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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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7일 토요일

[(녹) 연중 제22주간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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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연중 제7주일 기도문>

입당송

시편 13(12),6 참조
주님, 저는 당신 자애에 의지하며, 제 마음 당신 구원으로 기뻐 뛰리이다. 은혜를 베푸신 주님께 노래하리이다.

본기도

전능하신 주 하느님, 저희가 언제나 성령께 귀를 기울이게 하시어, 주님의 뜻을 새기고 말과 행동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죽음으로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주셨다. 그러니 우리는 믿음을 바탕으로 삼아 힘든 것도 잘 견디며 하늘에 마련되어 있는 것에 대한 희망을 간직해야 한다(제1독서). 바리사이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는 것을 두고 예수님께 따진다. 예수님께서는 다윗의 한 예를 드시며, 율법의 형식적인 면만을 내세운 나머지 그 근본정신을 잃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복음).

제1독서

<하느님께서는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을 거룩하고 흠 없게 해 주셨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1-23
형제 여러분, 21 여러분은 한때 악행에 마음이 사로잡혀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고 그분과 원수로 지냈습니다. 22 그러나 이제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드님의 죽음을 통하여 그분의 육체로 여러분과 화해하시어, 여러분이 거룩하고 흠 없고 나무랄 데 없는 사람으로 당신 앞에 설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23 다만 여러분은 믿음에 기초를 두고 꿋꿋하게 견디어 내며 여러분이 들은 복음의 희망을 저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그 복음은 하늘 아래 모든 피조물에게 선포되었고, 나 바오로는 그 복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54(53),3-4.6과 8(◎ 6ㄱ)
◎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이시다.
○ 하느님, 당신 이름으로 저를 구하시고, 당신 권능으로 제 권리를 찾아 주소서. 하느님, 제 기도를 들으시고, 제 입이 아뢰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소서. ◎
○ 보라, 하느님은 나를 도우시는 분, 주님은 내 생명을 떠받치는 분이시다. 저는 기꺼이 당신께 제물을 바치리이다. 주님, 좋으신 당신 이름 찬송하리이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4,6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
◎ 알렐루야.

복음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1-5
1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가로질러 가시게 되었다. 그런데 그분의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다.
2 바리사이 몇 사람이 말하였다. “당신들은 어째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
3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팠을 때, 다윗이 한 일을 읽어 본 적이 없느냐? 4 그가 하느님의 집에 들어가, 사제가 아니면 아무도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집어서 먹고 자기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5 이어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이 신비로운 제사를 정성껏 거행하며 간절히 청하오니, 주님의 영광을 위하여 봉헌하는 이 제물이 저희 구원에 도움이 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9,2-3
주님, 당신의 기적들을 낱낱이 전하오리다. 지극히 높으신 분, 저는 당신 안에서 기뻐하고 즐거워하며, 당신 이름 찬미하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이 거룩한 제사에서 저희가 성체로 구원의 보증을 받았으니, 실제로 그 구원 효과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어느 수도원에서 고양이 한 마리를 키웠습니다. 그런데 기도 시간마다 고양이 때문에 도무지 기도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가장 연장자인 수도자가 평소에는 놓아기르던 고양이를 기도 시간만 되면 성당 옆 기둥에다 묶어 두었습니다. 이러한 일이 반복되다가 그 노수도자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럼에도 고양이는 기도 시간이면 어김없이 그 자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새로 들어온 수도자들은 그 이유를 몰랐습니다.
얼마 뒤 그 고양이는 수명이 다하여 죽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도 젊은 수도자들은 다른 고양이를 구해다가 기도 시간만 되면 그 기둥에 묶어 놓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흐르며 수도자들이 바뀌고 또 바뀌어도 이러한 일은 계속되었습니다. 마침내 그 수도원의 한 박식한 수도자가 다음과 같은 제목의 신학 논문을 발표하기에 이릅니다. ‘기도 시간에 필요한 고양이의 필수적인 역할에 대한 신학적인 고찰.’
어떤 규정이 왜 생겼는지도 모른 채 그저 외적인 부분에만 치중하는 모습을 잘 꼬집는 이야기입니다. 오늘 복음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배가 고파 안식일임에도 밀 이삭을 뜯어 먹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이들이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 곧 추수 행위라는 노동을 하였다고 비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도 배가 고팠을 때 사제가 아니면 먹어서는 안 되는 제사 빵을 먹었다는 사실을 들며, 율법 자체보다도 그 율법이 사람을 위한 것임을 밝히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지키는 모든 규정은 다 소중합니다. 그러나 그 규정이 왜 생겼는지에 대한 성찰이 없다면, 형식의 틀에 사로잡혀 무의미한 행동을 반복하는 로봇이 되고 말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