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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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22일 월요일

[(녹) 연중 제12주간 월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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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시편 27(26),1-2
주님은 나의 빛, 나의 구원. 나 누구를 두려워하랴? 주님은 내 생명의 요새. 나 누구를 무서워하랴? 나의 적 나의 원수, 그들은 비틀거리리라.

본기도

하느님, 모든 선의 근원이시니, 성령으로 저희 생각을 바르고 거룩하게 이끄시어, 옳은 일을 성실하게 실천하도록 도와주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신다. 그는 받아들인다. 거절할 수 있었지만 즉시 받아들인다. 철저한 순명이다. 주님께서는 아브람에게 축복을 약속하신다. 순명과 축복은 동전의 양면이다(제1독서). 남을 심판하기는 쉽다. 본인이 모르는 곳에서는 무슨 말이든 한다. 하지만 판단은 되돌아온다. 심판한 그대로 판단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비판에 앞서 자신을 돌아봐야 한다. 남의 눈의 티는 보지만 자기 눈의 들보를 못 보는 것이 인간이다(복음).

제1독서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 창세기의 말씀입니다. 12,1-9
그 무렵 1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2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 3 너에게 축복하는 이들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를 내리겠다. 세상의 모든 종족들이 너를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
4 아브람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 그의 나이는 일흔다섯 살이었다.
5 아브람은 아내 사라이와 조카 롯과, 자기가 모은 재물과 하란에서 얻은 사람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을 향하여 길을 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이르렀다.
6 아브람은 그 땅을 가로질러 스켐의 성소 곧 모레의 참나무가 있는 곳에 다다랐다. 그때 그 땅에는 가나안족이 살고 있었다.
7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말씀하셨다. “내가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주겠다.” 아브람은 자기에게 나타나신 주님을 위하여 그곳에 제단을 쌓았다.
8 그는 그곳을 떠나 베텔 동쪽의 산악 지방으로 가서, 서쪽으로는 베텔이 보이고 동쪽으로는 아이가 보이는 곳에 천막을 쳤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
9 아브람은 다시 길을 떠나 차츰차츰 네겝 쪽으로 옮겨 갔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33(32),12-13.18-19.20과 22(◎ 12ㄴ)
◎ 행복하여라, 주님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 행복하여라, 주님을 하느님으로 모시는 민족, 그분이 당신 소유로 뽑으신 백성! 주님은 하늘에서 굽어보시며, 모든 사람을 살펴보신다. ◎
○ 보라, 주님의 눈은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당신 자애를 바라는 이들에게 머무르신다. 죽음에서 그들의 목숨 건지시고, 굶주릴 때 살리려 하심이네. ◎
○ 주님은 우리 도움, 우리 방패, 우리 영혼이 주님을 기다리네. 주님, 저희가 당신께 바라는 그대로, 당신 자애를 저희에게 베푸소서. ◎

복음 환호송

히브 4,12
◎ 알렐루야.
○ 하느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내네.
◎ 알렐루야.

복음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7,1-5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1 “남을 심판하지 마라. 그래야 너희도 심판받지 않는다. 2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고, 너희가 되질하는 바로 그 되로 너희도 받을 것이다.
3 너는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4 네 눈 속에는 들보가 있는데, 어떻게 형제에게 ‘가만, 네 눈에서 티를 빼내 주겠다.’ 하고 말할 수 있느냐?
5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네가 뚜렷이 보고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을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이 제사를 자비로이 굽어보시어, 저희가 바치는 제물을 기꺼이 받으시고, 저희가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8(17),3
주님은 저의 반석, 저의 산성, 저의 구원자, 저의 하느님, 이 몸 숨는 저의 바위시옵니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저희 병을 고쳐 주시는 성체를 모시고 비오니, 저희를 주님과 갈라놓는 모든 악에서 성령의 힘으로 지켜 주시고 올바른 길로 이끌어 주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건물을 지을 때 넘어가는 것을 막으려 바닥이나 천장에 대는 지지대를 ‘들보’라고 합니다. 금방 눈에 뜨입니다. 하지만 티끌은 잘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남의 눈의 티끌’은 쉽게 찾아냅니다. 그러면서 ‘자기 눈의 들보’는 보지 못합니다. 어떤 사람이 ‘눈 속에 들보’가 있는 사람인지요?
남을 심판하는 사람이라고 하십니다. “너희가 심판하는 그대로 너희도 심판받을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을 심판하기는 쉽습니다. 본인이 없는 곳에서 허물을 말하기는 정말 쉬운 일입니다. 순간적으로 방심하면 누구나 빠지는 실수입니다. 하지만 그런 행위가 자신의 눈에 들보를 채우는 일이라고 하십니다.
‘저 사람은 왜 저렇게 말할까?’ ‘어찌하여 저런 식으로 행동할까?’ 무의식중에 이렇게 말합니다. 본인도 모르게 ‘비판의 시각’을 갖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바꾸려면 ‘긍정의 시각’을 훈련해야 합니다. ‘아, 그렇게 말할 수도 있구나.’ ‘그렇게 행동할 수도 있구나.’ 이렇게 받아들이는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기쁨을 갖고 살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기에 만나는 이들에게 ‘당신의 힘’을 주셨습니다. 병자들은 병이 나았고, 악한 기운에 붙잡힌 이들은 자유를 선물받았습니다. 그러한 주님께서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남을 판단하는 자체가 ‘삶의 기쁨’을 감소시키는 행동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