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법과 신앙생활] (18) 대사(大赦)
죄 때문에 갚아야 할 ‘벌’ 면제해주는 것 * 권력 있는 누군가의 악행이나 비행을 미화하거나 혹은 가벼운 솜방망이 처벌을 내리려고 하면 ‘면죄부’를 준다고 합니다. 면죄부는 무엇입니까? 면죄부(免罪符)라는 용어는 ‘Indulgentia’를 중국의 한문 천주교 교리에서 ‘주교의 사면권에 의해서 죄의 면죄를 증명하는 서류’라는 의미로 사용되었고, 이러한 서적을 통해 한국에서도 면죄부라는 용어가 도입되었다고 하는 주장이 있습니다. 또 일제 강점기에 ‘Indulgentia’를 면죄부로 번역한 일본어를 받아들였다고 하는 주장도 있습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Indulgentia’를 공식적으로 ‘대사’(大赦)라고 번역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16세기에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을 건축하기 위하여 면죄부를 판매하면서, 헌금함에 쨍그렁하는 순간에 조상의 영혼이 연옥에서 천국으로 직행한다”라는 일부의 잘못된 부분을 강조한 주장을 통해서 면죄부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확립되었습니다. 그러나 면죄부는 라틴어 ‘Indulgentia’로 죄를 면제해 주는 것이 아니라, 벌을 면제해 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정확한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는 면죄부는 잘못된 표현이고, ‘Indulgentia’는 ‘대사’로 번역되는 것이 정확하다고 할 것입니다. 그리고 헌금형 대사의 폐단을 지적하여 트렌토공의회 제25차 회기(1563년)에서 대사를 얻기 위한 모든 부적절한 금전의 유통을 완전히 폐지하였습니다. 사람이 범한 죄는 고해성사로 용서를 받고 하느님과 친교를 회복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죄로 말미암은 벌은 남아 있습니다. 이 벌을 면제해 주는 것을 대사라고 합니다. 대죄를 지은 사람이 용서받지 못한 상태에서 죽으면 지옥에서 영원한 벌을 받습니다. 중죄를 용서받으면 지옥벌은 면제되지만, 그 죄로 말미암은 벌은 남아있습니다. 소죄나 보속할 죄벌이 남아있는 사람은 연옥에서 벌을 받습니다. 이 벌은 한도가 있으므로 잠시적 벌, 즉 잠벌이라고 합니다. 이 잠시적 벌의 사면은 교회법적 처벌을 면제해 준다는 뜻이 아니라 하느님 앞에서 받을 잠시적 벌을 없애 준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연옥에서 받을 벌이 면제된다는 뜻입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1471항에 보면 “대사란, 이미 그 죄과에 대해서는 용서받았지만, 그 죄 때문에 받아야 할 잠시적인 벌(暫罰)을 하느님 앞에서 면제해 주는 것인데, 선한 지향을 가진 신자가 일정한 조건을 충족시켰을 때, 교회의 행위를 통해 얻는다. 교회는 구원의 분배자로서 그리스도와 성인들의 보속의 보물을 자신의 권한으로 나누어 주고 활용한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대사는 고해성사로 이미 사죄된 중죄와 소죄의 벌에 대한 사면이고, 천국에 들어가기 전에 정화가 필요한 잠시적 벌에 대한 사면이고, 하느님의 정의에 비추어 마땅한 벌에 대한 하느님 앞에서의 사면입니다. 그러므로 대사를 얻기 위해서 개별 신자는 합당한 준비 즉, 요구되는 조건을 채워야 합니다. 대사는 하느님과 교회와 화해를 얻게 해주는 것이 아니고, 그 화해를 얻기 위한 필수적인 조건인 것입니다. 대사는 전통적으로 전대사와 부분대사(한대사)로 나눕니다. 전대사는 잠벌을 전적으로 사면 받는 것인 반면에, 부분대사는 부분적으로 사면 받는 것입니다. 전대사는 하루에 한 번만 얻을 수 있으며, 부분대사는 같은 날에도 여러 번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법 제994조은 “어느 신자든지 자신을 위해서나 대리 기도의 방식으로 죽은 이들을 위해서, 부분대사나 전대사를 받을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살아있는 다른 사람을 위해서 대사를 얻어 줄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연옥에 있는 죽은 신자들은 살아있는 사람의 도움으로 죄로 말미암은 잠벌의 사면을 받을 수 있는 대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합니다. 대사의 목적은 세례 받은 후 저지른 죄에 대한 잠벌을 사면 받는 것이기에, 대사를 받으려는 사람은 다음의 조건을 갖추어야 합니다. ① 세례 받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세례 받은 사람만이 교회의 구성원이 되고 따라서 교회의 보화에 참여할 수 있습니다. ② 가톨릭교회와 온전한 친교 안에 있어야 합니다. 즉 파문 제재를 받고 있지 않아야 합니다. ③ 적어도 지정된 선행이 끝나는 때에 은총의 상태에 있어야 합니다. 전대사를 수여받기 위해서는 은총의 상태에 있는 것 외에도, 소죄라도 죄를 멀리하고자하는 내적 준비가 필요하고, 자기 죄에 대해서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고, 영성체를 하고, 교황님의 지향에 따라 기도해야 합니다. 대사는 대사를 얻기를 바라는 사람 편에서의 열의가 없이는 수여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대사의 수여를 바라는 사람은 대사를 받으려는 의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대사 수여의 규범에 따라 정해진 기간에 정해진 방식으로 지정된 것을 수행하여야 합니다. [가톨릭신문, 2019년 12월 8일, 박희중 신부(가톨릭대 교회법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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