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 교회법 이야기 (6) 교회에도 법원이 있다구요? 지난주에 ‘조당(阻擋)’이라고 부르는 혼인 장애에 대하여 설명해 드리면서, 그것을 푸는 방법 중에 교회법원에 혼인 무효 소송을 제기하는 방법이 있다고 설명해 드렸습니다. 오늘은 그 교회법원에 대해서 좀 더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교회법원이란 교회법에 따라 교회가 설치한 법원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군종교구를 제외하고(군종교구는 서울대교구 법원에서 관할합니다.) 우리 춘천교구를 포함한 모든 교구가 각자의 법원을 가지고 있습니다. 교회법원에서는 교회 내의 모든 사건을 심의할 수 있지만, 대개는 혼인 무효 소송 절차만을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법원은 혼인에 대하여 심사하고 그 심사한 바의 완결을 조사하며 무효가 증명되었는지 여부를 선언합니다. 이를 위해서 교회법원에는 교구장 주교님의 사법 대리 역할을 하는 법원장 및 그 외의 재판관들, 성사 보호관이라고 불리는 검찰관, 변호인들이 근무하고 있습니다. 언뜻 보기에 교회법원은 국가의 민사법원처럼 보일 수도 있습니다. 둘 사이에는 비슷한 점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교회법원은 민사법원과 유사한 방법으로 청구를 접수하고 공식적인 소송 절차를 이끌어갑니다. 즉 소송 제기서를 작성하고 증거를 제시하며 변론을 벌입니다. 그리고 재판관은 현행 교회법과 판례(判例)를 참조하여 혼인이 유효한지 무효한지 판결을 내립니다. 하지만 차이점도 있습니다. 즉 교회법원은 민사법원과 달리, 전(前) 배우자와의 대질을 전적으로 배제합니다. 민사법원에서 흔히 다뤄지는 방청권 발부 문제, 청구인이 비용을 지불하고 변호인을 고용하는 문제, 자녀의 양육권과 자녀 접견권 문제, 위자료와 자녀의 양육비 문제, 가족의 부채 문제 등과 같이 감정적 긴장을 요구하는 문제들은 모두 배제됩니다. 혼인 파탄의 원인이 청구인과 피청구인 중 누구에게 있는가는 자세히 조사하지만, 이는 그것을 비난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행동이 무효의 근거를 확고히 하는 것과 관계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조사를 위해서 청구인과 증인들이(혹시 증인의 경우 법원에 올 수 없다면 서면으로) 한 번 정도 법원에 가셔서 재판관 신부님과 면담하시면 됩니다. 혼인 무효 소송을 위해 교회법원에 처음 가시는 분들이 굉장히 주눅이 들어서 가시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마도 국가의 민사법원에서의 재판을 경험해 보셨던 분들이 그 엄숙하고 딱딱하고 권위적인 분위기, 수많은 방청객을 떠올리셔서 그런 것 같습니다. 하지만 교회법원에 오실 때에는 그런 걱정을 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따뜻한 주님의 품으로 돌아온다는 마음으로 편하게 오십시오. 그리고 거기서, 뚱뚱하고 안경 쓴, 옆집 아저씨 같은 신부님을 만나신다면 반갑게 인사해 주셔요. 바로 저니까요. [2020년 10월 11일 연중 제28주일 춘천주보 2면, 이태원 시몬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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