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과 신앙생활] (10) 환속사제
성직자 신분 상실해도 평신도로 돌아갈 순 없어 가끔 신부님들이 사제의 길을 떠나 환속을 하는 경우들이 있다고 들었습니다. 환속을 하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것인지요? 환속을 하면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는지요? 가끔 사제 인사가 결정되어 공지가 되는 경우에 ‘면직’(免職)이라는 표현을 발견하게 됩니다. 이 말의 사전적인 의미는 ‘공무원이나 회사원 등을 그 일자리나 직위에서 물러나게 함’이라는 것으로, 신부님의 경우에는 성직자 신분의 상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흔히 “신부님이 환속을 했다”라고 표현을 하는데, 여기서 환속이라는 말은 평신도의 신분으로 환원되었다는 의미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하지만 환속이라는 표현은 사제품의 상실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직자로서의 법률상 조건이 영구히 상실되어 평신도처럼 된다는 의미를 담고 있지만 결코 올바른 표현은 아닙니다. 교회법 제290조에 의하면, 유효하게 받은 거룩한 서품은 결코 무효가 될 수 없으므로, 신학적으로 평신도의 신분으로 환원되어 돌아갈 수 없습니다. 성품성사는 하느님의 법에 의해서 제정되었고, 서품은 불멸되는 것으로 상실될 수 없는 성사적 인호가 새겨지게 되기 때문입니다.(교회법 제1008조 참조) 유효하게 받은 성품은 스스로 포기할 수 없으며, 어느 권력에 의해서도 박탈되거나 탈취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면직되더라도 결코 ‘성품 받지 아니한 사람’인 평신도의 신분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다만 법률상으로 면직이 되면, 교회 안에서 누리는 성직자로서의 법적인 신분을 모두 상실하게 됩니다. 따라서 성직자로서 적법한 성사 집행에 대한 모든 권한이 금지됩니다. 그리고 성직자로서의 권리와 특전과 법적 조건이 모두 박탈됩니다. 그러므로 면직으로 성직자 신분을 상실당한 사제일지라도 성사 집행에 대한 권한은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면직 처벌을 받은 사제는 성사 집행이 모두 금지되는 것입니다.(교회법 제1338조 2항 참조) 다만 성직자 신분을 상실한 사제일지라도, 죽을 위험 중에 처해있는 신자가 고해성사를 요청한다면 예외적으로 고해성사를 유효하고 적법하게 집전할 수 있습니다.(교회법 제976조 참조) 그러나 면직 처벌을 받은 성직자가 일반 평신도처럼 예외적인 성체 분배자로 봉사를 하거나 전례 중에 설교를 하는 것은 금지됩니다. 일반 신자들이 면직 처벌을 받은 성직자인지 일반 성직자인지 혼동할 수 있고, 면직 처벌을 받은 성직자는 모든 성사 집행이 금지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직자 신분을 상실한 사제는 성사 집행에 대한 권한이 일체 금지되므로 성사 집행을 할 수 없습니다. 다만 죽을 위험에 처해 있는 참회자가 있는데, 고해성사를 집전할 수 있는 사제가 없다면 환속한 사제라 할지라도, 죽을 위험에 있는 참회자를 위해서 고해성사만을 집전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한다면, 성직자 신분을 상실한 사제는 성직자로서의 모든 직무가 금지됩니다. 그러면 환속한 사제의 혼인은 가능할까요? 사제품을 협박이나 무지에 의해서 받았을 경우에는, 당사자가 직접 서품 무효 확인 소송을 제기해야 합니다. 그 소송에서 서품 무효 판결을 받으면, 성직자 신분에 따른 고유한 모든 권리를 상실하게 되고 모든 성직자의 의무에서 해제됩니다.(교회법 제1712조 참조) 그러므로 당연히 독신 생활의 의무에서도 해제되므로 혼인성사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성직자가 합법적인 제명 처분을 받거나 스스로 성직자 신분을 포기해 성직자 신분을 상실하는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독신 생활의 의무에 대한 관면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이 경우에는 독신 생활의 의무가 계속해서 유지되므로 혼인성사를 받을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환속한 사제가 독신 생활에 대한 의무를 관면 받으려면 따로 교황님께 청원해야 하고, 교황님으로부터 독신 생활에 대한 허가를 받아야만 독신 생활의 의무에서 해제되고, 혼인성사를 받을 수 있게 됩니다. 그런데 만약 성직자 신분을 상실한 성직자 즉 환속한 성직자가 다시 사제직에로 돌아오기를 요청한다면 가능할까요? 일단 성직자 신분을 상실한 사람은 엄격한 조사가 선행돼야 하고, 교황청의 허가가 없이는 다시 성직자 신분으로 복귀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환속한 성직자가 교황청의 허가로 다시 성직에 복귀하는 경우에는 이미 성품성사를 받은 성직자이므로 다시 성품성사를 받지 않습니다. 다만, 성직자로 다시 복귀하기를 원하는 사제는 어떤 교구장 주교나 수도회로부터 입적을 허락 받아야 하며, 가능하면 자신이 사제직에 물의를 일으킨 지역으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생활함으로 다른 물의를 유발하는 것을 피하면서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습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8월 11일, 박희중 신부(가톨릭대 교회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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