이유로 아무런 비판적 시각 없이 그 사람이나 그 당에 투표를 한다면 이 지역의 삶의 질은 떨어지고 환경과 인권은 물거품이 되고 맙니다. 우리 지역의 집권 여당은 어떤 당입니까? 마르고 닳도록 특정당을 찍어준 결과 이 지역의 의원들은 도민과 지역의 아픔과 여론에 신경쓰지 않고 오로지 자신을 공천해준 중앙당의 눈치만 살피고 또다른 이익집단으로서 이 지역을 끼리끼리 지배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지 않습니까?
그들이 이 지역에서 여당 행세를 하는 동안 빈곤층과 차상위 계층이 줄었습니까? 국가예산을 이 지역에 지원하도록 노력하고 균형 발전을 이루도록 그들이 애썼습니까? 그들이 젊은이들의 일자리나 비정규직 문제에 진지하게 고민하고 그들과 함께 눈물을 흘렸습니까? 그 들이 피폐해지고 고령화된 이 지역의 농산어촌에 정책적 배려를 해주었습니까?
이제는 바뀌어야 합니다. 그들이 위기 의식을 느끼도록 이번에는 소수 진보정당에게 기회를 주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천이 당선인 전라도’가 또 되어버립니다. 이러면 그들은 더욱 독선적 행태를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서 우리가 특정 지역을 나무랄 수 있습니까? 이제는 서민정책과 환경,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느님의 뜻에 맞지 않은 입법을 즉각 중단시킬 수 있는 그런 인물들을 선택해야 합니다.
종교가 정치에 간여해서는 안된다는 말을 하시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종교가 정치에 간여하거나 정치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종교가 정당을 만들거나 종교인이 정치가가 되어서는 안됩니다. 그러나 종교나 정치나 모두 사람을 대상으로 일합니다. 따라서 종교는 정치가 오로지 사람들의 행복과 평화를 위해 일하도록 감시해야 하고, 나아가 그들이 시행하는 정책이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지 않도록 질책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예언자적 소명을 다해야 하는 것은 중요한 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 있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법 또한 사람을 살리기 위한 법이지 사람을 죽이기 위한 법이 아닙니다. 따라서 교회법은 최소한의 질서를 위한 법을 제정하고도 교구장 주교에게 많은 관면권을 주어 법이 추구하는 최고 가치인 ‘영혼의 구원(salus animarum)’을 실현하도록 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의 혼인법 역시 그렇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너무나 엄격하고 한번 조당에 걸리면 신앙생활은 영영 회복할 수 없는 절망의 법이 아닙니다. 이혼의 아픈 상처를 안고 살아가는 교우들을 위한 희망의 법입니다. 교구 혼인법원에서는 소송을 제기하신 이혼 경력이 있는 교우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능한 빠른 시일내에 신앙생활을 회복하고 교회에서 봉사하시도록 지원해 드립니다. 망설이지 마시고 법원을 방문하십시오.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2012년 4월 1일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전주주보 숲정이 3면, 김진화 마태오 신부(봉동 성당 주임겸 교구법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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