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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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6월 12일 금요일

[(녹) 연중 제10주간 금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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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당송

시편 38(37),22-23 참조
주님, 저를 버리지 마소서. 저의 하느님, 저를 멀리하지 마소서. 주님, 제 구원의 힘이시여, 어서 저를 도우소서.

본기도

전능하시고 자비하신 주 하느님, 주님을 합당히 섬기는 은총을 주시어, 저희가 영원한 행복을 바라보며 거침없이 달려가게 하소서. 성부와 성령과 …….

말씀의 초대

믿는 이들에게는 하느님의 힘이 함께한다. 그러기에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는다.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는다. 박해를 받아도 다시 일어선다. 그러므로 신앙인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일상에서 실천하는 사람이다(제1독서).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지 말라고 하신다. 잘못된 생각은 마음으로부터 절제하라는 말씀이다. 눈이 방해하면 눈을 제거하고, 손이 방해하면 손을 자르라고 하신다. 눈과 손에 ‘해당될 만큼’ 소중한 것일지라도 불순한 것이라면 피하라는 말씀이다(복음).

제1독서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실 것입니다.>
▥ 사도 바오로의 코린토 2서 말씀입니다. 4,7-15
형제 여러분, 7 우리는 보물을 질그릇 속에 지니고 있습니다. 그 엄청난 힘은 하느님의 것으로, 우리에게서 나오는 힘이 아님을 보여 주시려는 것입니다. 8 우리는 온갖 환난을 겪어도 억눌리지 않고, 난관에 부딪혀도 절망하지 않으며, 9 박해를 받아도 버림받지 않고, 맞아 쓰러져도 멸망하지 않습니다. 10 우리는 언제나 예수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지고 다닙니다. 우리 몸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1 우리는 살아 있으면서도 늘 예수님 때문에 죽음에 넘겨집니다. 우리의 죽을 육신에서 예수님의 생명도 드러나게 하려는 것입니다. 12 그리하여 우리에게서는 죽음이 약동하고, 여러분에게서는 생명이 약동합니다.
13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말하였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와 똑같은 믿음의 영을 우리도 지니고 있으므로 “우리는 믿습니다. 그러므로 말합니다.” 14 주 예수님을 일으키신 분께서 우리도 예수님과 함께 일으키시어, 여러분과 더불어 당신 앞에 세워 주시리라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15 이 모든 것은 다 여러분을 위한 것입니다. 그리하여 은총이 점점 더 많은 사람에게 퍼져 나가,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려는 것입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화답송

시편 116(115),10-11.15-16.17-18(◎ 17ㄱ 참조)
◎ 주님, 당신께 감사 제물 바치나이다.
○ “나 참으로 비참하구나.” 되뇌면서도 나는 믿었네. 문득 놀라 나는 말하였네. “사람은 모두 거짓말쟁이.” ◎
○ 주님께 성실한 이들의 죽음이, 당신 눈에는 참으로 소중하네. 아, 주님, 저는 당신의 종. 저는 당신의 종, 당신 여종의 아들이오니, 당신이 제 사슬을 풀어 주셨나이다. ◎
○ 주님께 감사 제물 바치며, 당신 이름 부르나이다. 모든 백성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나의 서원을 채우리라. ◎

복음 환호송

필리 2,15ㄹ.16ㄱ
◎ 알렐루야.
○ 이 세상에서 별처럼 빛나도록, 너희는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녀라.
◎ 알렐루야.

복음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5,27-32
그때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27 “‘간음해서는 안 된다.’고 이르신 말씀을 너희는 들었다. 28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29 네 오른 눈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빼어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0 또 네 오른손이 너를 죄짓게 하거든 그것을 잘라 던져 버려라.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는 것보다 지체 하나를 잃는 것이 낫다.
31 ‘자기 아내를 버리는 자는 그 여자에게 이혼장을 써 주어라.’ 하신 말씀이 있다. 32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강론 후 잠시 묵상한다.>

예물기도

주님, 교회가 바치는 이 제사를 깨끗하고 거룩한 제물로 받으시어, 이 제사로 저희에게 주님의 자비를 가득히 베풀어 주소서. 우리 주 …….

영성체송

시편 16(15),11 참조
주님, 저에게 생명의 길을 가르치시니, 당신 얼굴 뵈오며 기쁨에 넘치리이다.

영성체 후 묵상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잠시 마음속으로 기도합시다.>

영성체 후 기도

주님, 천상의 성사로 저희를 새롭게 하셨으니, 성령의 힘찬 능력을 드러내시어, 저희가 주님께서 약속하신 은혜를 얻게 하소서. 우리 주 …….

오늘의 묵상

“음욕을 품고 여자를 바라보는 자는 누구나 이미 마음으로 그 여자와 간음한 것이다.”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주님께서 목석과 같은 눈길을 원하고 계신 것일까요? 그건 아닐 것입니다. 어떤 여인을 보든지 ‘아무 생각도 갖지 말라.’는 것은 살아 있음을 포기하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런 말씀을 하실 리가 없습니다.
성을 홍보하는 세상입니다. 아무렇지도 않게 성을 자극하는 정보들이 범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감각 세계를 꾸짖으시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눈빛으로 그런 세상을 살아야 할지 ‘답을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평소 이성을 바라보는 눈길을 점검해 봐야 합니다. 욕망의 눈길이라면 바꾸고, 정상적인 눈빛이라면 계속 간직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마음으로 여인을 간음하는 것과 실제로 행동에 옮기는 것은 다릅니다. 마음의 간음은 유혹일 뿐입니다. 유혹에 윤리적 잣대를 들이댈 수는 없습니다. ‘말씀의 의도’는 마음으로부터 그런 생각을 차단하라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간음의 눈빛만을 금하신 것은 아닙니다. 폭력과 미움이 담긴 눈길, 권력 앞에서 굽실거리는 눈길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나 조금씩은 ‘그런 눈빛’을 가지고 있습니다. 탐욕의 눈빛을 승화시켜 ‘사랑의 눈길’로 바꾸라는 것이 복음의 숨은 가르침입니다.