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묻고 답하고] 혼인신고를 당장 할 수 없는데…
묻고 : 저 데레사는 요한과 결혼을 하고자 합니다. 그런데 요한이 개인 사업을 하면서 일이 잘못되어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 결혼을 하고 혼인신고를 하면 제가 가지고 가는 재산도 빚으로 넘어가서 우리 둘 다 길가에 나앉아야 할 상황이라고 합니다. 저희 둘은 오랫동안 사귀어왔고 서로 사랑하기에 이러한 경제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혼인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앞으로 3년 동안은 혼인신고를 하기가 어려울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래도 저희가 성당에서 혼인을 할 수 있을까요?
답하고 : 금슬 좋게 잘 살아가던 가정에도 뜻하지 않던 어려운 순간이 다가오기도 합니다. 성격 차이라거나 하는 개인 성향에 따른 어려움도 있을 수 있지만, 어떤 때는 보증을 잘못 서거나, 사업이 부도가 난다거나 카드를 과도하게 사용하여 빚을 크게 지는 일도 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된 경제적 어려움이 배우자에게도 영향을 끼치거나 더 나아가서 가정 전체가 극심한 어려움에 빠지기도 합니다. 가정을 지키기 위하여 법의 한도 내에서 모든 노력을 다하였지만 결국 가정이 깨어지는 결과가 빚어지기도 합니다. 경제적인 조건들이 우리 삶의 많은 부분을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자매님은 아무 문제없이 혼인할 준비가 되어있고, 형제님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하느님 안에서 평생 공동 운명체를 이루는 것임도 잘 아실 것입니다. 게다가 어떠한 인간 권력으로도 이 결혼의 끈을 끊을 수 없다는 것도 인정하고 그렇게 사실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는 두 분이 교회 안에서 축복된 결혼을 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것이고, 또 그렇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또한 대한민국 국민은 나라의 법도 지켜야 합니다. 우리나라는 혼인신고를 해야만 부부로 인정하고,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 교회도 이러한 국가의 법을 존중합니다. 따라서 성당에서 혼인식을 하고 나면, 빠른 시일 내에(적어도 2주일 안에) 혼인신고를 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법과 국가법을 모두 지키면서 부부로서의 권리와 의무를 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혼인신고를 하면 자매님의 재산도 모두 빚을 갚는데 쓰여지고, 신혼살림도 없이, 길가에서 시작해야 한다고 하니 참으로 안타까운 일입니다. 일단, 혼인신고를 하면서도 재산의 손실을 보지 않을 수 있는 방법이 국가법 안에서 있는 지를 알아봐야 할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 보통 사람들은 잘 알지 못하는 방법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탈세가 아니라 절세의 개념에서 말입니다. 여러 가지를 알아보았지만, 다른 방법이 없는 경우에는 교회적인 혼인부터 할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국가 법률의 규범에 따라 인정되지 아니하거나 거행될 수 없는 혼인의 경우 부득이한 경우 외에는 교구 직권자의 허가를 받아야 주례할 수 있습니다(1071조 ①항 2). 따라서 본당 신부님을 통하여 교구 직권자의 허가를 받으시면 교회 안에서는 혼인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정의와 법 관계 등 여러 가지를 생각하며 대단히 조심스럽게 이루어져야 할 것입니다.
[외침, 2014년 10월호(수원교구 복음화국 발행), 김길민 신부(광주성당 주임, 교구 사법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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