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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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주호식 | 작성일2023-08-30 | 조회수440 | 추천수0 | |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경청! 일단 시작해 봅시다
(1) 경청의 중요성
시노드 과정에서 요청하는 경청과 대화의 자세는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뿐만 아니라 우리가 쉽게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더욱 열려 있는 것’입니다. 자신이 대화하고 싶지 않은 사람들에 대해서도 경청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는 것은 선뜻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마케팅과 관련해서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강한 문구는 소비자의 눈길을 끌 수는 있지만, 그들을 구매로까지 끌어내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경청의 중요성을 받아들이도록 할 수는 있겠지만,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목소리까지 기꺼이 경청하고 대화하는 시노드가 되기 위해서는 어느 정도의 준비가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경청을 통해 다른 사람과의 관계가 개선되는 경험을 해보십시오. 차근차근 경청의 기술을 익히는 것이 좋겠지만, 일단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십시오. 이 과정을 통해 경청의 위력을 먼저 체험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상대방이 나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경청해 준다는 것을 느끼게 되면, 그 상대방이 나를 대하는 태도가 달라질 것입니다. 우선은 상대방의 목소리를 진심으로 들어주십시오. 어느 순간 나를 대하는 상대방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진 것을 느끼시게 될 것입니다. 경청의 힘을 체험해 보십시오. 경청은 상대의 말을 듣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이 말로는 표현하지 않았지만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상대방에게 피드백(feedback)해 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신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자연스럽게 몸에 익을 때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과 노력이 필요합니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체중 감량을 하고 싶어 합니다. 그래서 극단적인 체중 감량 방법들을 택하지만 성공하는 경우는 드문 것 같습니다. 평상시에 과식을 줄이고 운동 시간을 늘리면서 체중 관리에 대한 자신감을 가진 사람들은 성공하는 경우가 상대적으로 많은 것 같습니다. 경청도 마찬가지입니다. 경청에 대한 일상의 체험들이 쌓이게 되면 기꺼이 껄끄러운 상대방의 말에도 먼저 귀 기울여 주는 힘을 갖게 됩니다.
얼마 전 경청을 실천하고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개선되면서 인생을 새롭게 시작한 작가의 이야기를 접하였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베스트셀러 「역행자」의 저자 ‘자청’입니다. 저자는 스스로 열등한 존재로 자신을 평가하던 시절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그가 우연히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는데, 그 책은 별다른 내용이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그 책에서 알려준 대로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고 반응해 주었을 뿐인데, 자신을 대하는 태도가 달라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고, 작가는 이러한 변화가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나가는 시발점이 되었다고 고백합니다.
경청은 단순히 들어주는 것 이상입니다. 인내가 필요하고 상대방의 목소리에 집중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청하겠다고 애써 마음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면 경청의 태도를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그런데도 시노드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진심으로 들어주는 경청의 대화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무시하고 배제하고 싶은 사람의 목소리까지 들어야 한다는 시노드의 요구는 현실성이 없어 보이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경청을 통해서 일어나는 관계성의 변화가 상대방을 위해서뿐만 아니라 우리 자신에도 도움이 된다면 한 번쯤 시도해 볼 가치는 분명 있어 보입니다. 경청! 일단 시작해 봅시다.
약력 : 1. 1994년 성바오로수도회 입회 2. 1999년 2월 첫서원 3. 2005년 종신서원 4. 2008년 9월 4일 사제서품 5. 2008년 2월 미국 Seton Hall 대학 사목신학 M.Div. 6. 2019년 2월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박사학위 7. 현) 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8월 6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왜 모두의 시노드인가
(2) 시노드를 통한 공동체의 식별
시노드는 교회의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여 도출한 결과를 존중하여 권위 있는 지도자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교회 고유의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이러한 시노드의 원형은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사도 15장; 갈라 2,1-10 참조)에서 처음으로 구체화 되었습니다. 예루살렘 공의회는 교회가 직면한 도전에 대해서 활발한 토론을 통해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증언과 서로의 판단을 교환하고, 공동체가 함께 성령의 뜻에 귀를 기울이고 식별하는 가운데 합의에 도달하였습니다.
공동체적 식별과 공동 합의의 과정인 시노드는 어원적으로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실제로 함께 걸어가는 교회로서의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는 온 교회가 마지막 결정에 참여하였습니다.(사도 15,22) 이후 시노드는 초세기부터 점차적으로 교리·전례· 교회법·사목적 문제들에 대해 교회가 어떠한 입장을 취해야 할지를 함께 고민하기 위해 소집되는 교회의 집회들을 지칭하는 데에 사용되었으며, 현재는 건의 투표권만을 가진 대의원회의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여정으로서의 시노드는 물리적으로 모든 구성원이 최종 결정에 참석하는 공동 합의의 절차를 구현하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교회는 보편 교회 차원의 공동합의적 정신을 유지하려고 노력해왔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주교 시노드(2015년 10월 17일) 개막 연설을 통해 함께 걷는 여정으로서의 시노달리타스(시노드의 정신)는 단지 결정을 누가 하느냐보다 세세한 합의의 과정 자체가 중요하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는 함께 의견을 모아가는 과정 자체가 가진 역동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입니다. 시노드를 위해 의견을 모으는 과정을 통해서 교회 구성원들은 각자가 책임감을 갖고 협동하며 공동선을 위해 함께 걸어가는 여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볼 때, 실제적인 시노드 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고 의견만 개진하도록 요청받은 교회 구성원들에게 시노드의 정신을 설명하고 수용하도록 하는 것은 녹록지 않아 보입니다. 시노드 정신의 강조와 더불어 시노드 과정을 통해서 각자가 얻을 수 있는 영적인 유익에 대한 부분을 알려주는 것이 도움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는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이라는 문헌(114항)을 통해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다는 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해줍니다. 문헌에 따르면 “공동체적 식별은 성령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기에 필요한 기도, 묵상, 성찰, 연구의 공간에서 이루어져야 하며, 모든 감정과 생각을 정화시켜 주님의 뜻을 이해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성령에 대한 열림을 약화할 수 있는 모든 장애물로부터 복음적 자유를 찾으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라고 밝힙니다.
시노드는 교회 구성원 모두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귀 기울이는 노력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는 공동체적 식별은 그 자체로 하느님 백성들이 하느님의 뜻을 찾는데 열려 있도록 초대합니다. 교회 구성원 모두가 시노드 최종 결정 과정에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지만, 각자는 자신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머물도록 초대받습니다.
특히 개인적인 차원에서 그동안 자신의 문제에만 집중하고 성령께 자신을 열어 드리지 못한 신앙인은 시노드가 영적 정화의 출발점이 될 수 있습니다. 시노드의 공동체적 식별을 통해 개인의 신앙이 교회의 신앙으로 성장한다면, 교회 구성원들은 각자 자신들이 받은 영적 은사를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8월 13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시노드의 발전 I
(3) 시노드 운영 방식과 성격의 변화
시노드의 원형인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사도 15장 : 갈라 2,1-10 참조)라는 표현에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이 있습니다. 공의회라는 표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학자들은 공의회라는 용어 대신에 ‘예루살렘 사도 회의’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공의회(concilium)’라는 단어는 학문적으로 엄밀히 말하면 후대에 열린 교회의 공식 회의(synod)를 지칭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당시에 바오로를 사도로 인정했는가에 대해 회의적인 학자들이 있기에 ‘사도’라는 단어를 제외하고 ‘예루살렘 회의’라고 표현하는 학자도 있습니다. 교회 구성원이 함께 모여 공동체의 중요한 문제를 논의하고 토의하며 식별하는 시노드의 정신은 변함이 없지만, 시노드의 운영 방식이나 성격은 교회 역사 안에서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초기 교회의 시노드는 교구, 관구 또는 지역, 총대주교, 세계 등 여러 차원에서 소집된 집회(회의)들을 지칭하는 단어로 다양하게 사용되었습니다. 사도 시대 이후 교회 박해가 본격화되면서 교회 모든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집회는 불가능해졌습니다. 대신 주교들은 박해가 뜸해지는 틈을 타서 이단에 맞서 신앙과 교회를 지키기 위한 비정기적인 교회회의를 열었습니다. 2세기부터는 교회회의들이 구체적인 모양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지역 관구(provincial) 단위에서 주교들이 모이는 관구 주교회의(episcopal councils)가 마련되었습니다. 관구 주교회의는 오늘날의 국가별 주교회의 원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220~230년경에는 지역 관구 주교회의 차원을 넘어 ‘북아프리카 대륙 전체 교회회의(concilium plenarium Africae)’인 총회가 소집되었습니다. 북아프리카의 수도인 카르카고의 주교 키프리아누스는 10년의 재위 기간 동안 일곱 번이나 북아프리카 총회를 소집하였습니다. 특히 256년 9월 1일에 소집된 총회에는 주교가 87명이나 참석하였습니다.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총회를 통해 지독한 박해 시기에 배교했던 자들을 교회에 다시 받아들일 것인지, 그중에서도 이단자와 열교자들로부터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교회로 돌아올 경우에 다시 세례를 베풀어야 하는지를 함께 논의하였습니다.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동료 주교들의 동의와 더불어 하느님 백성 전체의 동의를 교회에 반영하고자 하였습니다.
총회(교회회의)를 통해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였던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북아프리카 총회의 결정 사항을 다른 지역 교회에도 전달하였습니다. 다른 지역 교회들과의 친교와 일치를 통해 신앙을 공유한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훗날 로마의 주교 스테파누스와 극심한 갈등을 겪었습니다. 교회로 돌아오는 이들에 대한 재세례 문제와 관련하여 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박해의 열악한 상황 속에서 반대와 갈등에도 불구하고 키프리아누스 주교는 동료 주교들과 긴밀히 소통하고 연대하는 시노드 정신을 통해 고대 교회의 초석을 굳건히 마련하였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키프리아누스 주교가 동료 주교들과 친교 안에서 함께 고민하고 연대하는 모습은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에서 이방인들의 세례 문제를 함께 식별했던 사도들과 바오로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교회회의를 통한 시노드 정신의 실천은 최초의 세계공의회(concilium oecumenicum)인 니케아 공의회에서 구체적으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공의회는 관구 교회회의를 매년 2회(사순 시기 전과 가을) 개최하도록 규정하였습니다. 이제 주교들은 매년 2차례 함께 정기적으로 모여 교회회의를 통해 시노드 정신을 이어가게 되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8월 20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시노드의 발전 II
(4) 그리스도교 공인 이후
시노드 정신의 핵심은 형제적 친교와 단체성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과 행적 안에서 그 뿌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언제나 제자들과 함께 활동하셨고, 예수님을 통해 제자들은 하느님 아버지께로 가는 삶의 방식을 배웠습니다. 친교는 예수님을 통해 삼위일체 하느님을 체험한 하느님 백성들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일치에 도달하는 여정입니다. 단체성은 이러한 친교가 개별 교회 차원을 넘어 그리스도의 유일한 보편 교회의 친교를 이루는 것입니다.
2세기 말엽부터 이웃한 주교들이나 일정 지역 주교들이 모여서 지역 단위의 시노드를 시작하였습니다. 시노드를 통해 주교들은 사도 전승으로 명확하게 설명할 수 없는 사안이나 주교들이 개별적으로 해결하기에는 벅찬 문제들 함께 고민하였습니다. 시노드의 결정사항들은 친교와 단체성 차원에서 다른 주요 교회에 전달되었습니다. 사도 시대에서 멀어지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시노드를 통해 신앙과 교회생활의 올바른 길을 확인하고자 하였으며, 다른 교회와의 교류를 통해 모든 교회 구성원이 믿음과 삶에서 올바른 길을 걸을 수 있기를 희망하였습니다.
이러한 시노드 정신은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869년 제4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이전까지 황제에 의해 소집된 공의회들의 영향이 컸습니다. 이 시기에 개최된 공의회들은 교회 내에 발생하는 대립을 조기에 봉합하고, 획일적인 신앙의 기조를 마련하여 제국의 평화를 도모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고 있었습니다. 황제들에게는 시노드의 근본정신은 애초에 관심의 대상이 될 수 없었습니다.
대표적으로 325년에 보편 교회 차원에서 공의회를 최초로 소집한 콘스탄티누스 황제는 공의회를 황제의 자문회의라고 이해하였습니다. 황제는 자신이 소집한 니케아 공의회를 통해 전문가들의 조언을 듣고,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게다가 황제는 만장일치의 결정을 수용하지 못하는 주교들을 추방하고 공의회 자체를 좌지우지하였습니다. 이 과정에서 공의회 참석자들 사이에 파당이 형성되었고, 황제 중심의 제국주의적 공의회가 거듭되면서 친교와 단체성이라는 시노드의 정신은 점점 더 기대하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사도 시대와 초대 교회의 시노드는 성서에 직접적으로 의존하여 힘과 근거를 얻고 현실에서 마주하는 신앙의 문제들을 함께 고민하면서 친교와 단체성의 시노드 정신을 구현하고자 하였습니다. 그리스도교가 공인된 이후 공의회는 신학적 투쟁의 장이 되었습니다. 공의회와는 별개로 개별 지역 차원에서 시노드들이 열렸지만, 시노드의 주된 관심사는 공의회에서 다루어지고 있는 신학적 주제들이었습니다. 시노드가 앞선 공의회에서 해결하지 못한 문제에 매이게 되면서, 6세기 이후에는 시노드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시노드를 포기하는 국가들이 등장하기 시작하였습니다.
제국주의적 공의회 시기 동안 시노드 정신이 쇠퇴한 것으로 보입니다. 한편으로는 첫 예루살렘 사도 공의회가 가졌던 역동성과 예수님의 여정에 주목하게 됩니다. 안티오키아 공동체의 바오로 사도가 제기한 문제에 대해서 사도들과 원로들이 한 번에 의견 차이를 극복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하지도 못하면서 서로 자기가 높은 자리를 차지하겠다고 싸웠습니다. 어찌 보면 교회 역사 안에서 펼쳐진 시노드의 여정은 그 자체로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의 삶을 반영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러한 차원에서 본다면 시노드와 관련된 논의는 신앙인의 모습을 반추해 볼 수 있는 토대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8월 20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시노드의 발전 III
(5) 중세 교회
2000년 이후 한국 교회 내에서 교구 단위 시노드가 열렸습니다. 교구 시노드는 교구장 주교가 교구 구성원들의 대표자들을 소집해서 하는 회의를 말합니다. 공동체 전체 구성원이 각자의 역할을 존중하며 참석해야 하므로, 교구 대의원으로 직접 참석한 신자분들이 있으셨을 것입니다. 참여하지 못하였더라도 자신들의 의견이 시노드에 반영되는 경험은 하셨을 것입니다. 하지만 한국 교회 신자들에게 시노드는 그 자체로 여전히 낯선 용어로 보입니다. 시노드를 이해하기 위해서 시노드와 공의회를 비교하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시노드는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하느님 말씀에 비추어 성령께 귀 기울이어 식별하기 위해 소집된 여러 차원의 교회회의입니다. 공의회는 어원은 다르지만, 시노드와 의미 자체는 같습니다. 공의회는 시노드의 의미론적 내용을 풍부하게 해주는 용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시노드와 공의회는 특별한 구분 없이 교회 내에서 사용되었으며, 실제로 단어의 용법 자체가 구별된 것도 최근입니다.
하지만 시노드와 공의회는 중세 교회 시기를 거치면서 그 사용에 있어 실제적인 구분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보편 공의회는 제국 공의회 시기를 지나 중세 교회에 이르러 서방 그리스도교 교회를 중심으로 열리기 시작하였습니다. 이 시기에 보편 공의회는 두 가지 형태로 진행되었습니다. 우선 교황 중심의 공의회들이 등장하였습니다. 교황 중심 공의회에는 주교들만이 아니라 그리스도교계의 모든 신분이 참석하였습니다. 다만 참석자들은 교황에 대한 자문 역할만 수행하였습니다. 뒤이어 공의회 우위설을 주장하며 등장한 공의회들은 참석자들이 단순히 교황의 자문 역할에만 머무는 것을 원하지 않았습니다. 동시에 이 공의회들은 공의회 자체를 교황권을 뛰어넘는 보편 교회의 최고 의결 기구로 위치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중세 교회 시기에 열린 보편 공의회의 역동성 안에서 공의회에 누가 참석할 것이며, 참석자들이 어떤 역할을 할 것인지, 그리고 누가 의결권을 가질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시작된 것으로 보입니다. 이 과정에서 보편 공의회를 중심으로 시노드와 공의회의 성격을 구분하는 토대가 마련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논의의 연장선에서 오늘날 교회에서 공의회는 의결권을 가진 보편교회 차원의 교회회의이며, 시노드는 상대적으로 교회 구성원들의 참여가 강조되는 개별 교회 차원의 자문회의로 구분될 것 같습니다.
시노드와 공의회의 기능적 구분의 토대가 마련되었다는 사실과 더불어 중세 교회는 끊임없는 신앙의 분열 시기였다는 점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중세 교회는 신앙의 도전뿐만 아니라 교회의 정체성을 고민해야 했습니다. 사실 중세 교회는 교회 역사 안에서 암흑기로 평가받기도 합니다. 사실 보편 공의회는 교황권을 중심으로 한 대립의 장이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보편 공의회는 그 자체로 교회가 함께 걷는 여정이었습니다. 시노드와 공의회의 구분은 이 여정 중에 발생한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중세 교회의 모습과 현재 한국 교회가 처한 상황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습니다. 현재 한국 사회 안에서 종교는 사회적 분열을 일으키는 손가락질의 대상이 되었으며, 종교는 그 필요성을 스스로 증명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교회는 세상과 어떻게 대화해야 할지 몰라 고민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가 당면한 현실 앞에서 교회와 함께 고민하고 교회를 위해 목소리를 내고 있다면, 이미 그 자체로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시노드에 참여한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3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시노드의 발전 IV
(6) 종교 개혁 시기
희랍어 ‘시노도스’는 ‘함께’라는 접두사 ‘쉰-’과 ‘길’을 뜻하는 ‘호도스’가 결합된 단어로써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의미합니다. ‘시노도스’는 ‘시노두스’(synodus)와 ‘콘칠리움’(concilium)이라는 라틴어로 번역됩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문헌에 따르면, ‘시노두스’는 ‘시노드’로 콘칠리움은 ‘공의회’로 각각 번역됩니다. 정리해보면 현재 사용되는 ‘시노드’(시노두스)는 교회 역사 안에서 ‘공의회’(콘칠리움)이라는 단어와 함께 희랍어 ‘시노도스’를 가리켰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도 시노드와 공의회는 공의회적 회합을 가리킬 때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용어의 어원적 속성과 더불어 오늘날 시노드는 공의회와 구별되는 교회 제도라는 점이 강조되고 있습니다. 일반적인 설명에 따르면 공의회는 의논하고 결정해야 할 중대한 사안이 있을 때 열리는 주교들의 회의로써 보편 공의회(세계 공의회)와 개별 공의회(지역 공의회)가 있습니다. 한편 시노드는 교회의 중요한 사안들을 논의하는 대의원 회의로써 주교 대표들이 참석하는 주교 시노드(주교대의원회의)와 교구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 대표들이 참석하는 교구 시노드가 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시노드와 공의회가 구별되는 지점이 분명히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현실을 생각해 본다면, 시노드와 공의회의 기원인 ‘함께 걷는’ 교회의 정신에 주목해야 할 것 같습니다. 교회는 신앙과 삶의 의기를 초래하는 문제가 발생했을 때 성령 안에서 함께 문제를 검토하고 교회가 따라야 할 길을 모색하고 선포하였습니다. 시노드와 공의회에는 이러한 삶의 방식이 투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는 시노드와 공의회를 통해서 따라야 할 교리가 무엇인지 고민하고 참다운 교회의 모습이 갖추고자 노력해 왔습니다.
물론 교회의 발전 과정에서 시노드와 공의회를 통한 고민과 노력이 언제나 열매를 맺은 것은 아닙니다. 특히 종교 개혁 직전에 열린 제5차 라테란 공의회에서는 교황 중심의 교계 제도가 더욱 확고해졌습니다. 이후 16세기 종교 개혁자들은 교황 중심의 가시적인 교계 제도 자체를 부정하고 순전히 영적이며 비가시적인 교회만이 참되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종교 개혁자들이 제도적 차원을 전적으로 부정하면서, 교회는 이에 대한 대응으로 트렌트 공의회를 통해 교회의 제도적인 차원을 강조하게 되었습니다.
종교 개혁 이후 시기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여정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가톨릭교회가 가시적인 교계 제도를 강화하는 과정에서 성직자와 평신도의 구분이 분명해졌습니다. 성직자는 교회의 삶과 복음을 증언하는 능동적인 주체이고, 평신도는 이들의 지도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존재로 인식되었습니다. 교회 내에서 평신도의 역할은 이후 수백 년 동안 수동적으로 머물렀습니다. 하느님 백성이 교회의 삶과 사명에 있어 주체라는 인식이 후대에 가능해졌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일회적으로 끝나는 회의라는 차원이 아니라, 교회의 긴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 백성의 구원 여정이라는 긴 관점에서 바라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종교 개혁 시기의 역사만 놓고 본다면 시노드와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이라는 근본 정신과는 거리가 있어 보입니다. 하지만 이 시기를 거치면서 성직자 중심주의의 교회관에서 벗어나, 평신도의 능동성과 주체성에 주목해야 할 필요성이 대두되었습니다. 이러한 하느님의 역사 하심 앞에서 겸손해지는 과정은 그 자체로 시노드의 일부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10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시노드의 발전 Ⅴ
(7) 근현대 교회
프로테스탄트 진영에서는 트리엔트 공의회가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대응하기 위한 수동적 공의회라고 이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프로테스탄트 개혁이 시작된 1517년과 트리엔트 공의회가 마무리된 1563년 사이의 40여 년의 시간뿐만 아니라, 그 이후 근현대 시기에 가톨릭교회는 본연의 가치를 붙들고자 항구히 노력했다는 평가도 존재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는 프로테스탄트 개혁에 대한 반동으로 전통의 교리를 재확인하고 교회의 제도적 개혁을 통해 사제권의 오남용을 막고자 했습니다. 이를 위해 성직자와 평신도의 위계를 명확하게 구분하고 위로부터 아래로 이루어지는 하향식 교회 구조를 견고히 했습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300년 만에 개최된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는 교황의 수위권과 교도권적 무류성의 교리를 승인하였습니다. 공의회는 로마 주교의 수위권을 하느님 백성의 신앙에 봉사하기 위한 주교직의 단일성과 불가분리성의 보증이 되는 직무로서 제시했습니다.
이 결과 교황을 정점으로 하여 목자들로 구성된 ‘가르치는 교회’와 하느님의 백성의 나머지 구성원으로 이루어지는 ‘배우는 교회’의 구분이 분명해졌습니다. 근현대 시기 공의회와 시노드의 구성은 주교들이 압도하였으며, 신학적 주제들을 다루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신자들이 참여할 수 있는 여지는 점점 줄어들었고, 시노드의 핵심 요소인 ‘함께 걷는’ 여정이라는 측면은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습니다. 구체적으로 트리엔트 공의회 이후 개최된 시노드들의 목표는 하느님 백성의 능동적 참여가 아니라, 시노드를 통해 마련된 규범과 결정의 전달 및 실현이었습니다.
시노드의 근본 정신에 비춰본다면, 근현대 교회에서 하느님 백성인 신자들의 입지가 점차 줄어들었다는 점은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신자들의 신앙 감각이 강조되기 시작했다는 사실은 성령이 활동하시는 교회 역동성을 목격할 수 있는 지점이기도 합니다. 19세기에 신앙감각의 중요성을 강조한 학자들이 등장했습니다. 이들은 성경과 성전의 규범적 원천들과 더불어 성서학과 전례학 및 교부학을 토대로 교회의 쇄신을 위한 신앙감각의 회복을 중요시하였습니다. 그들은 교황과 주교의 특수한 직무와 내적으로 본질적 관계를 맺고 있는 신자들의 신앙감각을 중시하였습니다.
이러한 신앙감각에 대한 강조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하느님 백성의 신앙감각과 교도권 사이는 호혜적이라고 강조합니다. 성령께서 하느님 백성 안에서 신앙감각을 일으켜 주심으로써 이 백성으로 하여금 신앙 진리를 수호하고 전달하게 하시며 교도권은 같은 성령의 인도를 받아 하느님 백성을 인도합니다. 하느님 백성의 신앙감각과 교도권의 상호 역동성 안에서 하느님 백성은 교회의 당당한 구성원임이 확인되었습니다.
시노드 정신은 예루살렘 공의회에서부터 발견됩니다. 이후 초대와 중세 교회 시기를 거치면서 하느님 백성들은 이단과 함께 싸우고 고민하며 교회의 기초를 다졌습니다. 프로테스탄트 개혁 시기를 거치면서 하느님 백성의 일부인 성직자들이 앞장서고 신자들이 그 뒤를 따르는 교회의 모습이 강조되었습니다. 근현대 교회는 신앙감각을 통해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걷는 교회의 모델을 제시하였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하느님 백성들은 늘 함께 걸어왔습니다. 이런 면에서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시노드의 여정은 교회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17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세계주교시노드
(8) 세계주교시노드의 제정
4회기에 걸쳐 진행된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는 교회 역사상 가장 큰 규모의 공의회로서 참석자들이 다양해졌습니다. 제1차 바티칸 공의회의 참석자가 700여 명이었던 것에 비해, 참석 인원은 3000명으로 늘었으며, 처음으로 비유럽 지역 참석자가 반수를 넘었습니다. 참석한 주교들의 지역별 분포는 유럽 1089명, 중남미 573명, 북미 404명, 아시아 374명, 아프리카 296명, 오세아니아 75명이었으며, 4회기에 이르러 평신도 대표가 여성 수도자들을 포함하여 52명으로 늘었고, 개신교 국제기구의 대표 참관인들은 80여 명에 달했습니다.
앞서 열린 모든 공의회는 교회 가르침을 손상하는 오류와 이단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핵심 사안이었습니다. 반면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의 교리를 공격하거나 교회 일치를 저해하는 요인들을 다루지 않았습니다.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이단을 지정하지 않은 유일한 공의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였습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소집한 요한 23세 교황은 개회 연설을 통해 공의회의 목표는 교회의 주요 교리를 토의하여 전통적 교리를 확인하는 일이 아니라고 역설하였으며, 공의회의 목적이 갈등의 씨앗을 찾아내고 근절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하였습니다.
이러한 방향성 안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공의회 정신을 지속해 나가기 위해 ‘주교대의원회의’를 제정하였습니다.(참조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주교들의 사목 임무에 관한 교령 주님이신 그리스도」 5항) ‘주교 시노드’라고도 부르는 ‘(세계)주교대의원회의’는 지역 교회의 사목자인 전 세계 주교들이 교회의 중대사를 숙고하며 교황에게 자문할 목적으로 소집되는 회합입니다. 정기총회는 3~4년 주기로 열리며, 필요에 따라 임시총회가 열리기도 합니다. 가장 최근에 프란치스코 교황이 소집한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는 2021년 10월에 시작하여 2023년 10월 본회의로 마무리될 예정이었습니다. 더 많은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현재는 전체 일정이 1회기와 2회기로 나뉘어 2024년 10월 본회의가 진행될 예정입니다.
한국 교회는 제16차 ‘세계주교대의원회의’를 ‘세계주교시노드’로 수정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최근에 교회 안에서 ‘시노드’라는 용어를 자주 접하였다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와 관련되어 있을 것입니다. 시노드 교구 단계 그룹모임을 통해 신자들에게 ‘함께 걷는’ 여정의 의미를 질문하고, 그 결과를 수렴하는 과정을 거쳤습니다. 세계주교시노드는 주교 대의원들의 자문 회합에서 시작되었지만, 현재는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최대한 경청하기 위한 제도적 발전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 안에서 신자들에게 시노드는 의견 수렴을 위한 절차 정도로만 인식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세계주교시노드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신자들의 답변을 경청하기 위해 길고 어려운 과정을 거치는 이유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자문을 구하는 것이 요구됩니다. 또한 교회에서의 자문 절차는 곧 신앙 감각을 모으는 과정입니다. 하느님 백성은 ‘개별 신자 신앙 감각’으로부터 비롯되는 신앙을 ‘믿는 이들의 (공동체적) 신앙 감각’으로 승화시키는 가운데에서 성장합니다. 세계주교시노드는 하느님 백성 전체에게 자문을 구하고 이를 통해 교회 구성원들과 함께 하느님의 뜻을 식별합니다. 신자들은 시노드를 통해 이 과정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9월 24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
(9)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1년 10월 10일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를 소집했습니다. 이 총회는 일 년의 간격을 두고 두 번의 회기로 나누어, 제1회기는 2023년 10월 4~29일에, 제2회기는 2024년 10월에 열릴 예정입니다. 제1회기의 목표는 무엇보다도 시노달리타스 방식으로 이루어야 할 심화 과정을 개략적으로 그리는 것으로서, 다루어야 할 주제들과 그 결실을 거둘 방법을 제시합니다. 그리고 2024년 10월 제2회기에서는 식별을 완료하고, 시노드 정신으로 살아가는 교회로서 성장하기 위한 구체적인 제안을 마련해 교황께 제출합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교회의 사명인 복음 선포의 과정에서 오늘날 지역 차원에서부터 보편 차원에 이르기까지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는가?”라는 질문에 기초한 하느님 백성의 자문 과정으로 시작했습니다. 자문의 열매들은 교구 차원에서 수합되어 동방 가톨릭교회 시노드와 주교회의에 보내져 종합되었습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작성된 종합 의견서는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보내지고, 취합되어 ‘대륙별 단계 작업 문서’가 작성되었습니다. 전 세계 지역 교회는 이 문서를 돌려받아 살펴보고, 7개 대륙별 회의에서 서로 만나 대화하도록 초대되었습니다. 이 결과로 ‘대륙별 회의 최종문서’가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제출되었으며, 이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의안집(Instrumentum Laboris)」으로 종합되었습니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2023년 7월 7일 제1회기 참석자 명단을 발표했습니다. 이 총회에는 전 세계에서 400명 이상의 대의원이 참석합니다. 이 가운데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은 364명입니다. 그리스도교 타 종교 대표단 30여 명과 특별 초청자 8명은 투표권이 없이 논의에 참석하거나 조언만 할 수 있습니다. 투표권을 가진 대의원은 교황을 비롯한 성직자부 장관 유흥식 추기경을 포함한 교황청 관계자와 세계 각국 주교회의를 대표하는 추기경과 주교, 동방 가톨릭교회 대표와 각 지역 주교회의연합회 대표, 그리고 각국 주교회의에서 추천받았거나 교황에 의해 직접 임명된 대학생, 난민 지도자, 과학자, 신학자 등을 포함합니다. 주교가 아닌 참석자의 비율은 21%를 차지하며 그중에 여성이 54명입니다. 한국 교회는 주교회의를 대표해서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가 참석합니다.
시노드 총회 참석자들은 제1회기 의안집을 토대로 교회 현안에 대한 식별 작업을 지속합니다. 의안집은 총 2부로 나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지금까지의 시노드 여정을 돌아봅니다. 제2부는 3개의 우선적 질문과 질문에 따른 다섯 개씩의 작업 목록(Worksheets)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총회 참석자들은 언어권 별로 구성된 12명 단위의 소모임(Circuli Minores)에 참석하며, 그룹 작업을 통해 제2부에서 제시된 각각의 작업 목록의 내용을 경청하고 식별하여 발전시키게 됩니다.
제1회기의 결실은 많은 주제들에 대해 공유되는 결론적 방향성을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예상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1년의 기간을 두고 회기를 나눈 것은 이를 염두에 둔 것으로 보입니다. 제2회기까지 시간은 시노드 정신 살아가는 교회라는 주제를 지속적으로 식별하는 시간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최종적으로 제2회기는 신학적 및 교회법적 심화를 촉진하면서, 그때까지 이루어진 결실을 토대로 함께 걸어가야 할 길을 분별하는 데 전념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0월 8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주님 안에서 말하고 경청하기
(10) 시노드 정신의 재발견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10월 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를 ‘복음화의 맥락에서 가정에 관한 사목적 도전들’이라는 주제로 소집했습니다. 이어 2015년 10월에는 제14차 정기총회가 ‘오늘날 교회와 세상 안에서 가정의 성소와 사명’이라는 주제로 진행됐습니다. 2018년 10월에 진행된 제15차 정기총회의 주제는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이었으며, 현재 열리고 있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하여 : 친교, 참여, 사명’이라는 주제로 진행 중입니다.
교황이 주목한 시노드 정신
1967년 제1차 정기총회 이후 세계주교시노드는 시기별로 교회가 관심으로 가져야 하는 주제들을 중심으로 진행되었습니다. 이에 비해 현재 진행되는 시노드는 시노드 정신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는 시노드 정신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지속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치발타 카톨리카(16권, 2023년 여름) 한국어판에 따르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음과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저는 로마 주교의 직무를 시작한 때부터 시노드의 가치를 드높이려고 했습니다. 시노드는 분명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남긴 가장 고귀한 유산 가운데 하나입니다.
시노드 정신 실현을 위한 과정의 변화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기 위해서 우선 ‘시노드 과정’ 자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함께 걸어가야 합니다. 사람들과 주교와 교황이 말이죠, 시노드의 정신(시노달리타스)은 다양한 단계에서 살아 내야 합니다. 아마도 시노드의 방법론을 바꿀 시기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내가 보기에는 지금의 시노드는 경직된 모습이어서요.”(치빌타 카톨리카 인터뷰, 2013년 9월 19일). 이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과정이 진정으로 가치와 효력을 지니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주역들이 발언하고 표현하는데 충분한 자유가 주어져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교황이 뭔가 다른 것을 생각했을 거라고 여기면서 말하지 않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주님 안에서 말해야 한다고 느끼고 모든 것을 말해야 합니다. 동시에 겸손한 마음으로 들어야 하고, 형제들이 말하는 것을 열린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세계주교시노드 제3차 임시총회 1차 전체회의)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향하는 이러한 변화는 시노드의 원형인 ‘예루살렘 사도회의’와 이후에 이어진 사도들 사이의 분위기 안에서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 사이에 ‘오랜 논란’(사도 15,7)이 있었다고 서슴없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는 할례의 문제에 관해 유다에서 온 다른 형제들과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이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사도 15,2)을 일으켰던 다른 ‘분쟁’에 이어서 일어난 일입니다. 그리고 케파에게 ‘정면으로’(갈라 2,11) 반대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그 자체로 열정의 표시였습니다.
대면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에 참석하는 교부들이 대면하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요청합니다.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 외에 우리를 결합시키는 다른 가톨릭적 방법은 없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시선으로 우리에게 친밀함을 요구하는 수많은 상처 입은 사람들에게 교회의 문을 열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하느님 백성이 각자의 생각을 말이나 표현으로 드러낼 성숙한 자유를 제어하지 않아야 합니다. 시노드는 바로 이러한 교회의 신비가 실현되고 체험되는 구체적인 현장이 될 수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노드 정신에 주목한 이유가 바로 이 지점에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0월 8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누구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시노드의 핵심
(11) 시노드 정신과 하느님 백성의 참여
시노드는 교회 지도자가 홀로 사목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여 도출한 결과를 존중하며 권위 있는 지도자가 최종적으로 결정을 내리는 교회 고유의 의사결정 과정입니다. 시노드는 부활하신 주님의 인도 아래 하느님 백성 전체, 그 다양한 구성원이 책임감을 갖고 협동하며 공동성을 위해 다양한 은사와 직무를 행하며 함께 걸어가는 여정입니다. 시노드는 교회의 여러 가지 회의 절차 중의 하나가 아닙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함께 하는 길이었고 지금도 ‘함께 걷는’ 시노드의 여정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노드의 정신은 구체적으로 교회를 실현하는 방식이 됩니다.
세계주교시노드는 각각의 회기마다 당시 교회가 함께 숙고해야 할 사안들을 주제로 삼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미 가정과 청소년을 주제로 세계주교시노드를 소집하였습니다. 현재 열리고 있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시노드 정신’ 자체를 주제로 삼고 있습니다. 특히 이번 시노드는 하느님 백성이 시노드 여정에 직접 참여함으로써 교회의 본질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경청’과 ‘대화’의 자세로 시노드에 참여하고 성령의 소리에 귀 기울여 식별하게 됩니다. 과거의 주교시노드가 정적인 행사의 성격이었다면 이제는 시노드 정신에 따라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걸어가는 과정 자체를 체험하는 시노드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의 실현과 하느님 백성의 참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노드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접근 과정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과정에서 기탄없는 의견 제시를 강조해 왔습니다. 재임 초기부터 시노드의 경직된 분위기를 경계해야 한다고 지적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정과 청소년을 주제로 했던 이전의 세계주교시노드에서 실제로 현대의 가정들이 어떠한 삶을 살아가고 있으며,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현실의 어려움이 무엇인지를 직접 듣고 이를 있는 그대로 시노드 여정에서 함께 식별하고자 하였습니다. 실제로 첨예한 대립이 예상되는 문제들이 시노드 과정에서 다루어졌습니다. 몇몇 사안은 교회의 분열이 우려될 정도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모든 이가 참여해 누구든 소리 내어 말하는 것이 시노드 핵심이라고 보았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과정에서 하느님 백성의 지혜가 드러나는 과정은 인내와 노고가 요구되며, 서로가 서로에게 귀를 기울이고 성령께 귀 기울이는 여정은 그 자체로 교회의 구성적 차원이라고 강조하였습니다.(2015년 10월 17일 주교 시노드 설립 50주년 개막 연설) 프란치스코 교황은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고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을 듣는 교회의 역동성 안에 모든 하느님 백성이 참여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21세기 가톨릭교회는 여러 가지 차원에서 쇄신의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정신에 따라 교회의 모든 구성원이 교회의 사명 안에서 함께 걸어야 함을 강조합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하느님 백성은 서로 경청하고 함께 식별하는 과정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가 용기와 담대함으로 발언하고, 이를 통해 진정한 자유와 진리, 사랑이 어우러질 때, 대화는 더 이상 침묵과 고통을 포함하는 인내의 과정이 아닙니다. 하느님 백성은 편견 없이 열린 마음과 정신으로 상대방을 경청하는 시노드 체험을 통해 진정한 쇄신의 여정으로 초대받았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0월 22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경청은 희생 따르는 순교 과정
(12) 시노드 정신과 경청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함께 걷는 시노드 여정에 하느님 백성 전체가 ‘경청’과 ‘대화’의 자세로 참여하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용기 있고 담대하게 발언하고 편견 없이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과정 안에서 하느님 백성이 성령의 활동에 열려 있는 교회 공동체의 신비를 체험하는 것이 시노드 정신의 근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시노드를 통해 교회는 생명력을 되찾고 하느님 백성이 함께 나아가야 할 방향을 식별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가 경직된 제도적 정치가 아니라 교회의 역동성이 실현되는 기회가 되어야 하며,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경청이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영적으로 깨어 있을 때 경청할 수 있어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청의 중요성과 더불어 경청이 얼마나 어려운 것인지에 대해 분명히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2016년 5월 8일 발표된 홍보 주일 담화에 따르면, 다른 이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여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며 존중하는 경청을 위해서는 자기 희생이 따르며, 이를 일종의 순교 과정이라고 언급하였습니다. 실제로 경청을 위해서는 상대방의 목소리에 집중하기 위한 엄청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청하겠다고 애써 마음을 먹었다고 하더라도 상대방이 나를 경계하는 태도를 보이게 되면 우리는 쉽게 경청의 태도를 포기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경청을 실천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떠한 노력이 필요한지에 대해서도 언급하였습니다. 2014년 6월 1일에 발표된 홍보 주일 담화에 따르면, 우리는 깊이 있는 사람, 주변에 일어나는 일에 관심을 기울이고 영적으로 깨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영적으로 깨어 있다는 것은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을 통해서 가치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는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상대방의 관점과 제안을 존중하는 동시에 자기 생각이 유일하고 절대적이라는 태도를 포기하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대화의 태도는 자연스럽게 우리를 경청으로 인도합니다.
이러한 태도와 관련하여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의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 문헌은 시노드 정신에 따른 대화를 위해 겸손이 요구된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112항). 겸손은 각자가 하느님의 뜻에 순종하게 하고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서로에게 순종하게 해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겸손한 마음으로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길 것을 권고합니다.(필리 2,3ㄴ-4 참조) 이기심과 허영심을 버리고 남을 자기보다 낫게 여기며,(필리 2,3ㄱ참조) 공동의 선과 이익을 첫 자리에 두는 노력은 자연스럽게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으로 이어질 것입니다.
경청, 시노드 경직성 극복의 열쇠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이전에도 경청과 관련된 오늘날의 문화에 대해 염려해 왔습니다. 교황은 우리는 서로 경청하는 대신 자주 서로 자기 말만 한다고 일갈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제56차 홍보 주일 담화, 2022년 5월 29일) 또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가 시작되기 전에 발표된 회칙 「모든 형제들」에서는 오늘날 침묵과 주의 깊은 경청이 사라지고 사려 깊은 인간 커뮤니케이션의 구조가 위험에 놓여 있다고 지적합니다.(49항) 이와 더불어 진리와 만남을 통한 형제애를 건설하기 위해 참된 만남을 통한 향한 자유롭고 열린 정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50항) 프란치스코 교황이 시노드 과정에서 경청을 강조한 이유는 열린 경청이 시노드 자체의 경직성을 극복하기 위한 열쇠가 될 뿐만 아니라, 시노드를 통한 경청의 능력 회복이 신앙생활 전반에 걸친 쇄신으로 이어지길 기대한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0월 29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소신껏 말해야 합니다
(13) 시노드 정신과 담대하게 말하기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여정 안에서 겸손한 경청의 중요성은 강조되었지만, 상대적으로 담대하게 말하기는 주목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재임 초기부터 시노드의 경직된 회의 방식을 안타까워하였습니다. 프란치스크 교황은 시노드에 참석한 이들이 교황이 뭔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라고 짐작하고 소신껏 말하지 않는 것은 시노드 정신에 어긋난다고 지적하였습니다. 2014년에 진행된 제14차 세계주교시노드 1차 전체 회의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정신에 따른 말하기에 대한 견해를 명시적으로 밝혔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과정에서 참석자들은 주님 안에서 말해야 한다고 느끼는 것은 모두 주저 없이 담대하게 말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외면하고 싶은 고뇌의 순간 마주하게 돼
따라서 시노드는 솔직하고 적극적인 분위기에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자기가 하려는 말을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판단할 것인가 걱정하거나 주저하지 말고 명확하게 이야기해야 합니다. 시노드 회의를 통해서 마주하는 모든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이를 통해 시노드 참석자들은 다양한 현실의 문제를 직시하고, 우리가 외면하고 싶은 고뇌의 순간들을 만나게 됩니다.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고 싶은 마음에 신속하게 마무리하려는 유혹을 주의해야 합니다. 시노드 과정에서 공유하게 되는 불완전한 상황들을 불화와 균열로만 인식되어서는 안 됩니다. 바로 이 작은 틈들을 통해 시노드의 은총이 통과할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에 따른 담대한 말하기는 다양한 분야의 주역들이 충분한 자유를 가지고 발언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이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하느님 백성 이해를 반영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평신도들은 그들이 갖춘 지식과 능력과 덕망에 따라 교회의 선익에 관련되는 일에 대하여 자기 견해를 밝힐 권한이 있을 뿐만 아니라 때로는 그럴 의무까지도 지닌다”(「교회헌장」 37항)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이 시노드를 통해 실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분야 주역들 자유롭게 발언할 기회
시노드 정신에 따라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은 서로 생각과 소명과 사명이 다른 교회의 구성원들을 하나의 역동적 주체로 일치시키는 성령의 활동에 동참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현실을 살펴보면 시노드의 과정을 통한 일치는 쉽게 경험하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시노드 회의에서 마주하게 되는 긴장감이 논쟁적인 토론의 분위기로 이어지는 경우가 더 자주 있는 것 같습니다. 적극적이면서도 신중하게, 그리고 긴장을 유지하면서도 걱정하거나 불안해하지 않는 분위기에서 시노드를 진행하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노력이 필요합니다.
경청하는 태도 보일 때 마음 열고 대화
이를 위해서 경청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설명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복음의 기쁨」, 171항). 경청을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듣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기본 성향적으로 상대방의 이야기에 주의를 기울이지 못합니다.(완전한 반대 성향) 따라서 경청 자체만을 목적으로 할 때는 오랜 인내와 수행의 과정이 요구됩니다. 반면에 시노드 과정에서 우리가 상대방에게 경청하려는 태도를 보일 때, 상대방은 친밀감을 느끼고 자연스럽게 마음을 열어 대화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됩니다. 자신의 태도로 인해 상대방이 마음을 열어 담대하고 용기 있게 말하는 것을 체험한다면, 자연스럽게 경청의 태도를 유지하게 될 것입니다. 담대하게 말하기와 겸손하게 경청하기가 유기적으로 일어나는 것이야 말로 시노드의 열매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5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망설임 없이 두려움 없이 세상에 나아가기
(14) 시노드 정신과 교회 쇄신
프란치스코 교황은 담대하게 말하고 겸손하게 경청하는 시노드 정신을 통해 정태적인 시노드 방식의 변화가 가능할 것이라 보았습니다. 시노드에 대한 이러한 교황의 기대는 교회 쇄신의 차원에서 설명될 수 있습니다. 선출 직후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 2013)을 통해 복음화를 위한 선교 사목적 비전을 제시했습니다. 교황은 신앙-교리 중심의 틀에서 벗어나 세상에 나아가 주저하거나 망설이지 않고 두려움 없이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로 거듭나야 하며(23항), 이를 위해 교회의 구체적인 쇄신을 요청하였습니다.
직무에 도움 될 제안에 늘 열려있을 것
우선 프란치스코 교황은 교황직에서부터 쇄신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복음의 기쁨」 32항에 따르면, 교황직과 보편 교회의 중앙 조직들이 사목 개혁의 요청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로마 주교로서 교황의 의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뜻과 복음화의 현실적 요구에 충실하기 위해서 자신의 직무 수행에 도움이 될 수 있는 여러 제안에 늘 열려있는 것입니다. 교황의 이러한 개방성은 세계주교시노드와 관련해 시노드 과정에서 교황이 어떤 생각을 할지 고려하여 발언을 주저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강조한 배경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뒤처진 이들에 대한 격려와 경청
이어 교황은 「복음의 기쁨」 31항을 통해 주교들에게 요구되는 쇄신의 모습을 제시합니다. 주교들은 역동적이고 개방적이며 선교적인 친교를 증진해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주교들은 앞에 나서서 방향을 제시하고 희망을 북돋아 줄 때도 있지만, 때로는 뒤로 물러서서 뒤처진 이들을 돌보고, 이들이 스스로 새로운 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따라서 주교들은 자신이 듣고 싶어 하는 말만 해주는 일부의 말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말을 귀담아들으려는 열망으로 여러 형태의 사목 대화들을 장려하고 발전시켜야 합니다. 뒤처진 이들에 대한 격려와 경청은 바로 시노드가 지향하는 대화의 태도입니다.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복음의 기쁨」 33항은 교회에 필요한 쇄신은 교황과 주교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고민해야 할 대상이라고 설명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늘 이렇게 해왔으니까’라고 말하는 안이한 태도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언급합니다. 이어 교황은 각 공동체가 복음화를 위해 가지고 있던 기존의 목표와 조직, 또는 양식과 방법을 과감하고 창의적으로 재고하고, 구체적으로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실현 가능한 방법들을 찾아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모든 사람이 두려움 없이 용기 있게 참여하며, 언제나 형제자매들이 의지하며 함께 걷는 여정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역설합니다. 이러한 복음화의 과정들이 가시적으로 실현되기에 적합한 제도가 바로 시노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화의 출발점, 자비와 사랑의 체험
시노드 정신에 따른 담대하게 말하기와 겸손하게 경청하기는 교회 쇄신의 과정에서 지속해서 나타나고 있습니다. 더욱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복음화는 경청으로부터 시작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공동체는 아버지의 자비와 그 무한한 힘을 경험하였기에 자비를 베풀려는 끝없는 열망을 지니고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24항)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와 사랑의 체험이 복음화의 출발점이며, 이러한 체험은 경청을 통해 가능합니다. 존중과 사랑에 넘치는 경청에서 출발할 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이상인 하느님 사랑에 온전히 응답하려는 열망을 일깨울 수 있으며, 하느님께서 우리 삶에 뿌리신 씨앗의 열매를 맺으려는 갈망을 일깨울 수 있습니다.(「복음의 기쁨」 171항)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12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온전히 성령께 맡기는 열린 마음이 필요합니다
(15) 시노드 정신과 공동체적 식별
시노드 정신은 담대하게 이야기하고 겸손하게 경청하는 대화로 초대합니다.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 문헌은 시노드적 대화의 특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합니다. 이 대화는 의견과 경험의 다양성을 통해 드러나는 차이 속에서 친교를 증진시키며 타자의 눈을 통하여 새로운 전망과 관점들을 얻게 되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을 공유하게 해줍니다. 더불어 용기 있는 대화를 통해서 우리는 성령께서 공동체에 알려주시는 것을 깨닫고, 다른 사람들의 견해들 가운데에서 공동선을 위하여 같은 성령께서 드러내시는 것에 열려 있게 됩니다.(111항)
타자의 눈 통해 새로운 전망·관점 얻게 돼
또한 문헌은 이러한 시노드적 대화를 공동체적 식별과 함께 설명합니다. 시노드 안에서 식별은 형제자매들과 진솔하고 평온하고 객관적인 대화를 통해, 각 공동체와 각 상황의 실제 문제들에 주의를 기울이고, 그리스도의 몸을 건설하고 복음을 선포하고자 힘을 모으는 가운데 이루어져야 합니다.(114항) 식별은 시대의 표징들을 해석하고, 역사적 상황 안에서 들려주시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발견하며, 이러한 공동체적 식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계획에 봉사하기 위해 함께 걸어가게 됩니다.(113항) 시노드적 대화를 토대로 한 공동체적 식별을 통해 교회는 함께 걷는 여정의 방향을 설정하게 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대화와 식별의 과정이 시노드의 핵심적인 요소라고 보았습니다. 이와 더불어 교황은 저서 「렛 어스 드림(2020)」을 통해 이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에 대해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 시노드에서 격렬한 토론이 이루어지는 것은 바람직한 현상입니다. 하지만 시노드 회의장에서 진리를 독점적으로 해석하고 다른 사람을 폄훼하려는 유혹도 존재합니다. 시노드 여정 안에서 우리는 갈등에 휘말리고, 균형감을 상실할 위험이 큽니다. 때로는 어느 쪽이든 자신이 옳다고 믿는 주장에 파묻히며 그 주장에 포로가 되고 맙니다.
특히 시노드 여정을 시간 낭비로 여기고 공동합의의 과정에 대해 실망과 패배감을 느끼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노드 여정을 통해 대화하고 식별하는 과정은 시간이 걸리고, 성숙함과 인내가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교황은 시노드 여정 안에서 느끼는 실망과 패배감은 정해진 협의 일정에 대한 실망일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합니다.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고 싶었던 그 바람을 이루지 못해서 기분이 나쁜 것뿐입니다. 이런 경우라면 자신의 바람에 사로잡혀서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노드와 공동체적 식별을 조금 더 넓은 시각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상 못한 쟁점 다루게 된 것도 성령의 선물
이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9년에 열렸던 아마존 시노드의 사례를 들어 설명합니다. 아마존 시노드는 회기 동안 논의하기로 했던 쟁점 대신에 예상하지 못한 쟁점들만 다루고, 다루기로 했던 쟁점은 간단하게 논의를 마쳤습니다. 교황은 이러한 결과 자체가 성령의 선물이라고 보았습니다. 예상하지 못했던 쟁점에 시간을 할애한 것은 다루어야 할 쟁점을 시노드 준비 과정에서 발견하지 못한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를 바로잡아 주신 것입니다. 또한 다루려 했던 쟁점이 시노드 현장에 외면당한 것은 특정 교회가 그 쟁점 자체를 대면하고 싶어 하지 않음, 즉 선교적 열망과 연대성의 부족하다는 것이 드러난 것입니다. 이러한 다양한 역동성이 모두 시노드를 통한 공동체적 식별의 대상입니다. 공동체적 식별을 위해서는 온전히 성령께 맡기는 열린 마음이 가장 필요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19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다시 ‘친교 · 참여 · 사명’ 실천입니다
(16)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①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주교시노드 제정 50주년 기념 연설을 통해 “시노드의 여정은 하느님께서 제삼천년기 교회에 바라시는 길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시노드’라는 단어에 이미 모두 담겼습니다”라고 시노드의 중요성를 강조하였습니다. 구체적인 시노드의 정신과 관련하여 현재 진행 중인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교회의 핵심 기둥으로 친교, 참여, 사명을 제시하였습니다. 시노드를 통해 우리는 거룩함으로 나아가고 복음 선포의 사명을 위해 성령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며 서로 경청하고, 대화하며, 함께 기도하는 모든 세례받은 이들의 친교에 참여하게 됩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특별히 시노드 교회의 체험과 시노드 교회의 실현을 목표로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번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자문을 구하는 과정에 하느님 백성 모두가 참여할 수 있도록 초대하였습니다. 따라서 이번 시노드는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여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백성의 부르짖음을 듣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요청하시는 그 뜻에 일치할 때까지 하느님 백성에게 귀 기울이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이러한 목표를 실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유혹에 빠질 수 있습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이를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하느님의 이끄심 대신에 우리 스스로가 이끌고자 하는 유혹을 경계해야 합니다. 우리 자신과 눈앞의 관심사에만 집중하고 오직 ‘문제’만 보려는 유혹에 쉽게 넘어갈 수 있습니다. 오직 구조와 교회의 가시적 한계에만 집중할 수 있습니다. 이번 시노드를 통해 반드시 모든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생각은 열린 마음으로 시노드를 바라보지 못하게 합니다. 시노드가 정쟁의 과정을 통해 갈등과 분열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이미 교회 활동에 속한 이들에게만 경청하려는 유혹은 하느님 백성의 상당수를 시노드로부터 배제합니다.
우리 스스로 이끌고자 하는 유혹 경계
현재 제1회기가 마무리된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2024년 10월에 열릴 제2회기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1년 동안 교회는 시노드 1회기 종합보고서에 포함된 현안과 제안을 구체적으로 각 교구와 본당 차원에서 함께 논의하고 의견을 나누게 될 것입니다. 1회기 보고서에는 이미 합의에 도달한 사항뿐만 아니라, 해결되지 않은 질문들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 한 번 시노드적 대화를 통해 다양한 도전 과제와 수많은 질문 앞에 함께 서게 될 것입니다. 친교, 참여, 사명의 시노드적 식별에 다시 한 번 초대받는 것입니다. 이 과정에서 시노드 정신의 실현을 가로막는 유혹에 빠지지 않기 위해서는 일상에서 시노드 정신을 충실히 살아가려는 자세가 필요해 보입니다.
대면하는 반응과 상황 겸손하게 인정하기
시노드 정신을 어떻게 일상에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굳이 추상적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노드적 대화를 직접 실천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친교, 참여, 사명의 실천이 무엇인지 깨닫게 해 줄 것입니다. 복음 선포의 사명을 위해 다른 생각을 지닌 사람들, 우리가 쉽게 무시하고 배제하려는 사람들의 일상에 참여하고, 친교의 차원에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한다면 우리의 오랜 편견과 고정 관념에서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무시하고 배척했던 이들이 꺼내는 말들은 상처로 얼룩져 있을 것입니다. 이 말들은 시노드적 대화로부터 도망가도록 우리를 유혹할 것입니다. 시노드 정신을 산다는 것은 시노드 정신을 실천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대면하는 반응과 상황을 겸손하게 인정하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1월 26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가장 작은 이의 목소리를 경청해야 합니다
(17)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②
‘시노드’라는 단어의 어원은 하느님의 백성이 함께 걸어가는 것을 가리킵니다. 어떤 경우에는 교회 공동체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습니다. 이러한 ‘시노드’라는 단어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고 초세기부터 교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하느님의 말씀에 비추어 성령께 귀를 기울이면서 식별하고자 교구, 관구 또는 지역, 총대교구, 세계 등 여러 차원에서 소집된 교회의 집회들을 지칭하는 데 사용되어 왔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시노드’라는 용어가 특정 집회(시노드 회의 혹은 공의회)를 지칭하는 데 주로 사용되었지만, 시노드의 정신은 함께 걸어가는 데에서, 회중의 모임을 통해서, 그리고 하느님 백성 전체가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관련되고 참여하는 과정에서 교회가 친교를 드러내는 것입니다.
시노드를 특정한 시기에 고유한 목적을 가지고 진행되는 일회적인 활동 절차로만 인식하는 것은 시노드 정신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시노드의 원형인 예루살렘 공의회에서 드러난 것처럼 시노드는 교회에 대한 도전 앞에서 공동체적이고 사도적인 식별을 행하는 것이며, 성령 안에서 그리스도와 이루는 친교라는 교회의 본질 자체를 드러내는 표현입니다. 이러한 시노드에 담긴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과정에서 하느님과 결합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는 가운데 자신을 내어주는 친교를 살아가게 됩니다. 시노드 정신의 이러한 특징은 교회 안에서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부름 받은 인간의 소명을 구체적으로 드러냅니다.
함께 걸어가는 하느님의 백성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러한 시노드 정신의 중요성에 대해서 지속해서 강조해 왔습니다. 특히 교황은 시노드 운영의 경직성을 지적하고, 시노드 정신이 구체적인 실천이 없이 막연한 개념적 차원에서 머무는 것을 경계해 왔습니다. 이를 위해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를 통해 교황은 특별히 담대하게 말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태도를 강조하였습니다. 시노드 정신의 실천과 관련하여 교황이 강조하고 있는 말하기와 경청의 의미를 자세히 살펴보는 것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입니다.
우선 담대하게 말하기와 관련하여 자신의 목소리를 담대히 말하는 데 주저하는 이들이 누구인지 생각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시노드의 피해야 하는 태도 중에는 교회 활동에 속한 이들의 목소리만 경청하려는 유혹이 있습니다. 이는 역설적으로 교회 활동에 속하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는 의도적인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은 우리의 모든 형제자매, 특히 가장 작은 이들, 가장 약한 이들, 힘없는 이들, 궁핍한 이들 가운데서 바로 하느님의 모습이 발견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61항)
친교를 통해 그리스도와 일치
시노드는 하느님의 활동에 대한 증언과 서로의 판단을 교환하여 서로 함께 성령의 뜻에 귀 기울이고, 합의를 통해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위한 공동체적 식별을 목적으로 합니다. 따라서 시노드는 우선적으로 하느님 활동에 대한 증언을 들어야 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가장 작고 약한 이들에게서 바로 하느님의 모습, 즉 하느님 활동을 발견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시노드는 바로 이들이 담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약하고 힘없는 이들은 담대하게 자신의 목소리를 내는 데 익숙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려 한다는 것을 그들이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경청이 필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2월 3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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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③
시노드는 교회 지도자가 홀로 사목적 결정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구성원이 함께 고민하여 도출한 결과를 준중해 권위 있는 지도자가 최종적으로 정하는 의사 결정 과정입니다. 더 근본적으로 시노드는 하느님 백성의 생생한 목소리에 귀 기울여 교회가 하느님 뜻에 부합한 사목적 결정을 내리는 여정입니다. 시노드를 통해서 하느님 백성들은 교회의 사명을 함께 고민하고 복음 선포를 위해 함께 걸어갑니다. 이 여정 안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성령의 인도에 따라 시노드를 통해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련되고 참여하게 됩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이러한 시노드에 담긴 정신을 교회가 어떻게 살아가고 있는지 성찰해 보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곧 교회는 함께 걸어온 여정에 대해 성찰하기를 통하여, 교회가 친교를 실천하고 참여를 실현하며 선교 사명에 자신을 여는 데에 어떤 과정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고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의 ‘함께 걷기’가 순례하며 선교하는 하느님 백성이라는 교회의 본질을 가장 잘 증명하고, 실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나
성찰을 위한 구체적인 질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 “교회의 다양한 차원에서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교회가 자신에게 맡겨진 사명에 따라 복음 선포하게 해 주는가? 성령께서는 우리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로 자라나기 위하여 어떤 순서를 밟아 가도록 초대하시는가?” 이러한 자문은 교회가 얼마나 충실하게 함께 걸어왔는지를 분석하는 차원에만 머물지 않습니다. 이 자문의 목적은 “꿈을 싣고 예언과 전망을 이루어 내며 희망이 꽃피게 하고 신뢰를 불어넣으며 상처를 감싸 매고 함께 관계를 만들어 내며 희망의 서광을 깨우고 서로에게서 배우는 것입니다. 또한 정신을 일깨우고 마음을 따뜻하게 하며 우리의 손에 힘을 주는 빛나는 지혜를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예비문서 32항)
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시노드 정신이 교회 안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 자문해보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이 자문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구성원들이 시노드 여정의 실제 모임 안에서 경청과 대화를 통해 시노드 정신을 직접 체험해보도록 초대합니다. 이 체험은 ‘존중’, ‘환대’, ‘협력’, ‘겸손’, ‘인내’의 분위기 안에서 구성원들이 자신들이 교회의 구성원임을 느낄 기회가 되어야 합니다. 따라서 실제 시노드 모임은 참석자가 자유롭게 이야기할 수 있는 신뢰와 환대의 분위기가 필요합니다. 참석자들은 상대방의 이야기를 통해서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내적인 움직임에 주의를 기울이고, 하느님의 뜻과 성령의 인도하심에 주목해야 합니다.
귀 막는 편견과 고정관념 있는지 살펴보기
구체적으로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은 소수자들, 버림받은 이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자리를 마련해 왔는지 자문하도록 초대합니다. 그리고 귀를 막는 편견과 고정관념이 있는지도 살펴보도록 제안합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시노드 정신에 따른 모임을 상상해 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교회에서 큰 상처를 받아 오랫동안 교회를 비난해온 형제를 시노드 모임에 초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또한, 정신적 육체적 어려움으로 인해 교회에 나오지 못하는 형제들의 이야기를 간접적으로라도 시노드 모임 안에서 들어볼 수 있습니다. 만일 이러한 기회가 실제로 주어진다면 교회는 함께 걷는 여정에서 소외되었던 형제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 형제들은 교회와의 관계를 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실제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것은 녹록지 않으며, 용기가 필요해 보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2월 10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성령의 활동 믿고 의탁할 수 있는 용기 필요
(19)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④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교계제도 교회론에서 하느님 백성 교회론으로의 전환이 이루어졌습니다. 교회를 특정 지체를 중심으로 혹은 그 일부 지체들을 기초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지체들이 하느님으로부터 고유의 사명을 받아 주체적이며 능동적으로 자신의 역할을 수행하는 하느님의 소유로 보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교회론 안에서 하느님 백성 전체는 상호 동등성을 넘어 ‘상호 섬김’의 자세로 그리스도를 본받고, 그리스도의 구원 사명 전체에 대한 공통의 활동을 수행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하느님의 모범에 따라 교회는 직무와 은사의 다양성을 내포한 일치를 지향합니다.
하느님 백성 교회론으로 전환
프란치스코 교황은 세계주교시노드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장 고귀한 유산 가운데 하나’라고 언급했습니다. 현재 진행 중인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론을 반영해 ‘함께 참여함’, ‘함께 감’, ‘임무의 공통 수행’의 정신을 여정에 반영했습니다. 교황은 평신도와 그들의 목소리를 더욱 가까이 경청하고 수렴하는 과정을 통해 시노드 정신의 쇄신이 가능할 것으로 보았습니다. 특히 공통된 참여라는 면에서 시노드는 민주주의적 특성을 보입니다. 다만 권위의 기준이 그리스도이며, 성령 안에서 듣는 하느님 말씀에 의한 식별이라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다수결 결정 방식과 차이가 있습니다.
결정 도달 과정과 결정 내리는 것 구분
이러한 시노드와 민주주의의 공통점과 차이점이 모호한 상태에서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 교구별 단계 한국 교회 종합 의견서’에 따르면, 시노드 시작 단계에서부터 소극적 태도, 의무감, 주저, 귀찮음 등의 정서가 자리하였습니다. 특히 교구 시노드를 경험한 교구들에서는 시노드를 해도 변화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회의감이 크게 작용했다고 합니다. 변화하지 않는 교회에 대한 회의감은 시노드를 통해 제시한 자신들의 의견이 의사 결정 과정에 반영되어야 한다는 기대와 이에 대한 실망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시노드와 민주주의의 차이점과 관련해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시노달리타스)」 문헌은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결정하는 작업을 구분해야 한다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 “식별과 자문과 협력의 공동 작업을 통하여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decision-making)과 사목적 차원에서 결정을 내리는 것(decision-taking)을 구별해야 한다.”(69항) 이 두 가지는 직무의 다양성이라는 차원에서 구분되어야 합니다. 이를 민주주의 차원에서 혼동하게 되면, 어차피 사목자가 결정할 건데 의견을 모으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는 회의적인 태도가 시노드 과정 안에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기 위해서는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과 결정을 내리는 것을 구분하고, 시노드를 민주주의적 의사 결정 구조와 동일한 것으로 보지 않으려는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과정을 정서적 차원과 영적인 차원에서 바라보는 노력도 요구되는 것 같습니다. 필자가 속한 수도회는 자문 기구와 결정 기구가 분리되어 있습니다. 자문 기구에서 몇 개월 동안 자료를 모으고 심사숙고해서 결정 기구에 최종 의견을 올립니다. 장상의 최종 결정에 자문 기구의 의견이 전혀 반영되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결정은 장상이 하는 것임을 알면서도 매번 허탈감을 느낍니다. 그리고 매번 인간의 지혜를 뛰어넘는 성령의 활동을 믿고 의탁할 수 있는 용기를 청하게 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2월 17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그리스도 사랑의 여정에 동참
(20)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⑤
2024년 서울대교구 사목교서는 ‘시노드 교회란 선교하는 교회’임을 강조하면서 ‘시노드 교회를 향해 계속 걸어갑시다’라고 호소합니다. 또한 시노드는 단순히 ‘지금 우리 공동체의 현황이 무엇이고, 문제점이 무엇이니 앞으로 이렇게 개선해 보자’는 정도의 결의를 위한 나눔이 아니라고 설명하며, 이번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우리 모두가 앞으로 계속 살아가야 할 지향점으로 친교, 참여, 선교라는 교회론적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과정에서 경계해야 할 것과 지향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친교, 참여, 선교’ 교회론적 방향성 제시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시노달티타스)」 문헌은 공동체의 공동합의적 과제는 ‘결정에 도달하려는 작업’이라고 설명합니다.(69항) 커뮤니케이션 원리의 차원에서 볼 때, 의사 결정에 도달하는 과정(decision-making)은 특정 대상이 가지고 있는 다양한 속성에 대한 구성원들의 생각과 가치관, 그리고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구체적으로 상호 확인하는 작업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시노드의 경우는 교회 공동체의 ‘함께 걷기’가 의미하는 다양한 속성들을 살펴보고 그 속성들에 대한 구성원들의 이해 차이를 확인하고자 했습니다. 시노드의 경청과 대화의 과정이 교회의 함께 걷기와 관련해 여정의 동반자, 열린 정신과 마음, 용기와 담대함, 교회의 사명과 봉사 등에 대해 질문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의사 결정 과정의 시작 단계에서 충분한 상호 이해의 과정을 거치는 것은 상당한 시간과 노력이 요구됩니다. 따라서 많은 경우는 구성원 간의 상호 확인 과정을 생략하고 해결책이 필요한 문제 상황이라는 관점(problem solving process)에서 가능한 해결책을 몇 가지 제시합니다. 그리고 제시된 해결책 중에서 구성원들이 가장 합리적이라고 생각하는 해결책을 선택하는 방식으로 의사 결정 과정을 진행합니다. 커뮤니케이션 원리의 차원에서는 이러한 방식의 의사 결정을 통해 얻은 해결책은 미봉책에 불과합니다.
따라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많은 시간이 요구되더라도 커뮤니케이션 원리에 충실한 방식을 지향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시노드가 경청의 중요성을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여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노드는 ‘오늘날 우리의 교회 공동체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해 복음을 선포하면서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지고 있습니까?’라는 근본 질문을 던졌습니다. 커뮤니케이션 원리에 따르면 이 질문은 그동안 우리가 얼마나 충실히 함께 걷는 교회로 살아왔는지 평가하기보다, 함께 걷는 교회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과 가치 및 접근 방식이 어떻게 다른지 충분히 살펴보자는 초대였습니다.
서울대교구 사목교서는 시노드 여정 안에서 교회가 지향하는 삶이 무엇인지 살펴보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뤄져 왔는지 살펴보았다고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제시하였습니다. 사목교서는 상호 이해의 과정을 거친 우리 교회가 이제는 선교하는 교회라는 교회의 본질을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해 함께 고민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선교는 하느님을 만난 그 기쁨을 몸소 살고 증언하는 일이며, 그리스도의 사랑의 여정에 동참하는 신앙생활입니다. 함께 걷는 시노드 정신은 일상의 신앙생활 안에서 선교 사명을 통해 구체화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3년 12월 25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거짓된 침묵 깨기
(21)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⑥
예수회원인 안토니오 스파다로는 「치빌타 카톨리카」를 통해 시노드 정신에 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2021년 11월 6일 한국어판 2023년 여름 노우재 신부 옮김) 교회가 시노드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안주하지 않고 깨어 있으면서 하느님의 숨결에 따라 움직이는 것입니다. 스파다로는 특히 시노드와 관련하여 극복되어야 할 태도를 제시합니다. 교회 안에는 새로운 문제에 대해서 낡은 해결 방법을 제시하면서, 결국 아무것도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태도가 존재합니다. 스파다로는 이러한 태도는 예수님께서 탁자를 둘러 엎으셨을 때의 성전 상인들의 태도라고 설명하며(마태 21,12), 예수님께서 책상을 발로 차버리셨던 것처럼, 우리도 시노드를 통해 불편함과 놀라움을 대면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불편함과 놀라움 대면할 수도
스파다로는 시노드 여정 안에서 예상치 않았던 불편함과 놀라움을 대면하더라도, 그 자체의 역동성에 끝까지 참여할 것을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 스파다로는 ‘놀이하기’와 ‘놀이참여’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놀이의 주체는 놀이하는 사람이 아니라 놀이 자체이고, 놀이는 놀이하는 사람을 통해 생명을 얻습니다. 놀이하는 이가 놀이에 푹 빠져들 때, 놀이가 그 목적에 도달합니다. 이를 적용해 보면 시노드에 참석하는 이가 성령의 활동에 따라 역동적으로 움직이면서 끝까지 신실하게 참여할 때, 교회는 그 자체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게 됩니다.
함께 고뇌하고 위로받는 영적인 순간
커뮤니케이션 원리의 차원에서 본다면 시노드의 역동성에 참여하는 과정(decision-making)은 서로의 차이를 확인하는 단계를 거치게 되며, 차이의 확인은 자연스럽게 불화와 균열의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이 과정이 엄청나게 힘들기 때문에 그만하자는 말이 절로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현실에서는 시노드의 주어진 여정 안에서 최대한 빨리 목적지에 도달하려는 마음이 들게 됩니다. 끝까지 다양성 안에서 일치를 도모하기보다는 어느 정도 균형을 유지하고 의견을 수렴하는 차원에서 시노드 회의를 마무리하게 됩니다.
시노드는 거짓된 침묵 안에서 모두가 동의하기보다, 함께 고뇌하고 위로받는 영적인 순간이 되어야 합니다. 시노드의 원형인 예루살렘 공의회와 관련하여 사도행전은 사도들과 예루살렘 교회의 원로들 사이에 ‘오랜 논란’(사도 15,7)이 있었다고 분명히 기록하고 있습니다. 할례 문제와 관련하여 유다에서 온 다른 형제들과 ‘바오로와 바르나바 두 사람이 적지 않은 분쟁과 논란’(사도 15,2)을 일으켰습니다. 바오로는 이 문제와 관련하여 케파에게 ‘정면으로’(갈라 2,11)으로 반대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시노드 여정의 사목적이고 교의적인 열정은 지혜와 솔직함, 용기와 진실성을 바탕으로 활기찬 토론으로 이어져야 합니다.
상호 경청의 믿음이 필요한 이유
하지만 갈등 상황을 회피하려는 한국인의 특성상 불화와 균열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시노드의 역동성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아 보입니다. 인간관계를 중시하는 한국인들은 감정적인 연결이 중요하고 상대방과의 신뢰와 친밀감이 중요합니다. 다른 사람이 불편할 수 있는 이야기는 아예 꺼내지도 않는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을 고려한다면 한국 사회에서 시노드의 역동성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누군가 나의 이야기를 끝까지 귀 기울여 준다는 믿음을 바탕으로 다양한 의견들이 소통되고 영적인 차원에서 상호 경청하는 토론 문화의 형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그리고 이 과정은 무엇보다 은총이 통과하고 있음을 체험하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1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두 교황의 솔직한 고백
(22)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⑦
시노드를 통해 교회는 친교를 실천하고 참여를 실현하며 선교 사명에 자신을 여는 데에 어떤 과정들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지 직접 체험하게 됩니다. 하느님 백성이 복음화 사명(선교)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과정에서 친교를 통해 교회 활동에 참여하는 것이 구체적으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2회기를 준비하고 있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시노드 정신에 따라 교회의 함께 걷기가 어떻게 이루어져 왔는지를 함께 자문하고, 자문 과정 안에서 경청과 대화를 통해 시노드 정신에 따른 교회의 친교를 체험하고 있습니다. 1회기 동안 자문과 대화의 과정을 통해 ‘복음을 선포하면서 함께 걷는 교회’에 대해서 각자 가지고 있는 생각이 어떻게 다른지 보게 되었습니다. 서로의 차이를 발견하는 이 과정은 두 가지 차원에서 진행되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우선 그동안 보지 못했던 형제들의 상처를 함께 아파하고, 존중과 돌봄을 통해 시노드 정신에 따른 친교를 실천하는 기회가 될 수 있습니다. 동시에 함께 걷기를 통해 발생하는 여러 가지 상황을 분석해서 문제점을 찾아내고 해결책을 제시하는 일련의 절차가 될 수도 있습니다. 물론 순차적으로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만, 가장 이상적인 것은 이 두 가지 차원이 적절하게 균형을 갖추어 동시에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인간적 친교에서 영적 친교로 이어져
시노드를 통해 서로의 차이를 인정하고 함께 걷는 시노드 정신을 구체적으로 어떻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사례를 ‘두 교황’이라는 영화를 통해 이야기해 보겠습니다. 영화 후반부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당시 추기경이었던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나는 몇 개월 동안 사임하고 싶었지만, 당신이 나의 후임자가 될 것 같아서 사임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마침 당신이 이곳에 오기 전에 추기경에서 은퇴한다고 편지를 보냈습니다. 내가 그것을 허락한다면, 당신은 나의 후임자가 될 수 없습니다. 솔직히 그 사실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당신의 스타일과 방법은 나와는 완전히 다릅니다. 말하는 거나 생각, 행동, 대부분에 동의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당신이 왜 지금 교회에 필요한지 알 것 같습니다. 이제는 당신이 나의 후임자가 될 것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사임할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대화는 베네딕토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이 함께 며칠 머문 후에 나눈 대화입니다. 실제로 영화에서 묘사된 두 교황의 첫 대화 장면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이 끝까지 자신의 의견을 주장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서로 자신의 신념을 조금도 굽힐 의사가 없었습니다. 그토록 격렬하게 서로의 차이를 확인한 두 교황은 같은 숙소에 묵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두 교황은 자연스럽게 좋아하는 음악이 무엇인지, 식사는 어떻게 하는지, 어릴 적 꿈은 무엇이었는지, 이야기하고 서로를 알아가게 되었습니다. 두 교황이 이룬 인간적인 친교는 하느님 안에서 함께 걷는 동료임을 깨닫는 영적인 친교로 자연스럽게 이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께서 부족함 채워주실 수 있다는 믿음
두 교황이 나누었던 영적인 친교는 자신들이 얼마나 부족한 존재인지에 대한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회의 장상 역할을 하면서 자신들의 부족으로 교회와 형제들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주었는지 고백합니다. 그리고 부족함을 인정하기에 하느님께서 채워주실 수 있음을 믿어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영적인 친교를 향해 함께 걸어가는 여정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7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열려 있고 움직이며 발전하는 교회
(23)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⑧
사과드립니다. 지난 칼럼에서 제가 ‘두 교황’이라는 영화의 일부 대사를 인용하였는데, 실제로 베네딕도 16세 교황과 프란치스코 교황 사이에 있었던 대화가 아닌 영화적으로 각색된 허구의 내용이었습니다. 저는 다큐멘터리 방식의 영화라 사실을 바탕으로 묘사된 대화라고 생각했습니다. 영화가 보여준 두 교황님의 친교가 시노드의 교회론적 특성을 가장 잘 드러내 준다고 생각하였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실관계의 확인은 저의 몫이었습니다.
늘 쇄신할 수 있는 역동성
페테 제발트는 2016년 5월 23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을 인터뷰하고, 교황의 사임 직전과 이후의 이력을 정리하는 형태의 대담집을 출판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출판을 허락한 대담집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마지막 이야기」에는 교황직을 사임할 당시의 상황과 솔직한 심정이 담겨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당신의 후임자로 특정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을 예상하였으나, 그중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포함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더욱이 후임자가 누가 될 것이라 예상했기에 사임을 더 쉽게 결정한 것은 아니라고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유력한 후임자로 생각하였기 때문에 사임을 결정할 수 있었다는 지난 칼럼의 인용 부분은 전적으로 영화적 상상력에 의한 표현입니다. 혼란을 드린 점 다시 한 번 깊이 사과드립니다.
비록 직접 대화한 내용은 없지만, 앞에서 언급한 대담집에는 후임 프란치스코 교황에 대한 베네딕토 16세 교황의 생각이 담겨 있습니다. 대담자 페테는 사도좌에 오른 첫 번째 예수회원이며, 처음으로 프란치스코라는 이름을 가지고 신대륙에서 첫 번째로 나온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베네딕토 16세 교황에게 질문하였습니다. 교황은 이것 자체가 교회가 움직이고 열려 있으며, 교회 안에서 새로운 발전이 계속되고 있음을 뜻한다고 답하였습니다. 이어 교회는 어떤 형태에 정체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 놀라운 것을 계속 실현하고 있으며, 항상 자신을 쇄신할 수 있는 역동성을 스스로 지니고 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대담자 페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번째 권고 「복음의 기쁨」이 제시하는 새로운 노선이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수행했던 직무의 방향과 단절된 것으로 보이는지 질문하였습니다. 이에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새로운 강조점이 있는 것이지, 대립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페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선출과 함께 가톨릭교회가 유럽 중심주의를 잃었고, 적어도 유럽 중심주의가 교회 안에서 약화되었다고 언급하였습니다. 이에 대해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새로운 지역을 통해서 새로운 추진력이 들어오는 것이며, 이제 유럽이 외부에 의해서 새롭게 복음화되는 아주 고무적인 기회라고 보았습니다.
후임 교황에 대한 신뢰 통해 보여준 형제애
시노드는 당시의 우세한 교회론적 유형에 의존하여 교회 삶의 서로 다른 시기에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지만, 시노드 정신은 교회와 교회의 사명에 대한 표현이기에 항상 그리스도인들 서로 간의 형제애와 교회의 사명에 대한 그들의 공동 참여를 표시합니다. 교회가 새로운 현존 방식을 찾고, 변화되어야 하는 상황에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후임 교황을 통해 활동하시는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식별하였으며, 후임 교황에 대해 신뢰를 통해 형제애가 무엇인지 보여주었습니다. 물론 두 교황이 공동으로 직무를 수행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우리는 두 교황의 관계성 안에서 시노드 정신의 핵심인 교회적 친교를 위한 단초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14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힘들었지만 함께 걸었던 첫 총회의 기억
(24)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⑨
시노드 정신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서 이루어진 교회론적 쇄신의 토대 위에서 교회가 지향해야 할 비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은 ‘하느님 백성’인 교회의 생활 방식과 활동 방식의 고유한 특성을 가리킵니다. 시노드 정신을 실행하는 데에서, 하느님과 결합되고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들과 일치하는 가운데, 진실하게 자신을 내어 줌으로써 실현되는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부름받은 인간의 소명이 구체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사목헌장」 24항,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서 공동합의성」 43항 참조).
이러한 시노드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행하기 위해 현재 제2회기 여정을 걸어가고 있는 16차 세계주교시노드는 제1회기 여정 동안 하느님 백성에게 자문을 구하였습니다. 자문 과정은 단순히 문서를 작성하는 것이 아니라, 신뢰를 불어넣고 관계를 만들어 내며 희망을 일깨우고 서로에게 배우는 기회를 제공하는 데 이바지하고자 하였습니다. 이 과정은 구체적인 합의에 이르기 위해, 구성원들이 함께 고민하고 도출한 결과를 존중하는 절차일 뿐만 아니라, 형제자매들과의 일치 안에서 자신을 내어 주는 교회론적 친교의 기회였습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모든 의견 함께 고민
필자가 속한 수도회는 3년마다 총회를 열어, 지난 3년의 여정을 돌아보고 앞으로 살아갈 3년의 방향성을 설정합니다. 총회는 교회론적 친교의 차원에서 양성기에 있는 형제들을 제외한 모든 회원이 참석하여, 자문 과정을 중심으로 진행됩니다. 1차 자문 과정은 참석한 회원을 6~7명 단위로 나눠 양성, 사도직, 수도생활 등의 주제에 대해 각자의 생각을 솔직히 표현하는 기회를 제공합니다. 2차 자문 과정은 1차에서 나온 의견을 모두 취합해 참석한 회원 전체가 함께 모여 의제를 도출하고 토론하여 최종 실행 노선을 채택합니다.
수도회에 입회하고 처음 참석한 총회에서는 시간이 걸리더라도 회원들이 내어놓은 모든 의견을 전체가 함께 고민했던 것으로 기억됩니다. 이 과정 안에서 구체적으로 수도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회원들이 함께 걱정한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불필요한 의견 수렴의 시간을 줄이고, 결정 과정에서 충분한 논의 시간을 갖기 위한 취지에서 자문 과정이 축소되고 있습니다. 한때는 효율적인 총회 운영을 위해 총회 전에 질문지를 통해 총회 기간 다뤄야 할 의제에 대해 의견을 수렴하고, 총회 기간에는 수렴된 의견을 통해 사전에 도출된 의제들을 토론하는 방식으로 총회를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담대하게 말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
만일 누군가 필자에게 필자가 속한 수도회가 시노드 정신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할 것인지 질문한다면, 필자가 처음 참석했던 총회의 모습을 되찾아야 한다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그 당시 총회는 담대하게 말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는 자리였습니다. 현실을 모르고 내놓는 터무니 없어 보이는 의견이라고 할지라도 무시하지 않고 일단은 끝까지 들어주었습니다. 물론 그 과정은 힘들고 지치는 순간의 연속이었습니다. 비슷한 말이 반복되기도 하였으며, 누군가 중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의견에 대해서 다수는 시큰둥하기도 했습니다. 대립이 너무 첨예해서 차라리 다루지 않았으면 하는 의제도 있었습니다. 요즘 총회는 회원들의 자문을 직접적으로 듣는 시간을 최소화하고, 의견 수렴 과정을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총회가 큰 무리 없이 원만하게 진행되었다고 평가하는 회원들도 있습니다. 그래도 필자는 그때가 그립습니다. 그때는 힘들었지만, 함께 걷는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21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모두의 시노드] 상호 존중하는 공동체
(25)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⑩
수도회 떠나는 나이든 수도자들
시노드 정신은 자신과 공동체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활동에 개방되어 상호 존중하는 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2024년 축성생활의 날을 맞아 한국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장상협의회 회장 유덕현(야고보) 아빠스가 발표한 담화문의 내용은 많은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아빠스는 이전에는 이런 일이 수도회에 거의 없었으나 요즘에는 수도자 중에서 나이 많은 분들이 수도회를 떠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으며, 수도회를 떠나는 이유 중에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낄 수 없고 수도회 안에서 쓸모없는 사람으로 취급받고 행복하지 않다는 사실이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고 분석하였습니다.
유덕현 아빠스는 우리 모두 크게 반성해야 하며, 시노드와 시노드 정신의 가장 중요한 실천인 상호 존중이 공동체 안에 없으므로 함께 사는 형제자매들이 소외감을 느끼게 되고, 이러한 공동체 안에서 행복감을 느낄 수 없는 수도자들이 공동체를 떠나는 현상이 발생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설사 떠나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상호 존중이 없는 상태에서는 개인적인 시간과 공간으로 도피하는 경우가 늘어날 뿐만 아니라, 공동체가 개인주의화 되고 분열되어 상호 존중이 약화 되는 악순환이 이어질 것이라 분석하였습니다.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는 이유
이러한 상황에 대한 대안을 시노드 여정에서 찾아보았습니다.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정기총회 1차 의안집은 ‘영적 대화’ 또는 ‘시노드 방법’이라고 부른 ‘성령 안에서의 대화’가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 안에서 식별의 공간이었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 대화 방법은 주의 깊게 각자의 삶의 경험을 나누고 상호 존중 안에서 성장하고 다른 사람들의 삶 안에서 그리고 우리의 삶 안에서 하느님의 영의 움직임을 식별하는 시작이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대화를 통해 참여자들은 기도 안에서 자신을 개방하고 신앙 안에서 점차 ‘함께-의식하는’, 곧 성령 안에서 함께 대화하는 삶의 경험을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내용을 종합해 본다면, 축성생활자들의 삶 안에 필요한 상호 존중을 시노드 여정의 ‘성령 안에서의 대화’ 실천을 통해서 보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개인적 준비,’ ‘말하고 듣기,’ ‘다른 이들과 하느님께 공간을 내어주기,’ ‘함께 구축하기’, 그리고 ‘마침 감사 기도’로 진행됩니다. 각 단계가 진행되는 사이 사이에 침묵과 기도로 다른 이들의 말을 경청하는 상호 존중의 체험을 하게 됩니다. 시노드와 같은 특별한 기회가 아니라 하더라도 일상에서 이러한 시노드적 대화가 자연스러워진다면 상호 존중의 공동체적 분위기가 공동체적으로 체화되는 계기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구체적인 토착화 차원의 보완이 필요할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의 대화
‘성령 안에서의 대화’는 오랜 교회적 식별의 전통 안에 있으며, 여기서 많은 방법과 접근법을 볼 수 있습니다. 이 영적 실천은 ‘나’에서 ‘우리’로 넘어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나’의 개인적 관점을 잃어버리거나 개인적 차원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인정하고 공동체적 차원 안에 포함시키는 것입니다. 이런 방식으로 참여자들의 말을 받아들이고 그들을 경청하는 것이 전례요 기도가 되며, 그 안에서 주님께서 현존하게 되시며, 더욱 참된 형태의 친교와 식별로 이어지게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특별히 축성생활자가 아니라 하더라도 자신의 존재 가치를 느끼지 못하거나 쓸모없다고 느끼는 이들에게 영적으로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1월 21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경청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 한국 사회
(26)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⑪
2023년 시장조사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trendmonitor.co.kr)가 전국 만19~59세 성인 남녀 1000명을 대상으로 ‘2023 사회적 갈등 및 공동체 의식 관련 조사’를 실시했습니다. 그 결과 10명 중 9명(86.2%)이 예전보다 사회적 갈등이 더 많아진 것 같다고 느꼈으며, 80.4%가 사회적 갈등은 시간이 걸리더라도 당사자들에 대한 충분한 의견 청취가 있어야 한다고 응답했습니다. 또한 한국 사회의 구성원들은 현재 다른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간다는 느낌이 있거나(38,6%, 동의율), 다른 사람들과 일체감을 느끼는 수준(34.9%)이 낮다고 보았으며, 전체 응답자의 86.3%는 한국 사회 내 공동체 의식 회복이 시급하다는 주장에 동의했습니다.
성인 10명 중 8명 “공동체 의식 회복 시급”
한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갈등에 대한 염려가 의견 청취의 중요성으로 이어지고 있으며, 공동체 의식 회복이 요구되고 있다는 사실은 시노드 정신과 관련해 살펴볼 수 있는 지점을 제공합니다. 한국 교회는 제16차 세계주교시노드 종합 의견서를 통해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과정에서 하느님 백성인 성직자와 평신도, 수도자가 서로에게 온전한 동반자가 되지 못했음을 고백했으며, 교회 내 여러 어려움에 근본적 요인이 되고 있음을 고백했습니다. 교회 사명, 곧 복음화를 위해 하느님 백성의 구성원이 함께 시노드 정신을 안에서 상호 존중하고 경청하는 과정에서 소통과 배려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고 공동체 의식을 회복하는 체험들이 자연스럽게 사회 안에서 새로운 문화로 자리 잡는다면, 그 자체로 훌륭한 선교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경청, 한국 사회에 내밀 수 있는 교회의 손길
시노드 정신의 실천을 사회 문화적 차원으로 확대하는 것이 과연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하게 됩니다.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의 태도에 주목하게 됩니다. 공동체 의식이 사라지고 있는 한국 사회 구성원들은 자기 입장만을 주장하려 하지 않고 자신의 의견을 경청해 줄 누군가를 찾고 있는 것은 아닌지 조심스럽게 질문해 보게 됩니다. 만일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을 교회 안에서 자신의 생각을 거리낌 없이 솔직히 말하고, 상대의 이야기 역시 기꺼이 듣는 것으로만 국한하지 않는다면,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은 한국 사회에 내밀 수 있는 교회의 손길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는 교회 가르침을 통해 연결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신앙의 빛」 57항에 따르면,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이에게 모든 고통의 이유를 밝혀 주시지는 않지만 고통에 함께하시는 현존으로 응답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고통받는 이들에게 모든 것을 납득하게 할 수 있는 설명을 주시지 않으십니다. 그보다 하느님께서는 그들과 함께하시는 현존의 방식, 그리고 빛을 향한 문을 열어 주기 위하여 그 고통의 역사와 연관된 선의 역사라는 방식으로 대답하십니다”라고 밝힙니다.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걷는 여정
이러한 내용들을 종합해 본다면, 시노드의 함께 걸어가는 여정을 사회적 차원에서 실천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한국 사회의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갈등의 현장에서 교회가 고통의 의미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들의 곁을 지켜 준다면, 그 자체로 우리는 함께 걷는 교회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콜카타의 마더 데레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다가가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그들 안에 감추어진 신비를 이해하였습니다.(「신앙의 빛」 57항) 우리도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 걷는 여정을 통해 갈등을 넘어선 참다운 화해의 신비를 보여주고 체험할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2월 4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모세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낯선 형제자매에게 진심의 미소를
(27)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⑫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의안집은 친교, 사명, 참여의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를 위한 세 가지 우선적 질문을 던졌습니다. 빛나는 친교, 어떻게 더 충만하게 하느님과 이루는 결합과 온 인류가 이루는 일치의 표징이요 도구가 될 수 있을까? 사명에서 공동 책임, 복음에 봉사하기 위하여 어떻게 선물들과 임무들을 공유할 수 있을까? 참여, 책무와 권위,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선교적 교회에서 어떤 절차, 구조, 제도가 있을까? 이는 성령께 귀 기울이면서 걷는 대화의 여정 안에서 하느님 백성들이 선교적 사명에 참여하고, 이 과정에서 교회가 구체적으로 어떤 구조와 제도를 마련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이 함께 걷는 여정 안에서 선교 사명 실천을 위해 필요한 구체적인 제도 개선의 차원까지 포함하고 있습니다. 특히 제도 개선과 관련된 부분은 각 지역 교회의 현실이 반영되는 과정에서 매우 섬세하게 접근해야 할 것입니다. 교회의 제도 개선과 관련된 부정적인 이미지가 시노드 정신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는 주의가 필요해 보입니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여정을 시작하면서 한국 교회의 반응 중에는 시노드를 일종의 의견 수렴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존재하였으며, 자체적으로 시노드를 진행하였던 교구들이 시노드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새로운 제도의 도입은 필연적으로 기존 제도의 문제점을 인정하는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이 과정에서 기존 방식이 일방적으로 부정된다는 느낌을 받게 된다면, 감정적인 차원에서 갈등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갈등을 원하지 않는 경우는 기존의 방식을 그대로 유지하는 선택을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경우에는 긍정적인 차원의 개선을 기대하기 어려울 수 있습니다. 반대로 일방적으로 기존 방식을 무조건 바꾸는 선택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어떤 방식을 택하든지, 시노드를 통해 수렴된 의견들을 반영하는 과정에서는 많은 진통이 따를 수밖에 없습니다.
필자는 수도회 소속이라 사목 현장에서 애쓰는 분들의 노고를 제대로 알지 못합니다. 칼럼을 써나가고 있지만 그런 부분에서 많은 한계를 느끼고 있습니다. 종종 사목 일선에서 활동하시는 지인들에게 본당에서 겪는 어려움들을 나눠 달라고 부탁을 드립니다. 신자 수가 줄고 고령화되고 있으며, 봉사자 구하기가 너무나 어려워지고 있다는 말씀을 많이 하십니다. 교회에서 필요한 절차, 구조, 제도 개선에 대한 필요성을 강조하시기보다는 어려움 중에도 나름 애써보려는 마음들이 느껴져서 고맙기도 하고 죄송하기도 했습니다.
교회는 시노드 여정을 통해 다시 한 번 새롭게 함께 걷기를 준비합니다. 이 과정에서 갈등을 피할 수 없을 것입니다. 갈등보다는 오히려 묵묵히 교회 정신을 살아가는 하느님 백성에게 주목했으면 합니다. 얼마 전에 출장 뷔페를 운영하시는 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분이 말씀하시길 성당에서 하는 행사는 다른 곳에 비해 남아서 버리는 음식이 훨씬 적다고 합니다. 각자가 엄청나게 눈에 띄는 환경 운동을 실천하고 있지는 않지만, 이미 교회 정신에 따라 환경을 생각하는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시노드 정신도 이와 같으리라 생각합니다. 성당에서 만나는 낯선 형제자매에게 한 번씩 진심으로 따뜻하게 웃어 준다면 이미 충분히 훌륭하게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2월 18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서로의 부족함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공동체
(28)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⑬
시노드 여정의 핵심적 요소 ‘공동체적 식별’
교회는 함께 걸어가는 데에서, 회중이 모임을 통해서, 그리고 모든 구성원이 복음화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데에서 자신이 친교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실현합니다. 시노드 정신은 하느님 백성 전체가 이러한 교회의 삶과 사명에 관련되고 참여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교회의 모습은 시노드 정신을 통해 오늘날 구체적으로 표현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노드 정신을 구체적으로 살아가기 위해서 시노드 여정에서 핵심적 요소인 식별에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공동체적 식별은 하느님께서 특정한 역사적 상황 안에서 들려주시는 부르심을 발견하도록 합니다.
이와 관련해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의 겔트루드 링크 수녀님의 이야기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수녀님은 1933년 5월 2일 독일 툿찡 베네딕도 수녀회 모원에 입회한 뒤 4개월 만인 그해 9월 15일 북한 원산 지역에 있는 수녀원으로 파견되어 활동하시다가, 1949년 북한의 옥사덕 강제수용소에 투옥되셨습니다. 당시 옥사덕 강제수용소에는 덕원, 원산, 고원 등지에서 체포되어 투옥된 외국인 신부와 수사, 수녀 67명이 수난을 겪어야 했으며, 25명이 희생되고 1954년 1월 12일에 42명만이 본국으로 송환되었습니다.
수용소에서 겪은 참담한 인간의 한계
겔트루드 링크 수녀님은 혹독한 북한 수용소에서의 삶을 온몸으로 겪고서 독일로 추방되었지만, 한국으로 다시 재파견을 요청하여 1956년 5월 7일 대구로 돌아와 신암동에서 수련장에 임명됐으며, 1967년 로마 총회에서 총장 수녀로 선출되면서 제2의 고향인 한국을 떠나야 했습니다. 고난의 땅인 북한을 그리워했고, 남한의 신암동을 사랑했으며, 한국을 사랑한 수녀님은 한국 땅에 묻히고 싶었으나, 뜻을 이루지 못하고 1999년 3월 27일 90세로 고국에서 선종하셨습니다.
북한 강제수용소 생활을 겪으며 겔트루드 링크 수녀님이 쓴 시와 체험담이 ‘암흑과 폭풍 속의 너 영혼아!’라는 제목으로 독일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으며, 한국에서도 번역되었습니다. 수녀님의 회고에 따르면 수용소의 비참하고 곤궁한 상황 속에서 심리적 고통을 체험한 공동체는 인간의 이기적인 본능을 적나라하게 표출하였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인간이 가지고 있는 추악함을 극복하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공동체를 키워나가는 데 엄청난 힘과 정신력이 필요하였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절박하고 극한적인 상황에서 형성된 공동체는 내적으로 결코 해체될 수 없다고 설명하십니다. 수녀님은 하느님 백성으로부터 나오는 명시적 또는 침묵의 부르짖음을 통하여 들려오는 ‘성령의 탄식’에 주의 깊고 용감하게 귀를 기울이셨습니다.
절박한 상황서 형성된 공동체의 단단한 힘
본국으로 송환되셨다가 다시 돌아오신 겔트루드 링크 수녀님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가 남한에서 다시 공동체를 마련하고 자리를 잡는 시기에 훌륭하게 핵심적인 역할을 하셨다고 합니다. 수녀님은 한국 사람들보다 한국 사람들을 더 잘 이해하셨다고 합니다. 수녀님께서는 수용소에서 말할 수 없이 참담한 인간의 한계를 직접 대면하셨지만, 동시에 공동체가 서로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분명히 체험하셨던 것 같습니다. 오늘날 교회 공동체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려 하지만, 서로의 인간적인 면모를 대면하고 실망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시노드 여정 안에서 구성원들의 부족함이 도드라져 보일 수 있습니다. 어쩌면 이때가 바로 진정한 교회 공동체를 함께 만드는 데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함께 식별할 수 있는 적절한 시기가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2월 25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영적 지도자 양성이 필요하다 (29)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⑭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종합보고서를 각 지역 교회가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여 피드백을 5월 15일까지 주교대의원회 사무처에 제출하면, 이를 종합해 제2회기 논의를 위한 의안집이 8월 중 작성, 발표될 예정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깊이 묵상하고 성찰하는 순환의 과정을 다시 한 번 거치게 됩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하느님 백성의 교회가 갖춰야 할 모습을 함께 고민하는 것이라는 차원에서 상호 존중과 경청의 문화가 지속되는 데 필요한 구체적인 방안을 하나 제시해 보고 싶습니다.
하느님의 섭리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질문
한국 교회에 영적 지도자 양성이 필요해 보입니다. 우선 영적 지도는 (영적 체험을 다루지 않는) 심리치료가 아닙니다. 영적 지도는 (죄와 용서에 초점을 맞추는) 고해성사도 아닙니다. 또한 영적 지도는 (사목적 문제를 다루는) 사목 상담도 아닙니다. 영적 지도는 하느님께 초점을 맞춥니다. 영적 지도에서는 영적 지도자와 함께 일상의 기도 생활과 하느님에 대한 체험을 나눕니다. 영적 지도의 역사는 사막의 교부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영적 지도자는 피지도자가 하느님의 온화한 목소리를 간과하고 있는지를 주목해서 보기를 응원하며 기도의 삶을 돌아보는 데 도움을 줍니다. 훌륭한 영적 지도자는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하시게끔 자신을 허용하도록 이끕니다. 영적 지도자는 피지도자들이 자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법들을 체계적으로 훈련받은 사람들입니다. 따라서 영적 지도를 시작하기 전에 전문적인 교육 훈련 프로그램 등을 통해 경험을 쌓아야 합니다.
상호 존중과 경청의 차원에서 볼 때, 영적 지도자는 지도를 받는 이들의 의사결정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보다는 우리의 삶 어디에서 하느님께서 활동하고 계시는지를 보라고 초대합니다. 일반적인 심리상담이나 정신과적 치료가 문제의 원인을 파악하고 원인을 해결하는 방식의 접근이라면, 영적 지도자는 피지도자의 이야기를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고 피지도자들이 스스로 하느님의 섭리하심을 발견할 수 있도록 질문을 던지는 방식을 택합니다. 이 과정은 피지도자에 대한 존중과 그들 안에서 활동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합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주교시노드는 모두 함께 걷는 초대 교회의 정신으로 돌아가도록 초대하고 있습니다. 교회 역사 안에서 이를 위해 쇄신하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은 지속적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어쩌면 지금 시도하고 있는 시노드 여정도 그러한 노력의 반복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도 초대 교회가 지향했던 사랑과 신뢰·상호 존중·경청·친교가 넘치는 교회 실현은 눈에 띌 만큼 분명히 드러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다시 한 번 꿈을 꾸었으면 합니다.
상호 존중과 경청이 넘치는 교회를 꿈꾸며
교회 내에 영적 지도자를 양성하고 이들이 많아져 교회 안에 상호 존중하는 경청의 토대가 강화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보면 꿈같은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교회 내에서 영적인 차원의 어려움을 겪고 있는 이들에게 함께 걷는 교회 여정 안에서 도움이 시급하게 필요한 것도 분명한 현실입니다. 상황이 그러하다면 반드시 전문적인 영적 지도자를 통해서가 아니라 하더라도, 하느님 백성들이 열린 마음으로 서로 경청하고 자신 안에서 하느님께서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볼 수 있도록 도와주는 문화가 교회 안에서 자리 잡기를 희망합니다. 시노드 정신은 하느님 백성들이 살아가는 구체적인 삶의 자리에서 언제나 실천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3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서로 다름 발견하고 성령께 귀 기울이기
(30)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⑮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교구 단계, 대륙별 단계, 그리고 2차례의 회기로 구성되는 보편 교회 단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2023년 10월에 열린 제1회기 본회의의 결실을 담은 종합보고서(synthesis report)를 지역 교회 차원에서 성찰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제출하는 단계입니다. 이를 토대로 제2회기 의안집(Instrument Laboris)이 작성, 발표될 것입니다. 2024년 10월에 열리는 본회의는 이 의안집의 내용을 토대로 경청과 식별의 여정을 거치게 될 것이며, 그 열매는 최종문서의 발표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시노드 정신이란 무엇인가 성찰하기
주교대의원회의 홈페이지(www.synod.va)를 통해 내려받을 수 있는 제1회기 종합보고서는 다양한 도전 과제와 많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종합보고서는 시노드적인 교회에 대한 명쾌한 이해와 설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하느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세상과 대화하고, 세상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종합보고서에 담긴 숙고의 작업을 본회의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만 주어진 책무라고 이해하기보다, 시노드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기회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노드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성찰과 실천의 순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사목연구소가 최근에 발간한 책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공동체」는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그 열매인 친교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노드 정신에 대한 성찰은 시노드 정신을 통해 친교로 하나 된 우리가 하느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실천을 통해 시노드 정신에 대한 보다 선명한 이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과의 친교가 중요한 이유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대의원들은 종합 보고서 채택에 앞서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 서한에서 대의원들은 가톨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를 포함해 모든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 교회의 미래를 계속해서 식별해야 한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종합 보고서를 통해서 대의원들은 가난한 이들과의 친교는 함께 걷는 시노드 정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복음화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극단적인 대립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가난한 이들이 누구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시노드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친교를 이룬다고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만을 해결해주는 것이 친교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우선적으로 친교를 맺고 도움을 주어야 할지에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화의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성령께 귀 기울이는 것이 시노드 정신이며, 시노드 정신의 구체적인 실천인 동시에 시노드 정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10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메말라가는 하느님 정원에 마중물이 되자
(31)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16)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는 교구 단계, 대륙별 단계, 그리고 2차례의 회기로 구성되는 보편 교회 단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현재는 2023년 10월에 열린 제1회기 본회의의 결실을 담은 종합보고서(synthesis report)를 지역 교회 차원에서 성찰하고, 이에 대한 피드백을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에 제출하는 단계입니다. 이를 토대로 제2회기 의안집(Instrument Laboris)이 작성, 발표될 것입니다. 2024년 10월에 열리는 본회의는 이 의안집의 내용을 토대로 경청과 식별의 여정을 거치게 될 것이며, 그 열매는 최종문서의 발표로 마무리될 것입니다.
묵상과 관상 통해 하느님 뜻 발견하기
주교대의원회의 홈페이지(www.synod.va)를 통해 내려받을 수 있는 제1회기 종합보고서는 다양한 도전 과제와 많은 질문이 담겨 있습니다. 종합보고서는 시노드적인 교회에 대한 명쾌한 이해와 설명이 여전히 필요하다고 강조하며, 하느님 백성 곧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제자들이 성령의 인도 아래 세상과 대화하고, 세상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어 걸어갈 수 있는 길을 모색하도록 제안하고 있습니다.
종합보고서에 담긴 숙고의 작업을 본회의에 참석하는 대의원들에게만 주어진 책무라고 이해하기보다, 시노드 정신이 무엇인가에 대한 이해와 실천의 기회로 바라보는 것이 필요해 보입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시노드 정신이 무엇인지에 대한 하느님 백성 전체의 성찰과 실천의 순환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미래사목연구소가 최근에 발간한 책 「시노드 정신이 뿌리내리는 공동체」는 시노드 정신을 실현하는 가운데 하느님께서 나 자신과 우리 공동체 안에서 어떤 일을 해오셨는지, 그 열매인 친교가 무엇인지 성찰하는 것을 돕기 위해 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시노드 정신에 대한 성찰은 시노드 정신을 통해 친교로 하나 된 우리가 하느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이끌어 줄 것입니다. 또한 이러한 실천을 통해 시노드 정신에 대한 보다 선명한 이해를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대의원들은 종합 보고서 채택에 앞서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는 서한’을 발표했습니다. 이 서한에서 대의원들은 가톨릭교회는 가난하고 소외당한 이를 포함해 모든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를 들어 교회의 미래를 계속해서 식별해야 한다고 요청하였습니다. 이와 더불어 종합 보고서를 통해서 대의원들은 가난한 이들과의 친교는 함께 걷는 시노드 정신을 이해하고 수용할 수 있는 중요한 계기를 마련해 준다고 보았습니다. 한편 복음화의 관점에서 가난한 이들과 이루는 친교를 실천하는 과정에서도 극단적인 대립이 존재할 수 있다고 설명합니다. 과연 가난한 이들이 누구이며, 이들에게 필요한 도움이 무엇인가에 대해서 각기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활동에 머물고 우리를 맡기기
예를 들어 시노드 정신에 따라 가난한 이들과 친교를 이룬다고 할 때, 경제적인 어려움만을 해결해주는 것이 친교라고 볼 것인지, 아니면 오히려 정신적이고 영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이들과 우선적으로 친교를 맺고 도움을 주어야 할지에 서로 의견이 다를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복음화의 과정에서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그 안에서 활동하시는 성령의 목소리에 함께 귀 기울이는 과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서로의 다름을 발견하고 서로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성령께 귀 기울이는 것이 시노드 정신이며, 시노드 정신의 구체적인 실천인 동시에 시노드 정신을 알아가는 과정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17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상대방의 영적 어려움에 귀 기울이기
(32)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17)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 종합보고서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와 관련하여 영적인 차원의 접근을 강조합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쇄신은 오직 은총의 우선성을 인정함으로써 가능하다. 영적 깊이가 부족하다면, 시노달리타스는 겉모습만 쇄신된 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부름받은 것은, 다른 곳에서 얻은 성숙한 영적 경험을 공동체적 과정으로 전환하는 것뿐만 아니라 형제적 관계들이 어떻게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의 장이자 형태가 되는지 더욱 깊이 경험하는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시노달리타스의 전망은 성전의 풍요로운 영적 유산을 길어 올리면서도 그 형태들, 곧 참여에 열려 있는 기도, 함께 경험하는 식별, 나눔에서 생겨나 봉사로 빛을 발하는 선교 에너지의 형태들을 쇄신하는 데에 기여한다.“(「종합보고서」 1부 2항 수렴)
교회는 시노드 정신 안에서 형제들이 성숙한 영적 경험을 통해 하느님과의 진정한 만남의 장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강조한 경청의 영성적 차원을 돌아보는 것이 도움될 것 같습니다. 2016년 제50차 홍보 주일 담화를 통해 교황님은 경청이 다른 이들의 말에 주의를 기울이며, 이를 이해하고 높이 평가하며 존중하는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하고, 이와 더불어 경청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며, 일종의 순교 또는 자기희생이 따른다고 강조하였습니다. 경청은 우리가 청하여 실천하도록 노력해야 하는 은사라는 것이 교황님의 설명입니다.
경청은 순교이고 자기희생
더불어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2022년 제56차 홍보 주일 담화를 통해서도 상대방의 의도에 주목하고 현실의 복합적인 면을 이해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리고 영적인 상황을 함께 고려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하였습니다. 특별히 교황님이 서로 경청하기 대신 ‘서로 자기 말만’하는 것은 신체적 청력의 상실이 아니라 내적인 귀먹음이기에, 이를 경계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렇게 표현하신 이유는 상대방의 내적인 상태를 살펴보는 경청의 중요성을 강조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진정한 경청은 단순히 자기 말만하려는 태도에서 벗어나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내적인 상태에까지 귀 기울이는 영적인 과정입니다.
경청에 대한 이해의 범위를 상대방의 영적인 어려움에 귀를 기울이는 차원으로 확대하게 되면 자연스럽게 이런 반응이 나올 것 같습니다. 영성적이고 영적인 차원의 경청은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가능한 것 아닌가요? 이와 관련해 민범식(서울대교구) 신부님의 말씀을 다시 한 번 돌아보게 됩니다. 「하느님 길만 걸으세요」라는 저서에서 신부님은 하느님께 대한 직접적인 체험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일상에서 겪는 일들을 통해 우리는 ‘아, 하느님이 이런 분이시구나’ ‘하느님이 이렇게 말씀하시는구나’라는 영성 체험이 가능하다고 설명하십니다.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으로 경청해보니
필자는 시노드 정신을 산다는 것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구체적으로 경청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특히 평상시 거북하게 여기는 상대방의 이야기를 어떻게 경청할 수 있을 것인지 고민하다 보니, 순교하는 마음으로, 자기희생의 차원에서 경청을 시도해 보았습니다. 하지만 이 경우 경청을 통해 오히려 불편한 마음만 더 커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반면에 짧게라도 화살기도를 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마음으로 경청하게 되면, 상대방이 가진 어려움에 마음이 쓰이고, 그동안 보지 못했던 상대방의 상처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경청은 은사이며, 하느님이 어떻게 활동하시는지를 볼 수 있는 영적인 기회를 제공하는 것 같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24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제1회기 「종합보고서」 내용을 살펴보자
(33)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18)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1회기의 결실인 「종합보고서」는 제1회기와 제2회기 사이에 하느님 백성이 걸어갈 여정의 기준이 됩니다. 보고서는 「의안집」의 모든 내용을 취하거나 반복하지 않고 우선순위로 여겨지는 것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이는 제2회기까지 계속해야 할 식별 과정에 봉사하기 위한 하나의 도구이며, 제2회기의 밑그림을 보여 줍니다.
이 보고서는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1부는 시노달리타스의 기초를 놓는 신학적 원리들을 제안하며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의 얼굴’에 관하여 설명합니다. 제2부의 제목은 ‘모두 제자이며 모두 선교사’이며, 교회의 삶과 사명 안에 관련된 모든 이들과 그들의 관계에 대하여 다룹니다. 제3부의 제목은 ‘관계를 엮고 공동체를 구성하기’입니다.
이 세 부분은 각각 7개, 6개, 7개 장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모든 장은 ‘수렴’, ‘다루어야 할 질문’, 그리고 ‘제안’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수렴’은 성찰 과정에 방향을 제시하여 길을 잃지 않도록 하는 지도와 같습니다. ‘다루어야 할 질문’은 신학적·사목적·교회법적으로 계속하여 심화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한 핵심들을 모아놓은 것입니다. 수렴과 질문은 가야 할 방향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하여 멈출 필요가 있는 교차로와 같습니다. 반면 ‘제안’은 나아가야 하는 가능한 경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어떤 것들은 제안되고 어떤 것들은 권고되며 어떤 것들은 더욱 강력하고 결단력 있게 요청됩니다.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는 종합보고서와 더불어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를 준비하기 위한 지침으로 ‘2024년 10월을 향하여’를 승인하였습니다. 이 지침은 「종합보고서」 전체를 기준으로 성찰하기 위한 안내 질문으로 “어떻게 우리는 사명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될 수 있는가?”를 제시하였습니다. 이 질문을 통한 성찰의 목적은 여러 다른 맥락과 상황 안에서 우리가 따를 수 있는 길들과 우리가 취할 수 있는 도구들을 식별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 안에서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에 알맞은 일치와 다양성 사이의 역동성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지침은 정기총회의 제1회기와 제2회기 사이 여정의 주된 주체가 모든 지역 교회임을 분명히 합니다. 이 여정 안에서 지역 교회는 「종합보고서」의 내용을 저마다 자신들이 처한 상황의 특징과 경험에 비추어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인지 성찰합니다. 이 과정에서 이미 설립된 시노드 팀과 하느님 백성 안에서 다양한 경험·기술·은사·직무를 표현하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참여하게 됩니다. 이들의 자문과 성찰의 결과는 지역 교회의 주교회의를 통해 취합되며, 주교대의원회의 사무처로 전달되고, 최종적으로 제2회기(2024년 10월)를 위한 의안집이 마련됩니다.
이러한 여정 안에서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제2회기 준비 과정에 직접 참여하는 하느님 백성의 수는 제1회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매우 적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모든 하느님 백성이 현재 시노드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직접적인 느낌을 받기는 어려울 수 있습니다. 함께 걸어가는 시노드 여정에 참여하는 차원에서 제1회기 「종합보고서」의 내용을 살펴보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제1회기의 「종합보고서」의 한글 번역본은 한국천주교주교회의 홈페이지(www.cbck.or.kr) 접속해 ‘알림마당’ 메뉴의 ‘소식’ 게시판에서 2023년 12월 29일자 자료를 내려받아 읽으실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3월 31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경청하고 동반하는 교회를 위하여
(34)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19)
2024년 10월에 열리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에서는 더 심도 깊은 논의가 이어질 것입니다. 이를 위해 현재 지역 교회는 제1회기 「종합보고서」를 깊이 있게 묵상하고 심화 발전시키기 위한 성찰 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이 과정에 직접적으로 참여하지 못하지만, 하느님 백성은 「종합보고서」의 내용을 통해 하느님 백성의 목소리가 어떻게 반영되며 교회가 함께 걸어가기 위해 여정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살펴볼 수 있을 것입니다.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 필요
우선 경청과 관련된 「종합보고서」의 내용을 주목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종합보고서」 16장의 제목은 ‘경청하고 동반하는 교회를 위하여’입니다. ‘수렴’ 부분에서는 몇 가지 눈에 띄는 지점이 있습니다. 우선 ‘경청한다는 것은 다른 이를 위한 공간을 주기 위하여 자기 중심성에서 벗어나려는 의지를 요청한다’라는 것입니다. 이는 각자에게 자신의 한계와 자기 관점의 편파성을 인정하게 하며, 이를 통해 교회 소속의 경계선 너머에서도 말씀하시는 하느님 영의 목소리를 경청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며, 변화와 회심의 여정을 시작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모든 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교회
또한 ‘수렴’ 부분에서는 매우 쉽게 자신의 목소리를 듣게 만들 줄 아는 사람들만이 아니라 모든 이의 목소리를 경청하는 교회를 강조합니다. 다양한 문화적 그리고 사회적 배경 안에서 젊은이들, 여성들, 그리고 소수자들은 자유로이 자신들 스스로를 표현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또한 억압적이고 독재적인 통치 체제에서 사는 경우에는 자유롭게 말하는 데 더더욱 어려움이 있습니다. 이러한 어려움이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도 억압적으로 발생할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권위적인 분위기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따라서 ‘다루어야 할 질문’ 부분에서 경청은 무조건적인 환대를 요청합니다. 물론 이러한 요청이 복음의 구원 메시지를 분명하게 전하기를 포기하거나 어떤 의견이나 입장이든 지지함을 의미하는 것은 아닙니다. 무조건적인 환대를 위한 경청은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우리와 만나는 모든 이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새로운 지평을 열어주셨기 때문에 가능한 것입니다. ‘다루어야 할 질문’은 세계 곳곳에 퍼져 있는 공동체와 세례받은 이들 사이의 경청을 촉진하고 적용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하고 탐색하도록 초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조건적인 환대와 기도로 함께 동반하기
이어서 ‘제안’ 부분은 더욱 환대하는 교회를 경험하기 위해 기존의 많은 제도와 구조들의 활용 필요성을 강조합니다. 교회 안에서 다양한 형태로 경청과 동반에 봉사하는 사람들이 그들과 접촉하게 되는 사람들의 유형에 따라 적합한 양성을 받을 필요가 있으며, 공동체의 지지를 받고 있음을 느낄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통해 경청과 동반은 개인적 차원이 아니라 교회적 활동이라는 의식이 강화되어야 할 것이며, 이를 통해 배제되었다고 느끼는 사람들에게 더욱 적극적으로 다가가는 교회 차원의 노력이 구체화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노드 정신 안에서 하느님 백성은 담대하게 말하고 열린 마음으로 경청하며 함께 걸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는 세계주교시노드 여정을 통해 시노드 정신이 더 구체적으로 정착될 수 있도록 많은 제안들을 묵상하고 성찰하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은 이러한 심화의 여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관심을 갖고 동반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기도로 함께 동반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4월 7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복음적 가치를 따라서
(35)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20)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를 위한 「종합보고서」의 3부는 ‘유대를 만들고 공동체를 구성하기’ 위해 필요한 시노드 정신에 대해 다루고 있으며, 이 중에 15장 ‘교회적 식별과 열린 문제들’의 수렴 부분은 시노드 여정 안에서 실천된 ‘성령 안에서의 대화’의 방식을 통해 자신의 관점과 입장만을 반복적으로 표현하는 토론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논리를 고려할 시간과 공간을 허용하는 경청이 가능해졌다고 평가하였습니다. 이어 「종합보고서」는 시노드 정신에 따른 경청의 체험을 통해 교회 안에서 논쟁이 되는 문제들을 심화할 수 있는 호의적인 환경을 만들어졌다는 점에도 주목합니다.
경청 체험 바탕으로 ‘성령 안에서 대화’
이러한 환경 속에서 교회 안에서 다루어져야 하는 논쟁적 주제들은 구체적으로 디지털 기술과 인공지능의 인간학적 효과, 비폭력과 합법적 방어, 직무에 관련된 문제들, 육체성과 성(性)에 관련된 주제 등이 대표적입니다. 「종합보고서」는 이러한 주제들에 대한 참된 교회적 식별을 발전시키기 위하여 하느님 말씀과 교도권에 비추어 더욱 폭넓은 정보 기반과 더 명확한 성찰 요소의 통합이 필요하다고 보았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관점을 철학적 성찰 및 신학적 작업과 구분해야 한다고 설명합니다. 이러한 구분은 교회적 성찰이 궁극적으로 예수님께서 보여주셨던 사랑과 진리에 원천적으로 결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이를 위해서 「종합보고서」는 교회적 식별을 위한 통합의 과정에서 예수님께서 어떻게 사람들과 참된 관계를 맺으셨는지를 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에수님께서는 사람들을 고유한 역사와 상황에서 만나신다는 것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결코 편견이나 낙인에서 출발하지 않으시고, 오해받고 거부당하는 대가를 치르더라도 당신께서 온 마음으로 맺으시는 관계 속에서 만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도움이 필요한 이들의 목소리에, 비록 그 소리가 말로 표현되지 않더라도 늘 귀를 기울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전하시는 진리가 하나의 관념이 아니라,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느님의 현존 자체이기 때문에 그분께서 만나는 사람들은 그분의 현존을 통해 새 삶이 가능해지고 변화된 모습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종합보고서」는 예수님께서 사랑으로 행동하신 이러한 복음적 전망을 기꺼이 받아들이고 구체적으로 살아가는데 어려움을 겪는 상황들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 논쟁이 되는 문제들은 결국 복음적 전망에 따른 사목적 선택을 하지 못하는 상황들을 이야기하는 것 같습니다. 「종합보고서」는 이러한 상황에서 경직된 태도와 판단의 자세로 일관하는 것은 복음을 배신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오히려 진리와 사랑의 일치 차원에서 다른 이의 어려움을 자기 것으로 짊어지는 동반의 길을 인내하며 따를 것을 권합니다.
다른 이의 어려움 자기 것으로 짊어지기
하느님 백성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사회에서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도 새로운 질문들을 제기하고 논란이 되기도 합니다. 「종합보고서」는 이를 위해 인간학적 범주의 차원에서 경험이나 학문적 인식은 도움이 될 수 있으나, 복잡한 요소들을 받아들이기 위해서는 보다 정교하고 추가적인 연구가 요구되며,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들이 전문적 능력으로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영적인 지혜의 차원으로 성숙되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일상에서 마주하는 다양한 도전들 앞에서 예수님이 보여 주신 복음적 가치에 따라 살아가기 위해 교회가 함께 성찰하며 걸어가는 과정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4월 14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하느님 백성 모두 양성이 필요하다
(36)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21)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를 위한 종합 보고서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노드 여정을 전체적으로 조망하고 이해할 수 있는 훌륭한 설명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 도입 부분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세상과 교회라는 밭에 뿌려진 씨앗에 비유하고, 2024년 10월까지 계속될 시노드 여정이 이 씨앗의 활력을 끊임없이 끌어내고 그 잠재력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시노드 여정 안에서 공의회의 영감이 오늘날 세상을 위한 그 예언적 힘을 다시 발휘할 수 있게 될 것이며, 시노드 정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인류와 만나시는 삼위일체적 역동이 영적 태도와 교회적 과정을 통해 표현될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각 분야에서 충만하게 살기
종합 보고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라는 씨앗이 자랄 수 있는 토양은 바로 신자들의 일상생활, 모든 백성과 문화 안에서 교회들의 경험, 거룩함에 대한 다양한 증언들, 그리고 신학자들의 성찰이라고 설명합니다. 이어 14장 ‘양성에 대한 시노달리타스 방식의 접근’은 하느님 백성의 양성을 신학적 양성 외에 공동 책임성, 경청, 식별, 교회 일치와 종교 간 대화 등의 훈련, 가난한 이들에 대한 봉사, 공동의 집의 돌봄, ‘디지털 선교사’로서의 일, 성령 안에서 식별과 대화 과정의 촉진, 동의를 이끌어 내고 갈등을 해소하는 일 등 일련의 특별한 역량의 차원에서 다양하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접근은 공의회와 관련해서 표현된 토양의 의미를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양성되어야 한다는 차원에서 접근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에 대한 양성은 양성의 대상을 확장시키는 차원 이상입니다. 하느님 백성 전체가 시노드 정신에 따라 함께 걸어가면서 함께 양성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하느님 백성 모두가 지속적으로 양성되는 문화를 형성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 14장의 수렴 부분은 시노드 정신에 따른 양성이 첫 번째로 가정 안에서 일어나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와 더불어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 과정에서 양성의 중심은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이며, 예비 신자의 양성은 우리가 모두 거룩함으로 부름 받았음을 상기시키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이를 위해 종합 보고서 14장은 구체적으로 인간 경험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문학들, 특히 심리학과 신학 사이의 대화를 심화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문학의 공헌을 단지 나열하는 것이 아니라 더욱 성숙한 종합으로 통합하여야 한다는 점을 다루어야 할 질문으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는 시노드 정신에 따른 양성의 목표를 통해 설명될 수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에 따른 하느님 백성의 양성은 하느님 백성이 세례성사로 받은 자신의 소명을 가정·직장·교회·사회·지성적 분야에서 충만하게 살아가도록, 그리고 각자가 자신의 은사와 소명에 따라 교회의 사명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게 하는 것을 목표로 합니다.
시노드 방식으로 진행돼야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세계주교시노드 여정 안에서 하느님 백성 모두(평신도, 축성 생활자, 수품 직무자)에 대한 양성이 필요합니다. 이를 위해 종합 보고서 14장에서 언급하고 있는 내용을 토대로 신앙 단계와 직무에 따른 세분화된 신앙 쇄신 프로그램이 지역 교회 차원에서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모든 양성 프로그램은 시노드 방식으로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시노드 정신에 따라 진행되는 양성 프로그램 안에서 하느님의 거룩한 백성은 시노드 정신에 따라 함께 걷는 교회의 구성원으로서 각자가 양성의 대상인 동시에 주체임을 체험하는 기회를 제공 받아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4월 21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디지털 선용 위해 마음의 지혜 모아야
(37)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22)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제2회기를 위한 「종합보고서」 17장 ‘디지털 환경에서의 선교’는 디지털 문화 안에서 그동안 우리가 하느님과 맺어온 관계 형성의 방식이 근본적으로 변화하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디지털 환경이 학습 과정, 시간, 공간, 몸 그리고 인격적 관계에 대한 우리의 사고방식 전체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입니다. 「종합보고서」는 시노드 정신을 살아가는 교회가 이러한 변화에 주목해야 하며, 이에 대한 교회의 구체적인 증언이 요구된다고 보았습니다.
특별히 「종합보고서」 17장은 다루어야 할 질문으로 인터넷 사용의 증가가 집단 따돌림, 허위 정보, 성적 착취와 중독 등을 통하여 피해와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구체적인 온라인 활동과 관련해서는 불행히도 신앙과 관련된 주제들을 피상적으로 양극화하는 방식이나, 심지어 증오를 심어주는 형태로 다루는 사이트들이 존재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온라인 공간이 안전할 뿐만 아니라 영적으로도 생명을 보장하는 공간이 될 수 있도록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어떻게 지원할 수 있을지 스스로 질문하고 고민할 것을 제안합니다.
이와 관련하여 프란치스코 교황이 ‘인공 지능과 마음의 지혜 : 온전한 인간 커뮤니케이션을 향하여''란 제목으로 발표한 제58차 홍보 주일 담화를 주목할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은 담화를 통해 우리가 인공지능의 가능성뿐만 아니라 그 위험성과 이에 따른 병폐도 경험해왔음을 분명히 합니다. 특히 인공지능 체계가 중립적으로 사용되지 않고 오용됨으로써 해롭고 차별적이며 사회적으로 부조리한 영향력이 발생한다면, 우리가 시장이나 권력의 이익을 위한 먹잇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도 언급하였습니다. 인공지능의 활용이 검증되지 않은 데이터를 수집하여 집단 편향을 유도한다면 대인 커뮤이케이션을 방해하고 인류 자체를 위협하여 사물의 진리를 근본적으로 잃어버리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인공지능 활용으로 대표되는 기술 발전이 인간성을 빈약하게 할 수 있는 위험에 대비하여 우리의 성찰이 마음에서 출발해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마음의 지혜를 회복하고 현실을 바라보는 영적 관점을 갖춰야만 우리는 시대의 새로움을 읽고 해석할 수 있으며 온전한 인간 커뮤니케이션으로 가는 길을 재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 교황의 의견입니다.
담화를 통해 프란치스코 교황이 강조하는 마음의 지혜는 우리가 전체와 부분, 우리의 결정과 그 결과, 우리의 고결함과 취약함, 우리의 과거와 미래, 우리의 개성과 더 큰 공동체 안의 소속감을 한데 통합할 수 있게 하는 덕목입니다. 성령의 선물인 이 지혜를 통해 우리는 하느님의 눈으로 사물을 바라보고 관계와 상황과 시간을 이해할 뿐만 아니라, 그 참된 의미를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느님을 만나는 내적 자리인 마음 안에서 기술과 인류에 대한 성찰이 이뤄지고, 이 과정에서 영성과 내면의 자유를 잃지 않는 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시노드 정신을 살아간다는 것은 마음의 지혜를 함께 찾아가는 여정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기술의 발전으로 제기되는 수많은 질문 앞에서 새로운 수단의 사용에 대하여 신중하게 성찰하고 이 수단들이 지니는 선함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세대의 연대가 필요해 보입니다. 모든 세대가 함께 지혜를 모아 연대하는 것은 그 자체로 함께 걷는 시노드 교회의 모델이 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4월 28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한창현 신부의 모두의 시노드] 함께 걷는 시노드 여정과 영적 쇄신 (38 · 끝) 시노드 정신 살아가기 (23)
2023년 한국을 방문한 토마시 할리크 몬시뇰은 전주 치명자산 성지에서 특별 강연을 진행하였습니다. 몬시뇰은 우리가 많은 변화와 위기로 둘러싸인 도전적인 시대에 살고 있다고 보았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교회가 자기중심적으로 자기만 돌보는 것은 살아계신 그리스도께 향하는 문을 닫는 것이라고 경고한 몬시뇰은 모든 위기는 가능성이자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점을 상기시켜 주었습니다. 몬시뇰은 역설적으로 우리의 신앙 성숙은 위기를 통해 가능하며, 성숙한 신앙만이 이 시대의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신앙의 성숙과 관련해 몬시뇰은 세상의 사건에 대한 관상적 접근을 배워야 한다며 영적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합니다. 시대의 징표를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관해 언급한 몬시뇰은 소셜미디어·신문·텔레비전이 제공하는 세상의 이미지는 피상적이며, 때로는 이념적이고 상업적인 이익으로 채색될 수밖에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이어 이러한 세상의 이미지가 만드는 시대정신·가짜 뉴스·편견 등과 하느님의 언어인 ‘시대의 징표’를 구별하는 데 필요한 묵상과 관상의 중요성을 역설했습니다. 우리는 묵상과 관상의 실천을 통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을 더 깊이 이해하고 식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신앙의 성숙과 묵상 및 관상을 통한 식별은 영적 쇄신 차원에서 시노드 여정과 연결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몬시뇰에 따르면 현재 진행되는 시노드 여정에는 신앙생활의 쇄신, 특히 그 깊은 차원인 영성을 심화시키는 일이 선행되거나 병행되어야 합니다. 시노드 여정은 영적인 차원에서 교회 구성원들이 쇄신하는 기회로써 겸손한 상호 경청과 존중의 정신을 통해 교회를 치유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몬시뇰은 시노드 여정을 통해 자신의 상처와 죄를 깨닫고 인정하는 교회가 세상의 상처와 질병을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 보았습니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역사 안에서 심각한 위기를 맞는 시기마다 역동적인 신앙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우리 시대에 프란치스코 교황은 “함께 걷는 길(syn-hodos)”, 즉 시노드 형태의 교회로 쇄신할 필요성을 선언하였습니다. 지금 교회는 세계주교시노드 제16차 정기총회 여정의 마지막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이 시점에서 필자의 삶을 돌아보고 시노드 여정에 참여한 기억을 떠올려 보면, 솔직히 시노드 여정을 통한 쇄신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것에 비해, 직접 체감할 수 있는 신앙생활의 변화가 구체적으로 이어졌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시노드 모임을 통해 상호 경청하는 체험을 했을지라도, 시노드를 통한 교회 쇄신의 움직임을 직접적으로 느끼는 데는 한계가 있어 보입니다.
본래 시노드는 예수님 제자들의 모임에 함께 부름 받았음을 나타내며, 어떤 경우에는 교회 공동체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되었다는 점을 상기해 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시노드가 함께 걷는 정신을 특별히 강조하였지만, 본래 시노드는 교회가 살아가는 방식의 일부였습니다. 그렇다면 시노드 여정은 교회 구성원들이 하느님 안에서 영적으로 깨어있는 일련의 과정, 그 자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물론 시노드를 통한 구체적이고 가시적인 교회의 변화를 기대하고 실망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현재 진행되는 시노드를 통해 하느님 백성 전체가 함께 걷는 교회의 여정 안에서 영적으로 쇄신할 수 있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평화신문, 2024년 5월 5일, 한창현 신부(성바오로수도회 양성위원장)]
※ 지난해부터 8개월간 ‘모두의 시노드’를 연재해주신 한창현 신부님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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