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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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9월 9일 월요일

[(녹) 연중 제23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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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전례

<연중 제1주간 기도문>

성 베드로 클라베르 사제

입당송

나는 드높은 어좌에 앉아 계신 분을 보았네. 천사들의 무리가 그분을 흠숭하며 함께 노래하네. 보라, 그분의 나라는 영원하리라.

본기도

주님, 주님 백성의 정성 어린 간구를 인자로이 들으시고, 저희가 해야 할 일을 깨닫게 하시며 깨달은 것을 실천하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직을 설명하며, 자신이 환난을 겪는 것은 모든 이가 그리스도를 알아 구원의 희망을 갖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제1독서).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회당에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신다. 그러나 바리사이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노동, 곧 치유 행위를 하고 있다며 못마땅하게 여긴다(복음).

제1독서

<과거의 모든 시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를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려고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콜로새서 말씀입니다. 1,24─2,3
형제 여러분, 24 이제 나는 여러분을 위하여 고난을 겪으며 기뻐합니다. 그리스도의 환난에서 모자란 부분을 내가 이렇게 그분의 몸인 교회를 위하여 내 육신으로 채우고 있습니다. 25 하느님께서 여러분을 위하여 당신 말씀을 선포하는 일을 완수하라고 나에게 주신 직무에 따라, 나는 교회의 일꾼이 되었습니다.
26 그 말씀은 과거의 모든 시대와 세대에 감추어져 있던 신비입니다. 그런데 그 신비가 이제는 하느님의 성도들에게 명백히 드러났습니다. 27 하느님께서는 다른 민족들 가운데에 나타난 이 신비가 얼마나 풍성하고 영광스러운지 성도들에게 알려 주기를 원하셨던 것입니다. 그 신비는 여러분 가운데에 계신 그리스도이시고, 그리스도는 영광의 희망이십니다.
28 우리는 이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모든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사람으로 굳건히 서 있게 하려고, 우리는 지혜를 다하여 모든 사람을 타이르고 모든 사람을 가르칩니다.
29 이를 위하여 나는 내 안에서 힘차게 작용하는 그리스도의 기운을 받아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2,1 사실 여러분과 라오디케이아에 있는 이들, 그리고 내 얼굴을 직접 보지 못한 모든 이들을 위하여 내가 얼마나 노력하고 있는지를 여러분이 알기 바랍니다. 2 내가 이렇게 하는 것은 여러분과 그들이 마음에 용기를 얻고 사랑으로 결속되어, 풍부하고 온전한 깨달음을 모두 얻고 하느님의 신비 곧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갖추게 하려는 것입니다. 3 그리스도 안에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물이 숨겨져 있습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62(61),6-7.9(◎ 8ㄱ)
◎ 내 구원, 내 영광 하느님께 있네.
○ 오로지 하느님에게서 내 희망이 오리니, 내 영혼아, 그분을 고요히 기다려라. 그분만이 내 바위, 내 구원, 내 성채. 나는 흔들리지 않으리라. ◎
○ 백성아, 언제나 그분을 신뢰하여라. 그분 앞에 너희 마음을 쏟아 놓아라. 하느님은 우리의 피신처이시다. ◎

복음 환호송

요한 10,27 참조
◎ 알렐루야.
○ 주님이 말씀하신다.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그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른다.
◎ 알렐루야.

복음

<그들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 루카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6,6-11
6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셨는데, 그곳에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다. 7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그분께서 안식일에 병을 고쳐 주시는지 지켜보고 있었다.
8 예수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에게, “일어나 가운데에 서라.” 하고 이르셨다. 그가 일어나 서자 9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묻겠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10 그러고 나서 그들을 모두 둘러보시고는 그 사람에게, “손을 뻗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가 그렇게 하자 그 손이 다시 성하여졌다. 11 그들은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서로 의논하였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주님의 백성이 드리는 이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를 거룩하게 하시며 저희가 바라는 것을 이루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36(35),10 참조
주님, 당신께는 생명의 샘이 있고, 저희는 당신 빛으로 빛을 보나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전능하신 하느님, 성체로 새로운 힘을 얻고 간절히 바라오니, 저희가 주님의 뜻에 따라 살며 주님을 충실히 섬기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오늘 복음은 ‘시선’이라는 주제로 묵상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에 예수님께서 회당에 계셨는데 마침 오른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고발할 구실을 찾으려고 ‘지켜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의 병을 고치시면 안식일 법을 어기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당시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온 이스라엘에 자자했을 테니, 예수님께서는 공생활 내내 수많은 시선을 받으셨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눈길의 대부분은 부정적이었을 것입니다.
제주교구의 사제인 저도 시선에 대한 얽매임은 예외가 아닙니다. 교구가 작아 웬만한 신자들은 저를 알아봅니다. 그래서 어디서 무슨 행동을 하든, 신자들의 시선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이러한 많은 눈길에 어떻게 처신해야 할까요? 시선을 전혀 의식하지 않고 살아가는 것도 어리석지만, 그것에 얽매여 살아가는 것 역시 어리석습니다. 해답은 수많은 시선에 있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의 시선만이 정답입니다. 주님의 시선입니다. 주님의 눈길을 의식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오늘 예수님의 모습을 보면 이를 알 수 있습니다. 수많은 시선을 뒤로하신 채 오직 하나의 눈길만을 염두에 두십니다. 그래서 그분께서는 이러한 질문을 던지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
주님의 시선을 우선시하는 사람은 단순하면서도 명확합니다. 또한 겸손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시선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은 복잡하면서도 불투명합니다. 또한 교만하거나 열등감에 사로잡히기 십상입니다. 우리 각자는 어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